勺詩富林 72강
10장 상징象徵 (2)
2019년 11월 13일
OECD의 ‘국제 성인 문해 조사’ 결과, 한국의 ‘실질문맹률’(75%)이 OECD 22개 국가 중 최하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실질문맹’이란 새로운 필요한 정보나 기술을 배울 수 없을 만큼 문자 해독 능력이 떨어지는 경우를 가리킨다. 특히 전문적인 정보기술(IT) 등 첨단정보와 새로운 기술, 직업에 자유자재로 적응할 수 있는 ‘고도의 문서 해독 능력’은 참담할 지경이다. 한국의 경우 이 능력을 지닌 사람은 2.4%에 불과하다. 노르웨이(29.4%), 덴마크(25.4%), 핀란드, 캐나다 (이상 25.1%), 미국(19%) 등에 비해 형편없이 낮은 수준이다.
일곱 번째 사람
아틸라 요제프 József, Attila
세상에 나아가 인생 여행을 하며
일곱 번 다시 태어나세요―
불난 집에서 한 번,
얼음처럼 찬 물에서 한 번,
걷잡을 수 없는 정신병원에서 한 번,
바람이 몰아치는 밀밭에서 한 번,
아무도 없는데 종이 울리는 수도원에서 한 번,
비명을 지르는 돼지들 가운데서 한 번,
여섯 아이가 울지만 충분하지 않아요―
당신 자신이 그 일곱 번째가 되어야 해요!
생존을 위한 싸움을 해야 할 때
당신의 적이 일곱 사람을 보게 하세요―
일요일에 일하지 않는 사람,
월요일에 일을 시작하는 사람,
보수 없이 가르치는 사람,
물에 빠져 수영을 배우는 사람,
숲을 이룰 씨앗이 되는 사람,
야생의 선조들이 보호해주는 사람,
하지만 이들의 비결 전부로도 충분하지 않아요―
당신 자신은 일곱 번째여야 해요!
당신의 여자를 찾고자 하면
남자 일곱을 그녀에게 보내세요―
말보다 가슴을 주는 남자,
자신을 돌볼 줄 아는 남자,
꿈꾸는 사람을 자처하는 남자,
그녀의 스커트로 그녀를 느낄 수 있는 남자,
호크와 단추를 아는 남자,
단호히 행동하는 남자,
이들이 파리처럼 그녀를 맴돌게 하세요―
당신 자신은 일곱 번째여야 해요
할 수만 있다면 시인이 되세요
하지만 시인 안에는 일곱 사람이 있어야 해요―
대리석 마을을 짓는 사람,
자신의 꿈속에서 태어난 사람,
하늘의 지도를 그리며 하늘을 아는 사람,
자신의 이름이 언어에 의해 부름을 받는 사람,
자신의 영혼을 책임지는 사람,
쥐를 산 채로 해부하는 사람―
이 중 둘은 담대하고 넷은 슬기로우니
당신 자신이 일곱 번째여야 해요
이 모든 것이 그대로 이루어지면
당신은 일곱 사람을 위해 묻히리니―
한 사람은, 요람에서 젖을 빠는 사람
한 사람은, 젊은 여자의 살진 가슴을 쥐고 있는 사람
한 사람은, 빈 접시들을 내던지는 사람
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들이 이기도록 도와주는 사람
한 사람은, 몸이 부서지도록 일하는 사람
한 사람은, 밤새도록 달을 바라보는 사람, 그러면
세상이 당신의 비석(碑石)이 될 거예요―
당신 자신이 일곱 번째라면
※ 1905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비누공장 노동자인 아버지와 세탁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요제프는 자라면서 온갖 노동을 다 했다. 그는 신문팔이, 선박 급사, 신문 배달원, 옥수수밭 경비원, 시인, 번역가, 항만 하역부, 날품팔이 등 열아홉 개 직업을 전전한다. 열일곱의 나이에 첫 시집 '아름다움의 구걸인'을 발표, 유토피아에 대한 희망과 좌절, 노동자의 고단한 삶을 시에 오롯이 담아냈다. 이 시집으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지만 그의 삶은 지독한 가난과 외로움에 시달려 평탄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가난이 집어삼킬 수 없을 만큼 꿋꿋했으나 결국 서른두 살 때 비운으로 얼룩진 생을 화물열차에 던져 마감했다. 20세기 헝가리를 대표하는 민중 시인으로 꼽힌다. 유네스코는 2005년을 '아틸라 요제프의 해'로 정해 그의 삶과 작품을 조명하기도 했다.
시인에게
발레리 야꼬블레비치 브류소프 Valery Yakovlevich Bryusov
그대는 깃발처럼 당당해야 한다
그대는 칼처럼 날카로워야 한다
그대의 불은 단테처럼,
지옥의 어둠을 밝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대의 눈길을 세상 만물에 돌려,
냉정한 목격자가 되어라.
그리고 그대의 착한 시들을 통해
장작더미 불 위에 오를 채비를 갖추도록 하라.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신바람 넘치는 시로 가기 위해 거쳐야 할 길
그러므로 그대의 슬픔 없던 어린 시절에서
사랑의 말을 찾으라.
그리고 그 사랑을 끌어안는 바로 그 순간
당신은 스스로 침착하게 되뇌어야 한다,
무자비하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지라도
그대의 미칠 듯한 고통을 찬미하겠다는 것을.
아침 꿈결에서도, 밤의 심연 속에서도
운명의 속삭임을 잡아라,
그리고 기억하라: 예부터
시인이 아끼는 왕관은 가시관이라는 것을.
작은 풍선이 있는 정물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Wislawa Szymborska
죽음의 순간에 이르면
추억을 되돌리기보다는
잃어버린 물건들을 되찾고 싶다.
창가와 문 앞에
우산과 여행 가방, 장갑, 외투가 산더미.
내가 한번쯤 이렇게 말할 수 있도록.
"아니, 도대체 이게 다 뭐죠?"
이것은 옷핀, 저것은 머리빗,
종이로 만든 장미와 노끈, 주머니칼이 여기저기.
내가 한번쯤 이렇게 말할 수 있도록.
"뭐, 아쉬운 게 하나도 없네요."
열쇠여, 어디에 숨어 있건 간에
때맞춰 모습을 나타내주렴.
내가 한번쯤 이렇게 말할 수 있도록.
"녹이 슬었네. 이것 좀 봐, 녹이 슬었어."
증명서와 허가증, 설문지와 자격증이
구름처럼 하늘을 뒤덮었으면.
내가 한번쯤 이렇게 말할 수 있도록.
"세상에, 태양이 저물고 있나 보군."
시계여, 강물에서 얼른 헤엄쳐 나오렴.
너를 손목에 차도 괜찮겠지?
내가 한번쯤 이렇게 말할 수 있도록.
"넌 마치 시간을 가리키는 척하지만, 실은 고장 났잖아."
바람이 빼앗아 달아났던
작은 풍선을 다시 찾을 수 있었으면
내가 한번쯤 이렇게 말할 수 있도록.
"쯧쯧, 여기엔 이제 풍선을 가지고 놀 만한 어린애는 없단다."
자, 열린 창문으로 어서 날아가렴.
저 넓은 세상으로 훨훨 날아가렴.
누군가 제발 큰 소리로 "저런!" 하고 외쳐주세요!
마침내 내가 와락 울음을 터뜨릴 수 있도록.
만일 If
루드야드 키플링 Joseph Rudyard Kipling
만일 모든 사람이 이성을 잃고 너를 비난할 때
냉정을 잃지 않을 수 있다면,
만일 모든 사람이 너를 의심할 때
너 자신을 믿고 그들의 의심을 감쌀 수 있다면
만일 네가 기다릴 수 있고
또한 기다림에 지치지 않을 수 있다면
거짓이 들리더라도 거짓과 타협하지 않으며
미움을 받고도 미워하지 않으며
그러면서도 너무 선한 체 하지 않고
너무 지혜로운 말들을 늘어놓지 않을 수 있다면
만일 네가 꿈을 갖더라도
그 꿈의 노예가 되지 않을 수 있다면
또한 네가 어떤 생각을 갖더라도
그 생각이 유일한 목표가 되지 않을 수 있다면
그리고 만일 인생의 길에서 성공과 실패를 만나더라도
그 두 가지를 똑같은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네가 말한 진실이 악인들에 의해 왜곡되어
어리석은 이들을 옭아매는 덫이 되더라도
그것을 참고, 들을 수 있다면
그리고 만일 네 일생을 바쳤던 일이 무너지더라도
낡은 연장을 들어 다시 그걸 일으켜 세울 수 있다면
한번쯤은 네가 쌓아 올린 모든 걸 걸고 내기를 할 수 있다면
그래서 그것을 다 잃고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그러면서도 네가 잃은 것에 대해 침묵할 수 있고
다 잃은 뒤에도 변함없이 네 가슴과 어깨와 머리가 널 위해 일할 수 있다면
설령 너에게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아
"버티어라" 라고 말하는 의지뿐인 때도
끝내 버텨낼 수 있다면
만일 군중과 이야기하면서도 너 자신의 덕을 지킬 수 있고
왕과 함께 걸으면서도 상식을 잃지 않을 수 있다면
적이든 친구든 너를 해치지 않게 할 수 있다면
모두가 너에게 도움을 청하되
그들로 하여금 너에게 너무 의존하지 않게 만들 수 있다면
그리고 만일 네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1분간을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60초로 대신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세상은 너의 것이며
너는 비로소 한 사람의 어른이 되는 것이다
알바트로스 L'Albatros
샤를 보들레르 Charles Baudelaire
자주 뱃사람들은 장난삼아
거대한 알바트로스를 붙잡는다.
바다 위를 지치는 배를 시름없는
항해의 동행자인 양 뒤쫓는 해조를.
바닥 위에 내려놓자, 이 창공의 왕자들
어색하고 창피스러운 몸짓으로
커다란 흰 날개를 노처럼
가소 가련하게도 질질 끄는구나.
이 날개 달린 항해자가 그 어색하고 나약함이여!
한때 그토록 멋지던 그가 얼마나 가소롭고 추악한가!
어떤 이는 담뱃대로 부리를 들볶고,
어떤 이는 절뚝절뚝, 날던 불구자 흉내낸다!
시인도 폭풍 속을 드나들고 사수를 비웃는
이 구름 위의 왕자 같아라.
야유의 소용돌이 속에 지상에 유배되니
그 거인의 날개가 걷기조차 방해하네.
인 연
이희중
씨를 뿌리면 묶인다
땅을 놓아두면
바람 속에 살던 풀씨들이 내려와서
제 마음대로 자란다
땅을 만지고 내 씨를 뿌리면
자꾸 그 자리를 쳐다보게 된다
싹이 텄는지, 가물지는 않은지
바람이 불면 어떻게 흔들리는지
누가 갉아먹지는 않는지
거름 없이 어떻게 자랄지
걱정이 새끼를 치면서 슬슬 더 단단히 묶인다
그러므로 씨를 뿌리기 전에
오래 생각해보아야 한다
막판이 된다는 것
문보영
후박나무 가지의 이파리는 막판까지 매달린다 그늘을 막다른 골목까지 끌고 갔다 막판 직전까지 그 직전의 직전까지 밑천이 다 드러난 그늘을 보고서야 기어이
후박나무는 그늘을 털어 놓는다 막판의 세계에는 짬만 나면 밤이 나타나고 짬만 나면 낭떠러지가 다가와서 막판까지 추억하다 잎사귀를 떨어뜨렸다 추억하느라 파산한 모든 것
붙잡을 무언가가 필요해 손이 생겼다 손아귀의 힘을 기르다가 이파리가 되었다 가지 끝에서 종일 손아귀의 힘을 기르고 있다 그러나 양손이 모두 익숙지 않은 것들은 양손잡이일까 무손잡이일까 그늘을 탈탈 털어도 가벼워지지 않는
애면글면 매달려 있는, 한 잎의 막판이 떨어지면 한 잎의 막판이 자라고
아무것도 붙잡을 수 없어서 손이 손바닥을 말아 쥐었다 손을 꽉 쥐면 막판까지 끌고 갔던 것들이 떠오른다 막판들이 닥지닥지 매달려 있다 막판 뒤에 막판을 숨긴다
우리나라 악기
윤제림
1.
대나무는 들은 이야기가 워낙 많아서 한나절이면 피리가 된다. 가죽은 가슴 칠 일이 많아서 하룻저녁에 북이 된다. 나무는 저도 말 좀 해보자고 신 새벽 골라 가야금이나 거문고가 된다. 쇠는 무시로 손들고 나오며 징이 되고 꽹과리가 된다. 쟁 쟁 쟁, 쇠한테 지고 싶지 않은 돌들이 편경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