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에베소서
4:30
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한글 성경에는
"그리고(καί 카이)"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본절 바로 앞절에서는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라고 했고 이어서 "그리고"라는 말이 나옵니다. 즉 "그리고"라는 말은 앞과 뒷문장을 이어주는 접속어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더러운 말을 하게 될 경우에 우리는 우리의 그 말로 인하여 성령님을 근심하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앞절을 설명할 때에도 언급했듯이 "더러운 말"이라는 것은
"부패하고 썩은 말" "하나님의 진리와 반대되는 말"을 말합니다. 따라서 하나님 앞에서 원망하고 불평하는 말을 할 때에 우리는 성령님을
근심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들은
실로 나의 백성이요 거짓을 행치 아니하는 자녀라 하시고 그들의 구원자가 되사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
자기 앞의 사자로 그들을 구원하시며 그 사랑과 그 긍휼로 그들을 구속하시고 옛적 모든 날에 그들을 드시며 안으셨으나 그들이 반역하여 주의
성신(성령)을 근심케 하였으므로 그가 돌이켜 그들의 대적이 되사 친히 그들을 치셨더니"(사
63:8-10).
이사야 63:10에서도
성령을 근심케 하였다는 말이 나옵니다. 여기에서 '근심하다'라는 히브리어 'עִצְּב'(아차브)는 '괴롭히다, 고통을 주다, 마음을 상하게
하다, 슬프게 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이 말은 여러 군데에서 쓰였는데, 창세기 6:6에서는 '근심하다'로 쓰였고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grieved)", 열왕기 상 1:6에서는 '섭섭하게 하다'로 해석되었습니다. "저는 압살롬의 다음에 난 자요 체용이 심히 준수한 자라.
그 부친이 네가 어찌하여 그리 하였느냐 하는 말로 한번도 저를 섭섭하게(displeased) 한 일이 없었더라". 또 느헤미야 8:10에서는 '근심하다(슬퍼하다)'로
번역되었으며 "느헤미야가 또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예비치 못한 자에게는 너희가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슬퍼하지 sorry) 말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전도서 10:9에서는 '마음이 상하다'라는 뜻으로 해석되었습니다. "돌을 떠내는 자는 그로 인하여 상할 것이요(hurt) 나무를 쪼개는 자는 그로 인하여 위험을
당하리라". 또 이 단어가 어떤
곳에서는 '만들다'라는 뜻으로도 쓰였습니다. "주의 손으로 나를 만드사(made) 백체를 이루셨거늘 이제 나를 멸하시나이다"(욥 10:8).
우리가 덕이 되지 않는
더러운 말을 할 때에 왜 성령께서 근심하시며 고통스러워하시며 괴로우시겠습니까? 성령은 우리와 같은 인격을 갖고계신 분이시기 때문이며 성령은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거룩하신 성령께서 우리의 더러운 말을 들을 때 견딜 수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죄와 함께 할 수 없는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에 고통스러우신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
3:16-17).
거듭난 사람이라면, 이미 그 사람은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씀합니다. 그 사람 안에 성령께서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거룩한 성전 안에 더러운 것이 있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을 보는 사람은
그것을 반드시 밖에 내어다 버릴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께서도 더러운 것과 함께 거할 수 없기 때문에 이사야 63:10에서 말씀하듯이 친히
치시며, 고린도전서 3장에서 말씀하듯이 멸하십니다. 그것은 그 사람을 징계하기 위해서입니다. 왜냐하면 거듭난 사람은 성령께서 "인을
치셨기(sealed)" 때문에 우리를 어떻게 해서든 성화시켜서 천국백성으로 만들기 위해서 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징계하듯이 잘못했을 때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끊임없이 그의 죄성을 멸하기 위하여 친히 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쓸데없는 말, 남의 흉이나 단점, 알리고
싶지 않는 속사정을 알기 위해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것에 생각과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할 때에 성령님을 근심시키는 것이며, 따라서
그런 일을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벌을 내리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벌을 받느라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와 건강을 소비하게 되며 우리의 삶이
힘들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권면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성령을 소멸치
말며"(살전
5:16-19).
왜 항상 기뻐하고, 쉬지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 바로 뒤에 "성령을 소멸치 말며"라는 말씀이 나왔겠습니까? 이 3가지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므로 그 뜻대로 행하는 삶을 살지 않을
때 성령을 소멸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즉 항상 주안에서 기쁨이 없이 슬퍼하고 낙망하며 좌절하는 삶을 살며, 기도에 힘쓰지 않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보다는 불평과 원망과 시기와 질투와 분냄과 같은 더러운 말을 하며 살아갈 때에 그는 이미 성령을 소멸한 것이며, 따라서 그의 삶이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육체가 원하는대로 살아서 성령을 대적하고 거스려 끊임없이 징계를 당하며 살지 말고, 오직
성령을 좇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 5:16-17)
성령님은 우리를 인치셨기 때문에 계속해서 우리를
도와주기를 원하십니다. 도와주는 방법이 사랑과 권면과 가르침일 때도 있지만, 징계의 채찍을 들 때도 있으므로 이왕이면 말로 할 때 듣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성령님은 자상한 어머니와 같은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잘 되기만을 바라며 집에 돌아올 때까지 마음을 졸이며 무사히 귀가하기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심정으로 우리를 항상 돌보십니다. 우리가
잘못하면 바르게 가르쳐주시며 우리가 온전히 성장하도록 돌보아 주십니다. 때로 괴로운 일이 있으면 상담자로서 우리의 문제를 들어주시며 위로해주기도
하십니다. 그러한 성령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고통스럽게 할 필요가 있을까요? 우리가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하려면 우리 자신이 더 고통스럽지
않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안에 성령께서 계시다면, 성령을 고통스럽게 할 때 우리 자신이 더 괴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에 죄를 지어도 전혀 고통스럽지 않다면, 그의 안에는
성령께서 계시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성령이 없는 사람은 양심에 화인을 맞은 사람이므로 죄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지으면서도 전혀 거리낌이나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다른 사람의 흠을 잡아내려는 말과 같은 더러운 말을 하거나 세상적인 이야기 즉 연예인들의 이야기 등
크리스천의 삶에 있어서 아무 유익이 없고 덕이 되지 않은 말을 했을 때, 마음 한 구석이 꺼림찍하게 느껴진다면 성령이 계시다는 증거이며, 아직
양심이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마음 한 구석이 꺼림찍하게 느껴지지만
무엇을 기도해야할 지 모를 때,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간구해주십니다. 우리가 무엇을
간구해야할 지 모르지만, 일단 기도를 시작하면 우리의 기도를 도우셔서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기도를 하게
하십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성령님의 인치심을 받은 우리는, 성령님을 근심하게
만들어서 우리의 삶까지도 힘들게 살지 말고, 오직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잘 받아서 말씀대로만 순종하며 주님의 뜻대로만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고, 쉬지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주님의 뜻을 깨달은 우리는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조심하며 덕이 되는 말과 행동을 하므로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성령님을 기쁘시게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스바냐 3:17)
오늘 받은
은혜와 감사의 제목은?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에 특별히 저를 선택하여 주셔서
주님의 자녀로 인쳐주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주 안에서 거듭난 삶이 얼마나 복된
삶인지요!
주께서 저를 선택하여 주신 것은 주님 안에서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과 평안을 맛보며 주님과 기도로 항상 대화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라는 것을 생각할 때에 주님의 그 크신 사랑과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똑같은 상황 속에서도 저는 주님이 있기에 기쁠 수 있고,
감사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그러나 가끔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서 성령님을 근심하게 할
때가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때로는 호기심이 발동하여 다른 사람의 가십거리가 궁금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마귀의 유혹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
넘어갔습니다.
그때마다 성령님께서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지 생각하니
너무나 죄송스럽습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곱씹으면서 그것을 은근히 즐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게 살고싶지
않습니다.
오늘 하루 저의 모든 죄악을 생각나게 하셔서 오직 주님을
향해 다윗이 침상을 적신 것처럼 모두 회개하고 새로와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제가 무엇을 회개해야할지 잘 모르는 것이 있사오니
성령께서 친히 간구해주옵소서.
이제는 성령님을 고통스럽게 해서 제 삶까지 힘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을 기쁘게 하며 제 삶이 기쁨이 넘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저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고,
저를 잠잠히 사랑하시는 하나님과 매일 동행하며 살기를 소망합니다.
오늘도 저를 통하여 영광을 받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김 수
경
†he
2nd
Life
Foundation
Esther
Soo-Gyung Kim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As
for me and my house, we will serve the LORD!
(Joshua
2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