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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는 이른바 삼선개헌을 밀어붙여 통과시키고, 급기야 1972년에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한 후 종신 집권을 향한 유신헌법(維新憲法)을 제정했다. 이로부터 박정희가 자신의 참모였던 김재규에 의해 피살당한 1979년 10월 26일까지를 일컬어 ‘유신시대’라 지칭한다. 독재에 저항하는 민주화 운동이 거세지자, 대통령 한 마디로 법 위에 군림하는 정책들을 시행하면서 이른바 ‘긴급조치’로 겨우 정권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다. 결국 부산과 마산을 필두로 일어났던 ‘부마항쟁’을 기점으로, 정세에 대해 판단을 달리 했던 자신의 참모에게 총격을 당해 세상을 떠나게 되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그 시절을 직접 겪었던 이들에게 ‘유신의 기억’은 객관적인 역사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 같다. 여전히 박정희를 추종하는 이들은 ‘낙후된 한국의 경제를 재건하여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시절에 자행되었던 폭압적인 독재의 실상에는 애써 눈을 감는다. 일부 정치인들은 그의 후광을 누리고자, 한때 박정희와 비슷한 외모로 언론에 등장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주말마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서울 도심을 누비며, 현재의 상황을 ‘독재’라도 부르는 희극적인 광경이 펼쳐지기도 한다. 흘러간 물길을 되돌리려는 어리석은 짓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처사라 할 것이다.
이 책은 역사 교사인 저자가 모두 71개의 에피소드를 통해서, 유신시대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소개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헌법 위에 군림하는 대통령-유신헌법’의 탄생으로부터 ‘유신의 최후 ?10.26’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에피소드를 시간의 순서에 따라 소개하고 그 의미를 짚어내고 있다. 아마도 그 시절을 겪었던 이들이라면, 어렴풋하게나마 책에서 소개된 내용들에 대해서 떠올리게 될 것이다. 이미 이 시대를 다룬 책들이 적지 않게 출간되고 있지만, 이 책이 지닌 미덕은 특정 사건이나 정책을 통해서, 당시 벌어졌던 다양한 양상들에 대해서 상세하게 분석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1970년의 유신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기억과 역사 사이에서’ 어긋나버린 역사의 평가를 객관적으로 시도하고자 이 책을 출간했다고 여겨진다. 매일 아침에 일본 군가풍의 ‘새마을노래’를 들으면서 잠을 깨고, 저녁 6시면 지나가던 차까지 멈추고 부동자세로 국기 하강식에 참여했던 그 시절의 기억들. 남자들은 장발단속에 걸려 강제로 길에서 머리를 깎였고, 여자들은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었다고 강제로 옷을 갈아입어야 했던 시절. 막걸리를 마시다가 정권의 비민주적인 정책들을 비판했다고, 이른바 ‘막걸리 보안법’으로 인해 소문도 없이 ‘기관’에 끌려가 처벌을 당하던 시절이었다. 그러한 폭압적인 시절이 그저 경제성장이라는 성과로 인해 아무렇지도 않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인가.
그 시절을 직접 겪었던 이들에게 유신은 절대로 ‘추억’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에 태어난 젊은 세대들에게는 보다 객관적인 역사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하긴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조차도 일본이 우리에게 베푼 경제성장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 지경이니, 말해 무엇 하겠는가. 어쨌든 이 책은 유신을 직접 겪지 못한 이들에게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그 의미를 짚어주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종종 저자의 지억에 의존하여, 당대의 풍경을 재생하기도 한다. 그래서 ‘기억과 역사를 번갈아 들여다보며 우리의 과거를 역사화’해서 서술한 이 책의 존재가 매우 소중하다고 평가하고 싶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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