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목구비가 행복한 몽골 여행 (3)
*주최: 남양주 문화원 *일시: 2024. 7.18 ~21 (3박4일) *장소: 몽골 탐방 *인원: 남양주 문화원 가족 29명 *코스: 테를지 국립공원, 아리야발 사원, 거북바위, 미라지 전통민속공연, 야마트산 트레킹, 승마 체험, 칭기스칸 기마상, 울란바토르 시내, 남양주 문화관, 남양주 거리, 간등사, 캐시미어 백화점, 수흐바타르 광장, 칭기스칸 공항, 인천 공항 |
셋째 날 (7/20)
2박 3일간 고운 추억 많이 남긴 아름다운 테를지 국립공원을 벗어나 이제 천진벌덕을 향해 달린다. 정말 영혼까지 초록빛으로 물들인 테를지, 오래오래 긴 여운으로 남을 테를지가 아닐 수 없다. 달리는 도중, 차를 세우고 몽골 샤머니즘의 상징물 ’어워‘를 잠깐 구경한다. 어워는 우리의 서낭당과 흡사한 돌무지이다. 가이드 설명에 의하면 “몽골은 불교와 샤머니즘이 혼재한다. 어워는 돌과 나무를 쌓아 만든 일종의 무속신앙 성역이다. 영적 세계와 물리적 세계를 연결하는 예배와 제물의 장소로 이곳은 기(氣)가 세다고 알려져 제를 지내는 사람도 많다.”
우리는 돌무지를 왼쪽으로 세 바퀴 돌며 소원도 빌어본다. 붉은색 띠는 꺼지지 않은 불로 열정을 상징, 노란색 띠는 종교적 신앙을 상징한다고 한다. 또한 재앙을 막아준다 믿기 때문에 돌을 쌓으며 건강과 무병장수를 기원한단다.
어워 바로 옆쪽엔 두 마리의 쌍봉낙타가 나란히 앉아 큰 눈을 꿈뻑거리며 되새김질하고 있다. 또 그 옆엔 커다란 독수리가 나무 기둥에 앉아 “저 멋지지요? 많이들 구경하세요!” 말하는 듯하다. 전통 기념품을 판매하는 가게도 있다.
버스는 계속 달린다. 차 안에서 우리는 각자 한 사람씩 돌아가며 자기 소개와 여행 소감을 얘기하는 시간을 갖는다. 나는 끝없이 드넓고 푸르른 초원 평야에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배우고, 이육사의 시 ’광야‘를 떠올렸다며 마지막 구절을 인용한다.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曠野)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그리고 가수 남진이 이곳에 왔다면 틀림없이 이 노래를 불렀으리라 하며 ‘젊은 초원’을 힘차게 불러 박수갈채를 받았다.
어느덧 버스는 천진벌덕으로 들어섰다. 이 지역엔 몽골의 랜드마크인 거대한 칭기스칸 동상이 있다. 250톤의 스테인레스를 사용하여 제작한 기마상(騎馬像)의 높이는 자그마치 40m로 세계에서 가장 크고 높다 한다. 2006년 몽골제국 800주년 기념으로 건립을 시작하여 2010년에 완공된 최근의 대형 건축물이다. 기마상이 위치한 천진벌덕 지역은 1179년에 칭기스칸이 이곳을 지나다가 전쟁 때 잃어버린 황금 채찍을 발견한 곳이라는 전설(傳說)이 있다. 역사박물관 내부의 중앙에는 높이 9m, 너비 6m의 소가죽으로 만든 엄청나게 큰 칭기스칸 부츠가 전시돼 눈길을 끌고 있다. 몽골인들의 스케일이 대단히 크고 웅장한 일면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징기스칸(1162~1227): ‘위대한 황제’라는 의미. 몽골 초원의 허허벌판 위에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단일 제국을 건국했다. 13세기 구대륙을 제패하여 이후 세계사의 흐름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이후 손자인 세조 쿠빌라이칸은 중국 대륙에서 원나라를 건국한 이후, 칭기스칸에게 태조(太祖)라는 묘호를 올렸다. 그의 명언은 널리 알려져 있다. “배운 게 없고 힘이 없다고 탓하지 마라. 나는 내 이름을 쓸 줄도 몰랐지만, 남의 말에 귀 기울이면서 현명해지는 법을 배웠다.” “다시 태어난다면 평범한 사람으로, 평범한 게르에서 살다, 평범하게 늙어 죽고 싶다.”
중학교 2학년 때로 기억한다. 학년 단체로 극장에서 ‘테무진’ 영화를 관람한 게 아주 어렴풋이 기억난다. 테무진은 징기스칸의 본명이다. 감금당한 테무진이 목에 칼이 채워진 채 필사적으로 탈출하는 장면, 광활한 초원에서 말을 달리며 종횡무진 치열한 전투한 장면이 생각난다.
그리고, 우리 젊은 시절 독일 가수가 불렀던 디스코풍의 재밌는 노래 ‘징기스칸’을 흥얼거려 본다.
그 언젠가 누군가 들려주는 이야기/ 나라 위해 몸을 바친 아름다운 이야기/
약한 자를 도우며 사랑했네. 슬픈 자는 용기를 주었다네. 내 맘속의 영웅이었네.
징 징 징기스칸. 하늘의 별처럼 모두가 사랑했네. 징 징 징기스칸
내 작은 가슴에 용기를 심어줬네. 겁이 많던 내게 용기를 주었네.
내 맘속의 영웅이었네. 꿈과 용기 간직하리라.
우리 일행은 거대한 기마상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은 후 울란바토로를 향해 신나게 달린다. 수도 울란바토로시는 '붉은 영웅'의 뜻으로 예로부터 몽골 군주 주거지 중 하나였으며 라마교의 중심지다. 1924년 인민혁명 이후 수도로 정해졌으며, 몽골 산업의 중심지로 모피·가죽 제품·모직물·캐시미어 제품, 농축산 가공식품 등이 생산된다. 자연사박물관, 국립박물관, 수흐바토르광장, 간등사원 등 관광 명소가 곳곳에 있다. 몽골 전체 인구의 약 40% 이상이 수도에 살고 있다.
우리 남양주시는 우호협력의 일환으로 1998년 10월 울란바토로시와 자매결연(姉妹結緣)을 맺어 특별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남양주에는 몽골문화촌을 건립하고, 몽골에는 남양주문화관 건립과 남양주 거리를 조성하였다. 그리고 몽골민속예술단 초청공연, 청소년 대표단 상호방문, 남양주시의 축산 및 시설원예 기술보급, 민간교류 차원의 장학사업, 청소년 및 문화예술분야 협력 등 활발한 교류를 하고 있다.
몽골의 최대 도시 울란바토르 시내로 들어선다. 우리의 1970~80년대 분위기를 연상케 한다. 한국과 상당히 우호적(友好的)이고 지리적으로도 멀지 않기 때문에 놀라울 정도로 한국적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서울의 거리도 있고, 남양주 거리도 있다. 노선도가 한글로 적힌 버스, 학원 이름이 한글로 적힌 미니버스들도 보인다. 한국 식당도 꽤 많다. 또한 이마트, CU 등 국내 대형마트와 편의점이 시내에 많이 들어와 있는 상태다. ‘서울의 거리’를 지나는데, 새마을식당·서울정·한강식당·코리안 레스토랑 등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도 많이 보인다.
시내 교통은 심각할 정도로 엉망이다. 무단횡단, 불법 유턴 등 교통질서가 잡히지 않아 무법천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일행을 태운 버스도 어떤 승용차와 가벼운 접촉 사고를 일으킨다. 도시계획이 인구 증가를 따라잡지 못해 도로 정비가 제대로 되지 않아 차량 정체현상도 심각하다. 그래서 현재 차량 2부제 등을 시행하고, 지하철은 지금 한창 건설 중에 있어 하루속히 개통되길 소망해 본다.
‘남양주 문화관’을 탐방한다. 입구에는 나무 기둥으로 만든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과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 두 장승이 우리 일행을 반긴다. 관리자의 인사말과 간단한 브리핑, 그리고 우리 문화원장의 답사(答辭)가 이어진다. 남양주 몽골 장학회 액자에는 남양주를 상징하는 먹골배와 몽골을 상징하는 말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남양주시 홍보관 배너에는 “몽골 울란바토르시에서 한국의 남양주시를 만나보세요!”라는 문구와 함께 정약용 선생의 캐리커쳐가 그려져 있다. 자매결연 맺은 두 도시가 앞으로도 더욱 돈독한 관계를 맺고 우호협력이 활발히 이루어지기를 염원하면서 단체 사진을 찍은 후 다음 코스로 이동한다.
시내 중심부에 있는 수흐바타르 광장(廣場)으로 간다. 가로·세로 240m 정사각형으로 된 거대한 광장 이름은 몽골의 공산혁명가이자 독립운동가 수흐바타르에서 따왔다. 수흐바타르가 이 도시로 개선할 때 그가 탄 말이 지금의 동상 자리에 오줌을 쌌는데, 길조(吉兆)로 여겨 그 자리에 말뚝을 박았다. 훗날 도시정비사업을 하면서 말뚝이 발굴돼 그 자리에 수흐바타르 동상을 세워 광장을 만들고, 북쪽엔 국회의사당을 지었다고 한다.
광장 한쪽에 위엄 있게 앉아있는 칭기스칸의 동상과 그 대를 이은 아들 오고타이칸과 손자 쿠빌라이칸의 동상도 있다. 공산국가 시대에 만들어진 광장이라 중국의 천안문광장, 러시아의 붉은광장, 북한의 김일성광장과 구조가 매우 비슷하게 보인다.
칭기스칸과 수흐바타르는 몽골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기에 이 광장에도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결혼식 때 이곳을 찾는다거나, 지방 사람들이 울란바토르에 오면 방문 코스이며, 국가 행사, 콘서트, 축제 등 다양한 용도로 쓰인다 한다.
오늘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숙소 라마다호텔로 들어간다. 엊그제 이틀 밤은 푸른 초원 한복판 게르에서, 오늘 마지막 밤은 시내 한복판 호텔에서 보낸다. 호텔 숙소에서 YTN 방송이 아주 잘 잡힌다. 우리 한국방송을 통해 실로 오랜만에(?) 뉴스도 보고 재밌는 프로를 접한다. 엄청 반가운 마음, 역시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넷째 날 (7/21)
아침부터 비가 보슬보슬 내린다. 오늘은 귀국하는 날이다. 우리는 버스에 승차하여 먼저 '남양주 거리'를 찾아간다. 우산을 쓰고 거리를 천천히 걸으며 여기저기를 살펴본다. 유난히도 우리 한국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교통 신호등도 우리 것과 같을 뿐만 아니라 한국어 간판 음식점도 많이 보인다, 기념비 앞에서 마지막 단체 사진을 촬영한다.
다음은 비교적 근거리에 위치한 ‘간등사원’으로 이동한다. 1838년에 건립한 간등사원은 울란바토르시에 있는 티베트 불교의 중심적인 절이다. 한자로는 감단사(甘丹寺), ‘완전한 기쁨을 가진 위대한 사원’이라는 의미이다. 현재 몽골에서 가장 큰 사원이며 과거 공산정권하에서 유일하게 종교활동을 보장받았다.
25.6m의 거대한 불상(佛像)과 여러 개의 작은 전각, 승려들의 기숙사, 부설 불교대학이 있다. 탑 모양의 조형물이 많고, 불경이 적힌 마니차를 돌리며 간절히 기도하는 신도들이 많이 찾는 명소이다. 어마어마하게 크고 높은 불상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는다.
이제 식당으로 이동하여 이번 여행에서의 마지막 점심 식사를 한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본가 식당(本家食堂)으로 들어간다. 비빔밥·제육볶음·삼겹살·두루치기·된장찌개 메뉴 중 나는 된장찌개를 시켜 맛있게 먹는다. 그야말로 입에 딱 들어맞는다. 역시, 우리 음식이 최고여!
마침내 3박4일 일정을 모두 마무리 짓고 징기스칸 공항으로 달린다. 비는 계속 보슬보슬 내린다. 어느새 정든 가이드와 작별 인사를 한다. 공항에서 여유로운 시간 속에 출국 수속을 밟아 무사히 인천공항에 도착한다.
몽골에서 의사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펼친 몽골의 슈바이쳐 이태준 선생 기념관과 아름다운 자이승 전망대는 보수공사 관계로 가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다음엔 가족과 함께 저 고비사막까지 두루두루 꼭 가봐야겠다는 약속을 굳게 하며 기행문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넓고 푸르른 몽골 초원이 지금도 눈앞에 아른거린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큰 감동과 긴 여운의 여행, 참으로 이목구비(耳目口鼻)가 행복한 여행이었다.
첫댓글 한번쯬 가볼만 하겠구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