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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읽고, 이후 틈틈이 저자의 책을 찾아 읽었던 것 같다. 그러다 최근 내가 살고 있는 순천에서 저자를 초청한다는 소식을 듣고, 사전에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저자가 주도하고 있는 ‘기차길옆 작은학교’에 관한 다큐를 지인들과 같이 보게 되었다. 1988년부터 ‘자발적 가난’을 선택해 경제적 약자들이 사는 마을에서 정착하고, ‘아가방’과 ‘공부방’을 거쳐 ‘작은학교’를 이루기까지의 과정이 소개되어 있었다. 물론 다큐의 주요 내용들은 이 책에서도 상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아쉽게도 저자의 강연은 사정상 직접 듣지 못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어느 정도 이쉬움이 덜어졌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제목은 백령도에서 만난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의 서툴지만 감동적인 시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행동도 굼뜨고 말투도 어눌해서 다른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했지만, 저자 일행과 며칠을 생활하면서 마음을 열고 착한 감성을 그대로 시에 담아 표현했다고 한다. 시를 읽다보면, 글을 쓴 아이의 따뜻한 감성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다. 맞춤법에 따라 정리한, ‘영호’라는 아이가 쓴 시는 다음과 같다.
꽃은 많을수록 좋다
마음에 사랑을 담아서
아직 안 자란 꽃도 있다.
아무런 편견 없이 꽃을 바라보는 아이의 착한 마음이 담겨있는데, 젊은 시절부터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살아왔던 저자의 마음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저자와 함께 공부방에서 생활했던 아이들이 졸업을 한 이후에, 다시 공부방으로 돌아와 새로운 아이들의 ‘이모’나 ‘삼촌’으로 정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지금도 ‘작은학교’에서는 아이들을 돌보며 지도하는 이들을 ‘삼촌’ 혹은 ‘이모’로 부른다고 한다. 저자 부부가 그랬듯이,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부부의 인연을 맺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아마도 서로의 생각과 생활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모두 3부로 이뤄져 있다. ‘만석동, 자발적 가난과 공동체의 꿈’이란 제목의 1부에서는, 저자가 처음 인천의 만석동에서 아가방과 공부방을 운영하면서 정착했던 초창기의 ‘역사’를 그려내고 있다. ‘자발적 가난’을 선택하여 경제적으로도 여유롭지 못한 가정의 아이들이 그대로 방치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아이들과 함께 하기 위해 공부방을 꾸리며 고군분투했던 저자의 상황이 그대로 전달되고 있었다. 그동안 수많은 후원자들의 힘으로 공부방을 꾸릴 수 있었기에, 저자는 ‘돈이 없어도 나는 빈민이 아니다’고 외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틈틈이 구청이나 다른 기관에서도 지원을 받은 적이 없지는 않지만, 저자의 활동에 공감하는 후원자들의 역할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2부는 ‘결핍과 나눔으로 자라는 아이들’이란 제목으로, 저자의 자녀들과 공부방 아이들의 사연들을 소개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한 아이들은 중3이 되면서 ‘인문계냐, 전문계냐’ 하는 진로에 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고, 많은 아이들은 결국 전문계를 선택해서 진학한다고 한다. 물론 대학 진학이 유일한 진로가 될 수는 없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자신의 진로를 뜻대로 정할 수 없는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에서 한편으로 안타까움을 느꼈던 것이다. 또한 공부방 식구 전체가 참여하는 3박 4일 동안의 캠핑을 통해, 아이들이 교감하고 성장하는 것을 지켜볼 수 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소개하고 있다. 1년에 한 차례 씩 공연을 올리기 위해 노력하는 아이들의 모습과, 그것을 기화로 이제는 수준 높은 인형극을 공연할 수 있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자랑거리일 것이다. 2부의 내용들은 ‘작은학교’의 활동을 기록한 다큐에서도 소개되어 있다.
‘강화의 시골에서 다시 희망을 배우다’는 제목의 3부는, 저자가 만석동을 떠나 강화의 시골에 이사하고 정착하는 과정을 소개한 내용이 다뤄지고 있다. 아이들이 참여하는 '울력'을 통해 농사를 짓기도 하고, 이사할 걱정 없이 지낼 수 있다는 것에서 기뻐하는 공동체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공부방 아이가 어느새 길동무’로 성장하여 ‘작은학교’를 지키는 모습을 보면서, 저자는 ‘여전히 사람이 힘이다’는 말을 실감하기도 한다. 그리고 공동체 가족들이 밥을 함께 먹으면서 교감을 나눌 수 있었기에, ‘밥’이야말로 공부방의 30년 역사를 지킨 힘이라고 강조하기도 한다. 앞으로도 지속될 ‘작은학교’의 미래를 그려보면서, 저자는 ‘공동체는 장소가 아니라 가치’임을 절감했다고 한다.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을 하고, 그 길을 꾸준히 걸어가고 있는 저자와 공동체 사람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자 한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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