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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8월
16일 어제 용산역에 나갔다가 고향 선후배들과 시간을 보내고 들어왔는데 술을 마시는 중에 후배들끼리 다투는 일이 발생했다. 고향을 떠나와서 그것도 50대가 되어가는 나이에 싸우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고 세월이 흐른 지금 옛날의 위계나 감정만으로 그들을 제어할 수도 없었다. 아침식사를 하는 중에 아들이 오늘 충북 단양에 있는 고수동굴을 간다고 아내가 전하여 무슨 소린지 어안이 벙벙했다. 가족의 휴가나 외할아버지 생신에도 꼼짝하지 않던 아들이 먼 거리 단양까지 여행을 하다니 걱정과 배신의 마음이 동시에 생겼다. 오전에 체육관으로 나가 운동을 하고 학원으로 가면서는 엊그제 장인어른께 선물한 안마기를 다른 것으로 교환했다. 컵라면으로 점심을 하면서 무심결에 달력을 보니 오늘은 음력 7.7일 견우와 직녀가 오작교에서 만난다는 칠석날이다. 까마귀와 까치가 어떻게 다리를 놓는다는 것인지 이런 황당한 설화가 중국으로부터 구전된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오후에 세종문화회관에서 음악회를 감상한다는 아내와 딸이 전화를 했고 저녁에는 고수동굴에 갔다는 아들이 돌아오더니 말도 없이 다시 나간다.
17일 8월도 중순이 되니 열대야가 사라져 잠을 잘 잤는데 머지않아 찬바람이 부는 가을과 눈 내리는 겨울도 어김없이 올 것이다. 아침에 내가 좋아하는 조기찌개가 식탁에 올랐는데 중국산 생선인지 요리에 문제가 있는지 맛이 없어 기분이 불쾌했다. 어제 집에 왔다가 외출한 아들은 언제쯤 들어왔는지 늦게까지 자고 가족이 모두 식사를 함께 한 지도 꽤 오래되었다. 오전에 마라톤 연습으로 홍제천 7킬로를 달리고 체육관으로 이동하여 운동을 더 했더니 오늘 할 일을 다 한 것 같았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집으로 가서 점심을 하고 학원에 나가 수업을 한 뒤에 친구 남석이 재웅이와 저녁을 보내려고 지하철로 영등포에 나갔다. 서울에 살면서 여러 곳을 다녔지만 영등포나 신도림 부근은 지저분하고 무질서하여 마음이 내키지 않는 지역이다. 친구들이 사는 곳이라 어쩔 수 없이 갔지만 횡설수설하는 재웅이 남석이 때문에 오늘의 분위기도 찜찜하였다.
18일 일찍 일어나 8시30분에 아침 식사를 했다. 날마다 반복되는 일상이라 요즘은 먹기 위해서 사는 것인지 살기 위해서 먹는 것인지 어느 때는 분별이 되지 않는다. 오늘까지 금연한 지가 55일이 되었는데 마라톤이나 건강을 위해서라도 지속적인 나의 의지가 반드시 필요한 때이다. 오전에 월드컵경기장 아래를 돌아오는 10킬로를 달려 땀이 많이 흘렀는데 춘천마라톤까지 꾸준하게 연습하여 도전할 것이다. 돌아오면서 체육관에 들어가 기구운동을 하고 어제 만난 친구들에게 문자를 보냈더니 참석하지 않았던 노훈이의 전화가 왔다. 사람은 시간이 흐르면서 생각이나 삶의 방식이 변하기 때문에 상대의 입장에서 이해를 하면 어제 같은 경우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오후에 학원으로 갔다가 수업을 마치고 저녁에 들어오니 거실에 있던 아들이 슬그머니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고 10시가 지나서는 아내가 돌아왔다.
19일 새벽에 일어나 신문을 보고 거실로 나왔더니 개학을 한 아들과 딸이 일찍 학교에 갔다. 식사를 하고 오전에 북한산 등반을 시작하여 일선사 방향으로 올랐는데 그 동안 내린 비로 콸콸 흐르는 물이 계곡을 가득 채웠다. 뿐만 아니라 7월 중순에 왔다가 한 달 만에 다시 온 북한산은 짙푸른 신록에 매미 울음까지 여름 산의 절정으로 손색이 없다. 청담천 부근에서 계곡의 바람을 맞으며 점심을 하고 2시경 하산하여 학원으로 갔다가 임대료 문제로 신설동으로 나갔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오려는 초저녁에 이틀 전 만났던 재웅이한테 사는 의미가 없어 세상을 떠나겠다는 황당한 전화가 왔다. 낮에 그의 부인한테 재웅이를 살려달라는 연락이 와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위로만 했는데 무슨 일인지 궁금했다. 만나는 장소를 남영동으로 정하고 서둘러 갔더니 가족이나 금전 그리고 자신의 신세에 대하여 불만을 토로하고 이내 통곡을 하기 시작한다. 50대 전후에서 격을 수 있는 일이라고 격려를 하는 중에도 술을 연거푸 마시더니 내가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에 사라져 버렸다. 전화조차 불통이라 불안한 마음으로 기다리는데 한참이 지나 한강이라며 연락이 왔고 고마웠다는 말을 남기며 다시 전화를 끊었다. 이후 연락이 되지 않아 불안한 마음으로 남석이와 그의 부인에게 상황을 알렸고 나 또한 마음을 졸이며 시간을 보냈다.
20일 날이 밝아올 때까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데 아침이 되면서 물가에 쓰러져 있는 친구를 찾았다는 연락이 다시 왔다. 한강으로 119까지 불러 대기하다가 현재는 집으로 들어가는 중이라고 하여 안도를 했지만 밤새 주고받은 전화만 50통을 넘었다. 술이 취해 강가에서 잠이 든 것이고 아무튼 여름밤의 해프닝이었지만 선하고 건실한 친구가 어제부터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아침에 정신을 모으려고 마라톤을 시작하여 12킬로 성산대교 아래를 돌아왔더니 발이 무거워 평소보다 몇 배나 힘이 들었다. 홍제천변 작은 슈퍼에 앉아 삶은 계란으로 아침을 대신하고 점심쯤에 집으로 돌아와 식사를 한 뒤에 낮잠을 조금 잤다. 오후에 학원으로 나가서 수업을 하고 저녁에 집으로 오면서 재웅이에게 전화를 했더니 기억이 없다는 말 외에는 묵묵부답이다.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여러 일이 많이 생기지만 어느 때나 순리를 거스르지 않는 평정심의 마음이 필요하다. 피곤한 하루가 가고 오늘도 어느 새 밤이 깊었는데 내일이면 다시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것이다.
21일 오늘 재경 고향사람들 도봉산 산행을 하는 날인데 기온이 높아 힘든 시간이 될 것 같다. 나는 일정이 있어 동참을 못하고 체육관에서 운동만 하고 집에 왔더니 아내와 딸이 수업을 한다고 논술교실에 오른다. 점심을 하고 학원으로 가는 중에는 얼마나 날이 더운지 바람이 열풍으로 변해 있고 햇살조차 따가워 숨을 쉴 수가 없을 지경이다. 오늘이 주말이라 시내버스든 지하철이든 이동하는 곳마다 사람들로 붐비고 그들의 얼굴이나 옷차림은 각양각색으로 다양하다. 학원에 도착하여 교재를 연구하며 시간을 보내다 늦은 오후에 친구를 만나러 방배동으로 가서 음식점 장수원에 들어갔다. 관악산을 산행했다는 영식이도 바로 달려와 자리를 함께 했고 더위를 핑계 삼아 막걸리와 맥주를 마시며 초저녁 시간을 보냈다. 9시경 집으로 돌아와 딸에게 김치찌개 끓이는 과정을 비법이 있는 것처럼 알려주었는데 요리의 중요함을 말하기 위함이었다.
22일 새벽에 일어나 오늘 수업할 교재를 보면서 일요일을 시작했다. 아침에 영화를 본다는 딸과 아내를 일단 불광동까지 태워주고 양화대교를 건너 교회에 갔는데 정체는 심하지 않았다. 우현이는 오늘도 성가대 맨 위쪽에서 찬송으로 열심이고 열정에 찬 목사님은 변함없이 설교와 기도에 정성을 쏟는다. 반대로 일요일 수업이 연속으로 있는 나는 시계만 보다가 예배를 마치자마자 바로 교회를 벗어나 논술교실로 돌아왔다. 오늘은 일반학교 수강생이 외고로 편입했다고 자부심으로 가득했는데 인생은 마라톤과 같은 것으로 꾸준한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학교 때 성적이 낮은 사람이 훗날 더 잘 되는 경우가 있고 우수했던 학생이 평범하게 또는 그보다 못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수업을 마치고 거실에 들어서면서 아침에 나갔다가 지금 들어오는 아빠라고 딸에게 말을 했더니 눈만 껌벅거린다. 예전과 다르게 요즘은 딸이 자라서 소통이 잘 되고 이해심도 많이 생겨 아내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지낸다. 저녁에 찌개를 직접 만들어 딸과 식사를 했고 10시가 지나서는 수업을 마친 아내와 도서관에서 온다는 아들도 들어왔다.
23일 새벽부터 비가 내린다. 오늘 28도까지 내려간다는 서울의 기온인데 남부지방은 해수욕장 폐장까지 무더위가 계속이다. 우리나라도 언제부터인가 늦더위에 국지성 호우까지 갈수록 동남아 국가들과 비슷한 아열대 기후로 변해가고 있다. 식사를 마치고 비가 갠 틈을 타 마라톤 연습으로 한강근처까지 달렸는데 비가 다시 내려 출발한 지점으로 돌아왔다. 홍제천은 내부순환도로가 우산처럼 있어 달리는 동안 어느 정도 비를 피할 수는 있지만 흘러내리는 땀은 어쩔 수가 없다. 마라톤 복장으로 체육관으로 이동하여 운동을 더 하고 내일 개학하는 딸에게 점심은 외식으로 하자고 요청을 했더니 김밥이나 먹겠다고 한다. 바로 분식집으로 들어가 딸이 먹을 양을 주문했는데 배달부터 다녀온다는 주인이 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아 결국 빈손으로 집에 돌아왔다. 오후에 학원으로 가서는 며칠 전 소란을 피운 재웅이한테 힘든 시간이 있을지라도 친구답게 긍정의 마음으로 살아가라는 메일을 작성하여 보냈다. 수업을 마치고 저녁에 집으로 들어왔더니 내일 개학한다는 딸은 방학 중 했어야 할 과제를 이제야 마무리 한다고 정신이 없다. 학교나 사회생활이나 오늘 할 일은 오늘 처리하는 정확한 습관이 중요한 법인데 딸도 자라면서 배워야 할 부분이다.
24일 잠자는 동안 두 번이나 일어났다. 밤새 비가 오락가락 하니 문을 열 수도 없고 선풍기만 죽부인처럼 곁에 두고 켜고 끄면서 밤을 샌 것이다. 긴 방학을 마치고 오늘부터 2학기를 시작하는 아침에 아들은 습관처럼 식사를 거르고 집을 나선다. 식사를 하지 않으면 뇌의 활동능력과 집중력이 떨어져 수업에 지장이 있다고 오래 전부터 이야기를 했는데 모두 헛일이다. 어제 먹던 미역국으로 식사를 하고 이발을 하려고 나섰다가 학교에 가는 딸부터 동명여중에 태워주고 돌아왔다. 오전에 성산대교를 돌아오는 12킬로를 1시간20분 달렸는데 오늘도 중간에 비가 뿌려 땀과 빗물이 범벅이 된 채 출발선에 들어왔다. 돌아오면서 체육관에 들어가 기구운동을 하고 학원으로 가는 중에는 어제 보낸 메일을 읽었다는 재웅이한테 고맙다는 전화가 왔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온 저녁에 무슨 변화가 있는지 아들이 인사를 하여 놀라웠고 2학기 때는 새로운 모습이 생길까 기대가 되었다.
25일 금년에는 유독 비가 많아 오늘도 새벽부터 주룩주룩 내린다. 학교에 가는 아들이 안방까지 들어와 다녀온다는 인사를 하여 어제 저녁부터 꿈을 꾸나 했는데 아내가 박수까지 치며 좋아한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평범한 일상이라도 우리 집의 상황이나 아들에 대한 나의 감정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내도 탄성을 올렸을 것이다. 물론 이해심이 부족하고 조급한 성격의 나도 문제가 있을 것인데 이제부터는 누구를 탓하기 전에 스스로를 돌아보는 그런 시간이 나에게도 필요하다. 어제와 그제 비를 맞고 홍제천을 달렸더니 몸살 기운이 생겨 오늘은 학원으로 바로 나가 책을 보다가 가져온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었다. 오후에 지하철을 타고 대치동으로 가서 마원장을 만나고 돌아오면서는 교육을 받는다고 서울에 올라온 고향친구를 만났다. 저녁에 논술교실 보충수업이 있어 술은 하지 않았지만 초등학교 친구라 대화를 하는 모든 시간이 즐겁고 유쾌했다.
26일 아침식사를 마치고 평소처럼 마라톤을 하러 홍제천에 나갔다. 습도가 많기는 해도 선선한 날씨라서 좋은 컨디션으로 한강까지 1시간30분을 달리고 체육관으로 이동하여 기구운동을 했더니 정신이 맑아졌다. 집에서 점심을 하는 중에 아내는 다이어트를 한다며 한약을 먹고 있는데 약에 의존하면 나이가 들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며칠 만에 3,4킬로 체중을 줄였다고 자신은 의기양양했지만 평소 소량의 식사와 규칙적인 운동으로 관리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한 방법이다. 오후에 학원으로 나가 조선일보 홈페이지를 보니 얼마 전 응모한 조선일보 춘천마라톤 출사표 ‘춘마! 그대에게 빚을 갚습니다‘가 당선작으로 발표되었다. 사소한 일이라도 무더위 속에 짜릿한 느낌이었는데 고통을 이겨가는 진솔한 나의 기록이 세상에 나왔기 때문이었다. 가족들과 가까운 친구들에게 소식을 알렸더니 축하의 문자가 이어졌고 스스로에게 위로가 되기에 충분한 기쁨과 보람이 있었다. 식사를 마친 밤에 교실에서 내려온 아내는 마라톤 당선에 대하여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고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이 손을 들어 인사를 한다.
27일 오늘 할 일이 많아 일찍 일어났다가 식사를 마친 오전에 먼저 마라톤 연습으로 한강까지 12킬로를 달리고 돌아왔다. 출발부터 70분이 더 지났고 음료수 하나를 마시며 쫒기는 사람처럼 부지런히 체육관으로 갔더니 흠뻑 젖은 나를 보고 사람들이 모두 놀란다. 사실 오늘은 마라톤 연습이 그다지 내키지 않았는데 풀코스 완주의 의지와 건강해야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망설임을 뿌리친 것이다. 점심을 먹고 학원으로 나가면서는 아내가 부탁한 살이 빠진다는 약을 찜찜한 마음으로 논술교실에 올라가 전해주었다. 아마 약을 먹으며 체중을 조절하는 사람과 규칙적인 식사와 운동으로 체중을 유지하는 사람과는 그 결과가 다를 것이다. 시내를 통과하여 학원에 도착하니 오늘은 전기가 스톱되어 에어컨이나 컴퓨터가 작동이 되지 않아 불편함이 생겼다. 한참을 고생하다가 여기저기서 전기선을 끌어와 임시방편으로 불을 켜 두고 수업을 했는데 주변이 지저분하다. 오후에 날이 어두워지더니 또 비가 내리고 내일은 고향에서 면민의 날 행사가 열리는 날로 참석을 해야 할지 부담이 생겼다.
28일 면민의 날 행사에 재경 향우회에서는 버스를 대절하여 단체로 사당동에서 아침에 출발을 한다. 사무국장으로서 참석한다고 통보는 했지만 비도 내리고 수업을 포함하여 처리할 것이 많아 내년으로 동행을 미루었다. 면민의 날은 마을별로 음식을 준비하여 친목과 화합을 만드는 축제로 나로서는 불참하는 대신 어르신들을 생각하여 이장한테 찬조금을 보냈다. 아침에 식사를 하고 일이 많아 학원으로 일찍 갔더니 이번에는 옥상 콘센트에 비가 스며들어 어제처럼 누전이 되었다. 한참 후에 건물주가 보냈다는 관리인이 와서 선을 연결했는데 겨우 불만 들어올 정도로 손을 보았고 바닥에 널려 있는 전선들은 그대로 어수선했다. 오후에 점심을 먹으려고 밖에 나갔더니 8월 초순에 비하여 확실히 기온이 누그러져 여름이 가고 있음을 실감했다.
29일 어제 면민의 날 행사를 주도한 이장으로부터 찬조금에 대하여 감사하다는 인사가 왔다. 그것보다 언젠가는 장학금이나 복지기금 명목으로 고향에 기여를 해 보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치열하게 열심히 살아가야 할 것이다. 아침부터 비가 쏟아져 게으름을 피우다가 교회를 가는데 성산대교 아래 한강변 마라톤 코스가 빗물에 잠겼고 예배를 마친 뒤에는 해장국으로 식사를 하고 부지런히 국어교실로 돌아왔다. 오늘은 수강생 7명이 출석하여 자리가 모자라 걱정을 하는 차에 누군가 책상을 교실 앞에 두어 주님이 다녀갔는지 어리둥절했다. 점심도 거르며 6시까지 수업을 하다가 저녁에는 정독도서관에 나가 딸을 태우고 청와대 앞길을 경유하여 돌아왔다. 아내가 늦게까지 수업을 하여 갈치조림으로 열심히 공부한 딸과 저녁식사를 했는데 하루의 피로가 가시는 듯 좋았다.
30일 아침 식사를 하는 중에 병원 검진결과를 보신다는 장모님께서 청주에서 첫차로 오셨다. 아들과 딸이 학교에 간 뒤에 마라톤을 하려고 홍제천에 나갔다가 어제보다 긴 거리를 달렸는데 비가 온 끝이라 날씨는 선선했다. 성산대교까지 40분을 달리고 거기서부터 양화대교를 통과하여 절두산 아래까지 2킬로를 더 갔다가 돌아온 왕복 16킬로의 거리다. 내일은 더 달린다는 마음을 가지고 체육관으로 이동하여 운동을 더 하고 학원으로 가면서 장모님을 서울대병원에 모셔다 드렸다. 학원으로 들어가니 엊그제 보수한 전기선으로 지저분한 교무실 주변이 담당기사의 확실한 마무리로 원래처럼 말끔해졌다. 8월도 이틀을 남기고 있는 오후에는 우현이가 전화를 하여 천국에 가는 방법이라고 목사님처럼 설교를 하는데 나로서는 내가 있는 곳이 천국이다. 저녁에 딸이 부탁한 참고서를 구입하여 집으로 돌아와 장모님이랑 식사를 하고 보충수업이 있어 9시에 논술교실로 올라갔다.
31일 장모님께서 집에서 주무시는 바람에 아내가 안방으로 들어와 잠을 잤다. 평소에 함께 자면서 자식들 교육이나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는데 그나마 오늘은 마음이 넉넉하고 편안했다. 새벽에 일어나신 장모님께서는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그릇 소리에 잠을 깬 나도 밖으로 나와 아침식사를 일찍 마쳤다. 오전에 홍제천으로 나가 한강이 흐르는 성산대교까지 마라톤 연습을 하고 땀이 흐르는 상태로 체육관으로 이동했다.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왔더니 장모님이 계셔서 그런지 아내가 밝아 보였는데 누구에게나 어머니는 안식의 대상으로 충분하다. 학원으로 가면서 엊그제 면민 체육대회에 다녀온 향우회장과 통화를 했더니 초등학교 오병현 동문회장이 우산 600개를 고향 주민들에게 기증했다. 창고에서 인심이 난다는 말처럼 누가 뭐래도 가진 자가 베풀 수 있고 인정받는 세상이니 물질적인 부를 쌓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돈이 전부가 아니라고 외치는 사람이 있지만 그것은 자기를 변명하기에 급급한 것이고 물질의 힘은 능력을 넘어 권력도 될 수 있는 현실이다. 젊은 시절에는 혼자 생활을 하거나 패기가 있어 물질에 연연하지 않지만 살다보면 누구나 금전문제로 고통을 경험한다. 성자처럼 물질을 초월한다는 생각보다 능력을 발휘하여 반드시 부자가 되어야 하고 이후 마음의 부자가 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다. 백담사부터 오늘까지 비가 많이 내린 2010년 8월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소주와 삼겹살을 준비하여 다가오는 9월을 준비했다. 늦은 시간 과외를 마친 딸이 거실에 나오고 논술교실에서 아내도 돌아왔는데 아들은 오늘도 밤이 깊도록 들어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