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샤깔라(김 웅)님의 교우 단상: 고양이 레오 ◈
인턴직으로 일을 했던 작년, 직장의 모든 상황이 그저 신기했지만, 더 신기했던 건, 숙소의 2층 테라스에서 버너로 계란말이를 해 먹으려고 불을 켜는 순간, 고양이 한 마리가 제 오른쪽 바지 밑단에 박치기를 하더니, 자기의 뺨을 쓱쓱 비볐을 때였습니다.
길고양이들은 사람을 보면 경계하는데, 이놈은 저와 직장 선배에게 달라붙어 왜 이런 행동을 할까 궁금해서 알아보았더니, 고양이는 냄새로 대상을 구별하고 고양이의 양쪽 뺨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분비물이 나와 애착을 갖는 사물과 사람에게 묻혀서 그 냄새로 인식을 한다고 하더군요.
관리가 잘 안 되는 낡은 아파트에서 살기에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고양이로만 박혀 있었기에 박치기 한 번으로 고양이에 관한 관심을 갖게 된 것 자체가 반전이었던 거죠.
정확한 개체 수는 모르지만, 아파트에는 대략 십수 마리의 길고양이들이 각각 여러 직군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숙소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살고 있음을 짐작하는 정도입니다.
식당 문에는 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대표님 명의의 글귀가 걸려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은 제가 식당에 남아 있는 삶은 달걀 몇 개를 주섬주섬 가져와서 숙소 테라스의 레오 밥그릇에 놓으니, 저 멀리 지붕에서 혼자 놀던 레오가 뛰어와서 맛있게 먹고는 더 없냐는 표정을 짓고 다시 지붕에 올라가서 먼 풍경을 바라보곤 합니다.
고양이는 동체 시력이 매우 발달해서 움직이는 대상에 재빠르게 대응할 수 가 있다고 하는데요, 그 덕에 식사 후에는 높은 곳으로 올라가 탁 트인 풍경을 보면서 움직이는 차들과 사람, 동물들을 구경하는 것이 레오의 일상이자 취미처럼 보입니다.
이곳엔 고양이 장난감이 없어서 제가 조그마한 밧줄을 마치 뱀이 춤을 추듯, 빨랐다가 느리게, 느리다가도 빠르게 휘저으면, 레오의 눈동자는 오직 밧줄의 끝부분을 향해 쉼 없이 움직입니다. 재빠르게 앞발을 사용하고, 점프도 하고, 매복을 했다가 갑자기 튀어나오기도 하는 등 레오의 즐거움은 상상 이상입니다.
수의사들은 고양이의 이러한 사냥놀이를 최소 20분 정도는 해주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30도가 넘어가는 날씨에도 일이 끝난 후에 숙소 주변에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레오와 놀아주다 보면 두어 시간이 넘어갈 때도 있으니 병원 식구 중에는 제가 레오 담당 집사가 된 꼴이었죠. 그러다 보면 레오에게 많이 맞기도 해서 손과 손목에 극소량의 피가 맺힌 상처 자국들이 생기기도 하는데요, 복슬복슬한 털이 있는 배 부분을 만질 때, 발바닥을 만질 때, 머리를 너무 많이 쓰다듬을 때는 취약한 부분을 공격당한다고 생각하여 날카로운 발톱을 들고 앞발로 대상을 쳐내는 일명, 냥냥 펀치를 날리는 행동을 취합니다. 반면 고양이들은 스스로 몸을 구석구석 핥으며 청결을 유지하는데, 주로 닿지 않는 콧잔등부터 머리를 넘어 등까지 쓰다듬어주면 고양이들이 무척 좋아합니다. 또한 꼬리 주변부에 기분을 좋게 하는 신경들이 모여있어서 톡톡 쳐주면 즐거워하고,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자주 내기도 하죠. 이 뜻을 몰랐을 때는 레오가 나를 물려고 하는 행동인 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고양이들은 기분이 좋거나 편안할 때 그르렁거리는, 일명 골골송을 낸다고 합니다.
레오의 족보는 잘 모르지만 두 살배기 라는 것과 중성화 수술을 했다는 것, 호피 무늬를 띈 것으로 보면 ‘벵갈종’과 ‘아메리칸숏 헤어종’의 혼혈 잡종 내지는, 혼혈 된 이집트 고양이로 추정됩니다. 중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수술실에서 수의사 선생님 옆에 있으면서 고양이를 좀 더 알게 되었던 것이죠.
사냥놀이 실력이 향상됐는지 아침 일찍 레오가 어디선가 조그마한 쥐를 잡아 오더니 테라스 중앙에 물어다 놓고 칭찬을 기다리는 것 같았습니다. 아침 조회를 참석하려던 선배님들은 테라스에서 쥐의 사체를 마주하자 눈살을 찌푸리지만, 제 눈에는 레오가 기특해 보이니 찐 집사가 된 것이죠! 조회가 끝나고 숙소로 돌아오면 밥 달라고 보채는 것으로 시작해서, 점심엔 사료통을 흔드는 소리에 번쩍 뛰어오고, 저녁 식사 후엔 놀이를 하는 것도 모자라, 숙소 주변에서 매트를 깔고 윗몸일으키기를 하는 동안에도 레오는 심심했는지 제 머리맡 주변을 서성댑니다. 당직 근무가 있는 날에 동이 트기 전 퇴근하여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도 레오는 열심히 주변 나무를 올라갔다가 내려와서는 장애물 뒤에 숨어서, 어슬렁거리는 다른 고양이를 경계하기도 합니다. 주로 1인 1실인 숙소 앞에 각각 놓여진 쓰레기통을 뒤엎고 가는 다른 고양이 녀석들을 레오가 견제하고 있음에도, 가끔 레오가 한눈을 판 사이에는 한 놈이 벌써 쓰레기통을 엎고 그 안에서 나온 햄버거의 고기패티를 주워 먹고 달아나기도 합니다. 방음이 안 되는 컨테이너 안에서 새벽에 선배님들과 제가 잠을 깰 때가 꽤 있었던 것이 고민이었지만, 레오가 지켜주니 지낼만한 밤이었죠.
인턴 기간이 끝난 지금은 가끔 후임자에게 연락하여 레오의 근황 사진을 부탁하고 있습니다. 잘 먹고 잘 지낸다니 다행입니다 ^^.
일반적으로 강아지보단 고양이를 키우는 것이 손이 덜 간다는 견해가 있지만, 여전히 반려동물을 키우는 건 돈이 들어가는 것이니 부담스럽기 마련입니다. 그래도 기회가 된다면 너튜브로 만족하는 랜선 집사 말고 직접 고양이를 키워보고 싶네요.
귀여운 고양이 레오야 잘 지내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