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와 같은 여름날이 있으셨습니까 / 김응수
이 추운 겨울에 여름을 생각한다. 나는 계절을 우리 인생에 비유해 보곤 한다. 여름은 우리 인생에서 잘나가는 시기, 전성기다. 그런 한편으로 또 여름은 교만과 욕망의 계절이기도 하다. 나의 인생에서도 그런 여름날이 있었다. 젊었을 때는 민감하고 예리하다는 말을 들었다. 결혼 후 한풀 꺾였고 이제는 타협하고 잊어버리는 무던한 성격으로 변했지만 내게도 잘나가면서도 교만했던 그런 젊은 시절이 있었다.
나의 잘나가던 여름날은 한국전력 한일병원으로 직장을 옮겼던 무렵 시작되었던 것 같다. 내가 첫 번째 맞은 환자는 공사장의 현장감독이었다. 그는 옥상에서 발을 헛디뎌 추락하여 폐에 물이 차 심장이 멈추었다. 거의 한 달 만에 제정신, 제 몸으로 온전하게 돌아왔다. 그 후 방직기계 톱니바퀴에 끼여 오른쪽 발가락부터 쇄골까지 오징어처럼 눌린 여자를 두 차례 수술로 살렸으며, 심지어 장례식장에서 숨이 다시 붙은 것 같다며 데리고 온 청년을 살려내는 황당하면서도 놀라운 경험을 하기도 했다.
정말 소세포 폐암과 말기 암까지 닥치는 대로 수술하랴, 논문 쓰랴, 방송하랴 구두 뒤축이 닳도록 뛰어다녔다. 한 해의 마지막 날에 제야의 종소리를 병원에서 들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때는 내가 교만하여 아스클레피오스처럼 손만 대면 환자가 낫고, 하데스가 관장하는 명부(冥府·죽은 뒤 심판을 받는 곳)로 갈 사람마저 살려내는 양 거들먹거리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 예기치 않았던 사건이 닥쳤다. 하사관으로 퇴역했다는 남자가 아래쪽 가슴이 뻐근하다며 찾아왔는데, 그는 하루에 두 갑씩 담배를 피웠고 두주불사의 술고래였다. 가슴 사진을 찍고, 소화기 내시경을 해보니 식도 중간부터 아래까지 먹은 식도암이 발견되었다.
"암 덩어리가 크지만 수술하지 않으면 물도 곧 못 드시게 돼요."
나는 가족을 불러 수술을 받고 완치된 사람들을 들먹이며 수술하자고 강권했다. 그러자 늘 그렇듯 가족의 질문이 이어졌다.
"박사님이 직접 수술하세요?"
"예, 직접 수술합니다. 식도는 심장보다 수술이 크다지만 저는 배와 가슴을 따로 열지 않고, 왼쪽 가슴과 배를 하나로 열어 간단하게 합니다. 연세 드신 분에게는 수술시간이 짧은 것이 우선입니다."
또박또박 힘주어 말하는 의사의 자신감에 가족은 수술에 순조로이 동의하였다. 지금 내가 수술을 권한다면 그렇게 깨끔하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나는 배를 먼저 열어 간장과 림프샘을 확인하고, 가로막을 변두리로 열어 암을 제거하고 위장을 이용하여 식도를 다시 만들어 주고 나왔다. 나이가 많아 걱정되기도 하였지만 나는 당시 자신감으로 충만한 여름날이었다.
다음날 중환자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충성! 박사님, 수고하셨습니다."
나는 일흔을 바라보는 남자가 큰 수술을 받고 다음날 정좌하여 힘차게 신고까지 하는 것은 처음 보았다. 우쭐해졌다. "십수 년 의사를 하다 보니 식도 수술을 받고 다음날 경례를 붙이는 사람까지 보는구나."
나는 진료실로 가족을 불러 수술과정을 설명하였다. "수술이 얼마나 잘 되었는지 다음 날 일어나 경례하는 사람은 처음 보았어요"라며 농담까지 주고받았다.
"그런데…, 이상한 것 같아요." 부인이 고개를 기웃하며 말했다. 순간 스산한 바람이 뒷골을 스치는 기분이었다. 나는 가운을 날리며 중환자실로 뛰어갔다. 그리고 나는 목에서 가래가 그르렁거린다는 그 남자에게 기침하라고 했다. 남자는 "기침"이라고 말했다. 나는 답답해서 소리를 질렀다.
"아니, "기침"이라고 말하지 마시고 기침해보세요."
아무리 기침하라고 해도 "기침"이라는 말만 따라 했다. 심지어 가래를 "캑" 하고 뱉으라고 하면 "캑", "콜록" 하라고 하면 다시 "콜록"이라고 되받았다.
"아뿔싸. 외상후증후군이구나."
나는 인공호흡기를 준비하라고 간호사에게 이르고 목구멍으로 튜브를 넣었다. 남자는 여러 날 인공호흡기 치료를 했고, 나는 긴장 속에 곁을 지키며 곰곰이 생각했다.
"나의 교만을 하느님이 내리치시는구나."
나의 여름은 그렇게 지나갔다. 여름은 언젠가 끝나고 가을이 어김없이 온다는 사실을 가르치며 그렇게 지나갔다.
천하의 명의 편작에게는 의사 형들이 있었다. 편작은 "맏형은 얼굴만 보고도 병이 나타날 것을 안다. 그래서 형이 낫게 해 준 줄 모른다. 작은형은 덜 아플 때 미리 치료해 준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큰 병을 치료해 주었다고 생각지 않는다. 저는 아주 아파야 비로소 알아본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나를 큰 병을 고쳐 주었다고 존경한다"고 했다.
빈 수레가 요란하고 벼는 익으면 고개를 숙이는 진리를 이제야 깨닫는다. 나이 예순에 귀가 순해졌고, 일흔에 마음대로 행동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는 공자 말씀의 참뜻도 가슴에 와 닿는다. 유달리 눈이 잦고 추운 올해 겨울에 생각해보는 당신의 여름날은 어떠하셨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