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말
날이 선 강바람이
강물을 들썩이면
새들의 빛바랜 무늬가
귓볼에 젖어 들어
에굽은 노을 한 자락
여기 풀어놓습니다
2024년 11월 장은수
타래붓꽃
저녁놀 바위틈에
울컥대는 해거름에
흙윽 속살 말아내듯
꽃망울이 몸을 튼다
눈 시린
고 작은 풀꽃
또 봄을 앓는다
핸드폰 속에 거미가 산다
지하철 환승 통로 계단 바삐 내려갈 즈음
누군가 내 손을 툭 치고 지나간다
엇갈린 몸과 몸 사이 핸드폰의 비명 소리
폰 속엔 언제부터 거미가 살고 있었나
액정화면 가득 덮은 새하얀 거미줄들
세상사 얽히고설킨 그 무엇을 증거하나
금이 간 틈새 너머 풍경도 깨져 보이고
주고받는 말과 글도 굴절된 허상 앞에
아득한 미로에 삔져 가는 길을 잃었다
바늘구멍 꿰는 가을
백치가 환히 웃듯 가로등이 점등되고
비닐 덧댄 길모퉁이 구부정 굽은 허리
허기진 해름 녘 너머
개밥바라기 별이 뜬다
긴 불경기 반토막 난 일자리를 찾는 행렬
온종일 다리품 팔고 빈손으로 모여들어
꼬리 문 밮퍼 줄 끝에
가랑잎으로 펄럭인다
손사래 담쟁이넝쿨 점점 길어 휘어진다
바늘귀 꿰는 실처럼 순하게 고개 숙인 날
떨리는 수저를 드는
실물성의 둥근 시간
흰소
맨 처음 고삐를 잡은 농부는 누구일까
고명처럼 얹혀 온 길 세월을 걸쳐 입고
희붉은 코와 입 둘레 거친 숨결 몰아친다
힘겹게 디딘 걸음 이 순간이 버거울 뿐
한평생 똥밭에서 뒹구는 쇠똥구리처럼
한숨도 땅 꺼지도록 힘 있을 때 뱉으란다
거죽 위로 돋은 뼈가 뿔이 되어 솟아날 즈음
온몸의 허기를 털고 바라는 물 한 모금
온 들판 비가 내린다, 초록 펄펄 살아난다
카페 게시글
회원신간
장은수 시조집《핸드폰 속에 거미가 산다》2024.11.15.책만드는 집
김계정
추천 0
조회 23
24.11.15 11:08
댓글 0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