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11일과 12일 읽은 책.
- 두 개의 여름
(사노 요코, 다니카와 슌타로 연작소설/정수윤 옮김/미디어창비/2020년/13,000원/청소년 이상)
어제 눈으로 읽은 <두 개의 여름>
오늘 손으로 읽은 <두 개의 여름>
같은 책인데 다른 책이 되었다.
안녕......
다시 가을이 오고 있다.


"너 있잖아, 우주가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지 알아? 지금 우주에 관한 책을 읽고 있어."
나는 생글거리며 말없이 돌아왔습니다.
밤에 잘 때, 할머니에게 물었습니다.
"할머니, 우주 알아?"
"그게 뭐냐, 얼른 자자."
할머니가 말했습니다.(21쪽)
지금 생각났다, 이글을 쓰는 지금, 분명히 생각났다. 현관에 있는 밀짚모자는 그때 주워 온 것이다.
모자걸이에서 모자를 가져와 책상 옆에 두었다. 냄새를 맡아보았다. 케케묵은 냄새가 날 뿐이다.
더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이제껏 단 한 번도 뱉어본 적 없는 이름이, 목젖까지 차올랐다가 끝끝내 나오지 않는다. 어머니의 이름도, 아내 이름도, 딸아이 이름도 아니다.(41쪽)
나는 벼랑을 내려가 강가로 갔습니다. 모자를 두고 온 곳에 모자가 없습니다. 예쁜 뱀 허물만 거기 있었습니다.
어제 그 구멍은 강물이 넘쳐서 형태가 무너졌습니다. 깨끗한 물이 그 위를 바삐 흘러갑니다.
나는 뱀 허물을 주워 집게손가락에 정성껏 감았습니다.
촉촉하게 젖은 뱀 허물이 친친 감긴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날름 핥아보았습니다.
아무 맛도 나지 않습니다. 나는 뱀 허물을 풀어 강물에 흘려보냈습니다. 허물이 살아 있는 뱀처럼 꿈틀거리며 바삐 흘러갔습니다.(45쪽)
별생각 없이 그 못을 주웠다. 흰 꽃은 잊고 그 못을 응시했다. ㄴ자 모양으로 휘어 녹슬어가는 못 하나. 울타리에 박혀 있던 것이리라. 어쩐지 무척이나 그리운 느낌이 들었다. 어째서일까. 못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닐까 하고 바보처럼 생각했다. 못을 주머니에 넣는데 대문 쪽에서 자동차 경적 소리가 났다.(47쪽)
교실에 여자 어른은 선생님과 엄마뿐이다. 두 사람은 동갑이지만 같은 여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돌아보니 시궁쥐 같은 아버지들이 만원 전철처럼 혼잡하게 서 있는데, 엄마 주위만 한산하게 비어 있다.(66쪽)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죽었다. 어이없는 사고였다. 정말 우스꽝스러운 이야기인데, 하늘에서 사람이 떨어졌다. 알고보니 서른두 살의 태국여성이었다. 그녀는 나와 달리 자살할 기운이 있었나보다.(72쪽)
그녀는 나와 달리 열렬히 살고 싶다고 갈망했고, 아무리 애를 써도 살고 싶다는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을 거란 걸 깨달았을 때, 공사 중인 건물 7층 발판에서 뛰어내렸다. 말하자면 그녀는 살고 싶어 죽은 것이다.(75쪽)
다시 여름이 왔다.(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