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은 앞에 놓인 베트남 경제개혁의 교훈
김정은이 베트남을 갔다. 미북정상회담을 위해 갔지만 그 동안 참모들을 통해 보고를 받아왔던 개혁개방을 통한 베트남의 경제발전을 직접 확인차 간 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위장인지 벤치마킹인지 현재로는 확인할 수 없지만 만일 후자라면 김정은은 1979년 ‘신경제개혁’을 채택한 베트남의 역사의 현장 앞에 서 있는 것이다.
김일성 사망 후 북한 전역에 몰아닥친 엄청난 자연재해로 북한의 경제가 곤두박질친 것처럼 1970년대 후반 베트남도 똑같은 위기에 직면했었다. 통일 베트남(1976.12)은 30여 년의 ‘민족해방전쟁’을 승리로 이끈 여세를 몰아 사회주의 경제건설의 노선 위에 ‘위대한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위해 의욕적인 경제계획을 수립했었다. 그러나 기반산업인 농업에 치명적 피해를 입힌 기후조건(1977-80년 4년간의 홍수, 태풍, 가뭄의 자연재해)과 캄보디아 침공 및 중·월전쟁이라는 외생적 원인과 농업부진, 공업발전 부진, 소비재부족이라는 대내적 저발전 악순환에 휘말려 제2차 5개년계획이 좌초될 지경에 이르렀다. 벼랑으로 내몰린 당 지도부가 구원의 밧줄로 움켜쥔 것이 자유화 개혁으로 일컫는 ‘신경제개혁’(1979년)이었다. 이때부터 베트남 경제에 청신호가 켜지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로 인해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강력한 경제제재로 인해 북한경제는 회기불능상태에 돌입하고 있다. 북한 정권은 오늘도 ‘자력갱생’이라는 구호를 북한 주민들에게 목터지게 외치게 하고 있지만, 임계점에 다다른 것은 사실이다. 핵을 들고 서 있는 김정은은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 살기 위해서는 핵을 내려놓고 베트남이 1979년에 열었던 문으로 주저없이 들어가야 한다. 물론, 김정은은 그 문이 자신의 운명을 사지로 모는 것이 아닌가라는 염려의 끈을 놓지 못한 채 베트남 땅을 밟았을 것이다. 자신이 핵을 내려놓지 않고 단지 뒤돌아만 서도 뭔가 돌파구가 열리지 않을까라는 기대심리를 높이면서 말이다. 미국과 한국이 잘못 보낸 시그널 때문이다. 오직 한 방향으로 몰며 퇴로를 차단해야 했었는데, 김정은이 궁리할 구석을 주었으며 다양한 선택지까지 제공해주었다. 혹여, 이번에 김정은은 핵을 손위에서 발등에 내려 놓을께라며 한미 당국을 더욱 현혹시킬지도 모른다.
얼마 동안은 속아 넘어가겠지만 김정은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북한에게 베트남의 경제부흥은 한낱 그림의 떡이다. 분명, 김정은은 베트남 경제특구들을 시찰을 하면서 획기적인 그 발전 앞에 부러움을 감추지 못할 것이다. 베트남의 발전을 북한에 현실화시킬 방법을 깊이 숙고해볼지도 모른다. 김정은은 자신이 풀어야 될 숙제를 이미 먼저 잘 푼 호치민의 묘 앞에 설 것이다.
당시, 호치민에게 당면한 숙제는 베트남 남부지역의 시장경제체제를 북부의 사회주의 계획경제체제로 통합하는 작업이었다.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남부지역에 대한 사회주의 개조작업으로 시작되었던 것이다. 앞서 기술한 대로 여러 가지 악제로 인해 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고 무산되었다. 당 지도부는 1979년 6월과 9월에 당중앙위원회 총회를 잇달아 열면서 제2차 계획을 폐기하고 제3차 계획을 수립하는데, 그 핵심은 바로 개인(국민)의 이익을 국가와 집단과 나란히 배치한 것이다. 즉, 인민생활개선 및 민생안정을 경제발전 목적에 있어 하나의 꼭지점으로 두었던 것이다. 경제기반이 어느 정도 구축된 1986년 베트남은 확실히 새로운 옷을 입게 된다. 경제체제의 개혁과 대외개방을 중심으로 추진되는 도이모이(Doi Moi)라는 쇄신 정책을 과감히 시행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급속한 경제성장을 맛보게 되었다.
과연, 김정은은 인민생활개선을 얼마나 염두해 두고 있을까. 베트남의 호치민처럼 인민 개개인의 이익을 세 꼭지점 중의 하나로 설정하려는 의지가 있을까. 만일 있다면 핵을 끝까지 움켜쥐고 있지는 못할 것이다. 핵을 쥔 상태로는 민생파탄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https://www.dailynk.com/평양-포커스-김정은-앞에-놓인-베트남-경제개혁의-교/
베트남의 경제정책과 김정은의 고민
Đổi Mới (Eng. : Renovation)는 ‘사회주의 시장경제(socialist-oriented market economy)를 위한 베트남 정부(Democratic Republic of Vietnam, 이하 DRV)가 시행한 초기의 경제정책(1986년)을 의미한다.
베트남에서 널리 사용되는 일상적인 용어지만, 도이모이 정책(Doi Moi Policy_Chính sách Đổi Mới)은 베트남이 실행한 경제정책의 전반을 일컫는다. 베트남 정부(DRV)는 개혁 초기에 중앙 계획에 의한 경제방식을 받아들였다. 중앙경제 아래에서 정부는 생산목표(output targets)와 가격(prices), 투입물(input supplies), 국내 도소매업(domestic wholesale), 국제무역업(retail trade) 등을 결정하였고, 국가는 수평으로 개별 생산단위 간의 상업적 접촉이 없는 수직통합형 경제를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the state was aiming at creating a vertically integrated economy where there was no commercial contact among individual production units horizontally; Melanie Beresford, 2006).
다른 사회주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가장 먼저 시행한 토지정책을 포함한 농업부문에서는 생산연대(production solidarity groups), 토지와 장비가 공유된 하급 협동조합(lower-level cooperatives where land and equipment were shared), 작업포인트가 모든 소득분배를 결정하는 상급 협동조합(higher-level cooperatives in which a system of work points determined distribution of all income) 등 3단계로 나눠 협동조합을 구성했다. 그러나 베트남 공산당 제6차 전국대표대회에 이어 1980년대 후반에 중앙계획경제가 폐지되었다.
도이모이정책(Doi Moi)은 사실상 탑-다운(top-down) 개혁 프로그램으로 1980년 중반에 베트남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소수의 정치인들에 의해 도입되었다. 도이모이 이전에 베트남은 700%가 넘는 인플레이션 압력, 경제성장의 지속적인 하락, 그리고 수입 총액보다 적은 수출 총액 등 경제위기를 경험해야만 했다. 게다가 구소련의 몰락과 함께 가속화되는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은 베트남이 개혁을 선택하도록 만들었다. 또한 이는 베트남의 계획 체제 하에서의 과거의 잘못과 베트남 공산당 제6차 전국대표대회까지 주요 변화를 도입할 필요성에 대해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 과정에서 베트남 지도자들에게 개혁을 촉구하는 세 가지 정치적 움직임이 있었다.
첫째, 1985년 붕괴 후 구조적인 개혁의 사회주의가 정치적으로 붕괴한 점을 근거로 기술 관료들(technocrats)과 친시장 개혁론자들(pro-market reformists)로부터 DRV 모델에 대한 최종 해결책을 요구하는 강한 압력이 있었다. 둘째, 부분적인 개혁 덕분에 상업 활동을 통해 이익을 얻은 사람들은 개혁이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주었기 때문에 추가적인 개혁에 동의하였다. 셋째, 남부의 자유주의자들은 1975년 이전의 시스템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면서 개혁을 지지했다.
주목할 만한 것은 두 번째로 1980년 초부터 시작된 체제전환기에 국영기업들은 자유시장(free market)에 그들이 빼돌린 싼 자원으로 이익을 얻을 수 있었고, 노동자, 관리자, 그리고 더 높은 수준의 사람들의 다양한 그룹 사이에서 공유되었다. 이러한 이익분배 방식은 당내의 개혁과 상업화(commercialization)의 동력기반을 마련해 시장경제를 추진했다. 북한도 이와 같은 문제에 봉착하였고, 게다가 첫 번째에 제시한 것과 같이, 북한의 내수 경제의 생존과 경제체제의 붕괴를 막기 위한 기술관료들(technocrats)과 친시장 개혁론자들(pro-market reformists)의 압력이 상당할 것이다.
베트남은 6차 전국대표대회 이전인 1970년대 말부터 중앙집권의 계획경제를 위협하는 경제문제에 직면했을 때, 개혁의 초기 징후들이 관찰되었다. 권력을 위해 계획 시스템에 의존하지만 외부 경제에 직면하는 중앙 당국의 그룹, 더 높은 수준에서 가능한 많은 잉여금을 확보하려는 지방 당국과 기업 경영자 그룹, 그리고 거의 이익을 얻지 못하는 그룹 등 개혁을 위한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세 개의 중요한 그룹으로 나누게 됐다. 그들은 친족과 당 네트워크에 대한 접근이 부족했기 때문에 계획 시스템을 이용했다.
경제 문제에 직면하여 1986년 12월 베트남 공산당 제6차 전국대표대회에서는 국고보조금에 의존하는 중앙관리체제가 폐지되고, 민간부문과 비전략적인 부문에 존재하는 국가와의 경쟁이 벌어지는 시장주도형 경제 창출로 초점이 옮겨졌다는 합의가 이루어졌다. 또한 1987년에는 국내 무역을 막기 위해 설정한 검문소의 수가 크게 줄었으며, 민간 농산물의 판매가 허용된 시장은 급성장할 수 있었다.
1986년부터 약 30여 년 동안 추진되어온 도이모이 정책으로 베트남은 ‘사회주의-시장경제’의 성공모델이 되었으며, 자유진영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국제정치적 위상도 담보할 수 있었다.
모이도이 정책의 초기 베트남의 상황은 현재의 북한의 상황과 유사하다. 북한은 구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주의 진영의 붕괴로 인한 고립의 영향뿐만 아니라, 제재라는 환경의 복합적인 요인들이 장기간 북한의 경제체제의 변이를 가져오게 하였으며, ‘핵-병진노선’이라는 정치군사적 부문과 경제 부문가 묶이게 되면서 북한만의 특징적인 현상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오는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될 하노이는 베트남의 수도이자, 도이모이 정책을 성공적으로 이끈 도시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하노이를 방문하며 국제사회에 ‘비핵화를 통한 경제개혁의 의지’를 다시 한번 확인할 것이며, 북한식 경제체제개혁에 풀리지 않았던 고민에 대한 ‘힌트’를 얻고자 할 것이다. 김 위원장에겐 베트남의 성공모델보다는 강경파들의 정치적 명분과 경제적 실의를 위한 합리적 선택 사이에서 경제문제에 대한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의 최적화된 접근법은 트럼프와의 비핵화 협상만큼 중요할 것이다.
기술 관료와 친시장 개혁론자들의 경제적 요구와 체제를 위한 역사적 희생에 대한 역사적 압박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김 위원장을 압박하고 있을 것이며, 그에게 남은 선택의 시간도 그다지 많지 않아 보인다.
https://www.dailynk.com/동아시아포커스-베트남의-경제정책과-김정은의-고/
“베트남은 北 개혁·개방 본보기”… 트럼프, 재차 ‘비핵화’ 촉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만남에 앞서 베트남을 북한 개혁·개방의 본보기로 치켜세우며 다시 한번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촉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7일 오전 11시(현지시간) 하노이 주석궁에서 응우옌푸쫑 베트남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베트남은 훌륭한 생각을 하면 (북한에)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에 대한 진짜 본보기”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과의 만남을 불과 8시간여 앞둔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베트남에는 정말로 특별한 무언가 있다. 나는 어젯밤에 에어포스원에서 내려 도로를 따라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공사 중인 모든 건물을 봤고 베트남이 얼마나 번영하는지를 봤다”고 말했다.
베트남은 1960년대 베트남전쟁에서 미국과 치열하게 싸웠지만 2000년대 들어 급속도로 관계를 개선했다. 베트남은 이후 경제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여러분(베트남)이 단기간에 해낸 것을 본다면 김 위원장은 매우 빠른 시간 내에 해낼 수 있다. 북한을 위대한 경제강국으로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매우 중요하게도, 우리는 오늘 밤 매우 큰 만찬 및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회담들을 한다”며 “우리 두 사람 모두 베트남에서 이렇게 매우 중요한 정상회담을 하는 데 매우 좋게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매우 성공적으로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지켜보자. 그러나 김 위원장이 베트남처럼 뭔가 위대한 일(something great)을 원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석궁 방문 전 올린 트위터 글에서도 “베트남은 지구상에서 흔치 않게 번영하고 있다. 북한도 비핵화한다면 매우 빨리 똑같이 될 것”이라며 “잠재력이 굉장하다. 내 친구 김정은에게 있어서는 역사상 거의 어떤 곳에도 비견할 수 없는 훌륭한 기회”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하노이 정부청사에서 응우옌쑤언푹 총리와 회담에 이은 업무 오찬을 가졌다. 양국은 이 자리에서 무역 관련 서명도 했다. 미 항공기 제조업체 보잉사가 베트남 저가항공사 비엣젯과 뱀부에어웨이스에 157억 달러(17조5495억원) 규모의 비행기 110대를 판매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베트남통신이 27일 전했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유치한 베트남 정부 관계자들도 북한의 ‘롤모델’을 자처했다. 푹 총리는 CNN방송과의 인터뷰에서도 “베트남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 국무위원장에게 이번 회담 주최국 이상의 역할을 하고 싶다”며 “베트남이 평화와 화해, 시장 자유화가 어떤 혜택을 가져다주는지를 증명해주는 사례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의 핵 담판 직전 정상회담 개최국인 베트남 지도자들을 예방한 것은 김 위원장이 핵무기를 포기한다면 펼쳐질 잠재적 미래를 보여주기 위한 차원이라고 AP통신은 분석했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064591&code=11141400&sid1=i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