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잔치 풍성한 왕숙천
임 한 율
집 가까이에 왕숙천이 있음은 정말 커다란 축복이다. 시간 나는 대로 왕숙천변을 천천히 산책하거나 자전거를 탄다. 거닐면서 내 자신을 관조하며 여백을 찾고 사색을 즐기는 등 왕숙천은 더없이 소중하고 행복한 공간이다. 요즈음 날씨가 점점 더워져 아침 저녁, 특히 석양 무렵부터 왕숙천을 찾는 주민들이 부쩍 많아졌으며 자전거족도 엄청 늘어났다.
왕숙천은 구리시와 남양주시의 시계(市界)를 이루며 한강으로 유유히 흘러가는 길이 37km의 기나긴 하천이다. 그 이름의 유래를 살펴보면 조선 태조 이성계가 함흥에서 상왕으로 있을 때 한양으로 돌아오는 도중, 이곳에 이르러 8일간 머물렀다는 일화에서 팔야리(八夜里)와 함께 이 하천도 ‘왕숙천(王宿川)’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요즘 왕숙천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기화요초(琪花瑤草) 아름답고, 녹음방초(綠陰芳草) 싱그러운 계절을 맞이하여 초록초록 푸른 기운이 감돌고 풍류와 낭만이 흐르는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말 그대로 풋풋함과 싱그러움을 노래하며 생동감이 넘쳐흐르는 곳이다. 왕숙천을 보금자리로 혹은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생명들도 참으로 많다. 맑고 깨끗한 물에 수량도 풍부하여 물닭, 청둥오리, 왜가리 등 다양한 물새들이 동분서주 먹잇감을 찾느라 활기찬 모습이다.
봄철에는 쑥을 비롯하여 냉이, 돌미나리, 고들빼기 같은 봄나물이 풍성하여 옹기종기 나물 캐는 여인네들의 모습이 퍽 여유롭고 정겨운 풍경이다. 또한 군데군데 낚싯대를 드리우고 유유자적(悠悠自適) 세월 낚는 강태공들의 모습도 눈에 많이 띈다. 가을에는 찌리르찌르르 온갖 풀벌레 소리가 오케스트라 교향곡처럼 들려 왠지 모를 그리움을 자아내며, 눈 덮인 하얀 겨울 풍경은 우리 마음을 아늑하고 편안하게 해준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정경이 아닐 수 없다.
왕숙천은 사계절 꽃이 피어난다. 각종 야생화(野生花)의 천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봄에는 민들레꽃, 제비꽃, 애기똥풀, 붓꽃, 아카시꽃이 만발하고, 여름에는 분꽃, 백일홍, 해바라기꽃이 활짝 반긴다. 그리고 가을에는 들국화, 코스모스, 달맞이꽃, 겨울에는 뭐니 해도 갈대와 하아얀 눈꽃이 장관을 이룬다. 그래서 봄철엔 유채꽃 축제, 가을철엔 코스모스 축제가 성대하게 열린다.
축제 기간엔 발걸음을 옮기기 힘들 정도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룬다. 꽃처럼 환한 얼굴로 손에 손에 카메라를 들고 추억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몇 년 전 코로나19로 인하여 축제가 중단되어 대단히 아쉬운 마음이었지만, 지금은 다시 활발한 본래의 모습을 찾아 대성황을 이루고 있다.
내 고향 마을 앞에도 맑은 황룡강(黃龍江)이 유유히 흐른다. 어렸을 적 깨복쟁이 친구들과 어울려 여름엔 헤엄치며 물장난하기, 다슬기 잡기, 개구리 잡기 등 즐거운 놀이의 주무대였다. 겨울엔 얼음 위에서 썰매타기, 팽이치기, 연날리기 등 더없이 훌륭한 놀이문화 공간이었다. 지금은 그리운 ‘고향의 강’이 되어 마음속으로만 아련히 흐르는 강이지만, 가끔 그때의 아름다운 추억을 회상하며 빙그레 미소 짓곤 한다.
이곳 왕숙천도 40여 년 전만 해도 내 고향 황룡강처럼 맑고 푸른 하천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그런데, 산업화 도시화가 활발히 진행되면서 여기저기 오염되기 시작하였다. 공장에서 내뿜는 매연과 각종 산업 쓰레기, 생활 폐수로 인하여 날로 심각하게 오염되었다. 역겨운 악취가 풍기고 쓰레기가 둥둥 떠다니고 물고기는 몸이 뒤틀려 죽어갔다. 그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고 가까이 오길 꺼려할 정도였다. 그리고 폭우만 좀 내렸다 하면 지대가 낮은 곳은 금방 범람하여 주민들의 애로사항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주민들이 그 심각성을 인식하고 자구책(自求策)을 마련하여 너나없이 팔을 걷어부치고 하천 정비작업을 대대적으로 실시하는 등 피땀 어린 노력을 한 결과 지금은 친환경적 모습으로 완전 탈바꿈하였다. 온갖 화초가 피어나고, 붕어·잉어·쏘가리 등 물고기가 다시 모여들고, 물새들이 힘찬 날갯짓을 하는 아름다운 휴식공원으로 변모한 것이다.
구리·남양주 양쪽 모두 시원스럽게 정비가 참 잘 되어 있다. 예쁘게 꾸며진 생태공원을 비롯하여 잘 갖춰진 산책 코스, 자전거 전용도로는 물론이고 군데군데 다양한 운동 기구가 설치돼 있어 남녀노소 모두 열심히 이용한다. 또한 양쪽을 이어주는 징검다리가 곳곳에 만들어져 왕래하기에 아주 편리할 뿐만 아니라 운치도 있어 참으로 좋다. 징검다리, 그 얼마나 예쁘고 정겨운 단어인가. 그리고 가로등에서는 감미롭고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와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한다.
왕숙천은 야경(夜景)도 참으로 아름답다. 거닐면서 보노라면 여기저기 오색찬란한 불빛들이 사방팔방 가득하여 눈을 즐겁게 한다. 고개 들어 하늘을 쳐다보면 초롱초롱 별들이 으밀아밀 머리를 맞대고 제각기 빛을 발하고 있다. 특히 형형색색 무지갯빛으로 빛나는 구리타워 야경은 마치 빛의 마술을 보는 듯 황홀경에 빠져든다.
가족끼리 걷고 달리는 사람, 자전거 타는 사람, 축구 농구하는 사람, 나물 캐는 사람, 한가로이 낚시질하는 사람, 삼삼오오 모여 앉아 음식을 먹는 사람... 왕숙천은 훌륭한 휴식공간으로서 손색이 없으며 우리들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아름다운 왕숙천을 진정 사랑하는 마음으로 재작년 "왕숙천 연가" 노랫말을 하나 지었더니, 어느 작곡 선생님께서 노래를 멋지게 만들어 주었다.
왕숙천 연가
(1) 굽이굽이 맑은 물결 남양주 왕숙천/ 징검다리에 내려앉은 별빛 따라 달빛 따라
그 옛날 나랏님도 여덟 밤을 자고 갔다네/ 나물 캐는 아낙네 낚시 하는 아저씨
사랑의 눈길 마주하며 콧노래 부르는/ 아∼아 왕숙천 왕숙천을 사랑하노라
(2) 물새들 날갯짓 훨훨 아름다운 왕숙천/ 물소리 새소리 경쾌한 갈대밭 밤섬에서
그 옛날 갑돌이 갑순이 사랑을 했다네/ 달 밝은 밤 처녀 총각 물길 따라 자박자박
설레는 가슴으로 사랑 연가 부르는/ 아∼아 왕숙천 왕숙천을 사랑하노라/ 왕숙천을 예찬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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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아쉬운 점은 개를 데리고 나오는 주민들이 나날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한 마리도 아니고 두세 마리를 끌고 나온 광경에 눈살이 찌푸려짐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리라. 개와 함께 산책을 하는 건 좋지만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돼선 안 되고, 특히 배설물 처리를 잘해야 할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옹기종기 앉아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면 뒷정리도 말끔히 하면 얼마나 좋을까. 군데군데 쓰레기를 그대로 방치하여 흉물처럼 혐오스러운 모습이다. 남기는 것은 발자국만, 가지고 가는 것은 추억만... 우리의 인식 전환이 필요한 대목이다.
저 낚시꾼들이 잡아올린 물고기를 그 자리에서 마음 놓고 먹고 즐길 수 있을 만큼 왕숙천 주변 환경이 더욱 깨끗해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첫댓글 왕숙천을 이해하는데 충분하오
나물 캐는 아낙네, 낚시 하는 아저씨
사랑의 눈길 마주하며 콧노래 부르는
아∼아 왕숙천 왕숙천을 사랑하노라.
역시 명불허전 이로다~~
제가 조선시대 왕이였다면!
"청풍명월"은 문화재 관리청장 아니면
환경부장관으로 임명 하노니 하명을 받들라 ~~~
https://m.blog.naver.com/ch6116ch/223446185169
이분이 대단 하신 분이더라구요
네이버 검색해서 오늘 처음 알았네요
링크 크릭 해보시면 어디서 많이 보신 분일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