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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근대사에서 일제 강점기는 그야말로 치욕의 역사로 기억되고 있다. 나라를 잃고 식민통치 하에서 굴욕적인 삶을 살아야 했던 이들에게, 일본의 항복으로 끝난 해방은 새로운 시대를 열어주는 계기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타의에 의해 남북으로 분단되고, 그 상황이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여전히 남과 북으로 갈려 서로 다른 이념으로 대결 구도를 형성하고 있고, 이제는 ‘지구상의 하나 남은 분단국’이란 불명예스러운 호칭을 지니고 있다. 최근 남북 교류를 위한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북미 관계가 교착 상태에 놓여 있어 조금은 우려스러운 면도 있다 하겠다.
지금의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기 위해서는, 해방으로부터 한국전쟁까지의 이른바 ‘해방공간’의 역사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이 시기의 남과 북에서 진행되었던 정치경제적 상황에 대한 연구는 충분히 이뤄져 있으며, 해외에 있던 이들의 귀환 과정 역시 적잖게 진행되었다. 최근 이산(離散)으로 번역되는 ‘디아스포라(diaspora)’라는 용어로 재외동포들의 문학과 역사에 대해서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연구들이 어쩌면 그동안 한반도의 문제에 집중되어 있던 시각을 보다 열린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이 책은 특이하게도 일본의 항복 선언으로 종전에 이른 ‘해방공간’에 한반도에 남아있던 일본인들에 대해 탐구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일제 강점기의 기억으로 인해 일본에 대한 인식이 그다지 좋지 못햇으며, 최근 아베정권의 그릇된 시각으로 인해 촉발된 ‘무역전쟁’으로 양국의 관계는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그러한 시점에서 우연히 읽게 된 이 책을 통해, 현재의 일본 우익들의 편향된 인식이 어디에서 출발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해방정국에서 당시 한반도에 남아 있던 일본인들에 대한 인식이 좋지 못했을 것이란 것은 너무도 자명하다 하겠다.
당시 한반도에 살던 일본인들 역시 매우 다양한 층위를 구성하고 있었다는 것을 비로소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고 적대적인 한국인들의 시선 속에서 지내야 했던 이들에게, 한반도에서의 당시 생활은 때로는 공포와 고통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대부분 일본 쪽의 자료를 토대로 진행된 연구이니만큼, 남아 있는 기록들은 대체로 일본인의 시각에 의해 치우쳐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당시 한반도에서 기득권을 누리던 이들과 평범한 일본인들의 처지는 천양지차의 모습을 보였으며, 특히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일본인들의 처지는 본토인들과도 달랐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일본으로 귀한을 했지만, 패전국이었던 일본의 상황이 그들을 제대로 품어주지 못해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는 것이다.
물론 당시 일본인들의 귀향을 이용해서 경제적 이득을 취했던 한국인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미군정의 미온적인 정책으로 친일파들에 대한 정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으며, 해방 정국에서 오히려 일본인들과 친일파들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오히려 그릇된 역사에 대한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 오늘날 ‘반일종족주의’ 운운하는 자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단지 지나간 역사라고 치부하기에는 우리에게 남겨진 정신적 상처는 너무도 깊고도 크다고 생각된다.
이 책에는 ‘1945년 패전을 맞은 일본인들의 최후’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그리고 6장에 걸쳐 시간적 순서에 따라 꼼꼼히 당시 상황을 재현한 내용을 통해서, 우리가 잊고 있었던 당시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라 이해된다. 비록 일본 쪽의 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지만, 저자는 비교적 객관적 시각을 유지하면서 당시의 상황을 재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지니는 가치는 적지 않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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