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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천제의 울림이 잦아들 때 쯤 관옥나무도서관에서 생명평화결사의 대화마당이 시작되었습니다.
비닐하우스 처마 밑에서 막걸리잔을 기울이던 사람들도, 아이들 드림장터에서 놀던 사람들도 시간이 지나자 하나둘 모여듭니다. 생명평화결사의 운영위원회 회의가 끝나고 어른들의 말씀을 듣습니다. 생명평화결사의 평생교사이신 이남곡선생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중심이 되는 따뜻한 사회를 위해서 내가 다른 사람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침범을 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야 한다. 다른 사람을 바꿀 수는 없으니 내가 다른 사람을 침범하고 있지 않는가? 내 생각에 다른 사람을 맞추려고 하지 않나? 소인은 내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맞추려고 하고 군자는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또한 내가 옳다는 게 근거가 없으며 사실이 아니다. 내가 옳다고 단정하는 문화가 편 가르기의 바탕이 되고 있으며 이러한 근거 없는 것을 헐어버리려는 노력을 나부터서, 내 동료, 우리 집단과 운동단체로 확대해 나가야 한다. 이러한 일에 있어서 무기는 사랑이며 용기는 기쁨이다,고 말씀하십니다.
도서관에서 어른들의 말씀으로 조용한 열기가 뿜어져 나올 때 아이들은 2층에 각자의 드림장터를 만들고 나누고 있습니다. 길거리 포장마차 분위기라는 <드림와플>은 와플을 구워내기가 무섭게 나갑니다. 태어날때부터 이미 모든 것을 받았으니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도로 내어드리는 것밖에 없다는 드림정신으로 살아갑니다,는 드림정신을 적어놓고 몇가지 주의사항을 알리는 벽보가 붙어있습니다. 전기팬과 가스불을 쓰기 때문에 주의해야 합니다. 아이들이고 어른들이고 각자 자기 그릇을 들고 줄을 섭니다. 그릇이 있어야만 와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루팡5세 또띠아>에서 또띠아를 구워내는 곳도 마찬가지입니다. 줄을 서서 받아서 먹고 놀고 있어야 할 것 같은 승희는 어쩐 일인지 양파를 까며 재료를 다듬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왜 여기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합니다. 오랜만에 만난 주연언니와 함께 계속 재료를 손질합니다.
밀려드는 손님들로 북새통이 되고 치즈가 너무 많이 올라갔다든가, 양파가 덜 익었다든가, 바닥에 깐 빵(?)이 다 탔다든가 하는 외침소리가 들려옵니다. 만드는 이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손님들은 즐겁습니다. 큰 거울로 장식되고 예쁜 식탁보를 덮은 탁자가 놓인 레스토랑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맛을 즐기고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평화의 선물>은 직접 바늘질로 만든 예쁜 브로치와 인형을 선물합니다. 폭력적인 장난감을 가져오면 수제 봉제인형과 바꿔줍니다. 4학년과 7,8,9학년이 부모님들과 함께 100% 직접 손으로, 정성과 마음을 모아 만들었음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피와 땀도 담겼다고 합니다. 정말 예쁘고 정성스럽게 잘 만든 작품입니다. 총이나 칼이 없는 여자친구들은 울상입니다. 인형이 갖고 싶지만 바꿀만한 무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달콤한 향기>는 까페입니다. 진한 커피향과 맛있는 케익으로 남녀노소가 찾아옵니다. 여기도 북적댑니다. 바리스타 효안군과 보민양은 계속 커피를 내리고 핫초코를 타고 케익을 담아냅니다. 우리 친구들은 멋진 까페에서 담소를 즐깁니다.
<사진부> 친구들이 사진 전시회를 엽니다. 그동안 순례, 배움터, 기숙사 등에서 생활하며 찍은 사진을 함께 나눕니다. 도서관에서는 특별히 사진콘테스트를 열기도 합니다. 우리 친구들의 생활이 사진이 한장 한장에서 묻어납니다. 사진부 친구들이 별궤적 사진을 찍고 싶어서 제게 물었는데 저도 어떻게 찍는지 몰라서 다음에 함께 배워보자고 했는데 기회가 올지...
<아름다운 방>에서는 붓글씨에 푹 빠진 친구들이 있습니다. 아주 반듯한 자세로 심혈을 기울이는가 하면, 펑퍼짐한 자유로운(?) 자태로 글씨에 빠져있는 아름다운 친구도 있습니다. 空자를 바라보는 눈길만은 여느 서예가 못지 않아 보입니다.
도서관은 어른들의 말씀을 듣느라 조곤조곤하고 2층 장터는 아이들의 즐거움으로 북적댑니다. 까페와 레스토랑에서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거나 매일 만나도 할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 친구들은 여전히 속닥거립니다. 언니 오빠들과 어른들이 어디서 무엇을 해도 아이들은 자신들의 놀이로 즐겁습니다. 만나면 그냥 꺄르르 웃고 온몸으로 뛰어 놉니다.
어른들은 말씀을 듣느라 앉아만 있었는데도 배가 고프고, 아이들은 까페에서 맛있는 간식을 먹었는데도 뛰어 노느라 배가 고프다며 공양간으로 찾아듭니다. 저녁 밥모심은 잔치국수입니다. 푸짐한 고명에 하얀 국수 면발 그리고 한결네에서 가져온 가마솥에서 하루종일 끓여낸 육수가 구수합니다. 축구로 운동장을 누비던 바람별은 앞치마를 두르고 공양간 일을 돕습니다.
사람들은 국수면발이 딸려오듯 계속 공양간으로 들어옵니다. 구수한 국수 내음과 사람들의 열기로 공양간이 왁자지껄 합니다. 앉아서 먹던 평상을 빼내고 테이블과 의자로 채운 공양간은 의외로 사람들을 받아내기에 넉넉합니다. 더 좁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그냥 생각일 뿐입니다. 몽피선생님과 제자분들이 밤샘 작업을 한 덕분입니다. 국수로 저녁 밥모심을 하고 공양간을 나설 때 여전히 빗줄기는 계속 됩니다.
올해 추수감사제의 주인공은 아무래도 이분 같습니다. 아니면 제가 파파라치인 걸까요? 도처에 출현하십니다. 이번에는 생명평화문화제, 가을음악회에 앞서서 바리스타로 분하셨습니다. 그리고 공연 중 동영상에 수차례 검은 실루엣으로 혹은 또렷하게 등장합니다. 아무래도 주인공이 맞는 듯...^^ 그래서 우리들의 잔치가 활기가 넘쳤던 것 같습니다.
음악회가 펼쳐지기 전 아이들과 어른들이 뒤섞여 웅성거릴 때 우리는 다함께 동요를 배웁니다. "세상의 모든 총칼 엿 바꿔 먹자! 세상의 모든 대포 엿 바꿔 먹자! 세상의 모든 땡끄 엿 바꿔 먹자! 엿장수야 나오너라. 고물 실은 손수레를 끌면서. 짤깍짤깍~ 엿 바꿔 먹자!"
그리고 어르신들께서 말씀과 노래 한소절을 들려주십니다. 생명평화결사 제5대 운영위원장으로 다시 모셔진 일부님께서 "무엇을 이루려하지 마라, 자연은 무엇을 이루려는 자와 함께하지 않는다. 그리고 함부로 살지 말자!" 두 가지, 다가온 말씀을 나누어 주시고는 <꽃밭에서>를 열창하십니다.
가을음악회는 이령이 부모님의 북 연주로 시작됩니다. 앵콜연주를 포함해서 근 20여분 동안 계속 되어진 북 연주는 가히 도서관을 열광의 도가니로 만듭니다. 비닐하우스에서 있었던 공연은 서막에 불과했습니다. 저학년 아이들까지도 열렬한 환호성을 지릅니다. 두 분의 북소리는 우리의 심장을 뚫고 가을 밤하늘 저곳까지 울려퍼질 기세입니다.
그리고 이런 열기 못지 않은 환호를 받으며 등장한 배움터 일회성 아이돌 그룹 열매 친구들이 <Imagine>으로 열기를 이어갑니다. 곳곳에 등장하는 유후~우후우...^^
우리 아이들도 배움터에서 예똘에게 배운 노래 김산님의 <하나>에 이어서 모두가 흥겹게 어깨춤을 덩실 추며 불렀던, 좋구나 좋다~ 얼쑤 좋다!
숲길을 걸으며 그댈 만나네
강변을 거닐며 나를 만나네
내가 너임을 네가 나임을
맘으로 느끼네 하나로 느끼네
하늘과 땅과 내가 하나 하나라네
나무와 새와 내가 하나 하나라네
내가 너임을 네가 나임을
오롯이 느끼네 하나로 느끼네
원주와 순천을 이어주는 기타로 주고 받는 우정, 홍빈군과 효안군의 멋진 기타 연주. 먼 곳에서 배움의 뜻이 맞는 친구가 찾아와준다면 즐거운 일이 아니겠는가. 유붕자원방래... 그들의 기타 속주와 우정은 계속 됩니다.
그렇게 먼 곳에서 찾아온 사람을 반기는 이는 또 있습니다. 언니들로 삐친 맘을 달래줄 사람을 찾았어요! 넌 내 꺼야~
사람들은 한바탕 웃고 나서 어느샌가 음악에 취합니다. 밤이 깊어가고 따분해진 아이들은 그들만의 재잘거림으로 웅성거립니다. 어른들은 눈을 감거나 어둠을 응시하며 나무님의 피아노와 노래에 빠져듭니다. 그 안에서 피아노와 노래는 조용하게 흘러다닙니다.
그리고 우리는 <세월호>를 봅니다. <세월호는 아직도 항해 중이다>는 박두규선생님의 시를 듣습니다.
세월호는 아직도 항해 중이다
박두규
망망한 바다
저 망망한 세월을 건너는 배 한 척
우리는 모두가 하나의 세월호다
우리는 각자의 세월에
가족과 벗들과 또 다른 무엇들을 태운 선장이지만
또 아들호나 친구호, 대한민국호나 지구호의
탑승자 명단에 올라 있는 승객이다
망망한 바다, 이 망망한 세월을 건너는 동안
나는 너를 책임져야 하고, 너는 나를 책임져야 할
우리는 모두가 한 척의 배, 세월호의 선장이다
生의 어떤 위기의 순간을 맞았을 때
우리가 속옷 바람으로 허위허위 탈출한다고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세월호를 침몰시킬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우리가 살아온 세월뿐이다
아침 해가 떠오르는 수평선 너머
우리가 살아야 할 세월의 끝에
그토록 꿈꾸던 본향의 섬은 있을 것이다
그 본향에 이르기 전에는
배가 침몰한다고 해서 죽은 것도 아니고
그대들이 죽었다 해도 배가 침몰한 것은 아니다
그러니 넋들이여
그대들의 세월호는 아직도 항해 중이다
또한 수천, 수만의 세월호가 함께 항해하고 있으니
그립다 울지 말고 서럽다 잠 못 이루지 말라
어두운 하늘 무수한 별이 길을 안내하고
달빛 또한 어둠의 뱃길을 환하게 열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깊은 밤 운동장으로 나섭니다. 어느틈에 그쳤는지 빗줄기는 보이지 않고 비온 뒤 가을밤 공기는 촉촉합니다. 외등이 비에 젖어서 불이 켜지지 않을지도 몰라 걱정했지만 다행스럽게도 불은 환하게 켜집니다.
우리는 서로 손을 잡고, 서로 어깨를 잡고 매기는 소리에 맞춰 강강수월래를 합니다. 혼자서 무리 안으로 나서거나, 함께 무리에 섞이거나 하면서 강강수월래를 합니다. 소리를 맞추고 발을 맞추며 강강수월래를 합니다. 풍물은 기세를 올리고 사람들은 껑충 뜁니다. 우리는 다함께 마음을 모아 강강수월래를 합니다.
강강수월래로 열기가 뜨거울 때 우리는 우리의 천일을 바라봅니다. 우리는 지난 천일 동안 기도를 하면서 오늘을 꿈꾸었고 다시 새로운 천일을 기도하며 오늘을 꿈꿉니다.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은 날들 천일 그리고 또 다시 천일, 우리는 늘 우리 안에서 천일을 기도하며 살아갑니다.
사랑어린잔치 기간에 울력을 하면서 모아두었던 나뭇가지로 모닥불을 피웁니다. 이따금 불 속에서 대나무가 타면서 환호성을 지릅니다. 자작자작 나뭇가지 타는 소리가 밤공기를 가르고 불꽃은 하늘로 피어오릅니다. 사람들은 하염없이 불꽃을 바라봅니다. 사람들은, 얼굴이 화끈거리고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이 타오르는 불꽃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사랑어린잔치는 저 불꽃과 같이 천천히 타오르다 화염에 휩싸이고 서서히 사그라듭니다. 그리고 다시 타오를 날을 가만히 기다립니다. 한 달을 넘게 이어온 잔치는 끝났습니다. 사람들은 집으로 가거나 공양간으로 향합니다. 나에게 펼쳐질 또다른 잔치를 기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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