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숙의 <노란 구두> 작품론
형상과 인식의 미학
여세주
문학은 형상이면서 인식이다. 대상을 특정한 형상으로 치환하는 과정은 그 대상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 도달하는 경로가 된다. 바꾸어 말하면, 문학은 형상을 만들어서 하는 인식이며, 새로운 인식을 위해서 만드는 형상이다. 수필은 경험을 다시 기술하여 형상을 만들고, 형상을 통해 새로운 인식에 이른다. 교술문학인 수필은 인식을 형상 속에 감추는 다른 문학 장르와는 달리, 작가의 경험이 사유의 여과기를 거쳐 보편적 진리 인식에 이르는 과정을 그대로 드러낸다. 경험이나 사유를 덧붙이고 확장하면서 인식에 이르는 전 과정을 서술한다는 점에 수필의 장르 미학적 특성이 있다. 김응숙의 <노란 구두>는 수필문학의 이와 같은 본질을 충실히 구현한 작품이다. 경험에서 사유를 끌어내어 인식에 이르는 과정에서 작가의 노련미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작품의 첫 단락은 매우 특별한 장면이다. 침대 난간을 잡고 천천히 몸을 일으켜 침대 아래로 발을 내리고 간신히 일어서는 동작을 매우 미세하게 묘사하여 서사적 긴장을 불러일으킨다.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와 같은 이 장면은 직립보행, 즉 ‘탈피’라는 이 작품의 핵심 담론을 예고하고 암시한다. 시선이 “각도기의 눈금”을 따라 움직이다가 직각에서 멈추고 발을 내려 바닥에 닿았어도 혼자서는 설 수 없어 딸의 부축을 받는다는 묘사는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으나 직립보행의 시작을 알리는 시각적 형상화다.
작가는 경험을 시간적 순서에 따라 연속적으로 서술하지 않고, 인식의 단계에 따라 분절된 에피소드로 분산시키고 있다. 경험에서 사유를 끌어내고 확장하는 데는 은유를 활용한다. 척추 골절로 인한 장기 입원과 시술을 거쳐 다시 걷게 된 경험을 애벌레가 나비로 탈피하는 과정으로 은유한다. 이러한 은유적 사유를 한꺼번에 제시하지 않고 경험의 분절에 따라 단계적으로 펼쳐 인식의 층위를 점차 심화시키는 방식으로 작품을 구성한다. 인식은 화자의 사유 과정을 통해 단계적으로 제시된다. 수필의 교술적 본질을 충실히 구현한 것이다.
병실 창밖의 봄 풍경과 노랑나비의 등장은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첫 계기다. 이는 노랑나비들의 군무가 펼쳐졌던 텃밭과 배추벌레에 대한 기억을 불러오고, 배추벌레는 인식을 위한 은유적 매체가 되기 때문이다. “한 달 동안 나는 커다란 애벌레가 된 기분이었다”라는 은유적 유추, 즉 척추 골절로 한 달 동안 꼼짝없이 침대에 등을 붙이고 조금씩 꿈틀거리며 지내야 했던 화자와 배춧잎에 붙어 있는 애벌레가 닮음의 관계로 지각된다. 물컹거리는 존재, 척추를 상실한 존재, 중력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존재로서 애벌레와 화자는 닮은꼴이다. 이러한 동일성의 유추는 동시에 저항을 불러온다. ‘이다’라는 동일성과 ‘아니다’라는 차이가 가져오는 변증법적 긴장이 새로운 인식에 이르게 한다. 당연하게 여겨왔던 수직의 세계를 잃어버리고 무기력 속에 치대지는 몸의 감각에서 인간의 존엄이 뭉그러진다는 인식이 그것이다. “수직의 세계를 잃어버리자 인간의 존엄이 뭉그러졌다”는 문장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명제에 해당한다. 걷는 행위, 즉 직립보행이 갖는 존재론적 의미를 전면화한다. 이는 곧 인간다움의 조건에 대한 인식이다.
배추벌레가 어쩔 수 없는 과정을 온전히 받아들여야 물컹거리는 몸에서 탈피하여 나비가 되듯이, 척추 시술 과정은 걷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겪어내야만 하는 인고의 과정이다. 다시 걷기 위해서는 망치질의 통증과 공명을 견딜 수밖에 없는 과정을 나비가 되어 날기 위해 애벌레가 고치 속에서 견뎌야 하는 과정과 동일시한다. 이러한 또 하나의 은유적 사유를 통해 비로소 인고의 과정은 탈피의 과정이라는 인식에 이른다. 인간이 걷는다는 것과 나비의 날갯짓은 인고의 통과의례를 거쳐서 획득된다는 깨달음이다.
인간의 직립보행이나 척추가 치러야 하는 대가에 관한 인류진화사적 설명은 모두 직립보행이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존재조건임을 확증하기 위한 사유의 확장이다. 척추의 S자 곡선, 골반의 변화, 요추에 가해지는 부담은 탈피 과정의 흔적이며, 직립보행은 인간 존엄의 기본 조건이라고 규정하는 데서 작가의 인식은 보편적 인식으로 승격된다. 이와 같은 인식은 독자적인 논증으로서가 아니라, 앞서 축적된 경험 위에서 설득력을 획득한다. 이처럼 수필에서의 인식은 형상 밖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형상 내부에서 길어 올려져야 한다.
노랑나비로 은유한 노란 구두는 일상적인 삶으로의 환원을 함의한다. 화자가 노란 구두를 신고 거리를 활보하는 행위를 팔랑팔랑 날아가는 나비와 겹쳐 놓는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완전히 회복한 상태를 가시화하는 장면이다. “노랑나비 옆으로 나름의 탈피를 겪었을 흰나비, 검은 나비들이 팔랑팔랑 날아가고 있다”는 마지막 문장은 직립보행에 대한 경애심의 표현으로도 읽힌다. 인식의 종착점은 관념이 아니라 삶이라는 사실을 확인시키는 장면이다. 수필이 인식을 드러내되, 그것을 삶의 감각 속에 안착시키는 장르임을 잘 보여준다.
<노란 구두>에서 새로운 인식에 이르는 방식은 은유적 사유다. 은유적 사유를 세 차례나 연쇄적으로 확장한다. 척추 골절로 걷지 못하는 화자는 애벌레로, 수술대 위에서 견뎌야 하는 통각의 시간은 탈피로, 직립보행은 노랑나비의 날갯짓으로 확대된다. 즉, 은유적 사유는 경험의 분절 마디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단계로 이동한다. 따라서 이 작품에서 경험을 통한 사유 확장의 원리는 은유적 전환에 있다. 경험이 은유를 낳고, 은유가 다시 경험을 깊게 인식하게 만드는 상호작용 속에서 수필의 담론이 자라난다. 이 점에서 이 작품의 은유는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새로운 인식에 이르게 하는 ‘의미론적 혁신’을 가져온다.
김응숙의 <노란 구두>는 일상의 특별한 경험에서 은유적 사유를 연쇄적으로 확장하여 매우 개별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인식을 끌어내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서술한 수필이다. 그것이 다른 수필과 차별화되는 이 작품만의 독창성이며 우수성이다. 문학은 형상이면서 인식이라는 명제를 수필이라는 장르 안에서 설득력 있게 증명하고 있다.
-'수필미학' 수상작품집(2026)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