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편의 글
무너진 절벽에 하얀 줄이 지나가는 것을 본다. 그 차돌 선을 따라 들어가면 금이 맺힌 곳을 만나게 된다. 희끗희끗하고 누릇누릇 보이는 자잘한 금싸라기 묻은 돌을 캐내어 큰 통에 넣고 가루를 만든다. 수은을 부어 돌리면 하얗던 것이 누렇게 금을 흡수한다. 수은만 거둬 높은 온도에 가열하면 수분은 날아가고 금만 남는 야금이다.
이런 정금을 얻기 위해 무척 설친 적이 있다. 너나없이 금광 해볼 거라고 강을 헤맸다. 조약돌을 주어 보면 금이 있나 없나를 알 수 있다. 그 산골짝을 샅샅이 뒤져서 금맥을 찾아 광구를 설정하고 길을 낸다. 제련소를 만들고 레일을 놓아 굴진해 간다. 돌이 야물어 어디쯤인지 막연하게 숱한 고생을 하며 파 들어간다.
산이 무너져 내리면서 바위가 돌덩이 되고 자갈이었다가 모래로 바뀐다. 금 조각은 무거워 멀리 떠내려가지 않는다. 사금 캐는 사람들이 모래를 퍼담아 흐르는 물에 흘리면서 금을 찾아낸다. 모래와 흙은 쓸려 내려가고 반짝반짝 금 조각만 남는다. ‘콩밭에서 금 따는 바보도 있담’ 강원도 춘성 사람이 전라도에 와서 남의 콩밭에 금을 캐니 아내가 하는 말이다.
찾으면 살판났다며 환호하고 없으면 허겁지겁 재산을 다 말아먹고 알거지가 돼 나온다. 우리나라 산하에 금이 매장돼 금 지명이 들어간 곳이 있다. 금곡과 금산, 금정, 김제, 김해, 금관가야 등이고 장신구에 금관과 귀걸이, 목걸이, 반지, 시계 등 수없이 쓰인다. 모두 고급이며 누구나 갖고 싶다 한다. 손발이 다 닳도록 만들어지는 순금이다.
팔이 꺾여 바닥에 내동댕이쳐지고 매다 버리는가 하면 가슴팍과 목을 후려치니 정신을 잃고 나가떨어진다. 발로 차이고 다리가 꺾여 심판이 바닥을 두드릴 때 겨우 일어나 엉거주춤 겨냥 자세를 취한다. 피탈이 나고 절뚝거리며 다가오는 상대에게 대항하다 또 얻어터진다. 안타까워 내 주먹과 발이 절로 나간다.
좀 어찌 해봐 맞지만 말고. 우리 김일 선수에게 쉽다며 의기양양 마구 덤벼든다. 하도 맞아서 만신창이가 된 것 같다. 이제 힘이 없어 더 견디겠나 버틸 수 있을까.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경기가 계속된다. 팔을 잡아끌어 링에 부딪쳐 튕겨오게 할 때 정신 차린 우리 선수가 도로 잡힌 팔을 낚아채 수도로 가슴을 가격 넘어뜨린다.
일으켜 그대로 박치기를 넣는다. 뚤뚤 뒹굴며 정신을 잃고 승부가 결판난다. 갑자기 끝나버려 더 실컷 두들겨 패잖고 허전하다. 두꺼운 띠를 차고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믿음직한 모습이다. 그가 시합 나온다면 열 일 제쳐 두고 영상기 앞에 간다. 덩치가 크거나 작거나 남들이 못하는 머리 박기를 해댄다.
속이 다 시원하고 막혔던 체증이 쑥 내려간다. 땅딸막한 야무진 체격으로 상대의 끈질긴 해코지를 다 받아주고 주전 무기인 앞머리로 들이받는다. 어떨 땐 머리로 배와 가슴을 들이쳐도 쩔쩔맨다. 대통령이 불러 국민의 마음을 풀어줘서 고맙다고 격려했다. 그를 위로하며 남녘 고향 섬에 전력공사도 해 줬다. 골병이 속까지 들고 해머처럼 쓴 머리는 괜찮겠나.
이미자 가수가 넘어가게 불러 어찌 그리 잘 하느냐니까. 곡을 받아 녹음하기까지 수십 번 아니 수백 번을 불러야 한다니 대단하다. 같은 노랠 두세 번 하라면 그만 잠 오고 싫증 나는데 그렇게 연습해야 하는가 놀랍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언제 들어도 감칠맛 나는 명곡 섬마을 선생님과 동백 아가씨다.
엘레지 여왕이라 불리며 수천 곡을 했다니 작은 거인이다. 말이 수천이지 새털같이 수많은 걸 어찌했나. 대부분 느리고 천연덕스레 하는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불렀다면 모두 따라 부른다. 우리 성정에 맞아 남자들도 구성지게 거든다. 사연 많은 가슴을 구구절절이 풀어놓는 우리들의 얘기다.
피겨스케이팅을 맨땅 다니듯 휘저어서 어찌 그리 잘 하냐 물으니 어릴 때부터 수없이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곤 울었다는 선수의 말에 가슴이 찡하다. 수백 년 만에 모처럼 나왔다느니 타고 났다가 다 헛말이다. 피나는 연습의 결과이다. 뛰놀며 어울려야 할 어린 시절이다. 공부하며 꿈을 키워야 할 때다.
편히 쉴 수도 없이 날마다 빙판을 돌며 맹훈련을 거듭해야 했다. 혹독한 지시와 감독 아래 지났을 것이 불 보듯 하다. 놀면서 즐거이 했겠나. 고달파도 웃으며 달리고 뱅그르르 돌아야 한다. 하면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잘 했을 때 기쁨이 생겼다. 이 길이 갈 길이라고 억지로 맘먹고 내뺐다.
휘황찬란한 조명 아래 관중의 박수갈채를 한몸에 받는다. 아름다움의 극치인 갈라쇼를 하는 김연아의 피겨스케이팅은 어찌 저 선수가 우리나라 사람 맞나 싶다. 혹시 외국 선수인가 다시 봐 진다. 훤칠한 키에 가녀린 몸매가 매혹적이다. 깜찍한 눈웃음과 미소가 영락없이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이다.
마찬가지다. 몇 날 며칠, 아니 몇 달을 시루다 완성하는 글이다. 느낀 것에 제목을 정해 붙이고 한 줄씩 써 내려간다. 하다 보면 다시 제목을 바꾸기도 한다. 콱 막혀 안 나올 땐 며칠을 두고 생각하다 떠오르면 자리에 앉는다. 다 짓고 나면 꾸물꾸물 제멋대로 기어 다닌다. 제자리를 찾아 옮겨놓고 나면 또 같은 말이 보이는 더벅머리다.
수십 번 아니 백번을 넘게 읽어서 고친다. 기다릴 때나 지하철에서 손전화를 꺼내 읽노라면 그렇게 살폈는데 또 보인다. 가서 손본다 했지만 찾지 못할까. 적어야 한다. 지루해서 이젠 더 못하겠다 할 때가 끝나 덮어두는 작품이다. 그러니 모두 미완성이다. 자다가 새벽에 일어나기를 그 얼마나 했나.
금이 되기까지와 머리가 깨지도록 소처럼 들이받는 레슬링, 수백 번 불러야 매끄럽게 감동을 주는 노래, 빙상을 마당 구르듯 마음대로 휘저어 달리는 피겨가 몇 날 며칠 아니 몇 달에 이뤄지겠나. 우리의 달거나 고달픈 꿈은 아니 글은 식은땀을 흘리며 헛소릴 하면서 그토록 헤매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