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버지가 몸을 벗으신지 29일째 되는 날입니다. 지금쯤 아버지는 어디에 계실까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다음날 아침, 당신을 장례식장으로 모실 운구차량을 기다리며 저희 두 행자는 가만히 앉아 숨이 끊어진 아버지의 몸을 보고 있었습니다. 이불을 덮고 누워계셨는데 배위에 이불이 움직이는 것처럼, 마치 숨을 쉬고 계신 것 같은 착시가 일어났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맥박을 재려 여느 때처럼 당신의 손을 잡았는데, 대리석처럼 차갑고 딱딱했습니다. 그것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보였습니다.
아버지를 입관하던 날이었습니다. 천으로 쌓여진 당신의 몸 앞에 식구들은 둘러서서 울고 있었고, 저희는 한장 한장 천을 풀어헤치는 장의사의 손을 보며 침을 꼴깍 삼켰습니다. 당신의 얼굴이 드러나자 식구들은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고, 그 터지는듯한 울음소리에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장의사는 이제 정말 마지막이라며 고인에게 인사를 하라고 했습니다. 당신의 손을 잡아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아버지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단지 시간이 멈춘 껍데기와 같았습니다.
아버지는 어디에 계실까...
당신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빠가 그리워지면 눈을 감고 아빠를 떠올려라. 우리 집 단편영화 알에서처럼 나는 삼라만상의 모든 것, 바람이 되고 눈이 되고 비가 되어 언제나 너희 곁을 지켜줄게.‘
창밖으로 추적추적 비가 내립니다. 가만히 눈을 감으니 바람이 불어 얼굴에 닿습니다. 저 멀리서 쓰르르르 풀벌레도 웁니다.
저희 두 행자는 삼촌 스님이 내어주신 절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지붕 올리는 것만 빼고 혼자서 8년간 돌담 쌓는 것부터 하나하나 정성스레 지으신 곳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방도 넓고 부엌도 깨끗하고 따뜻한 물도 잘 나온답니다. 서 너 평 남짓한 두 칸짜리 집에서도 잘 살던 저희 두 촌놈에게 이곳은 분에 넘치도록 감사한 곳입니다. 이곳에서 저희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예불을 드리고 금강경과 아버지께서 좋아하셨던 티벳불교 경전 입보리행론을 아버지에게 독송해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불가에서는 돌아가시고 49일 동안 고인의 영혼이 이승과 저승사이에서 머무르며 천상계의 신들에게 심판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 기간 동안에 이승의 사람들이 마음을 모으고 고인의 영혼에게 경을 읽어주며 바른 길로 안내하고 정성으로 모시면 고인을 도울 수가 있다고 합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아버지를 떠올리니 시원한 빗소리가 들리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당신은 자유롭고 편안한 곳에 계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환하게 웃는 아버지의 영정사진처럼 웃으며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답니다.
아버지의 명복을 빌어주신 모든 분들께 두 손 모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장례 당일 경황이 없어 제대로 인사도 못 드리고, 페이스북을 통해 남겨주신 댓글에도 미처 감사의 인사를 전하지 못하였습니다.
저희는 아버지의 유언대로 잔치를 벌이고자 합니다. 그동안 매년 꾸려 왔었지만,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한동안 열지 못했던 나눔의 노래잔치, ‘배부른잔치’에 죽음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고인을 추모하는 시간을 더하여 이번에는 ‘모시는잔치’ 라고 새로 이름 지어 마련하였습니다. 어떠한 지원금을 받지 않고 꾸리는 잔치이다 보니 사례비를 따로 챙겨줄 수 없는데도 제주도를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마음을 내준 고마운 분들과 노래와 일손을 함께하기로 하였습니다. 전국 곳곳에서 올라온 뮤지션들의 밤새 이어질 노래와 더불어 추모제도 준비 중에 있습니다.
미처 전하지 못한 감사의 마음을 저녁식사와 노래로 대접코자 하오니 여름밤, 선선한 산 속에서 벌어지는 모시는잔치에 관심 있는 누구든 자리하시어 함께 해주신다면 좋겠습니다.
-두 행자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