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봄날을 기억하고 있을까 / 임정희
예식장에서였다.
신랑 신부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느라고 정신이 없는데 바로 옆자리에서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다. 힐끗 돌아보니 친구의 오빠였다. 먼 곳까지 찾아와서 혼사를 축하해 주어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오빠는 마주보며 웃는 나를 피해 얼른 고개를 돌렸다. 그의 서늘한 눈빛이 순간적으로 내 눈에 잡혔다. 그 옛날 내게 내뱉었던 한마디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을까.
중학교 시절이었다. 아마 그때가 신학기가 막 시작된 초봄으로 기억된다. 환경정리를 하고 오느라 친구들보다 늦은 귀가길 이었다. 책가방 대신 책보자기에 책 몇 권과 잉크병을 싸서 팔에 받쳐즐고 혼자 신작로를 걸어가는 중이었다. 한참 걸었을까. 문득 왼쪽 팔을 보니 검은 잉크가 배어 나와 하얀 교복 셔츠에 묻어 있는 게 아닌가. 순간 당황하였다. 그대로 마르면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아 두리번거리며 물을 찾았다. 신작로 아래로 내려다보니 도랑에 마침 물이 고여 있었다. 소매를 씻고 올라오는데 웬 남학생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친구의 오빠였다. 반가워서 배시시 웃자 대뜸 욕을 해댔다.
“가시나야, 니 저 아래서 어떤 놈하고 뭐 했노. 못된 년!”
울상이 되어 장승처럼 서 있는 내 앞에서 그는 휑 돌아서 가벼렸다. 한 번쯤은 돌아볼 것 같았는데 끝끝내 꼿꼿한 걸음으로 신작로와 어긋난 둑길을 걸어가 버렸다. 그날 이후 오가는 학교 길에서 마주칠 수 있을 법하였는데도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보다도 훨씬 이전 초등학교 상급생 때였다. 그날도 토요일이었다.
하교 길에 친구가 자기 집에 놀러 가자고 집까지 따라오며 졸라댔다. 멀리 떨어져 있는 마을이라 걱정하시던 부모님도 친구의 성화에 못 이겨 결국은 허락을 하였다. 둑 너머 들녘에 아지랑이가 피어날 듯한 이른 봄날, 냇가를 낀 산기슭을 걸어 친구의 집에 도착했다. 우리는 조그만 소쿠리를 챙겨 들고 마을 앞 못둑으로 쑥을 캐러 나왔다. 아직 어린 쑥은 소쿠리에 좀처럼 차 오지 않는데 그만 해가 졌다. 찬바람에 코끝이 얼얼할 즈음 친구 어머니가 쑥국을 끓였으니 어서 가자며 데리러 왔다. 두리반에 그 집 가족과 함께 빙 둘러앉았다. 가장 늦게 식탁에 온 친구 오빠는 비어 있던 자리에 나와 마주앉자마자 고개도 아니 들고 투정을 부렸다.
“나 쑥국 안 묵을끼다.”
용수철처럼 발딱 일어서더니 방문을 차고 나가 버렸다. 그 다음날 아침에도 친구 오빠는 식탁에 나타나지 않았다.
예식이 막 끝나고 사람들 틈에 밀려가는 그의 모습을 놓쳐 버렸다. 나처럼 친구의 오빠도 그 봄날의 일들을 기억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