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만 서로를 찌르는게 아니다. 알게 모르게 숫한 까시들을 가지고 서로를, 혹은 자기 자신을 찔러대는 까시를 가지고 살고있다. 나만 그런가. 별 이유도 없이 싫은 까닦을 곰곰히 생각해보면, 내가 갖지 못한것을 그는 갖고있기 때문일때가 있지않던가. 상대방은 전혀 모르는 나만의 질투 감정에 빠저서 길고도 긴 세월을 낭비한 적은 없었나. 나는 비교적 내가 먼저 인사를 하는 편이다. 그런대 몇사람에게는 딱 마주치는 순간이 아니면 되도록 피하게 되는 사람이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잘난 사람들이다. 그사람 가까히 보고 있으면, 목사님들도 먼저 인사하기에 바빠보였고, 다른 사람들은 보이지도 않는듯 싶은게 시기 질투와 부려움이 아니면 뭐겠는가. 그랬다. 바로 그랬다. 그거다. 어쩌면 교회안에가 더 계급 사회일지도 모른다. 헌금도 잘내고 식사대접도 시시때때로 하는 사람과,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사람이 어찌 평등을 말할수 있겠는가. 어쩌면 교회 문을 들어서는 모습 부터가 다를수도 있다. 다수의 인사를 받으며 당당히 입장하는 근사한 차림의 사람과, 어깨를 제대로 펴지도 못하고 슬그머니 들어서는 사람이 어떻게 같을수 있겠는가. 어쩌면 천국에 들어갈때도 같은 광경이 아닐련지 모르겠다. 인간들이 모이는 곳은 어디나 서열이 있고 계급이 있게 마련이니 말이다. 어쩌면 모든 질서와 평등과 자유는 이런 서열과 계급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꿈꾸는 천국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내가 꿈꾸는 천국은 어떤 곳인데? 공평과 선의가 가득한곳? 아픔이나 분열이 없는곳? 인간은 다 제각각이다. 능력이 다르고 취향이 다르다. 내게 좋은것이 모두에게 좋은 것일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다. 동전에 앞면과 뒷면이 있는 것처럼 선과 악이 공존하는 상황에서 옳고 그름이나 다름을 나눌수가 있을까. 누가? 서로가 각자도생을 하고 그게 최선일수도 있다. 아니, 처음부터 줄곧 우리는 알아서 살아가고 있는 샘 아닌가. 그래서 잘남과 못남이 갈리고, 빈부가 갈리고, 승패가 갈리고,,, 통합이나 어떤 혁신이 블가능하게 되어있다. 꼴찌들이 함성을 질러대며 그들끼리 또 서열이 생겨나고 부축이며 계급이 이루어지는게 현실이다.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밖엔 시원한 바람이 불고있다. 한낮엔 햇볕이 얼마나 뜨겁던지, 엊그제 양일간엔 엄청 더웠다. 오늘도 한낮엔 덥다고 한다. 집안에도 29도다. 분명 가을이 온듯도 싶은데, 귀뜨라미가 울어대고 있으니 가을 맞다. 그런데 한낮엔 여름 못지않다. 힘들게 수고해서 걷저리김치를 해가지고 갔더니 반찬가개에서 산 파김치가 더 맞있다는 작은 손주말에 동의하면서 웃었다. (내가 물어보았다) 많이 비싸니까, 다른 재료들이 집에 다 있으니까 작정하고 한것인데, 애들 입맛도 어느세 사먹는 반찬에 길들여지고 만것인가. 내 솜씨가 영 별로인 탓일게다. 힘내자, 파이팅! 내발고 걷고 일상을 살아가는게 얼마나 감사한가. 잘 잘수있는 것도 은혜다. 간밤엔 열시간도 더 잤지 싶다. 빈둥대는게 유유자작은 분명 아닐지 몰라도 이런 일상이 내게는 참 좋다. 돈 걱정 없는 것이 무엇보다도 좋다. 여유가 있어서 걱정이 없는게 아니라 돈 쓸일이 없어서가 아닐까. 옷을 비롯해서 이런 저런 물건들을 안산다. 최소한의 먹거리로 만족하며 살고있다. 옷장에 걸려있는, 내게는 아직 충분히 좋은 옷들도, 이불들도 곧, 아니면 머지않아 버려질 운명이라 생각하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렇다고 저것들 때문에 더 살겠다고, 저것들 때문에 줄구장창 살겠다고 할수는 없지않겠는가. ㅎㅎㅎ. 쓸만하던 아니던 버려질것들은 버려지겠지. 이미 내가 아까워할 단계는 아니다. 자! 오늘 하루를 선물로 받았으니 잘 살아보자! 성경대신 언제까지 소설을 읽게될까. 그러지 말고 소설도 읽고 성경도 읽자. 유튜브로 중국영화도 보고 또 보자! 내게 시간을 주신 분은 그분이시다. 그분이 내게 충분히 즐겁게 살라하신다. 감사하고 또 감사하자! 끝날이 언제가 되던 끝까지 내가 나 이면 그것으로 충분함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