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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차는 모양과 제조방법, 차나무의 종류나 보관방법에 따라서 부르는 이름들이 참으로 다양하다.
한번 정리를 해보았다.
1. 모양에 따른 분류
보이차는 녹차나 우롱차와는 달리 잎을 압제하여 덩이차를 만드는 데 이를 긴압차라고 한다.
따라서 모양별로 이름이 다르고 무게 또한 다르다.
병차의 '병'자는 '떡 병'(餠) 자로 '둥근 떡' 모양처럼 생겼다고 붙은 이름이다. 둥근모양으로 생겼다고 하여 원차(圓茶)라고도 불린다. 병차의 크기는 다양하나 평균적으로 지름은 18-20cm이고, 두께는 2cm이며, 무게는 365g정도이다.
전통방식은 돌로 원형의 틀에 차의 양을 재어서 넣은 다음 돌로 압제한다. 이렇게 손으로 만들어진 병차는 통기성이 좋기 때문에 발효가 잘 되는 장점이 있다. 현재는 기계로 찍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이학 연구로 유명한 리푸이 선생의 <십이반나지(十二版納志>를 보면 "원차의 생산량은 일년에 6천태(말 한마리에 싣는양)에 달하였다. 말한마리에 두광주리 싣는데 한광주리에는 12통이 들어가고 한통에는 7편의 차가 들어간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7편의 차를 대나무 껍질로 포장하여 한통을 만드는 방법이 계속 전해져 내려와 나중에 이것이 "칠자병차"로 불리었다. 원차는 처음에는 "원보차"로 불렸으며 만싸(曼酒), 이방및 이우(易武)가 원보차의 원산지이며 청나라 초기에 시작되었다. 민국초년(1912)에 위에서 말한 차산등에는 38개의 차 생산 공장이 있었으며 한해에 생산하는 원보차는 6.900단(1단에 75킬로그램)그중 이우 지방이 공장이 21곳이고 생산량도 4.420단으로 가장 많았다.
당시 이우에서 문을 열고 있었던 전통 있는 차장중에서도 동경호, 복원창호, 동흥호, 송빙호, 동창호 등 11개 차장들이 가장 유명하였고 생산한 원보차는 멀리 동남아, 홍콩, 타이완 등으로 수출되었으며 '이우정산(易武正山)'의 전통 있는 상표들은 명성을 떨쳤다.
전차는 벽돌모양처럼 생겼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직사각형의 방형으로 만든 차로 평균 중량은 250g이다. 전차는 대개 4개가 한 묶음으로 1kg의 단위로 판매되는 경우가 많다. 송나라 태종 태평흥국2년(977) 북원에서 만든 용봉단차가 긴압차의 시초라고 할수 있다. 이때에 이미 윈난의 보이차가 중원및 강남에 알려져 있었으면 최고급의 긴단차는 원차라고 불렸다. 푸얼차가 각광받기 시작한 시기는 청나라 시대부터라고 할수 있다. 청초 건륭황제가 1793년 영국 사절에게 내린 선물을 보면 여아차, 보이차고, 육안차, 무이차등 여러가지였는데 전차도 28개가 포함되어 있었다.
청 도광년 간에 쓰마오 지역의 몇몇 차창들이 등급이 다른 차를 섞어 긴차와 전차를 만들어 티베트에 팔았다는 기록이 있다. 청나라 말에서 민국(1912년)초는 전쟁과 말할수 없는 사회적인 혼란으로 국가나 국민 모두 쇠퇴하고 고생스러웠던 시대로 보이차 역시 그 영향을 벗어나지 못했다. 윈난지방에서는 몇개의 국영차창이 병차, 긴차, 전차 등을 소량 생산했을 뿐이다.
1955년 샤관차창에서는 전차를 시험 생산하여 윈난의 리쟝, 티베트 등 이전에 긴차를 마시던 소비자들에게 선을 보였다.
1967년 샤관차창에서는 심장모양의 긴차 원료로 전차를 본격적으로 만들었다. 그후 1970년대에는 쿤밍차창에서도 전차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쿤밍차창은 1938년 설립되었는데 처음의 명칭은 푸싱차창이었다. 린창의 멍쿠와 펑산지방의 차를 원료로 타차를 만들었다.
1949년에 쿤밍차창에서는 청차, 화차뿐만 아니라 보이방차와 전차등도 생산하기 시작했다.
개혁 개방의 물결과 시장 경제방식에 적응하지 못해 1994년 쿤밍차창은 문을 닫았다.
1973년 쿤밍차창과 멍하이 차창이 악퇴발효 공법을 개발하였고 이후 두곡 모두 숙차전차를 말들었다. 멍하이 차창에서는 1973년 1차로 속칭'73후전'으로 불리는 숙차전차를 생산했다.
쿤밍차창의 반세기 역사중에서 가장 많이 팔린 제품중 하나가 7581전차로 연 판매량이 120톤에 달하였다.
7581전차는 가장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생산 판매한 숙차중 하나로 대표적인 숙차중 하나이다. 요즈음에 시장에서는 70년대 초기에 생산한 7581전차를 '조향전'이라고 부르고 70년대 중기에 생산한 7581을 '73전', '문혁전'이라고 부른다.
현재 윈난지방의 쓰마오, 시쌍반나, 린창, 바오산 등의 대부분의 크고 작은 보이차 공장들은 전차를 생산하고 있다.
타차는 만두나 버섯모양처럼 생긴 차를 말한다.
타차의 경우에는 중량이 다양하며 크기에 따라 대타차, 중타차, 소타차라고 불린다.
소타차는 한번에 우려먹을 양 정도인 5g이고, 중타차는 100g, 대타차는 250g이다.
타차는 모양이 엎어높은 사발 같으며 뒤집어도 사발 모양의 둥우리 같다.
타차라는 명칭은 단차(團茶:tuancha)음이 변해 타차(tuocha)가 되었다는 설도 있고 또 쓰촨(四川)지방의 투오강 지방에서 주로 팔려 타차로 불리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그 이름의 유래가 무엇이든 타차는 윈난의 차 중에서도 상당히 오래 전부터 만들어 온 형태로 추정된다. 명나라 만력연간(1573~1619)에 나온 <전략>에는 "선비와 서민들이 모두 마시는 것이 보차이며 이는 쪄서 둥글게 덩어리로 만든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당시에도 산차를 쪄서 비벼 둥글게 덩어리로 만들었음을 알수 있다.
지금 같은 모양의 타차는 청나라 광서 28년(1902)에 쓰마오 징구현의 꾸냥차가 변해서 만들어졌으며 그 시절에는 곡차라고 불렀다. 이무렵 샤관차창에서는 심장모양의 긴차를 주로 생산하였고 병차 생산은 극히 일부분에 국한되었다.
민국5년(1916)에 영창상 차창이 차의 품질을 높이고 모양을 키우고 규격을 통일하고 운반과 저장의 편의와 고객의 요구에 부합하여 심장 모양의 긴차를 250그램 무게의 사발 모양의 타차로 변경 생산하였다.
민국(1912년) 초기 교통이 편리한 샤관이 또다른 보이차의 가공과 집산의 중심지로 부각되었다.
공업과 상업이 발달한 샤관에는 1920~1930년 무렵에 이미 20여군데의 차장에서 보이차를 생산하고 있었는데 주로 긴차와 타차를 생산하였다. 일본과 전쟁하던 시기에는 동남아로 보이차를 수출하던 길이 모두 막히고 다만 윈난 서북 지역과 미얀마를 연결하는 길이 막히지 않아서 샤관지방으로 차상들이 모여들었다. 그래서 많은 차창들이 생겨났으며 샤관차창을 포함한 대부분의 차창들이 1941년 무렵에 생겼다. 타차를 빼고는 샤관차창을 이야기 할수 없다.
차를 반드는 제조과정 중에 증기를 쐬고 나서 특정한 모양으로 압축하지 않고 쇄청모차 원래의 형태로 흩어져 있는 상태의 보이차를 말한다.
산차는 다시 모차와 정체차로 소분류 될 수 있는데 모차란 아직 차잎을 등급으로 분류하지 않은 쇄청모차나 쇄청모차를 인공발효 시킨 모배차(숙차) 자체를 가리키며 정제차란 모차의 길이나 두께, 품질에 따라 일정한 등급으로 분류해 놓은 것을 말합니다. 산차의 경우, 긴압한 차에 비해 마시기 편하고 발효도 비교적 빠른 편이지만 습을 먹기 쉽고 시간이 지나면 맛도 긴압차에 비해 떨어진다.
긴차(緊茶)
긴차와 타차 그리고 병차 모두 "쪄서 둥글게 덩어리로 만든차"에서 유래한 것으로 처음에는 모두 긴차라고 불렀다.
심장형 긴차를 처음 만든 곳은 푸하이(맹해)이고 티베트 사람들을 위한 전통적인 차이다. 최초로 만든 긴차는 장거리 운송에 적합하지않고 너무 단단하게 눌러 만들어 안쪽에 곰팡이가 피어서 푸하이에서는 이것을 개선하여 자루가 달린 심장형으로 만들었다. 심장형 긴차는 포장된 차와 차 사이에 공간이 생겨 공기가 잘 통하여 마방의 장기간 운송 도중 곰팡이가 생기지 않게 되었다. 당시에 '보염패'라는 상표로 7개를 한통으로 하여 죽순껍질로 포장했다.
이푸이 선생의<12반나지(版納志)>의 기록에는 "12반나의 차 시장은 강내와 강외로 나누는데 강내는 이우가 그중심이고 강외는 푸하이가 그 중심이다. 강내의 이우 이방은 병차를 주로 만들었고 강외의 푸하이 방면에서는 티베트로 팔리는 긴차와 전차를 주로 만들었다. 한마리 말에는 두 광주리를 실었는데 두 광주리에는 36개의 작은 포장을, 한 포장에는 7개의 긴차 즉 한마리 말에는 252개의 긴차를 실었다. 한개 무게는 6.8냥으로 252개의 무게는 107근(옛날 한 근은 600그램으로 64.2킬로그램)이다. 긴차의 연 생산량은 가장 많았을때는 3만 마리의 말에 싣는 양(2.000톤 정도)이었다." 여기서 당시의 푸하이 긴차의 명성을 살펴 볼수있다. 예를 들면 전통 있는 정흥차장에서 만든 긴차는 부드럽고 연한 잎으로 적당히 단단하게 만들어 여러번 우려도 맛이 진하고 조화롭고 부드러우며 향기도 짙고 잡 냄새도 없어서 매우 환영을 받았다. 또 당시에 푸얼현 멍징의 몇몇 차장에서도 긴차를 만들었다.
샤관의 큰 차장이던 마오형차장에서 사람을 푸하이에 보내 긴차의 제조기술을 배워 긴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샤관의 차장들에서는 엄격하게 품질관리를 하였고 그 전통을 이어 타차와 긴차를 샤관차창의 특산품으로 발전시켰다.
1930년대에 와서도 푸하이는 티베트로 팔려나가는 긴차의 중요한 생산지였다.
판허쥔선생이 쓴 <푸하이 차창 창건에 대한 회고>를 보면 "긴차는 티베트 사람들에게 하루라도 없어서는 안될 생활필수품으로 그 곳에서 팔리는 양은 대단히 많다. 긴차를 만드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미리 사서 쌓아둔 쇄청모차를 가지고 겨울에 솥에 찐 다음에 자루에 넣고 비틀어 압력을 가해 심장 모양으로 만든 뒤에 40일 정도를 처마 밑 그늘에 보관하면 자루 안은 40℃ 정도의 열이 발생하고 발효가 일어난다. 자루를 풀어 차를 꺼내서 면지로 포장하는 것이 일반적인 포장법이다. 계절을 맞춰 움직이는 마방을 기다려 말에 실어 운반한다. 먼저 미얀마의 징동, 컹이에서 기차에 옮겨 실은 다음 양곤에서 배로 옮겨 인도 캘커타를 거쳐 티베트로 가져가 팔았다"
1940년 50년대에는 멍하이 지역의 긴차 생산은 미미해지고 샤관차창이 긴차를 주로 생산하고 그 품질도 인정되었다.
1960년대 계획경제 시기에는 멍하이 차창은 병차를 주로 생산하고 샤관차창은 긴차와 타차를 생산하도록 배분되었다.
1967년 운송 수단이 시간이 많이 걸리던 옛날의 마방에서 기차로 바뀌고 1964년 총공사에서 기계를 이용한 생산에 불리한 긴차 생산을 중지하고 벽돌 모양의 전차를 생산하도록 결정하여 심장형 긴차의 생산은 중단되었다.
1986년 샤관차창에 참관 온 10대 판첸 라마의 요청으로 심장형 긴차는 다시 생산을 시작하였으며 판첸라마는 그자리에서 500단을 주문했다 다시 만들기 시작한 긴차를 반선 긴차라고 불렀으며 보염을 상표로 사용하고 생산량도 차츰 늘어 이전의 양을 회복했다. 그 이후로 샤관차창의 긴차는 티베트 뿐만아니라 변경의 유목민 회족등에게서 깊은 사랑을 받았으며 해외로도 수출 되어 반선긴차는 보이차 명품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2. 제조방식 / 차종 / 보관방식에 의한 분류
1)제조방식에 의한 분류
보이차 시장에서는 두 가지 형태의 가공법을 통해 만들어진 보이차가 유통되고 있다. 이를 흔히 생차(生茶), 숙차(熟茶), 청병(靑餠), 숙병(熟餠) 등으로 부르고 있다. 이러한 용어는 학술적 용어가 아니기에 상인 혹은 차인에 따라 다르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일반적으로 운남 대엽종 찻잎으로 쇄청법을 통해 둥근 모양으로 압제시켜 상품화하는 병차를 '청병'이라 부르고, 운남 대엽종 찻잎으로 쇄청법을 통해 만든 흑차(黑茶, 미생물발효)를 둥근 모양으로 압제시킨 후 상품화하는 병차를 '숙병'이라 부른다. 그러나 일부에서 운남 대엽종 찻잎으로 쇄청법을 통해 둥근 모양을 압제시킨 '청병'을 자연발효를 통해 상품화하는 병차를 '숙병'이라 부르는 경향도 있다.
이에 청병이든 숙병이든 자연환경을 통한 긴 시간의 발효(산화)는 보이차 찻잎 속의 내용물을 충분히 재현할 수 있는 매력의 원천이기도 하다.
생차(生茶): .운남대엽종차잎을 가지고 쇄청한 모차를 원료로 인공발효나 악퇴처리 없이 원료상태의 모차, 또는 긴입(틀에 넣어 누르는 과정)과정을 통해 여러형태로 만들어지는 전통적인 방식의 보이차를 말한다.
처음 제품을 만든뒤 차의 원래의 차성이 강하고 비교적 숙차에 비해 자극적이고 탕색도 엷은 황색과 녹색의 중간정도의 색을 띈다.
숙차(熟茶) :운남대엽종차잎을 가지고 쇄청한 모차를 원료로 중국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 따라 1973년 맹해차창과 곤명차창이 공동으로 연구 개발한 악퇴발효의 인공적인 후발효기법으로 만들어진 차를 말한다. 현대적 보이차라 불리기도 한다. 처음 제품을 만든 뒤 차의 본래 차성이 약하고 가공한 인위적 발효 냄새가 강하고 탕색도 흑색과 밤색 사이지만 1,2년 뒤 인위적 발효냄새가 옅어지며 탕색 또한 포도주 색을 띠고 맛도 맑아 진다.
2)차종에 의한 분류
교목(喬木):운남에 자생하는 야생 대엽종의 차나무를 말한다. 교목은 나무 높이가 5M이상이 되며 큰 교목의 경우 20M이상 자라기도 한다 .이러한 교목은 자연적으로 씨가 날리던(야생 보이차), 사람들의 손을 거치지 않고 수백년, 또는 수천년 성장한 것들이다. 오직 자연환경에 의지하고 자연환경의 변화에 순응하며 자라게 된다. 교목차나무의 특징은 잎이 비교적 크고 두꺼우며 잎가장 자리에 톱니바퀴 흔적이 비교적 적고 싹이 굵고(백아포차) 분명하며 잎맥이 상당히 두드러져 있다. 교목 보이차는 향이 강하고 진하며 맛이 두텁지만 포랑산지역 외 차의 경우 쓴맛이 적고 단맛이 강렬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관목(灌木):인공적으로 재배한 차나무로 키가 작음. 관목은 땅에서 통나무없이 가지가 나서 사람의 키 아래서 차잎을 채취하기 쉬운 관리가 원활한 나무를 가리킨다. 운남 대부분 차밭이나 차원들은 인공 증식과 집중재배를 통해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품종이다. 우리나라 보성의 녹차밭을 상상하시면 좋을 듯 하다. 하지만 밀식(밀집해서 차나무를 심기)을 하기 때문에 비료를 주어야 하며 벌레가 많이 생겨 농약을 쳐야하는 폐단이 있다. 자연적인 교목 보이차에 비해 맛이 떨어지고 단조롭고 내포성도 떨어진다.
3) 보관방식에 의한 분류
예전 보이차의 시장에서는 청병을 긴 시간을 거쳐 자연발효를 통해 상품화된 제품을 '건창'공법이라 했다. 그리고 다른 개념인 쾌속공법을 통한 인위적인 발효, 즉 미생물발효를 통해 상품화된 제품을 '습창'공법이라 부르는 것이 최초의 용어해석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들이 요즘들어 재해석되었는데 인위적이 아닌 공간 곧 상대습도 80% 이하의 자연적인 장소에 청병 혹은 숙병 푸얼차를 저장하는 공법을 '건창법'이라 하고, 이와 반대로 상대습도 80% 이상의 공간에 청병 또는 숙병을 저장하여 진일보 쾌속발효시킨 것을 '습창법'이라고 한다. 혹은 쇄청모차 곧 1차가공을 통해 만들어진 쇄청녹차 반제품인 모차(毛茶)를 습창 저장법을 통해 쾌속발효시킨 수 수증기를 통해 모양을 압제하는 방법을 택하기도 한다.
습창법이라는 공법을 처음으로 사용한 곳은 중국 광동지역이다. 오늘날 이러한 방법은 이미 상용화되어 광동뿐만 아니라 운남, 심지어 해외의 월남, 홍콩, 타이완 등지에서도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습창법을 통해 만들어진 보이차라고 해서 모두 나쁜 것은 아니다. 상품적 가치가 있는 것도 많은데, 이러한 제품들은 모두 저장공간의 습도 및 온도를 성공적으로 조절한 경우들이다.
그러나 대부분 습도 및 온도의 조절 실패로 생긴 곰팡이로 인해 습창보이차는 저질품으로 인식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건창(幹倉):습도 80% 이하로 통풍이 잘되는 환경에서 발효시키는 저장방식으로 햇빛이 들지 않고 바람이 잘 통하는 건조한 환경의 창고에서 보관하는데 자연적인 발효가 진행되기 때문에 같은 품질의 보이차를 습창과 동시에 보관할 경우 차맛이 더 뛰어나다.
습창(濕倉):균류의 활동을 활발하게 하여 쾌속 발효시키기 위해 공기 중 80%이상의 습도와 고온다습한 지역(중국의 광동성, 말레이시아 등)이나 축축하고 습한 지역(지하실, 동굴 등)에서 묵힌 차를 말한다.
발효를 빠르게 진행 시키기 때문에 보이차 특유의 맛과 향, 그리고 성분의 파괴와 손상을 많이 입을 수 있습니다.
단기간 습창에 보관한 보이 숙차을 진년차라 속이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