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미 시집 『인왕』 추천사
신탁은 꼭 사원에서만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이번 김선미의 시집을 읽고 든 생각이다. 가령 이 시집에 등장하는 많은 상품은 시인의 눈길이 닿는 순간 이상하고 아름다운 말들로 변모한다. 김선미는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구멍을 보면서, 그 구멍이나 부스러기들 틈에서 솟아나는 영적 기운에 이끌려 열광적이고 다채로운 언어로 귀신 혹은 신탁의 말을 전한다. 이 시집에 따르면 가족이 오래전에 무덤가에 살면서 “옆구리에 큰 칼 대신 곡괭이를 하나씩 차고” 귀신들로부터 가족을 지켜 내는 모습이 나온다(「인왕11-물집」) 그런 체험이 바탕이 된 까닭일까. 시인은 “한 신체에 한 영혼 나는 그게 안 돼”라고 토로하며(「귤」), 자신의 몸으로 무언가를 불러들이는 데 익숙한 그 모습 그대로 서울을 담아낸다. 상품과 물건으로 넘쳐나는 백화점과 편의점, 그리고 휘황찬란한 빌딩과 남루한 골목을 헤매 다니며 죽음과 삶이 끊임없이 분열하면서 증식하는 서울이라는 대도시 이면에 어른거리는 신비를 광적인 언어로 전달하거나 영혼의 고고학자처럼 채집해 나간다. 특히 이 시집에서 서울은 자신의 일터나 생활하는 장소로 등장하는 청계천과 인왕산 두 장소를 통해 압축되어 나타난다. 총 22개의 다리와 좌우에 종로와 을지로를 거느리고 있는 청계천을 거닐며 시인은 청계천의 순우리말 ‘맑은내다리’를 떠올리며, “잉어들이 산란하고 뒤통수에 뿔 달린 새가 긴 다리로 서 있는” 광경을 본다(「자유」). 또한 인왕산 밑자락에 살면서 ‘굿하는 소리’와 ‘영혼’들의 소리를 듣는다. 동물들과 귀신들이 어울려 있는 이들 장소에서 서울은 하나의 신화적 장소로 변모한다. 이 시집에서 시인은 대도시의 “매일매일 생기는 새로운 물건들 언어들 놀이들/복음서들”을 자신만의 광적이고 독특한 문장으로 만들며 춤을 춘다(「브리태니커 백과사전」) 너무나 확실해서 세상에서 멀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유토피아나 병든 것 같은 상태 혹은 연옥에 비견될 만한 서울에서 “뿔 달린 저녁의 목신과//밤이면 나타나는 도깨비불의//목덜미를 잡고” 신탁의 말을 전한다( 「월요일 2-1」. 넘쳐나는 물신(物神)의 틈바구니에서 인간과 자연 그리고 영혼의 깜을 꿈꾸는 이 무녀 시인의 열광적인 언어를 통해 나는 어떤 입신의 경지에 대한 가능성을 엿본다.
박형준(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