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날의 비망록 / 권순우
속눈 썹도 빼놓고 오른다는 황산에 듭니다. 케이블카를 타고 보니 발아래 펼쳐진 운무가 바다를 떠올리게 합니다. 저혈당이 된 동료의 얼굴은 핏기를 잃었는데 이내에 젖은 곱슬곱슬한 머리칼이 웃음을 자아내게 합니다.
초등학교 시절에 해야 될 일과 하지 않아야 될 일을 배웠지요. 음식을 골고루 먹지 않고 규칙적인 운동을 하지 않아서일까요. 삐걱거리는 무릎관절이 제 모습을 드러낸 곳은 황산의 중턱입니다. 황산이 한 발 앞질러서 반성의 거울을 들이댄 셈이지요.
1,860m 고지에서 만세를 불렀습니다. 당뇨를 앓는 박 여사가 화물 벨트에서 여행 가방을 잃어버린 통에 걱정을 했는데 함께 목적지에 오르고 보니 뿌듯했던 게지요. 그 만세 삼창이 일행들을 결속하는 계기가 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평토제라도 올릴 법한 산봉우리에 위용을 자랑하는 호텔을 보니 신흥 강국으로 떠오르는 중국이 부럽기 짝이 없습니다.
중국의 오악 중에서도 황산은 저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기암괴석이 묘술이라도 부린 듯 멋진 산수화로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깎아지른 고봉준령과 절벽 끝에 서 있는 소나무 사이를 가로지르는 운무가 말문을 막습니다. 연암 박지원이 ‘열하일기’를 쓴 동기를 이해할 만합니다. 끝 간 데 없이 뻗은 막막한 대지 앞에서 “울기에 딱 좋은 땅” 이라고 외치자 동행한 사신들이 기가 막혀서 할 말을 잃었다는, 그의 말에 공감됩니다. 앞을 봐도 뒤를 봐도 끝 간 데 없이 펼쳐진 풍광에 감탄사를 또 한 번 꿀꺽 삼킵니다. 산수화의 진수를 엿볼 수 있는 이 세상에서 으뜸이란 공간이 황산이란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나락으로 번지 점프하는 상상만으로도 오금이 저립니다. 바위를 떡 주무르듯 빚어 놓은 산수화의 주인은 바로 저입니다. 가슴으로 느끼고 보는 자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변화무쌍한 산세에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물론 황산 앞에서만 울렁증이 도지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저마다 사랑하는 방법이 다릅니다. 돌 지난 딸을 두고 물꼬를 보러 나갔다가 여태 돌아오지 않은, 그 오랜 세월 동안 무책임한 아버지가 원망스럽다가도 오늘 이 자리, 아름다운 풍광 앞에 서니 마음이 달라집니다. 신혼 방 벽에 구심점을 찍은 뒤 새총 연습을 하더라는 아버지가 불현듯 떠오르니 말입니다. 그 아버지와 함께 감동의 순간을 공유하고 싶어서입니다. 이야기 속에서만 만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나이와 무관합니다. 떼놓을 수 없을 만큼 끈질긴 것이 육친을 그리워하면서 흘리는 눈물이 아닐는지요.
그리운 날의 비망록 속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황산 또한 제가 아끼는 두루마리 상자 속에서 삼매에 든 한 폭의 그림으로 정좌할 것입니다. 때때로 저로 하여금 마음의 발길을 서성이게 할지도 모릅니다. 세간을 잊게 해 준 무아경은 대접만 한 두견화가 아니라 황산의 오롯한 자세일 것입니다. 저녁 끼니를 마치자 황산 등성이는 관광객으로 붐빕니다. 저잣거리에 서 있는 착각이 들 정도로 황산은 유명세를 치르느라 호흡이 가쁠 지경입니다.
올라올 때 본 분홍빛 두견화가 보고 싶습니다. 어둠을 뚫고 내려가 재회할 수 있다면 꿀을 따는 팔색조가 아니어도 황홀할 것입니다. 그러나 눈앞은 지척을 분간할 수 없어 천신의 숨소리마저 멎은 듯합니다. 황산을 두고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는 격이 아닐지. 단면만 보고 사람을 평가하는 어리석음을 보아 왔기 때문입니다. 중국인 스스로 중화(中華)라는 어휘를 붙인 것에 못마땅했는데 황산에 서 있노라니 그들의 자부심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습니다.
시대를 관통하는 유행 심리일까요. 현대인의 상술도 한몫을 한 게지요. 사랑을 약속하는 징표로서 연인들의 이름을 새겨서 절어 준 자물쇠 꾸러미로 황산은 절뚝거립니다. 사랑의 무게는 비바람이 불어도 변함이 없을까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자연유산이 쇠붙이로 훼손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팔만대장경’ 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 로 맞는 말이지요. 지나간 역사의 그림자는 패잔병처럼 애틋합니다. 잘난 체하는 우리의 그림자도 언젠가는 스러질 것이기에 슬픕니다. 청대의 건물과 거리가 그대로 살아 있어 전족한 중국 여인을 돌아가 보려 합니다. 야생 녹차를 영국으로 싣고 가던 중 그 녹차가 발효되어 홍차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홍차의 시원은 아닌지요. 화려했던 고로(古老)의 거리에서 당의 양귀비가 즐겨먹었다는 ‘여지’ 를 샀습니다. 육질이 달콤한 여지의 속살 또한 황산의 향기로 남을 것입니다.
중국은 13억 인구에 땅덩이가 한국의 96배입니다. 오지랖 넓은 여인이라 나무라도 좋습니다. 우리의 조상들이 청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땅덩이로 보나 인구로 보아 위압감이 느껴짐은 자연스런 일이었을 터입니다. 사신을 오고 가면서 조공을 바치던 조상들의 속마음을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이 이번 여행의 수확이라 할까요. 그 무렵 ‘G20’ 을 개최한 위정자들이 망막에 떠오릅니다. 서울의 지하철은 복잡한 삼성역에 서지 않았고 시민 스스로 자동차의 홀수 날짜를 지킨 나머지 세계적인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어 자랑스럽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러나 관광지를 차례로 개발, 지구촌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중국을 방관할 수만은 없을 것입니다.
인생은 누구에게나 초행길입니다. 그 중에서도 황산에서의 첫날 밤은 여운을 남긴 아름다운 만남이었습니다. 시간을 함부로 쓴 자신을 들여다보면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삼매에 든 황산을 내려옵니다. 태양을 품은 ‘삼족오’의 비상을 꿈꾸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