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밖교우 김광일님의 교우 단상: -소ㆍ확ㆍ행- ◈
두어 달 전부터 큰아들에게 군을 제대하면 제대선물로 아빠에게 조그마한 술 냉장고 하나를 사달라고 징징대며 요구했더니, 드디어 몇 주 전 제대와 동시에 술 냉장고가 집에 도착했다. 제대한 큰아들이 아빠에게는 술 냉장고를, 엄마에게는 건강식품을 선물한 게 아닌가. ㅋㅋㅋ
자식이 군에서 힘들게 모아온 돈을 그라고 강탈하고 싶냐는 마누라의 온갖 핍박을 받으면서 얻어낸 결과물이니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들이 사준 술 냉장고의 의미를 굳이 표현한다면, 드디어 나에게도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점에 큰 의미를 두고 싶다.
두 아이를 둔 가장으로서 나만의 공간이 점점 없어진다는 건 비단 나뿐만은 아닐 터. 주방과 거실은 아내의 몫이고 방은 자식들이 꿰차고 있으니 나만의 서재를 갖고자 꿔온 꿈은 언제쯤 이루어질지...
몸으로 하는 일을 하다 보니 일을 끝낸 후 마시는 한 잔의 맥주는 술 이상의 행복을 내게 전해준다. 그런데 시원한 맥주를 찾을 때도 냉장고 여기저기를 뒤져야 하고, 간혹 없을 때도 있으니 그때의 상실감은 모르는 사람은 모를 것이다.
나만의 공간에서 집어 든 맥주 한 병은 맥주 이상의 존재라는 걸 아내가 알까?
소ㆍ확ㆍ행! 사소한 것일지언정 그걸로 인하여 내가 행복해지면 그게 바로 행복 그 자체이지 싶다. 그러니 아들이 선물한 술 냉장고는 냉장고가 아니라 나의 행복 저금통인 것이다.
이제 나만의 공간이 하나 생겼으니 또 하나가 생기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라고 난 믿는다. 게다가 이달 말에 제대하는 둘째가 있으니, 나는 지금 행복에 취한 스트리트 댄서로 살고 있다.
호시탐탐 둘째 찬스를 쓸 기회만 엿보고 있으니, 마누라에게 싫은 소리 한 번 더 듣더라도 나만의 공간확보를 위해 난 오늘도 둘째에게 안부를 빙자한 밑밥을 깔기 위해 전화를 건다.
“둘째야! 가족의 행복과 평화를 위해 큰방에 홈시어터를 설치하면 멋지지 않을까? 가족이 한곳에 모여 영화를 보면서 술 냉장고에서 막 꺼낸 시원한 맥주를 마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행복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야. 참 올해 군인 월급이 많이 올랐다고 뉴스에 나오더라.
둘째야 사랑한다. 얼릉 제대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