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까지 소설책을 읽었더니 아침에 일어나는게 힘들었다. 그냥 안일어나고 버티는 중에 화장실 반응이 왔다. 화장실! 큰거! 이런때는 어떤 밍그적거림도 불가다! 단 1초의 망서림도 없이, 쏜살같이, 그야말로 쏜살같이 화장실행이다. 1초만 늦어도 안된다. 항상 그렇지는 않치만 자주 경험하는 일이다. 병원 가보라는 권고도 듣지만 이런일로 병원을? 하고 사는 중이다. 사실 내 마음대로 할수있는 일이 얼마나 될까. 잠을 자는 것에서부터 화장실 가는일도 그렇고,,, 일상에 일어나는 거이 모든일들을 내가 조절하고 통제하고 있는게 거이 없지싶다. 그냥 되어지는 대로 살아가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나만 그런가. 어쩌면 다수 잘난사람들은 스스로 알아서 조절하고 통제가 가능하겠지? 자기 삶을 스스로 어쩌지 못하고 산다는 것은 어쩌면 말이 안되는 것일수도 있다. 그 말이 안되는 삶을 나는 살았고, 이제 끝자락에 이르렀다. 끝나지 않는 잔치는 없다던가. 밤이 아무리 깊어도 아침은 반듯이 온다고도 한다. 참 위로가 되는 말이다. 무익하고도 의미없는 내 인생이 무한 계속된다면 그야말로 절망아닌가. 끝이 있다는게 희망이라는게 좀 웃기지만. 누구나 원하는 빛나고 값진 삶을 다들 사는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있는 그댜로의 모습이 괜찮다고 하셨다. 아니, 충분하다고도 하셨다. 그분은 창조자시고, 우리들은 그분의 피조물이니까 그분으로서는 당연한 말씀을 하고 계신것이지만 우리로서는 만족할수가 없지않겠는가. '열심히 하는 것으로는 소용이 없다. 잘 해야한다.' 말 장난같지만 맞는말 같기도 한다. 다들 열심이다. 그러나 다들 잘하고 있는것은 아니니까. 열심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얘기다. 인간들은 그렇다. 그런데 그분은 열심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하신단다. 80억이 각자도생을 위해 열심을 내고있다. 아무리 열심을 내어도 다수는 성과가 없다. 탐욕에 질투에 시기에 갑질을 더하면서까지 몸부림을 하고있는게 '잘해보려'는 것일수도 있다. 하나님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강조하시며 우리를 만류하고 계시지만 우린 들을 귀가 없다. 들을 귀가 없다!
아들의 긴 휴가가 끝이났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간다. 내 일상은 뭘까. 먹을 음식이 있고, 입을 웃이 있으면 가난한게 아니라고 한다. 그럼에도 나는 늘 나만 가난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나만 남루하고 추래하고 지지궁상이라고 자가당착에 빠저있다. 더 필요한게 무얼까를 생각해보지만 막상 딱히 원하는 것도 없다. 남과 비교하지만 않는다면 현제의 나도 그리 나쁜것은 아니다. 어제도 양손에 손주들의 손을잡고 교횔갔다. 다른 사람들 눈에 얼마나 부렵게 보일까. 내 발걸음이 얼마나 당당한지,,, 이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한것 아닌가. 현제가 충분하면 됬지 뭐가 어떻다는 것인지. 탐욕은 남들에게만 있는게 아니다. 내 속에는 더 큰 탐욕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우연히 체널을 돌리다가 '벌거벗은 세계사'를 보게되었는데, 그동안 신사의 나라 혹은 민주주의라는 상징처럼 알았던 영국의 민낫을 보면서 저게 인간들의 속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자행되었던 그 많은 학살과 탈취외 노예제도가 뭘 말하고 있는 것인지도 세삼스럽다. 하급 신들이 혹사당하다못해 인간을 만들어 대신 노동을 하게 했다는 신화도 있다고 한다. 나 대신, 누군가 내가 해야할 노동을 하게하는게 어쩌면 당연한 것인가. 그래서 노예나 하층계급이 허용되어야 했던 것인가. 단지 내가 하층계급에 속해있다는게 문제일뿐이고? 미 대륙도 백인들의 땅은 아니었다. 원주민이 있었다. 그들은 침락자였다. 한손에 성경을 들고, 다른 한손에는 총칼을 들고서 원주민들을 죽이거나 내몰거나 하면서 땅을 빼았고 침락했다. 지금 이순간에도 곳곳에서 빼앗고 빳기는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나라와 나라가 그렇고 개인이 개인들고 그렇다. 형제끼리도 싸우고 부부끼리도 쟁탈전은 진행중이다. 이게 본능이라면 피할수는 없겠지만,,,. 이기는 사람 뒤에는 지는 사람이 꼭 있다. 지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들을 누가 위로하지? 하나님이 괜찮다고 하시니까 우린 다 괜찮치 않을까. 그래, 괜찮아, 괜찮고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