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관계의 중요성
한 개인의 인생에서 사회적 관계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으로 크며, 이는 학생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코로나19 감염병 사태로 사회적 단절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사회적 관계가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명백히 실감했다. 인간은 무리를 지어 사는 동물로, 우리의 뇌는 애착 형성을 배워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사회적 지위에 따라 행동하는 방법을 습득하고 집단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는 설명도 있다(Colzolino, 2016). 그래서 개인이 경험하는 많은 고통과 갈등의 원천은 사회적 관계에 있으며, 개인을 즐거움과 행복으로 이끄는 원천 역시 사회적 관계이다.
사회적 관계의 중요성은 당위적 차원에서의 주장만이 아니라 여러 실증적 연구를 통해 입증되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연구는 8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인간의 행복에 대해 연구한 하버드 그랜트 연구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행복의 조건’이라는 책을 통해 그 내용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는데, 저자이면서 그랜트 연구를 오랫동안 이끌었던 베일런트(George Vaillant) 교수는 그랜트 연구를 통해 무엇을 알게 되었냐는 기자의 질문에 “인생에서 정말로 중요한 한 가지는 다른 사람과 맺는 관계이다”라고 답했다(Shenk, 2009). 또한 지난여름 우리를 안타깝게 했던 서이초 사건을 비롯해 점점 심해지는 학교폭력, 등교거부 등 다양한 학교 관련 문제들 역시 사회적 관계의 문제에 속한다. 우리나라 중학생들의 일상적 경험을 알아본 연구에서도 중학교 시기에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 가장 많이 한 활동, 가장 어려웠던 것 등 세 가지 영역에서 모두 ‘대인관계’가 1위를 차지했고, 이는 주로 또래와의 관계였다(황매향 외, 2021). 그래서인지 저소득층이라는 환경에서 성장하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많이 겪었던 청년들도 ‘괜찮은 삶’의 조건으로 ‘관계의 안정이 있는 삶’을 중요한 요소로 꼽았다.
아동·청소년기에 집중된 사회적 관계 역량의 발달
사회적 관계가 개인의 행복뿐 아니라 적응과 갈등의 원인이기도 하다면, 주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전통적인 발달이론에 따르면 사회적 관계에 필요한 여러 가지 기술, 태도, 지식 등 역량은 따로 가르치지 않아도 주변 사람들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자연스럽게 습득된다고 한다. 그래서 사회적 관계의 출발점이 되는 가정에서의 관계 형성, 특히 부모와의 애착 형성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와 같은 사회구조에서는 가족 내에서 자연스럽게 사회적 관계 역량을 키워나가는 것은 쉽지 않다. 핵가족화되어 한 가족을 구성하는 세대가 한 세대에 국한되고 구성원의 수도 적어 상호작용의 기회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각자 바쁜 일상에서 집에 머무는 시간도 짧아 상호작용의 기회가 더 줄어든 상태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정 내 충분한 사회적 관계 역량 발달이 어렵다면, 어떻게 사회적 관계 역량을 발달시킬 것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하게 되는데, 이때 학교교육은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방법을 잘 배워나갈 수 있는 좋은 장(field)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학교는 아동·청소년들이 사회적 관계 역량을 키워나갈 가장 중심적 장이다. 아동·청소년들은 학교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 상대적으로 많은 상호작용을 학교에서 하며, 사회적 관계를 형성할 기회를 얻는다. 즉, 학교에서 학생이라는 신분으로 또래와 교사, 나아가 선후배와 맺는 사회적 관계가 핵심적인 사회적 관계로 자리 잡고 있고, 이 속에서 이들은 사회적 관계 역량을 키워나가고 있는 것이다. 아동·청소년들은 또래와 많은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또래 관계의 갈등이 가족과의 갈등보다 더 증가하고 있다. 특히 집단따돌림을 비롯한 학교폭력으로 인한 트라우마 경험도 심각해지고 있어 학교에서의 아동·청소년의 올바르고 건강한 사회적 관계 형성은 더욱더 중요해지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뇌발달적 측면에서도 아동·청소년 시기는 사회적 관계 역량 함양의 적절한 시기에 해당한다. 90년대 들어 뇌영상 자료의 확보와 해석이 발달하면서 아동·청소년 시기에도 뇌가 계속 발달하고 있다는 증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뇌 발달은 다른 신체 발달과 달리 생애 초기에 집중된다는 이전의 주장과는 다른 새로운 지평이 열린 것이다. 아동기부터 청소년기에 걸쳐 뇌는 제2의 성장급등기를 맞이하면서 새롭게 재조직되고 정교화된다. 여아는 11세, 남아는 12세 6개월까지 전두엽의 신경세포가 수없이 많은 새로운 연결망을 생성하고, 이후 몇 년 동안 대부분이 다시 가지치기를 통해 사라지는데, 많이 사용되고 강화를 받는 연결망만이 남게 된다(Giedd et al., 1999). 즉, 초·중·고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의 뇌는 제2의 성장급등기를 만나 엄청난 변화를 하는 중이고, 그 발달의 원리는 용불용설로 많이 사용하는 기능은 남고 그렇지 않은 기능은 쇠퇴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전 학습과 상관없이 이 시기 동안 집중적으로 학습된 것들이 앞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자원으로 남게 된다.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사회적 관계를 하는 방법을 배워야 이후 삶에서도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으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현재 학생들이 처한 환경은 사회적 관계 역량을 습득하기에 매우 불리하다. 가족 간의 상호작용이 급격히 줄었을 뿐 아니라 학교나 지역사회에서도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활동하기보다는 SNS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SNS를 통해 관계 형성에 대한 욕구를 채워보려고 하지만, 오히려 단절을 가져올 뿐이다. 실제 SNS 사용이 많을수록 사회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기 어렵고 행복도도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Roberts & David, 2023). 따라서 뇌발달이 급격하게 일어나는 아동·청소년 시기에 학생들이 학교교육을 통해 자신의 삶에 필요한 사회적 관계 역량을 습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가교육과정으로서의 사회적 관계 역량 함양 프로그램
이러한 필요성에 따라 사회적 관계 역량의 함양을 국가교육과정으로 포함시켜야 한다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바로 ‘사회·정서 학습(Social and Emotional Learning, SEL)’ 논의이다. SEL에서는 학업을 잘 해내기 위해서는 심리적 안정이 중요하고 그 핵심은 다른 사람과의 긍정적 관계 형성에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했다. 미국에서 90년대 중반 CASEL(Collaborative for Academic, Social, and Emotional Learning)이라는 조직이 설립되어 활동을 시작하면서 SEL이라는 용어가 처음 소개되었다. 이후 미국의 학교교육에 적용되었을 뿐 아니라 세계적 관심을 끌면서 OECD에서는 ‘OECD 사회·정서적 역량 조사 연구’를 시작했다. OECD에서는 성격5요인 모형을 기초로 SEL 역량을 5가지 역량으로 구성하고, 이 모든 것이 통합되는 역량 하나를 더 추가했다. 과제수행(자기통제, 책임감, 끈기), 정서조절(스트레스 대처, 낙관성, 정서통제), 협력(공감, 신뢰, 협조), 개방성(관용, 호기심, 창의성), 대인관계(사회성, 자기주장, 활력)를 추출하고, 복합 역량(성취동기, 자기효능감)을 추가했다.
우리나라는 2015개정 국가교육과정에서부터 반영된 핵심역량 개념 역시 미래 인재 양성에 대한 세계적 관심인 SEL을 반영하고 있다. 2015개정 교육과정 총론의 6대 핵심역량 가운데 자기관리, 심미적 감성, 의사소통, 공동체가 사회·정서 역량에 속한다. 최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는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에 사회·정서적 역량을 측정하는 문항이 포함되어야 함이 검토되었다(김수진 외, 2020). 사회적 역량에 공동체 의식, 협업, 갈등 해결이 정서적 역량에 스트레스 대처, 회복탄력성이 포함되어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영역에 SEL을 결합한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SEL은 학업을 잘 수행하는 데 필요한 역량을 넘어, SEL이 교육성취의 한 부분으로 학업성취도 산출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인성교육을 “자신의 내면을 바르고 건전하게 가꾸고 타인·공동체·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인간다운 성품과 역량을 기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으로 정의한 인성교육진흥법이 시행되고 있다. 이런 토대들이 마련되고 있는 데 비해 실제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의 사회적 관계 역량을 키워주는 교육 활동은 가시화되지 못하고 있다. 어떤 교육내용을 어떤 성취기준에 맞게 누가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가 구체화되지 않아 학생들의 사회적 역량 증진에 대한 선언만 존재할 뿐인 상황이다. 따라서 향후 이미 마련된 법적 근거와 국가교육과정의 내용을 어떻게 현장에서 실현할 것인가에 대한 검토와 논의가 본격화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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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 김수진, 김미경, 김명화, 정은주, 박종효(2020).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에 적용될 사회·정서적 역량 구인 및 정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연구보고 RRE 2020-2.
- 김지연, 황매향, 이지혜, 김경애, 서정기(2023). 저소득층 청년들이 인식하는 ‘괜찮은 삶’. 한국교육문제연구, 41(4), 121-155.
- 황매향, 강지현, 하혜숙, 김영빈(2021). 중학교 시기의 일상적 경험에 대한 합의적 질적 분석: 대학생 회상자료를 중심으로. 학습자중심교과교육연구, 21(18), 241-256.
- Cozolino, L. (2016). Why therapy works. The neuropsychotherapist, 4(1), 6-19.
- Giedd, J. N., Blumenthal, J., Jeffries, N. O., Castellanos, F. X., Lui, H., Zijdenbos, A., Paus, T., Evans, A. C., & Rapoport, J. L. (1999). Brain deveopment during childhood and adolescence: A longitudinal MRI study. Nature Neuroscience, 2(10), 861-863.
- Roberts, J. A., & David, M. E. (2023). On the outside looking in: Social media intensity, social connection, and user well-being: The moderating role of passive social media use. Canadian Journal of Behavioural Science, 55(3), 240.
- Shenk, J. W. (2009). What makes us happy?. The Atlantic, 48.
- https://casel.org/
- https://www.law.go.kr/LSW/lsInfoP.do?lsiSeq=188361&viewCls=lsRvsDocInfoR#
- https://www.oecd.org/education/ceri/social-emotional-skills-study/about/
황매향 교수는 서울대학교 교육학과에서 교육상담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대학생활문화원 상담연구원, 미국 미주리대 커리어센터 초빙연구원, 한국기술교육대학교 대우교수를 거쳐 경인교육대학교 교육학과에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학습부진, 진로발달, 저소득층 아동 및 청소년 발달 영역에서 연구를 수행해 오고 있고, 현장의 상담전문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테크놀로지를 접목한 상담의 미래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ICT 영역과의 협업에도 참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