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오래 오래 꼭 살아야 하는 이유는(짝지-펌)
이야기는 7년 6개월로 거슬러 올라가 어느 날 감기기운이 있어 평상시처럼 병원을 다녀와 따뜻한 이불속에서 한숨을 푹 자고 일어났는데도 불구하고 좀처럼 차도의 기미가 보이지 않아 남편회사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내일 출근을 하려면 오늘 링거를 맞아야겠다고 했더니 남편을 금방 집으로 돌아 왔어요.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으면서 신장이 나쁘다고 했더니 피검사 결과를 보고 약 처방을 내리겠다고 합니다. 조금 후 신장수치가 6.0이니 조금 더 큰 병원을 가라고 한다.
옷을 주섬주섬 입고 남편차로 옮겨 탈려고 하니 혹시 쇼크상태가 올지 모르니 129을 타라고 한다.
내 병의 심각성을 그렇게 모르고 아무렇지도 않게 병원에서 그냥 시키는 대로....
강릉아산병원응급실에 도착해 여러 가지 검사를 하고 병실로 옮겨 담당의사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
"크레아틴이 7.0 입니다. 이제 투석준비 하셔야 하겠습니다."
아니 이게 웬 날벼락 같은 소리....
한참동안 아무생각도 나지 않고 머리 속은 텅 비어 하얗게 되었습니다.
그 충격도 채 가시기도 전 ..옆에 있던 아들은 내가 운동을 게을리해서 그렇다고 투덜거리며 날 나무란다.
막 봄으로 접어들어 운동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식구들 저녁하기 바빴고 그저 피곤해서 그리고 추워서 이불속에서만 있었다.
왜 추위를 그렇게 탔는지를 몰랐다. 신장이 나빠서 쉬 피곤함을 느끼는데 그것도 몰랐다.
크레아틴 숫자에 대해서도 몰랐고 이것도 저것도 다 몰랐다 .
모른다기보다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아픈 데가 없어 관심을 갖지 않았다.
이렇게 병원에서 돌아와 집에서 남편과 있는데 내 머 리속은 온통 내가 아픈 게 다 남의 탓만 같았다.
그때부터 난 울기 시작하며 " 다 당신 탓이야 내가 요독이 쌓여 3개월 동안 밥을 못 먹고 해도 병원 다녀와 이 말 한마디뿐이고 나에게 관심이나 가졌어" "이런 게 가족이야" 라면서 남편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그리고 난 너무 슬프게 울었다.
남편은 나를 껴안고 같이 울기 시작했다.
"그래 다 내 잘못이다. 여보 미안해 당신이 이렇게 되기까지 ....
말을 잇지 못하고....그러면서
"여보 아파도 좋으니 제발 오래오래 살아줘"
우린 부등켜안고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병원 의사선생님 탓도 한없이 했다.
내가 처음 병원을 찾았을 때 크레아틴이 1.2였다 .그렇게 세월이 9년이 흘렀다.
이 병이 나중엔 어떻게 발전하고 음식은 뭘 삼가하고 잘 관리해서 이 수치로 영원히 갈수 있도록 조언을 해주지 않은 담당의사 선생님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나에게 늘 관리를 잘한다면서 ....
혈압이 없는 나에게 혈압약은 왜 먹어야 하는지 이유는 말 해 주지 않고 내가 물으면 쌀로 밥만 해 먹냐며 떡도 해먹고 과자도 만들어 먹는다며 책망하시던 의사선생님이 제일 원망스러웠다.
병원에서 퇴원날부터 남편은 컴퓨터 앞에서 떠날 줄을 모르고 뭔가를 찾고 있었다.
그건 중국에 이식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찾고 있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남편은 나에게 "당신 중국 갈래" 난 서슴없이 대답했다 "응"
설명은 없어도 무슨 뜻인 줄 알았기 때문에 ....
여권과 비자가 나오자 우린 말도 통하지 않는 중국으로 떠났다.
중국병원은 한국과 달리 보호자 침대도 없고 딱딱한 나무의자 하나뿐이었다.
통역겸 간병인 조선족이 있었지만 거의 24시간을 남편은 내 곁을 떠나지 않고 간호를 시작했다.
멀고 먼 중국을 4번을 오가며 한국음식을 사다 나르면 나를 먹였다 .
냄새에 민감한 난 요독이 쌓여 음식을 잘 먹지 못했고 조금 불쾌한 냄새를 맡으면 토하곤 하는 나를 위해 ...
나랑 결혼해서 23년 동안 (중국병원에 있을 당시) 남에게 싫은 소리를 하기보다 먼저 본인이 양보하고 그렇게 살던 사람이 나를 위해 중국에서 한국 사람에게 나쁜 냄새가 나면 조금 조심해달라며 부탁을 했다. 그 사람 기분 나쁘다고 남편에게 대들었다.
그래도 남편은 오직 나를, 나를 위해 그 사람을 설득시킨다.
중국에서 수술을 기다리던 중 내 생일을 맞았어요.
생일날 아침은 남편이 회사일로 한국가고 없었고 간병인이 장미꽃 한 다발과 케익을 준비해 줬어요.
놀라서 쳐다보니 남편이 한국가기 전 시켜 놓고 갔다고 하네요.
그리고 수술이 늦은 이유는 중국문화를 몰라서 ....
남편은 의사선생님들께 아낌없이 주면서 잘해 달라며 부탁을 합니다. 오직 나를 위해서 ...
중국에서 안 사실이지만 나에게 신장을 제공해준 사람은 중국의 사형수였다.
남편은 그 사실을 알고 한국을 떠났지만 내가 싫다고 할까봐 그 사실을 숨긴 채 떠났다.
그런 세심한 배려 또한 나를 위해서였다. 오직 나를 위해서...
남편이 때 마침 한국에 있을 때 수술 날짜가 오늘 잡히더니 내일 바로 수술해서 남편은 밤새 잠 못 자고 새벽에 인천공항으로 와 비행기를 타고 제가 있는 병원에 오후1시에 도착을 해 무균복을 갈아입고 병실에 들어와 내손을 꼭 잡고 "여보 수술할 때 옆에 있어 주지 못해 미안해. 수고 했어 "
본인의 피곤함이 얼굴에 역력한데 오직 내 걱정뿐.
그리고 미안함을 표했다.
간병인을 제쳐 두고 24시간 내 옆에서 지극한 간호로 나를 지켰다 오직 나를 위해....
오직 나를 위해...
한국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집안일을 혼자 다 합니다.
너무 힘들까봐 설거지라도 하는 날은 본인을 두 번 죽이는 일이라면 아무것도 하지 말라며 나에게 신신당부한다.
수술을 한지 7년6개월이 된 지금도 설거지 집안 청소 모든 집안일을 다 한다 .
오직 나를 위해 ...
오직 나를 위해...
이날까지 1주일치 내약을 챙겨 내 가방에 넣어 두곤 한다. 단 한번도 빠뜨림 없이....
오늘의 내가 있기 까지 남편의 뒷바라지 없음 내가 건강한 모습으로 즐겁게 하루하루를 살수 있는지 오늘도 생각하고 어제도 생각하고 그제도 생각했다.
내가 남편이 아프면 남편처럼 과연 할 수 있을까?
늘 고마운 남편께 여지껏 사랑한다는 말 제대로 해본 적이 없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여보 사랑해 "큰소리로 말해 봅니다.
그리고 나중에 안 이야기이지만 우리 아들이 남편을 붙들고 자기 신장을 엄마에게 준다며 울면서 남편에게 애원했다는...
남편은 넌 엄마와 혈액형이 맞지 않아 안 된다고 설명에 또 설명을 했다고...
다시 한 번 이 자리를 빌어 아들에게 "아들 고맙다 그리고 사랑한다 "
내가 오래오래 꼭 살아야하는 이유는 내가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아서 남편뒷바라지 할 겁니다. 말수가 적은 남편 위해 내가 오래오래 살아서 친구가 되어 줘야 합니다. 내가 오래오래 살아서 남편이 내게 준 사랑 다 남편에게 돌려 줘야 합니다. 내가 오래오래 살아서 남편 옆에 언제나 있어야 합니다.
남편은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또 내일도 오직 나를 위해 좋은 정보 얻으러 신환모방을 노크합니다. 그런 남편위해 제가 오래오래 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