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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오늘은 이야기를 조금 거꾸로 해보고 싶은데요. 아이들의 특정 상황을 제가 한번 그려보고, 그것이 왜 그러는지에 대해서 찾아가 보는 순서로 이야기를 해보았으면 합니다.
집에서의 상황을 예를 들어보면, 이제 잠잘 시간이 됐는데 아이가 잠잘 준비를 하는 것을 하지 않고, 그전에 하고 있던 놀이나 어떤 것을 계속 하려고 해요. 그래서 지속적으로 저녁에 잠자는 루틴을 진행을 하려 했을 때 전 단계에서 잠자는 준비 단계로 이 아이가 전환이 안 되는 거예요. 계속 그 전 단계를 유지하려고 해요. 그래서 이제 이 전쟁이 계속 되죠. 그 실갱이가 아침에 등교를 해야 되고, 시간이 다 임박해 오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어지는 거지요.
‘계속 딴 일을 하고 계시는 이분은 왜 그러실까? 이분은 학교에 가는 것에 대한 의식이 없어서 그러는 걸까?‘
해서 그런 것과 관련해서 의식적으로 명료하게 깨어날 수 있도록 하는 이야기도 해보고 어떤 의미에서는 그걸 계기로 해서 주의도 줘보고 하는데도 다음 날 되면 여전히 똑같아요.
’왜 그다음을 위한 게 됐을 때 전환이 안 되는 거지?‘
놀이터를 갔는데 밥 먹을 시간이 됐어요. “이제 밥 먹으러 가야지”라고 하는데 아이는 “조금 더 놀면 안 돼?”라고 해요. 그럴 수 있는데 “아니야 이제는 밥 먹을 시간이야”라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아이는 상대적으로 처음에 제안을 했다가 ‘어쩔 수 없군‘ 하는 게 아니라 수없는 이유와 상황을 만들어서 계속 하려고 해요. 그러면 그 실갱이를 또 계속해야 되잖아요. 나는 친절한 영혼으로서 그 아이를 부드럽게 안내해서 어떤 시간 과정 속으로 연결을 하고 싶은데 참 쉽지가 않은 거예요. 그래서 ‘오늘도 실패군‘하고, 큰 소리를 내가지고 ’진짜 이게 맞나’ 이런 생각들을 자꾸 하게 되는 거죠.
거기에서 다른 선택을 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이렇게까지 전쟁을 하고 살 필요 없어. 내가 조금 맞춰주면 되지‘라고 생각을 하시는 분도 있어요. 큰소리를 내고 야단을 해서라도 마치고 다음 과정으로 가는 것을 경험한 아이는 활동을 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으나 거기에 어른이 맞춰줘버린, 그 조건에서 자란 아이는 학교 생활이 힘들어요. 배움이 안 돼요. 왜 안 되죠?
시간은 지속적으로 흘러요. 절대로 멈춰 있지 않아요. 그러면 내가 시간이라고 하는 것에, 내가 놓여 있는 공간과 상황과 조건이라고 하는 것에 빨리빨리 맞춰 나갈 수 있어야 돼요. 그렇죠. 맞춰 나간다는 건 뭘까요? 이미 지나간 시간, 이미 이제 그것이 끝난 시간 여기까지야 라고 했는데 여기까지 아니라 나는 그걸 좀 더 누려보고 싶다는 것은 시간을 더 연장하겠다는 거예요. 그것은 우주 질서를 새롭게 내가 만들어보고 싶다는 거 아니에요? 그런 것은 없는데, 그건 불가능한 일인데. 그러게 되면 아이도 힘들고 그 아이와 관련된 것들이 다 힘들어지죠. 그러니까 ’여기까지‘라고 하는 게 안 되는 아이들 말이에요.
이게 처음부터 되는 아이는 이 세상에 한 명도 없어요. 조금씩 되어 나가는 거예요. 그것은 시간에 어울리게 마칠 걸 마치고 새로운 걸 전환할 수 있는 능력을 이미 획득한 사람을 통해서 배워요. 그런데 왜 그러는 지는 이해해야죠. 왜 그전에 있는 것들을 놓지 않고 그다음에 다가오는 것들에 상응하지 않고 이걸 계속 끌고 가려고 하는지. 여기에는 심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소들이 들어 있어요.
그러니까 첫 번째 이야기는 전환이 잘 안 되는 아이들. 일상에, 또 배움의 과정에 어려움을 줄 만큼 전환이 쉽지 않은 아이가 첫 번째예요. 이 전환은 행동의 전환이라고 하는 것만이 아니라 감정의 전환도 포함되요. 내가 슬퍼요. 그러나 이 슬픔은 계속되는 게 아니에요.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서 바뀌어요. 그런데 이 아이는 한 번 슬프면 계속 슬퍼요. 계속 그걸 붙잡고 있는 거예요. 똑같은 거예요. 어떤 생각이 나한테 들어왔어요. 그 생각은 ’이거 너무 좋은 생각이야, 24시간 동안 이걸 할 수 있으면 좋겠어‘ 이렇게 하는 것은 정신병을 만드는 거잖아요. 그럴 수 없어요. 그게 좋은 생각이 됐든 나쁜 생각이 됐든 시간의 흐름에 의해서 계속 흘러가게 돼 있어요. 어제까지 그렇게 좋았었는데 오늘 나한테 다른 상황이 생길 수 있다고요. 그러면 나는 이 상황에 대응해야 돼요. 그리고 또 이 상황 역시도 또 지나고 나면 또다른 상황 상황으로 계속 연결된다고요.
아까 공 받는 걸 생각해 보세요. 공이 왔어요. 이 상황은 계속돼요. 멈춰 있질 않아요. 그것이 어떻게 자연스럽게 방향들을 찾아가는가. 우선 그러려면 그것들이 눈으로 포착이 되어야 돼요. 눈이 닿아야 돼요. 눈으로 움직임이 닿는다. 그런 움직임을 따라한다. 그 움직임으로 들어가서, 그 흐름의 연장으로 잡아서 쓱(자연스럽게) 이끈다. 이 모든 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것들이 아주 많은데 지금 오늘 제가 관심으로 갖고 있는 것은 바로 접촉, 촉각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접촉. 너무 접촉이 약해버리면 무게감과 속도감을 감당 못하고 그렇다고 너무 강하게 잡으면 필요 이상으로 어울려지질 않죠. 굉장히 단순한 것처럼 보이지만 내 감정에 대해서, 나한테 찾아드는 생각과 그 어떤 것들에 대해서 내가 어떤 식으로 처리하고 있는지. 우리에게는 정말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의 우주가 있기 때문에 감정의 우주, 이 사고의 우주가 있어요. 별것들을 다 할 수 있어요. 우리는 다 만날 수 있어요. 그런데 그것들에 어떤 식으로 대처를 하는지는 사람마다 매우 다르죠.
오늘 이야기는 흐름이 연결될 수 있도록 하는 힘, 이것은 한 영혼에게 연결되어야 되고 그 영혼 안에서 그 힘이 자라야 해요. 그러는데있어서 1차적으로 관심을 가져줘야 될 부분이 신체적으로 놓고 보면 근막이에요. 인간이 포착하고 그 움직임에 상응해서 대응하는 움직임을 만들어내고 해내는 그 모든 것들에는 일종의 근육이 사용되어요. 그런데 이 근육은 어떻게 돼 있냐면 막으로 둘러싸여 있어요. 막으로 모든 근육이 싸여있어요. 그냥 근육만 있는 건 없어요. 그래서 인간의 몸은 액체가 새지 않게 되어 있어요. 근막에 필요로 한 일종의 수분 같은 것들이 계속 공급이 됩니다. 혈액도 공급이 되죠. 여러 다양한 호르몬도 분비돼요요. 그런데 그런 것들이 일단 새버리면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무슨 병 났다고 하죠. 새지 않도록 이렇게 둘러싸주고 있는 막이 있어요. 막은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 근육이 여러 층이 있으면 그 층마다 있어요. 그런데 정말 재미있는 것은 근막은 완전히 하나의 씨실과 날실로 연결된 망이에요. 그러니까 근막은 간은 간만 둘러싸고 대퇴골은 대퇴골만 둘러싸고 있고 이렇지 않고 다 연결돼 있어요. 그래서 하나를 당기면 나머지가 어느 정도 차이는 있지만 끌려와요. 그래서 횡경막이라고 하죠. 가로로 움직여지는 망들, 그다음에 세로로 움직이는 망. 이 망들이 촘촘하게 있는데 그 안에 근육이 있고요. 그래서 그 막들이 잘 둘러싸고 있으면서 이 근육하고 막하고에는 아주 부드러운 관계가 되어야 해요.
그런데 잘 보세요. 놀라고 긴장하게 되면 긴장들이 이 두 개(근막과 근육)를 달라붙게, 약간 밀착시켜요. 그런데 그것이 계속되면 어떨까요? 근막이 근육에 달라붙어요. 그래서 원래 그 근육이 가져야 되는 유연성, 그 근육이 원래 가져야 되는 움직임이 꼬이고 뒤틀린 상태로, 묶여버린 상태로 이상하게 작동을 해요. 그러면 위에 연결돼 있는 다른 부분들이 그 영향들을 계속 받죠. 일상에서는 잘 몰라요. 아이들은 이게 굉장히 부드러운 상태입니다. 그러나 어떤 조건에 의해서 달라붙기 시작한다라고 하는 것은 피할 수 없어요.
이제 조금 더 나아가 보려고 해요. 제가 우리 공부 시간에 촉감각이 얼마나 소중한지에 관한 이야기들을 여러 차례 했어요. 그런데 본격적으로 이 촉감각이라고 하는 것이 바깥쪽 피부에만 있는 게 아니고 진피에만 있는 게 아니고 네 군데 있어요. 피부는 4개의 피부가 있다. 물질 육체에 해당되는 신체 피부가 있고, 에테르 피부라 해서 나타나지는 피부가 있어요. 그다음에 감정을 처리하는 아스트랄 피부가 있고, 그다음에 자아 피부가 있어요. 타인을 어떤 식으로 느끼는가라고 하는 것은 실은 자아 피부예요. 사회적 관계와 관련되어 있어요.
이때 이제 증상만 나타내 볼게요.
한 성인(a)이 아주 가깝게 지내는 사람(b)이 있습니다. 선생님(b)하고 저(a)는 모르는 게 하나도 없이 비밀이 없어요.이렇게 아주 속을 터놓고 지냅니다. 그런데 나는 이 선생님(b)하고만 관계하고 사는 게 아니라 여러 사람하고 관계하잖아요. 그래서 우리 세명(a,b,c)이 무난하게 잘 살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제가 다른 선생님(c)하고 틀어지는 일이 있었어요. 어떤 속상한 일이 있었나 보죠? 그래가지고 틀어졌어요. 그런 상태이고, 그랬다는 것도 가깝게 지내는 이 선생님(b)이 알고 있어요. 그런데 입장(a)에서 둘(b,c)이 여러 사람들이랑 등산을 갔대요. 그래서 내(a)가 생각하죠. 거기서 깔깔거리면서 즐겁게 놀았을 생각을 해요. 그럼 보통 그럴 수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자연스럽게 그런 마음이 듭니다. 배신감.
‘내(a)가 얘(c)하고 지금 관계가 그런 줄 너(b) 몰라? 근데 너는 거기 가서 막 즐겁게 놀아? 너는 나를 배신한 거야. 내가 너한테 해준 게 얼만데. 너한테 들인 정성이 얼만데.’
그렇게 하고 가서 말을 하는데
“야 그래도 좀 너무했지 않냐”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에요.
“너는 쓰레기야. 너는 완전히 인간으로서의 기본 예의가 없는 애야.”
이렇게 말해요.
“너는 나하고 한 식구잖아. 정말 친하잖아. 어떤 비밀도 없잖아. 근데 뻔히 그런 줄 알면서 가서 그래?”
난리가 났어요. 그냥 속에서 서운해 하는 정도가 아니라 약간 멘탈이 붕괴된 사람처럼 가서 대해버려요. 악쓰고 싸워버려요.
그리고 이런 일도 있어요. 이 친구(b)가 계획하는 일이 있었어요.
‘나 나중에 뭘 좀 해봐야지’ 이런 생각으로 공부를 다른 사람들한테 말 안 하고 했어요. 왜냐하면 할지 안 할지도 모르고 그러니까 공부를 하러 6개월 과정을 다니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떤 과정을 통해서 제(a)가 알게 됐어요. 그러면 제(a)가 어떤 마음이 들까요? 이 일은 몇배 이상 심각해요.
“너 나한테 말하는 게 있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나는 너한테 진짜 하나도 비밀이 없다. 근데 너는 나한테 말을 하지 않고 너만의 이런 걸 가지고 있어?”
왜 이렇게 분노할까요? (a)가 나쁜 사람이어서 그럴까요? (a) 안에는 혼자 될 것에 대한 두려움이 근본적으로 치유가 안 돼 있어요. 그래서 완전히 나하고 나누고 있는 사람이 한 사람은 있어야 돼요. 근데 그마저도 없어지면 온 세상, 바탕의 뿌리가 다 흔들린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가서 다 해쳐버리고, 판을 다 깨버려요.
’니가 나한테 어떻게 했는지 내가 이제는 너한테 보여줄게.’ 이런 마음이죠. 그렇게 가까웠던 사람이었지만 그렇게 대할 수 있어요.
이게 촉각이 통합이 안 된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즉 촉각 중에서도 자아 피부가 통합이 안된 사람에게서 나타는 모습이예요. 상대방은 나하고 독립되어 있는 존재예요. 절대 ‘나‘가 될 수 없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정말로 끈끈하게 어깨 걸고 갈 수 있어요. 그러나 전제는 뭐예요? 절대 너는 나가 될 수 없고 나도 너가 될 수 없어요. 그걸 위해서 이 땅에 왔어요. 독립을 위해서. 그리고 그 독립이 고립이 아니고 고독이 아니고 세상과 연결되는 것. 그전에 먼저 꼭 거쳐야 되는 것은 그 고독을 내가 감당할 수 있어야 돼요. 그래야 고독이 아니라 제대로 된 독립이었던 것을 경험하죠. 어떤 존재든지 정신적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 1차적으로 꼭 거쳐야 되는 그 과정이 있어요. 자아 피부가 충분히 나와 상대방을 독립된 존재로 인식하는 것이 필요해요. 있는 상대방을 구속하고 내 것으로 만들고 내 소유로 그냥 옴짝달짝하지 못하게 하려면 내가 얼마나 정성을 쓰겠어요. 정말로 과하게 써야 별걸 가서 다 해준다고요. (a)가 너무 과해요. 지금 상대방 입장에서 부담스러울 만큼 가서 쏟아부어 버려요. 그게 남아 있어요. 왜냐하면 (a)는 지켜야 되니까요. 이런 짠한 상태의 (a)의 상태를 고쳐줄 수 있으려면 1차적으로 그 두려움은 어디에 들어 있느냐라고 질문할 수 있겠죠. 그때 몸 전체에 들어 있겠지만 구체적으로 하면 근막에 1차적으로 들어 있어요. 근막.
그 근막이 다양한 층이 있는데 원래 처음에 왔었던, 세상에 기본적으로 연결되어서 부드러운 그 상태로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첫번째예요. 그리고 그 조건에서 할 수 있는 움직임으로, 그것들이 허용된 범위 안에서 움직임으로 획득해 나가는 움직임을 통해서 나를 점점 안에 있는 능력과 능력들이 연결될 수 있도록 하는 것들을 고민을 하게 될 거예요. 그래서 오늘은 제가 공간이 필요하다 했던 것은 그것들이 가장 두껍고, 가장 강한 힘으로 있는 근막층이 있습니다. 골반과 횡격막입니다. 이 두 개가 있는데 오늘은 골반을 풀어볼 생각이에요.
그런데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해해야 돼요. 몸을. 구글에 들어가서 천골의 위치라고 쳐보면 이미지가 나와요. 이걸 같이 공유하면서 이야기를 조금 했으면 좋겠는데요.
천골이 추처럼 상체하고도 나를 연결시키고 양쪽(좌우) 하고도 연결시켜요. 아래쪽으로는 꼬리뼈라고 하는 추골에 연결되어 있어요. 밑이 푹신푹신하거나 뱅글뱅글 돌거나 하는 아이들 의자를 사용하면 추골를 계속 자극하게 되는데, 그러면 매우 안 좋은 결과들이 있어요. 그러니까 어렸을 때는 크게 상관이 없는데 청소년기 때는 바로 생식기랑 연결이 되어 있는 부분이라 아이가 그 자극을 계속 받는 꼴이 돼요. 그래서 흔들리는 의자나 그 바퀴 달린 의자 같은 것은 아이들에게 정말 주의해야 되는 거예요.
그러면 모든 뇌에서의 작용되어지는 것들이 척추를 타고 내려옵니다. 천골까지. 그리고 주변으로 나누어지는 거예요. 실제로 척수라고 하는 것은 뇌에서 후두를 타고 이 중추 신경계로 쭉 내려오는 일종의 관, 신경 다발인데 어마어마한 신경이 그 안에 들어 있어요. 그것들이 있고 연결돼 나가는 거예요. 아무튼 엄청나게 강하게 둘러싸고 있는 거예요. 엄청 중요하기 때문에 그 근막과 근육이 힘도 엄청 세요. 이것 하나가 천골과 관계되는 거예요. 그다음에 아주 큰 횡격막이 있어요. 근육의 질 자체가 횡으로 되어 있는 막들이 있어요. 그러니까 아이들은 골반에 어려움이 있는 것들은 아직 없다고 봐야 돼요. 우리는 많이 있죠. 그래서 여기를 약간 자극하면 있지도 않은 분노가 막 솟아오르면서 슬픔이 막 오면서 이럴 수 있죠. 다 여기에 저장해 놨던 것들이거든요. 그러나 아이들은 그런 정도는 아니에요. 아이들은 하나는 밑에서 위로 나를 키워 올라가는 힘이 있고, 하나는 위에서 내려오는 힘이 있다고 했어요. 이 두 힘들이 지금 계속 몸을 관통을 하고 있는 거예요. 몸을 장악해서, 몸을 아주 좋은 안내자이자 도구로 쓰려고 하고 있는 중이에요.
아이가 초기에 목을 어떻게 가누느냐가 매우 중요해요. 그러니까 아이들이 실제로 서서 걸어 다니지만 목을 가누고 있는 상태로 걷고 있는가가 중요해요. 움직임을 할 때 고개가 덜렁덜렁하지는 않나 하는 것. 풍선을 뒷짐을 지고 머리로만 쳐올리는 활동을 한다고 하면, 풍선이 천장에 안 닿고 땅에 안 떨어지게 머리만 사용한다고 하는 놀이를 해요. 그렇다고 하면 머리가 분리되지 않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원래 아이들은 머리와 몸이 붙어 있어요. 그런데 목을 가눈다는 것은 이 두 개가 적절하게 각각으로 쓰일 수 있다는 뜻이에요. 이 능력은 아이에게 고요함을 가져다주고 자기의 내적 평정을 가져다주는 너무나도 중요한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균형을 못 잡아요. 금방 그 감정에 쏠려버리고 생각에 쏠려버리고 신체에 쏠려버려요. 그럼 내 능력을 쓸 수가 없어요.
아무튼 지금 이것은 우선은 놔두고, 엉덩이 뼈에서 연결돼 들어가는 뼈 말이에요. 쭉 내려가요. 발 바닥까지 내려가요. 거기에 아주 중요한 요소가 있어요. 그러니까 이제 이야기가 연결이 잘 안 될지라도 그림을 그려봐요.
저는 지금 피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어찌 보면 촉감각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 때 절대로 빠뜨리면 안 되는 핵심 위치의 두 군데를 말하고 있는 거예요. 하나는 발바닥이고, 다른 하나는 머리예요. 머리를 이루고 있는 뼈 360개가 물려 있어요. 물려 있다는 것은 다 그 사이에 근막이 있어요. 그러면 아이들은 태어나는 과정에서부터 여러 과정으로 뼈가 뒤틀릴 가능성이 항시 있어요. 그래서 막이 있는데 외적으로는 잘 안 보여요. 이 머리의 근막이 위치값을 잘 보호하고 있는가하는 문제하고 그다음에 발바닥과 천골이에요.
그래서 이것이 우선 정말 중요하구나 하는 걸 알게 된 사람들이 있었어요. 천골과 후두골이 매우 중요한 센터 역할을 하는구나. 거기가 모든 것들의 센터이구나, 여기에 있는 이 흐름이 왜곡이 되면서 사람들이 힘들어진다는 것을 알게된 사람들. 그리고 그 흐름들을 좀 도와야겠다고 하는 것이 우리가 이야기하는 CST 두개천골요법이라고 하는 것이예요. 현대인에게는 앞으로 많이 필요하게 될 거라고 보여지는데요. 그것의 가장 핵심은 근막에 있어요. 꼬여 있었던 것들, 흡착돼가지고 달라붙어가지고 근육 잡아버리고 있는 것, 그래서 그로 하여금 실은 유연하게 감정을 처리할 수 있고 생각을 처리할 수 있고 기억을 처리할 수 있고 상상을 할 수 있게 하고 그 모든 것들이 상대적으로 제약받고 있는 상태를 조금 더 풀어주려고 하는 접근을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와서 해보는 것은 그 CST 요법에서 이야기하는 가장 1번에 해당되어지는 것을 집에서 해볼 수 있도록 같이 연습을 해 보려고 하는 거예요.
좋아요. 그래서 이제 나온 김에 저 고양이는 계속 발바닥이 땅에 닿아 있죠. 많이 참고해야 되는데 우리는 저렇게 걷지 않고 두발로 걸어요. 완전히 다른 상황이라고요. 그러면 저 네 발바닥에서 계속 고양이로 연결되게 만드는 게 있거든요. 그것을 우리는 이 두 발로 해요. 그다음에 나머지 손은, 실은 두 발인 이것은 전혀 다르게 써요. 그래서 손바닥과 발바닥은 매우 중요한데 일단 저 발바닥 말이에요.
그래서 이렇게만 소개를 하고 뭐랄까 그다음으로 가봐요. 우리 아이들은 특히나 현대에 있어서는 맨발로 흙길을 정기적으로 걷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 그것이 굉장히 많은 부분을 도와줄 텐데 그중에 바로 아주 깊이 있는 촉감각을 통합하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여러 접근들이 있겠지만 가장 일상에서 쉽게 쓸 수 있는 방법은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맨발로 땅을 걷는 것입니다. 자갈길을 걸으면 더 좋아요. 모래 사장을 걸어도 좋고요. 그래서 발이 너무 매끈한데 디뎌지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 돌도 있고 하면서 발의 것들이 준비되어야 해요. 자아는 실은 위에서 내려오는 것 같지만 아래에서 힘이 올라와서 만나야만 완전히 닿습니다. 아이들 발이 차갑다면 아이의 자아가 종아리 아래로 안 내려갔다는 말이기도 해요. 아이는 종아리 아래를 자아의 통제하에서 쓰지 못한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러면 원래 주어진 대로 대응하는 거예요. 스톱이 안 돼요. 멈춤이 안 돼요. 그걸 하게 하는 힘이 자아거든요. 거기까지 미쳐야 되는데 그러려면 그 길을 밑에서 뚫어줘야 돼요. 그래서 일반 학교같은 곳에는 이런 활동을 제안해요. 모래놀이터에 모래가 비가 오거나 이러면 약간 단단해져요. 그런데 발로 뒤꿈치를 으깨잖아요. 그러면 자꾸 으깨져요. 그렇게 으깨가지고 가운데로, 발로 모래를 모아서 그 쌓아진 거에다가 발을 넣도록 해요. 물론 손을 넣어도 좋고 실은 몸을 다 넣으면 더 좋겠지만 그럴 수는 없으니까 발을 넣어서 거기서 발을 자꾸 그 무게감에 눌리게 해요. 그러면 반에서 다툼이 조금씩 줄어 들거다. 내가 나를 느낄 수 있는 나의 실제, 저 안쪽까지. 그러니까 신경 말단에까지 저 깊이까지 느낄 수 있는 그 무게감들을 주는거예요. 그다음에 반대로 손으로 온몸으로 느끼는 무게가 매달리는 거예요. 그래서 철봉을 사다리 타고 올라가서 철봉 3초씩 하고 모래 놀이터에 가서 놀다가 발 씻고 들어가는 것을 일주일에 일종의 꼭 루틴으로 만들어 주시라. 그렇게 되면 당장 성과는 안 나타날지 모르지만 1년 정도 하고 나면 아이들은 그런 측면에서의 자아 피부라고 하는, 아스트랄 피부라고 하는 데 있어서 굉장히 큰 도움을 받거든요. 물론 그렇게 해놓고 다른 것들을 도움을 같이 주긴 해야 되겠지만 그냥 아무것도 아닌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럴 수 있다라고 하는 차원에서 말씀을 드려봐요.
그런데 오늘 주제는 여기 천골이에요. 천골이 충분히 잘 열렸는가, 위아래로 열렸는가를 볼 수 있어요. 엎드려 보세요. 여기의 관점에서만 제가 이야기를 해볼게요. 엎드렸는데 우선 엄지 발가락이 서로 마주 오는 상태로 내가 지금 엎드려 있나 봐보세요. 그 다음에 발목이 바닥에 닿는지.
그런데 발목이나 닿지 않는 부분을 작업하면 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이 천골에 있어요. 천골이 지금 꽉 잡고 있는 거예요. 꽉 잡고 있다는 말은 무슨 말일까요? 그 근막들이 굉장히 긴장 상태로 있다는 건데, 계속 긴장되어 있으니까 몰라요. 그 긴장 상태에 있다라고 하는 것 자체를 몸은 그렇게 느끼지 않아요. 풀어지고 나면 알아요. 그런데 지금은 뼈를 생각하지 마시고 그 사이에 있는 근막을 생각하세요. 근막이 들러붙어 있었던 것들이 부드럽게 다시 풀어진다 이렇게 생각해야지 막 자세를 잡아서 돌려놓으려고 하는, 절대 그럴 필요 없어요. 그냥 안에서 흐르게만 하면 잡아주는 게 아니라 그냥 놔두고 흐르기만 하면 자기가 해내요. 놀랍게도 몸 안에는 치유자가 있어요. 그곳에 흐르게만 하면 돼요.
긴장들을 이렇게 풀어주는 작업을 하기 전에 제가 고민을 했어요. 우리는 이제 아이들과 어떤 것들을 하는 사람들이어서 그 상들을 어떻게 갖게 할까하는 고민입니다. 아주 좋은 예는 아닌데 아주 좋은 것들이 많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제가 어제 초등학교를 잠깐 들러서 복도에 구경을 하다가 발과 관련된 시가 하나 적어져 있더라고요. 그래서 딱이다 이런 생각은 아니지만 마치 자신의 발에 대해서 귀한 내적 이미지를 갖게 하는데 한 예로 같이 제가 공유 볼게요. 이외에도 여러 차원의 좋은 많은 시 같은 것들이 있을거예요.
[나는 발이지요.
고린내가 풍기는 발이지요. 하루 종일 갑갑한 신발 속에서 무겁게 짓눌리며 일만 하는 말이지요.
때로는 바보처럼 우리끼리 밟고 밟히는 발이지요.
그러나 나는 삼천리 방방 곡곡을 누빈 대동여지도 김정호 선생의 발,
아우내 거리에서 독립 만세를 외쳤던 유관순 누나의 발,
장백산맥을 바람처럼 달렸던 김좌진 장군의 발,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손기정 선수의 발
그러나 나는 모든 영광을 남에게 돌리고 조용한 뒷자리에서 말없이 사는 귀한 발이지요.]
라고 하는 시에서요.
이런 의미에서 나아갈 수도 있고 원래 발이라고 하는 것들은 큰 이미지상으로 보면 나의 운명을 연결시키는 이미지로 쓰지요. 나는 그 발걸음을 통해서 길을 따라가고요. 그리고 그 장소에서 그 순간에 무얼 할 것인가는 손에 달려 있죠. 손이 하는 일은 내가 특정의 조건과 상황에 놓여 있을 때 내가 그걸 어떻게 맞아들이고 어떻게 살지라고 하는 것을 해요. 이렇게 손의 일을 그려 왔었는데 우리가 그릴 수 있었던 좋은 발들이 많잖아요. 정말로 귀한 발들 이런 것들을 떠올리게 하면서 발이 얼마나 귀한 일들을 하는지에 대한 좋은 그림들을 같이 공유하면서 하면 좋겠어요. 아이들과 해보면 처음에는 굉장히 조심스러워요. 발이 이제 예민하니까. 그리고 양말을 벗는 것 자체를 불편해하는 아이들도 아주 많아요. 그래서 처음부터 강도를 처음부터 표준을 세워가지고 할 필요는 없겠지만 조심스럽게 하다 보면 나중에는 뛰어다녀요. 거기다가 발은 발바닥만 있는 게 아니라 발등이 있어요. 그 발등이 무언가에 눌려진다, 아니면 쌓여진다 또는 어떤 거 속에 들어 있다하는 그런 감각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 필요해요.
촉감각은 그런 의미입니다. 우리는 온전히 연결된 세상 속에서 이제 분리된 존재로서의 세계로 들어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촉감각을 통해서 너와 내가 다르다는 것, 이제 완전히 독립되어 있다라고 하는 것을 한편으로는 인식하지만 또한 더 깊은 촉감각을 통해서 종교적이라 할 만큼 내적 갈망이 있어요. 세상과 내가 깊이 하나로 연결되고자 하는 갈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독립된 상태에서만이 그 갈망은 성취이지 그렇지 않으면 그냥 과거로 돌아가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시대가 가지고 있는 과제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가장 말단에 있는 그 발이 어찌 보면 가장 깊이 땅속으로 내려온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발을 잘 깨워주는 것, 발에 있는 여러 가지 요소들을 살아나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 아이가 정신적인 힘을 물질적인 지구의 삶 안에서 펼칠 수 있도록 하는 용기를 주는 이미지로 생각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나아가서 그 발이 정말로 값진 일을 하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라고 하는 좋은 그림들을 그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서 한번 찾아보신다면 좋은 시들 좋은 글귀들이 많이 있을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을 아이들이 낭송을 하고 교실 밖으로 나가서 그 발을 세상과 직접 만나게 해보는 것들을 누군가가 정확히 의식하지는 않았지만 아주 무의식적으로 우리에게는 필요하다고 인식한 것 같아요. 특히나 현대인에게는 필요하고 우리 아이들에게는 필요해라고 하는 느낌이 황토길를 만들고 맨발로 걷는 것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그러자 사람들이 반응하기 시작했어요. 유행은 제 생각에는 항시 결코 우연히 오지 않는다. 공통이 가지고 있는 무언가의 코드가 접속된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중에 하나가 요즘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하는 맨발로 걷는 것이예요. 정말 좋은 일이라 생각하고 건강의 측면에서도 매우 유익할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장하는 아이들이 자신의 자아가 지구에 깊숙이 뿌리내리도록, 그래서 자신을 우뚝 세우는 데 있어서의 좋은 발판이자 안내 역할을 할 수 있다라는 그림을 가지고 한번 실행해 보면 어떨까 싶어요.
오늘 한 분이 우리를 위해서 올라오셔가지고 골반 횡격막을 풀어주는 것들을 조금 해볼게요.
우리는 아이들을, 누군가와 접촉하고 닿을 때 그 사람이 허용하는 범위가 있을 수 있음을 고려해야 됩니다. 그래서 아무리 좋은 거라 하더라도 아이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시작하세요. 그다음에 내가 아이들을 닿을 때, 누군가를 닿을 때 내가 굉장히 섬세하게 깨어 있었다고 해야 돼요. 그것은 실제로 이 사이, 손과 몸 사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꼭 아셔야 돼요. 제가 이 사람을 이 영혼의 신체에 가서 주의를 가지고 닿으면 이 사람의 주의력이 깨어납니다. 이 사람에게 어쩌라고 하지 않아도 깨어나요. 그래서 우리가 아이들을 쭉쭉이도 해주고 껴안아도 주고 토닥여도 주고 두드려도 주고 이럴 때 정말로 염두에 둬야 되는 것은 그 슈타이너의 이야기입니다. 그 행위가 정말 진짜일 수 있는가는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이 그 행위에 얼마나 집중되어 있는가이다. 거기에 깨어 있는가이다. 그것으로 아이들은 충분히 다 좋아요.
[활동시범]
저는 전혀 제가 하지 않고 몸 안에서 흐름들이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만 지켜볼 뿐이에요. 그런데 제 허벅지가 닿았잖아요. 제가 이렇게 닿았잖아요. 그러니까 같은 자세로 그냥 여기다가 쿠션을 대서 하는 것하고 사람이 하는 것은 완전히 상황이 달라요. 그러니까 약간 도움을 받는 거예요. 그것들이 풀어지는 데 있어서. 그런데 제가 긴장이 안 돼 있고 더 편안할 수 있다면 더 그럴 거예요. 근데 이 분이 굉장히 숨을 잘 쉬어요. 특히나 왼쪽할 때, 자기 스스로가 흐르는 것들이 금방 알아채요.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잡고 있었던 것을 놓을 수 있어요. 그런데 오른쪽은 좀 더 시간이 걸려요. 보통 오른쪽을 더 많이 쓰게 돼 있으니까 그런 게 자연스러운 거예요. 그래서 양쪽을 할 때, 꼭 양쪽을 다 해야 되지만 시간이 같아야 되는 건 아니에요.
자세를 보면 밑에서 내가 받치고 있어요. 그러면 이 무게감이라는 게 있어요. 그런데 실질적인 무게감하고 다른 근육의 긴장이 가져다주는 무게감이 따로 있어요. 그런데 이 사람의 긴장이 풀리면 그 정도만큼 가볍게 느껴져요. 그다음에 근막의 흐름이 아직은 원활하지 않으면 딱딱해요. 그런데 계속해서 이 사람이 인식하고 흐름이 흐르기 시작하면 부드러워져요. 그게 느껴져요. 그러니까 그냥 처음에는 무게감, 그다음에 약간의 가벼움과 부드러움 같은 것들이 느껴집니다. 호흡을 내가 따로 맞춰서 할 필요는 없어요. 그냥 자연스러운 호흡을 하면 돼요. 외전되는 것들이 오른쪽과 왼쪽이 크게 차이가 있는 거 보셨죠? 그건 사람마다 다 그래요. 그런데 점점점점 그것들을 열게 될 거예요. 저는 그냥 가만히 대고 있어요. 그런데 이 사이에는 손과 몸 사이에는 저한테서 나가는 게 있습니다. 그다음에 선생님한테서 나오는 게 있어요. 그 사이에서 서로가 알아보거든요. 그렇게 알아보는 과정에서 몸의 안에있는 어떤 능력이 스스로 움직이는 이미지로 제가 지금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디를 지압을 하거나, 어디를 자리를 잡아가도록 힘을 주지 않고 그냥 당신한테 맡겨놓는 거예요. 그냥 흐름이 잘 연결될 수 있도록 했어요. 그래서 처음에 할 때보다는 조금 부드러워진 것 같아 그러면 그냥 다른 쪽으로 가면 돼요. 이것이 10번이 넘어가게 되면 이제 알게 돼요. 이게 강력하구나. 20번이 되면 이건 어마어마한 것이구나. 30번이 되게 되면 그거 내가 함부로 말할 수 있는 게 아니구나. 내 안에 어마어마한 좋은 치유자가 누구에게나 있어요. 그게 치료자예요. 그다음에 그것이 나를 균형 잡게 할 거냐하는 문제는 그가 마음껏 뛰어다니도록 마음껏 내 몸에서 활동하실 수 있도록 하는거예요. 내가 긴장이라고 하는 것을 내려놓는 거거든요. 아무것도 없는 무중력의 상태에서 긴장을 내려놓는 게 아니고 이 지구에서 내려놔야 돼요. 무슨 말일까요?
지금 제가 (시범을보이는사람)다리를 올려서 제 다리 위에 올려놓았어요. 이때 이 무게감이 느껴지는 순간 근육이 눌리면서 통증이기도 하고 내가 힘 빼려고 하는데 여기를 막고 있네. 이런 조건이 있어야 된다는 뜻이에요. 무중력에서 느끼는 것은 아까처럼 우주 속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어떤 것을 기반으로 해서 이 물질 속으로 들어와야 돼요. 그 물질 속으로는 얼마간은, 초기에는 불편하게 느껴져요. 약간 나를 완전히 이완시키지 못하게 만드는 장애 요소 같단 말이에요. 그러나 내가 조금 그것과의 친숙함을 가지면 전혀 장애물이 아니고 굉장히 든든하고 안정된 버팀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몸이, 근육이 그러면 그것에 대한 수용성이 생긴 거예요. 그전까지는 장애물이에요. 이랬다가 아니구나 이게 실은 친절이었다는 것을 몸이 이해하는 거예요. 계속 그런 과정이라고 봐야 돼요. 그래서 깨어나는 과정이라고 하는 것은 점차적으로 일어나요. 그것을 우리가 의식하는 것들은 특정 지점에서 의식해서 순간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아요. 수채화가 배듯이 서서히 가다가 어느 시점에선가 드디어 연초록이 좀 보이네 이렇게 말하듯이 계속되고 있는데 물론 거기에서 딸깍 하는 그런 비약들은 있기는 있어요. 그러나 기본적으로 이렇게 서서히 나간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러니 내 몸에 이 나를 풀어내고 나를 다시 원점의 건강한 우리로 놓고 보면 자가 면역력이라고도 할 수 있고, 정신적으로 놓고 봐보면 아스트랄 자아가 나타나는 수없는 욕구와 욕망과 상들을 마주 대하고 있는 아주 좋은 힘들인데 이 힘들이 서서히 깨어나는 거라고 생각을 하시고.
근육은 한 통으로 절대 돼 있지 않아요. 겹겹이 있고, 그 사이에 막들이 싸여있어요. 뼈도 막으로 사여 있어요. 그래서 인간의 몸 안에는 싸여있지 않고 온전히 자기만 있는 거 하나도 없어요. 다 보호되고 있어요. 보호라고 하는 것이 실은 밖에 있는 영역하고 연결하는 연결 신호망들이에요. 그것들이 살아 있는 것들이에요. 그래서 제가 신경 말단까지 즉 다시 말해서 자아피부까지라고 하는 말은 정확히 이야기하면 뼈하고 근육하고 사이의 막까지를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래서 중력의 깊은 무게감을 신체 안에다가 경험시켜야 돼요. 저 안쪽까지. 그런데 얘들은 지금 살살 바깥에만 자극을 주니까, 안에 있는 자아가 감정적으로 힘들어요. 인내하고 싫은 것을 참고 해야 되는 그런 힘들이 안쪽 깊은 곳에서 나오는데 계속 이 바깥에 있는 그것만 살펴요. 그러면 그 사람은 힘들죠. 그 사람이 부족한 게 아니라 안쪽에 있는 힘을 못 쓰고 있는 거죠. 그 관점에서 백번, 천번 날마다 교사가 생각해야 되고 부모가 생각해야 되는 것은 우리 아이들, 우리 인간들 안에 들어 있는 진짜 큰 지혜들, 진짜 큰 것들이 실존하고 있고 계속 몸 안에서 작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 작업을 우리도 함께 돕고 싶다는 관점이어야지 누가 없는 걸 가지고 그 사람을 키우지 못해요. 그러니 어떤 의미에서는 내가 다 할 수 있어야 되는 건 아닌 거예요. 내가 부모라 하더라도 내가 우리 아이들을 맡았어요. 내가 능력이 엄청 있어가지고 우리 아이들을 천지개벽하게 만들면 좋겠지만 그럴 일은 없어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아이들 안의 시간표대로 하실 거예요. 우리가 같이 동반하면서 알아가고 같이 손을 맞잡고 힘을 좀 보태는 그 이상은 할 수 없어요. 그걸 받아들여야 돼요. 계속 배우면서 그러니 우리가 원하는 만큼으로 진전되지 않는다고 책임지려고 하는 생각은 맞지 않아요.
학교에서는 지금까지 해오던 것들에서 맨발로, 우리 아이들 학교 오기 전에 걷기 하잖아요. 제가 우리 사랑어린학교의 최고의 여러 가지가 있지만 자랑거리 중에 하나는 저는 걷기라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거기에 가끔 맨발로 걸어보는 거. 예를 들면은 모래밭이 있다면 거기만큼은 신발을 벗고 해본다든가. 아무튼 아이디어를 써가지고 맨발로 진짜 지구의 미네랄들을 직접 만나는 시간을 갖는 것이요. 그의 결괏값들을 진척 정도를 뭘로 알 수 있냐면요. 발가락이 다 깨어나는 걸로 알 수 있어요. 우리 아이들이 처음에 하고 어떻게 달라졌지 보려면, 발가락에 색연필을 끼워서 글씨를 쓰세요. 엄지발가락과 검지발가락 사이에 색연필을 끼워가지고 자기 이름을 쓰게 하라고요. 오른발잡이는 오른발로 왼발 잡이는 왼발로. 그다음에 발가락으로 물건을 잡아가지고 옮기는 거. 도토리도 있고 작은 돌도 있고 바구니에다가 발을 넣어가지고 그것을 움켜 잡아서 들어가지고 이쪽으로 옮기는 거. 이런 것들로 나아가 보세요. 우리가 다섯 손가락이 제대로 깨어난다는 것은 이것과 연결된 뇌가 깨어난다는 것과 똑같은 말이에요. 발가락이 깨어난다라고 하는 것은 그 반쪽의 뇌가 또 깨어난다라고 하는 것으로 생각하셔야 돼요. 어마어마한 일이 돼요. 그것을 바로 하면 엄청 힘들어요. 근데 아이들이 맨발로 뛰어본 아이들은 그게 부드러워요. 이미 발바닥에 돌이 갔을 때 대처해 본 것들이 아이들 안에 있어요. 그러니까 나름 그걸 조정을 해요. 단 이걸 할 때 꼭 의자에 앉혀 가지고 허리를 세워서 해야해요.
이제 아이들 의자 높이는 매우 중요해요. 아이들 학교에서 그 아이의 신체 크기에 맞게 해줘야 합니다. 안정적으로 발바닥을 디딜 수 있어야 되겠죠. 너무 낮아가지고 무릎이 구부러지는 것도 그렇다고 높아가지고 발이 달랑거리는 식이 되어지는 것도 아니에요. 그래서 유심히 봐야 돼요. 높다면 밑에 뭘 좀 깔아주든가 해서 높낮이를 항시 생각해야 돼요. 같은 학년 안에서도 그렇죠.
아무튼 의자에서 바른 자세가 됐다 했을 때 몸 앞의 가운데에다가 놓고 발을 써야 되요. 꼭 중요해요. 정가운데다가 놓는다는 말은 발이 중앙선을 넘어간다는 말이에요. 오른발이 이 중앙선을 넘어서부터 써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와야 돼요. 그렇지 않고 쓰는 것은 지금 좌우 통합이 안 된 거예요. 발이 안 됐다는 말은 정확히 이야기하면 골반이 안 된 거예요. 천골이 아직 안 연 거예요. 그러니 천골까지 왔었던, 뇌 척수를 통해서 내려왔던 지혜들이 아래로 안 가는 거예요. 그게 충분히 왼쪽까지 가서 오른쪽으로 오는 일들이 가능해져야 돼요. 그렇게 생각하셔야 돼요. 천골은 매우 중요한 통로이고 매우 중요한 교착점이고 센터이다.
그래서 몸의 모든 것들이 안전하게 하나로서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진짜 우주처럼 감싸져 있는 그 막이 있다. 그걸 근막이라고 하고, 그 막은 굉장히 다층이다. 그 안쪽에 막과 막들이 해내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성질이 달라요. 기능이 정신적인 의미에서든 우리가 실질적으로 자유롭게 목적화된 기억을 끄집어내가지고 학습 과정에 쓸 수 있는 것은 이갈이 되고 난 뒤로부터라고 했어요. 그 말이 엄밀하게 어떤 의미냐면 이갈이는 밑에서 위로 솟아오르는 겁니다. 우선 단단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밑에서부터 위로 올려서 밀어 올렸어요. 우리가 뽑아낸 게 아니라고요. 에테르적 힘이 그걸 밀어올렸어요. 그럼 그 에테르적 힘들은 저 발바닥에서부터 왔어요.
발을 깨금발로 걷는 아이들의 이가 어떤 상태인지. 발을 뒤꿈치까지 딛는 아이들의 이하고 어떻게 다른지. 그건 단순히 이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적 힘을 쓰는 데 있어서도 달라요. 우리는 그 아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온전히 잘 사용되길 원해요. 그러려면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를 항시 염두에 두시는데 그중에 오늘 이야기 한 차원에서 꼭 주목하셔야 합니다. 아이들의 팔을 살려야 된다 깨워야 된다. 그리고 그 발은 똑 떨어져서 발인 게 아니라 연결돼 있잖아요. 그 의미의 토대고, 거기로부터 올라오는 게 있어요. 그것들이 해내는 일들이 있어요. 그리고 그것이 또 위에서 내려오는 그 어떤 것들을 잘 서로 짜여지게 할 거예요.
그래서 꾸준히 집에서 하신다면 몸에다가 하는 것들은 리듬이 있으면 좋다고 했죠. 시간의 리듬. 그러니까 정기적으로 일정 템포를 가지고 하게 되면 몸은 자연스럽게 물을 내기 시작한다. 그 물이 호르몬이고 림프액이고요. 그 림프액이 모두 다 있지만 특정의 시간대에 나온다는 것은 집중적으로 나온다는 뜻이에요. 그전에는 그냥 흐르고 그냥 항시 있는 상태예요. 그러니 집중을 못해요.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 루틴이 생겼다. 이것은 정말로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굉장히 좋은 것들이 집중해서 쓰인다는 것을 의미하죠. 수면 호르몬도 마찬가지라고 했죠. 수면 호르몬이 아이들에게 처음에는 다 24시간 분비가 된다. 그런데 특정 시간이 되어야 분비되도록 만드는 순간 그가 그전에 못하던 걸 한다. 그게 숙면이다. 숙면은 하루 동안에 있었던 경험을 정신적으로 소화할 수 있도록 하는 조건이에요. 그쪽으로 들어가지 못하면 소화가 안돼요. 다 개워내고 뱉어내요. 그래서 실은 영아 아이들은 그 경험을, 삶을 지금 소화하고 있는 건 아니에요. 그 소화를 시켜주는 건 다른 거예요. 그 아이가 하는 거 아니에요. 그러니 안에 있는 것들이 좋은 시간, 질서를 가지고 꾸준히 해서 일정 시간이 되면 내 몸이 그냥 근질근질하게 되는 건 너무 좋은 일이다. 그렇게 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래서 학교에서도 예를 들면 특정의 요일이나 어떤 것을 따라 그때는 우리는 그때 뭐 했었었지, 나중에 아이들이 졸업하고 난 다음에 그런 식으로 기억하는 게 좋아요. 그런 식으로 하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기를 바랍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질문]
아이들이 평상시에 맨발로 걸어다녀서 실내화를 저는 꼭 신기거든요. 위험한 것들이 좀 있어요. 아이들이 막 뛰어다니니까 나는 신발을 실내화를 좀 신기는 편이거든요. 근데 평상시에 발바닥에 자극을 주려면 그 실내화를 벗길까요?
- 신어도 괜찮을 것 같아요. 괜찮을 것 같고. 그리고 특정의 시간대에 나가서 그렇게 하는 것으로도 충분할 것 같아요. 왜냐하면 공간에 따라서 어울리게 하는 건 좋아요. 그러니까 맨발 걷기가 좋다 해가지고 맨발로 걸으면 안 되는 데 가서 걷게 하는 것은 아주 나쁜 일이에요. 무슨 이야기냐면 여기까지는 안되고 여기까지 할 수 있는 것은 있는 거예요. 이 공간에 어울리는 일이 있고 아닌 것이 있으니까, 우리 어른들 입장에서 잘 판단돼서 “그래도 이 공간에서는 어쩌는 게 좋겠어” 그게 맞는 거예요. 그리고 그것에 대한 상대적인 어떤 부족분이 있다라고 하는 것은 다른 것들을 생각해서 거기에서 처리하면 되니까요.
[질문]
마지막에 주 1, 2회 가정에서 반복적으로 발바닥을 자극한다는 게 맨발 걷기를 가정에서 하는 것들을 주 1 2회 규칙적으로 하는 게 낫다는 건지, 아까 우리가 했던 (활동)동작을 주 1,2회 반복적으로 하는 게 필요하다는 건지 궁금합니다.
- 학교에서는 아까 베드에서 실습했던 것을 할 수 없으니까, 집에서는 할 수 있겠죠.
오늘 본 것만으로 저희가 집에서 아이들한테 해도 될까요?
- 별거 없어요. 아이 골반하고 무릎 사이에다가 나의 허벅지를 살짝 얹어주면 돼요.
그건 연령에 상관이 없는건가요?
- 그럼 그건 그렇게 해볼게요. 그것은 어른끼리만 해요. 그리고 한 달이든 두 달이든 세 달이든 어떻든 20번을 넘겨요. 그러고 나서 이야기하게요. 아이들을 잘 돌보는 제 1 방법이 뭔지 아세요? 어른을 돌보는 거, 우리가 좋아지는 거예요. 그것이 제일 1번이에요. 1번. 그래서 아이들은 별로 신경 쓰지 마시고요. 우리끼리라도 좀 잘. 그게 아이들을 위해서 최고로 좋은 거예요. 그러기를 바랍니다.
[질문]
이제 시작이 전환이 되지 않는 아이들로 시작을 하셨잖아요. 그래서 이제 근데 제가 학교에 있으면서 전환이 되지 않는 아이들을 많이 봤거든요. 근데 특히나 그중에서도 그 전환을 부모가 힘드니까 수긍을 해버려서 아이가 요청하는 대로 해버린 부모님들이 있어요. 그래서 이제 졸업을 하게 됐는데 근데 그 학생들이 나이가 많아졌는데도 이제 어려움을 겪는 거예요. 그가 속한 사회에서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니까 못 견디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그만둬 버리거나, 여타 이렇게 들려오는 이야기로 그렇게 돼요. 근데 이제 학교에 있을 때도 사실은 걱정스러웠거든요. 왜냐하면 이 상태에서 전환를 하려면 어른이 명확하게 이거는 아니야라고 얘기해야 되는데 어른이 두 손 들어버리니까 만사에. 이 아이가 학교에 와서도 이제 만사 짜증을 부리거나 울면은 다 된다라고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런 것에 있어서 배움짓는 경계를 지어주느라고 했는데 여하튼 학교에서는 그나마 따라 하는데 집에 가서 이제 왕인 거죠. 그 집안의 왕인 거예요. 짜증만 냈다 하면 부모님은 고개를 딱 숙여버리니까.
근데 이제 지금 제가 드리고자 하는 질문은 이미 성인의 나이가 되는 사람도 있고 이제 성인으로 이제 가고 있는 졸업생들이 있어요. 근데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그럴 때 이런 이야기를,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부모님과 살고 있으니까 부모가 그래서 안 된다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맞는 건지 어떻게 해야 되는 건지. 그냥 이 어려움을 그냥 같이 보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마음적으로 봐줘야 되는 건지.
- 그것은 이제 예를 들어서 어떤 특정의 상황에 대한 견해도 좀 다를 수가 있고 여러 가지가 복잡하게 들어와 있어요. 그런데 그걸 단순화시켜서 부모의 입장에서 이상황에서는 이렇게 해야 어울려 또 이 시간이 온 거야라고 하는 생각이 옳다는 전제에서 놓고 봐보면 이런 게 있습니다.
- 아이들이 뭔가 욕구가 해결이 안 되거나 또 스트레스가 있어가지고 물건을 집어던져요. 소리를 질러요. 평소에는 그런 아이가 아니에요. 터지면 그래요. 이 아이를 그 상황에서 어떻게 다시 조금 가라앉힐 수 있나요?
(내버려 둬요. 가만히. 고요히 바라보고. 기다림. 다른 식물 식물 거 그냥 다른 데로 이고 환기시키는 운강이 많이
- 오케이.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어요. 그때는 꼭 안아주는 겁니다.
(근데 안아주면 안 되는 상황이라고 내가 느껴지는 거예요. 저거는 내가 약간 품어줘서 있는 게 아니라 자기가 받아들여야 된다고 느껴지면.)
- 지금 안아준다는 것은 제가 말한 것은 오 사랑스러워라해서 안아주는 것도 있지만 안 돼 하고 딱 잡는 걸 말하는 거예요. 아이는 나는 더 필요해요라고 말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안 알아버리는 거예요. 놔둬버리는 거예요. 그럼 아이는 원래 자동화되어 있는 식으로 돼버려요. 이건 완전히 습관돼요.
- 그 행동은 멈춰야 돼요. 근데 멈출 줄 몰라요. 그럼 가르쳐야 되잖아요. 어떻게 가르칠까요? 말로 그게 불가능하게 하세요? 막 안으세요? 그게 약간 폭력처럼 보이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실제로 해보세요. 아이들이 얼마나 스스로 내 몸이 조절이 안되고 있는지. 그러니까 내가 나도 조절이 안 되고 있는 거예요. 감정도 마찬가지로 말이에요. 그러니까 몸을 쓰는 것만이 아니라 감정도 폭발하는 식으로 하고, 생각도 그래요 어떤 것을 못 참아요. 그렇게 돼요. 그것을 지금은 그것을 그렇게 펼쳐서는 안 돼라고 하는 것을 말로가 아니라 꼭 안아주는 것으로 한다라고 했어요. 그리고는 평상시에 그런 식으로 꽉꽉 쪼여지는 이 경험들을 아주 정기적으로 해야 돼요. 아이들의 안쪽에 있는. 저 심부 안쪽에 있는 자아까지 가서 말을 하라고요. 깊은 곳에 있는 당신(자아)이 작동하셔야 된다고 몸으로 알려주는거예요. 그렇지 않고 피부만, 겉만 살살 보살펴주는 식으로는 그 안에 있는 분(자아)가 못 깨어난다고요. 그렇게 이미지를 삼으라고 제가 지금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꽉 안아주는 것이 문제행동이 없었을 때 많이 해야 돼요. 그냥 그 놀이로. 그래서 어떤 틈을 막 끼어다니고 심지어는 그런 것 때문에 요즘에는 롤 있잖아요. 롤 사이를 통과하는 이런 도구들도 만들고 그랬어요. 특히나 현대 아이들이 이런 것이 많이 필요하니까요. 그러니까 무슨 이야기냐면 일상에서 꼭 안아준다라고 하는 것을 문화적 방식으로 하는 건 선생님이든 엄마든 ‘아 지금은 가야 돼. 그거 그만하고 가야 돼.’ 하는 것이 안아주고 있는 것과 같은 거예요. 그게 계속 있어줘야 되잖아요. 그것을 공격하는 방식으로 할 이유는 하나도 없잖아요. 아직 잘 모르니까 알려주면서 그러죠.
- 그래서 이 아이가 물건을 잡아가지고 막 집어던지고 있어요. 화를 내든 아니면 재미있어 갖고 하든 간에 그럼 그때 우리 처음에는 “하지 말아라” 했어요. 근데 계속하면 그 아이를 딱 안아서 “너는 이 놀이를 아직 할 수 없구나”하고 다른 데로 옮겨가요. 이것에는 두 가지가 생겼어요. 하나는 나를 강제적으로 이쪽에서 이쪽으로 옮겼어요. 성인은 그렇게 생각하겠죠. 하지만 아이들은 이에 대한 수용성이 생겨요. 세상이 실은 하고 싶은 대로 되지 않잖아요. 그걸 내가 받아들여야 되잖아요. 지금 이 상황은 그 일들이 경험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매우 좋은 경험이 이루어지고 있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던지면 안 돼.” 그것을 이해시키려고 하는데 그 자리에다 놔둬놓고 계속 안 된다고 안 된다고 해봤자잖아요. 그건 아직 안 된다고 하는 것을 몸이 먼저 경험해야 돼요.
- 하나는 이제 이 이야기는 굳이 할 필요는 없지만 필요하다면 관심을 돌려가지고 하는 방법은 좋은 방법은 아니에요. 그것은 이건 하면 안 되는 것으로서 배워야 돼요. 그런데 이 생각을 않고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들어 버리면 또 해요. 계속. 그러니까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돼요. 여기 이 상황 이러면 안 돼 하고 다른 데로 데리고 가서 저기 봐봐라 이렇게 해갖고는 안 된다고요. 그거 잘 보셔야 돼요. 아이들이 주의력이 흐트러지는 첫 번째 과정입니다. 내가 지금 여기에 몰두하고 있는데 이 몰두가 흐름을 가지고서 연결돼서 다른 곳으로 가는 게 아니라 완전히 이것과는 별개의 맥락을 갖다가 화면을 가져다 와버리는 거예요. 그럼 나는 맥락이 없어요. 그다음에 내가 푸는 시간이라는 게 필요한 거예요. 그러니까 애들이 이제 울고 또 화가 나거나 해서 이것들이 약간 잦아들기 위한 이 시간이 얼마나 좋은 시간인지를 알아야 돼요. 이 시간이 내가 스스로 서서히, 단 그걸 하더라도 원래 내가 지금 허용할 수 없는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은 못하게 하면서 그 시간을 갖는 거죠. 근데 그 시간이 힘들고 애를 빨리 기분 전환시켜 주고 싶어서 기분 전환은 나중에 내가 다 이제 스스로 알아서 해야 되는데 그 연습할 기회를 안 주는 거예요. 그래놓고 나중에는 감정 처리를 잘못한다거나 청소년기가 됐는데 연습을 못 받았거나 하는거예요. 힘든 것 같지만 귀한 걸 얻는 거예요. 자기만의 방식으로 호흡을 누그러뜨리는 거, 감정을 처리해 나가는 거. 이 복잡해진 사고로서 올라왔던 것들을 다시 질서를 만드는 거 이거 다 내가 해내야 되는 것들이라고요.
네 고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첫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