|| 인간은 사회적 동물? 정치적 동물?
흔히 인간을 가리켜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다른 사람과 끊임없이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인간의 특성을 이르는 말인데 이 표현은 원래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학(Politics)’에서 인간을 ‘정치적 동물(zoon politikon)’이라고 정의한 데서 유래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생존, 인간으로서의 완전함, 공공의 선(善), 개인의 행복 등과 같은 목표를 온전하게 달성하고자 공동체 삶을 지향하려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였고 이러한 본성을 ‘정치적 동물’로 표현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정치’의 개념과 사뭇 거리가 있지만 요지는 인간의 삶에서 공동체는 필수 불가결의 기능적 구조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전에서 ‘사회생활을 하려고 하는 인간의 근본 성질’ 또는 ‘사회에 적응하는 개인의 소질이나 능력, 대인 관계의 원만성’으로 정의되는 사회성은 인간의 공동체적 본성을 지칭하는 또 다른 표현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 코로나19 사태와 청소년의 사회성 발달에 대한 사회적 위기의식 고조
이러한 인간의 사회성을 두고 얼마 전 우리 사회에는 예기치 못한 위기의식이 고조된 적이 있다. 미증유의 코로나19 사태로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지속되며, 대면 교류 활동이 위축됨에 따라 불안, 우울 등의 정서적,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특히 반복되는 등교 중단으로 학습은 물론 선생님 및 또래 집단과의 교류 활동 기회를 누리지 못한 청소년의 사회성 발달 문제에 대한 위기감은 고조됐는데, 이는 교육부의 「교육회복 종합방안 기본계획」(2021.07.29)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교육부는 기본계획에서 “학생의 사회성‧신체 건강 결손 회복을 위해 기존 단위 학교별 학생활동을 강화하고, 신체활동 확대 등을 지원한다”라는 대안을 수립하였다. 청소년기의 대표적인 사회화 기관인 학교가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본연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게 됐으니, 교육부로서는 학생의 학습, 심리, 정서 발달 문제를 당연히 걱정하여야 할 것이다. 더욱이 인간의 생애주기 중 청소년기의 인지적, 정서적 발달이 갖는 특수성과 중요성을 고려한다면 결코 가볍게 넘길 상황이 아니다.
|| 청소년의 사회성 결손 진단 되짚어보기
문제는 ‘사회성 결손’이라는 진단이다. 결손이란 무엇인가? 결손의 사전적 뜻풀이는 ‘어느 부분이 없거나 잘못되어서 불완전함’인데 사회성이 결손됐다는 것은 학생들에게서 사회생활을 하려고 하는 인간의 근본 성질 또는 사회에 적응하는 소질이나 능력, 대인 관계의 원만함 등이 없어지거나 잘못돼 불완전한 상태가 됐음을 의미한다.
작금의 코로나19 사태가 학생에게 초래한 학습격차, 심리·정서 문제 등을 결코 경시하거나 부인하는 것은 아니나, 학생들은 정말 코로나19를 겪으며 ‘사회성 결손’이라는 극단적 상황에 직면한 것이 맞을까? 또 이러한 진단은 무엇을 근거로 내려진 것일까? 안타깝게도 자료집에 인용된 국가교육회의의 여론 조사 결과(2020.11.)*를 제외하면,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기 전까지 학교라는 물리적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대면 교육과 교류 활동을 전부로 알고 있었던 어른들에게 온라인 교육은 분명 탐탁지 않은 대체제였을 것이다. 더욱이 온라인 교육 환경에서 학습지도도 원만하게 안 되는 상황을 지켜보며 학생들의 전인적 발달을 기대하기란 언감생심이 아니었을까?
문제는 이러한 진단이 사회성의 중요한 속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내려졌다는 점이다. 흔히 우리는 사교적이거나 집단에서 튀지 않게 행동하는 사람을 가리켜 사회성이 좋다고 말하는데, 사실 사회성의 개념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예를 들어 사회성에 관한 다양한 연구를 살펴보면 사회성은 공감, 안정성, 자율성, 리더십, 근면성, 책임감, 자기조절, 주장성, 협동성, 준법성, 의사소통, 사교성, 대인 관계 등 다양한 요인으로 구분되고 측정된다. 사회성의 속성이 그만큼 다차원적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사회성에 대한 우리의 피상적이고 제한적인 이해에 비춰 개인의 또는 특정 집단의 사회성을 진단 또는 재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뿐만 아니라 사회성은 고정불변의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지금의 청소년 세대를 가리켜 ‘디지털 네이티브’라고 부르는 이유는 단순히 이들이 기성세대보다 디지털 기술과 기기를 능숙하게 다뤄서만이 아니다. 이들이 디지털 기술과 기기를 매개로 노동, 소비, 교류 등 일상 전반에 걸쳐 새로운 가치와 문화를 창조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디지털 전환에 따른 새로운 사회 생태계에 적응하며 성장하는 이들이 보여주는 사회성이 기성세대의 그것과 다른 다른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실제로 Z, M, X세대의 사회성 발달 양상을 비교 분석한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최근 연구(최정원, 이지연, 김현수, 박지숙, 2022)에서 10대 중고생 Z세대는 40·50대의 X세대와 상반된 사회성 발달 양상을 보여주었다. 후자의 경우 책임감, 자율성, 근면성, 사교성, 안정성, 대인 관계 등의 영역에서 높은 점수를, 전자는 자기조절, 주장성, 의사소통 능력, 리더십 등의 영역에서 높은 점수를 보여주었는데, 이러한 결과는 공동체 안에서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타인과 원만하게 협업하며 안정된 관계를 유지하려는 기성세대의 성향과 무리 안에서도 자신을 드러내고 관계를 이끌고자 하는 지금 세대의 성향을 방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청소년의 사회성 발달 지원을 위한 제안
그렇다면 관건은 이러한 차이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이다. 기성세대가 지향하는 사회성을 잣대 삼아 학생들이 코로나19로 인한 공동체 활동의 중단으로 인해 타인에 대한 배려, 타인과의 협업, 개인의 손해나 불편 감수 등 공동체 생활에 필요한 덕목을 함양하지 못하였다고 단정하고 이들이 자신의 의견과 감정을 거침없이 드러내고 이해득실에 민감해하는 모습을 보일 때마다 이를 개인주의적 또는 이기주의적 성향이라고 묘사한다면, 학생들의 사회성은 ‘결손’이라는 진단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집단을 위한 개인의 희생이 당연하지 않고 자신의 흥미와 이익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타인에게 자신의 감정과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지금의 10대 중고생 Z세대가 지향하는 주장성, 리더십, 의사소통 능력 등의 자기주도적 사회성이라고 본다면 ‘결손’보다는 ‘다름’이라는 진단이 적절할 것이다.
그렇다면 학생들의 건강한 사회성 발달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특정 세대의 사회화 경험과 가치관이 사회성을 정의하고 판단하는 절대적 기준으로 작용해서는 안 된다. 사회는 다양한 세대가 공존하는 곳이기에 각 세대의 특징적인 사회성을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할 것이다. 학교 역시 예외는 아니다. 학교는 교사, 또래 집단 등 다양한 집단과 세대가 어우러져 생활하는 공동체다. 다름에 대한 노출과 인식이 자연스럽게 그리고 가장 먼저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학교 현장의 전문가들은 이러한 학교에서 학급 단위의 역할극 놀이, 또래나 선후배가 함께하는 동아리 활동이나 봉사 활동, 교사와 학생이 학교 안팎은 물론 온라인 공간에서도 함께하는 다양한 유형의 학습 활동, 체육 활동, 그리고 놀이 활동(특히 온라인 게임) 등을 활성화하는 것이 세대 내에서의 상호이해와 교감은 물론 세대 간 상호이해와 교류에 이바지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같은 맥락으로 다양한 직무 현장에서도 여러 세대의 종사자들이 정기적으로 교류하고 협업하는 활동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는데, 이러한 활동들이 조직 내 세대 갈등을 줄이고 협업과 업무 효율성을 제고하는 데 기여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학교든 직장이든 결국 중요한 것은 사회성의 다차원성과 유동성에 대한 이해와 다름에 대한 존중이다. 우리 사회가 청소년들의 건강한 사회성 발달에 관심을 보이고 필요 지원을 모색하는 것은 언제나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지만 ‘건강함’의 잣대를 선택하는 데는 매우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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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당 여론 조사는 ㈜엠브레인퍼블릭이 국가교육회의의 의뢰를 받아 실시한 「미래교육체제 대국민여론조사」임. 감염병 확산 이후 확대된 온라인 수업에 대한 인식과 관련해 ‘온라인 수업을 통해서는 학습자의 사회성을 기르기 어렵다”라는 문항에 대해 일반 국민 응답자의 76.4%, 학부모 응답자의 85.75, 교사 응답자의 87.6%가 동의함.
최정원 센터장은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연구위원으로 글로벌청소년연구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그동안 청소년 범죄, 사회성 발달, 정신건강 문제 등 다양한 주제의 연구를 수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