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정신의 이마 위 아비시니아 고원에서 (외 1편)
김 영 찬
내 정신의 드높은 이마 위 아비시니아 고원에서는
골프공 날아와 유리창 와장창 깨지는 사건이란
책상을 떠나 사건이 될 수 없고
새벽을 깨우느라 바쁜
유리창떠들썩팔랑나비의 비공개 비행飛行 기록을 점검하느라
정신없지만
태풍 나크리가 양식장과 과수원을 할퀴고 지나가도록
아무도 챙기지 않고 방관했다니!
전복양식장이 전복되고
떨어진 낙과가 욕구불만처럼 나뒹굴어 어지러운 산복도로
수건 두른 인부들의 허리 굽은 길가에
집채만 한 바위돌이 구르고
그럴 때마다
덜 마른 빨래가 나폴리의 깃발처럼 펄럭여
신호를 보낸다
어떤 신호?
태풍 ‘나크리’라는 이상한 이름 대신 태풍 ‘나들이’로 불렀더라면
가벼운 나들이 떠났다가 돌아오는
태풍이 님을 보고
님 그리워 뒷걸음질 치는 모습으로 살짝
시의 행간에 끼어들었을 텐데
숱 많은 내 이마 위 아비시니아 고원에서는
유리창떠들썩팔랑나비떼들이 팔랑팔랑 앞서 간 길을 따라
황혼에 날아간 새
지혜의 부엉이가 그 먼 숲의 둥지를 틀다가 풀썩
새벽꿈에 틈입해 들어와 꿈결에서
알을 품는다
개펄
갖으세요, 나를, 운동장이 여유만만한 척 일갈한다
갖으시라니까요, 나를, 운동장 끝에서
운동장이 불안정하게 말한다
딱딱하다
나를 갖고 싶은 만큼 갖으세요, 이번에는 보자기가 끼어들었다
나를 갖고 싶으면 숫제 갖으시라니까요, 라고 보자기가
보자기로 운동장을 감싸면서 울퉁불퉁
내뱉었다
나는 듣기만 한 것 아니다
군침만 흘린 것 아니 결코 아니다
무엇이든 가리지 않겠다고 눈 휘뚝거린 것도 아닌데
아니라고 피딱지지게 변명만하다가 이제부터는 정말 질펀하게 한번
제대로 갖고 싶다
그녀를 개펄에 자빠뜨려 누이고 싶다
살아있는 그녀를 살아 꿈틀거리는
본질 그대로
개펄에 눕혀 질퍽질퍽
이미 젖은 몸 몸뚱이가 수렁에 갇히도록 이것 봐라 심지어
지겹도록 지근지근
그런데 정말 신바람 나서 껄쭉거리는 바다
보자기에 싸졌다가 운동장에 펼쳐진 바다가 수평선을 끌고 나가
좁은 혈관 저 끝 실핏줄까지 들먹들먹
욱신거리게 한다
-시인정신 2014년 가을호
김영찬 : 충남 연기 출생. 2002년 계간 [문학마당]에서 문단활동 시작. 시집 불멸을 힐끗 쳐다보다 및 투투섬에 안 간 이유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