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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월
1일 새해를 시작하면서 한 해를 어떻게 보내나 했는데 봄꽃이 피고 여름의 녹음이 우거지면서 어느덧 가을의 문턱에 와 있다. 천안함 사건과 월드컵 축구 그리고 무더위와 장대비까지 숨가쁘게 달려온 시간이 지나고 코스모스가 피는 계절이 온 것이다. 아침에 가벼운 기분으로 식사를 하는데 침통한 표정의 아내는 어제 진단결과 장모님께서 골반에 종기가 생겼다며 심각해 한다. 외관상으로 문제가 없어 보이는 장모님이지만 암을 수술한 환자로서 재발의 위험성은 언제나 존재할 수가 있다. 오전에 주말반 수강료 200만원과 별개로 170만원을 아내의 통장에 입금했는데 차량유지비 등 이번 달 지출이 약 450만원이다. 북한산 산행을 시작하여 평창동 형제봉 방향으로 올랐고 정상에서 바라본 9월의 도심은 여러 개의 장난감을 숲속에 이어 놓은 듯 했다. 3시경 학원으로 들어가 가져온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었고 오후에는 매월 지불하는 복사기 임대료 조정과 공과금 등을 처리했다. 추분이 가까워 오면서 낮이 짧아져 수업을 마친 6시30분 벌써 어둑해졌고 논술교실로 이동하여 보충수업을 마친 뒤 12시에 집으로 돌아왔다.
2일 밤에 비가 내리고 새벽에는 태풍이 불어 잠을 이룰 수가 없을 만큼 소리가 요란했는데 바람에 아파트까지 무너질 것 같았다. 밖에서 들려오는 나무 부러지는 소리와 간판 뒹구는 소리 등 난리가 난 것 같은 이런 공포는 살면서 거의 처음이다. 아침이 밝으면서 안산을 바라보니 사시사철 위풍당당하게 서 있던 거대한 미루나무가 하늘만 휑하게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밤새 몰아친 태풍에 부러진 것인데 봄부터 가을까지 진녹색으로 태양과 맞서고 겨울에는 혹한 추위를 견뎌낸 우리 19층과는 동반자 같은 존재였다. 아침이나 저녁이나 거실에 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와 10여 년을 반가움으로 지냈는데 허탈함이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었다. 일찍 일어난 딸도 놀라면서 응시하고 특히 아내는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나무였다면서 오랜 친구를 떠나보낸 양 창문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오전에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고 학원으로 가면서 보니 창경궁 주변의 가로수들이 뿌리 채 뒹굴고 있어 어제의 위력을 짐작케 할 정도였다. 오후에 시골에서 고구마를 가져다가 판매를 한다는 고향의 정홍이 형한테 연락이 와서 일단 우리와 영식이네 집으로 각 1박스씩 주문을 했다. 세상을 떠날 때 마지막에 만났을 만큼 큰 형님과 가까운 사이였지만 인정이 많아 시골에서부터 나도 좋아했던 형이다. 고구마를 홍보하고 판매하는 역할을 내가 하여 형을 도울 수 있을까 오후에 주변 사람들에게 전화를 하여 주문을 받았다. 10킬로 1박스에 3만원으로 내가 주소를 넘겨주면 형이 택배로 보내는 방식으로 두 사람이 동시에 판매하는 것이다. 수업을 마친 저녁에 남영동에서 영식이를 만나 고구마 건에 대하여 이야기를 했고 형을 돕는 판매자가 결국 한 사람 더 늘어났다.
3일 흐린 아침 아들과 딸이 학교에 간 뒤 종로 3가 역무실에서 아들의 핸드폰을 습득했다는 전화가 왔다. 번호를 확인하니 내가 보호자로 되어 있어 연락을 했다는 것인데 곧장 나가서 핸드폰을 찾고 오면서는 우체국에 들러 춘천마라톤 출사표 상품과 어린이대공원 자유이용권을 받았다. 점심쯤에 자동차 검사를 하러 장안동에 갔다가 근처에서 식사를 하는데 중고차 매매단지가 있는 곳이라 호객행위 업자들로 식당이 어수선했다. 검사를 마친 오후에 장안동을 출발하여 학원으로 갔다가 저녁에는 논술교실로 이동하여 보충수업을 하고 집으로 내려왔다. 밤에 식사를 대신하여 엊그제 주문한 고구마를 삶아서 먹었는데 맛도 있었지만 시골에서의 오래된 기억이 떠올랐다. 방안에 고구마를 산더미처럼 쌓아 두고 부족한 밥을 대신하여 낮이나 밤이나 주식으로 간식으로 끊임없이 먹었었다. 공부할 때나 외출할 때 심지어 싸우면서도 손에는 고구마가 들려 있었으니 정이 가지 않을 수 없었고 하지만 고향을 떠나서는 관심이 멀어졌다.
4일 일찍 학교에 가는 딸에게 중간고사 열심히 준비하라 격려하면서 어제 받아온 대공원 자유이용권을 전해주었다. 오전에는 1차로 주문했던 영식이 동선이 친구들 몫까지 고구마 3박스 값을 형에게 입금해 주었더니 고맙다는 문자가 왔다. 어제 잠을 이루지 못한 탓으로 컨디션이 좋지 않아 오전에 바로 학원으로 나갔고 수업을 준비하면서 점심에는 삼계탕을 사 먹었다. 내일은 일요일이라 논술교실 수업이 많고 신규로 오는 학생까지 있어서 오후에 교재와 프린트를 미리 준비하며 꼬박 시간을 보냈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와 식사를 하고 나니 금방 9시가 지났고 수업을 마친 아내는 10시가 되어 논술교실에서 내려왔다. 아들이 내일부터 국어수업을 듣는다는 문자를 보냈다고 아내가 전하는데 요즈음 등교할 때 인사도 하더니 2학기 들어 바람직한 변화가 생겼다. 물론 수업만 듣는다고 성적이 오르거나 대학이 정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라도 진지하게 공부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좋겠다. 무슨 일이든 결과 못지않게 과정도 중요한 법인데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하는 것만으로도 박수를 받을 가치가 충분히 있다.
5일 새벽에 흐리더니 아침이 되면서 또 비가 쏟아진다. 8시경까지 꼼짝하지 않고 있었더니 아내가 들어와 오늘 일요일 9시부터 논술교실 수업이라고 알린다. 아침에 식사를 마치고 교실로 가는 중에 수유리 화계사에서 백일기도를 마치고 현재는 도봉산에 오른다는 영식이 전화가 왔다. 엊그제까지 함께 술을 마신 친구가 백일이나 기도를 했다니 아마 불교신자인 그의 부인이 다니는 동안 태우고나 다니지 않았을까. 논술교실 수업을 시작하기 전 오늘은 맨 먼저 아들이 들어와 자리를 했는데 그 동안 불성실한 모습이었더라도 다시 지켜보며 열심히 가르칠 것이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내려오는 점심쯤에 낮이 밤처럼 어두워지더니 식사를 하고 다시 올라갈 때는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남들은 일요일을 휴일이라고 여유롭게 지내지만 우리 부부는 논술교실에 오르고 내리며 일주일 중에서 가장 바쁘게 보낸다. 그래도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언제나 초심의 마음에서 최선을 다 할 것인데 일요일에 일하는 사람이 물론 우리뿐 만은 아니다. 7시에 집으로 내려와 저녁을 하려는 중에 이번에는 아내가 논술교실에 오르고 식사를 미리 마친 딸은 TV앞에 바짝 다가서 있다.
6일 어제 늦게까지 뒤척이다가 새벽에 아들이 들어온 후 잠이 들었다. 수면 시간이 짧다보니 아침에 컨디션이 좋지 않아 식사를 마친 후 홍제천에서 한강을 돌아오는 13킬로 1시간30분을 달렸다. 바람이 선선하여 3일 전보다 몸은 가벼웠어도 흐르는 땀은 어쩔 수가 없었고 바로 체육관으로 이동하여 기구운동을 더 했다. 아내는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동학이 엄마를 위로한다고 잠원동에 갔는데 입원하여 치료를 받는 다른 병보다 이런 증세는 더 문제다. 점심을 먹은 뒤 논술교실에 올라가 아내를 대신하여 문을 열어두고 학원으로 가면서 거리의 가로수를 보니 가을의 그림자가 어리어 있다. 학원에 도착하여 평소처럼 수업을 하고 논술교실에서 사용할 프린트를 준비하며 보냈더니 오늘도 금방 하루가 지났다. 집으로 돌아온 저녁에 아내가 김치를 외부에서 사 와 맛있게 먹었는데 나는 평소에도 김치와 연관된 음식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다.
7일 이제는 새벽이 추울 만큼 기온이 내려갔고 오늘은 남해안에 태풍이 상륙하여 서울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뉴스가 나왔다. 식사를 마치고 이번 주 수업할 교재를 정리한 뒤에 월드컵 경기장을 돌아오는 마라톤 연습 1시간10분 12킬로를 달렸다. 햇살은 따가웠어도 청명한 하늘과 시원한 바람까지 가을의 자락은 도심뿐 아니라 갈대밭이 있는 홍제천에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체육관 1년 기한이 끝나 며칠 동안 일일 티켓을 구매하여 다녔는데 그나마 오늘은 지갑을 두고 와서 운동을 더 못하고 집으로 들어갔다. 점심을 먹은 오후에 아내는 이대부고 학부모 모임으로 외출을 했고 나도 학원에 나가서 평소처럼 수업을 하며 저녁까지 보냈다. 집으로 돌아온 밤에 마트로 나가 19.5도 안동소주를 사다가 마셨는데 맛이 더 있는 것 같았고 함께 산 문어도 안주로 제격이었다. 식탁에서 성찬을 즐기는 나와 별개로 딸은 수학과목 과외에 열중이고 아내는 여수 댁 아주머니와 걷기를 한다며 늦은 시간 집을 나섰다.
8일 어제 마신 것이 유명한 안동소주라서 그런가 아침까지 머리가 맑았다. 아들과 딸이 일찍 학교에 가고 평소에 다이어트를 한다며 약을 먹던 아내는 다리가 저려온다며 이른 시간부터 인상을 찌푸린다. 오전에 마라톤을 하려다가 체육관에 가서 운동을 먼저 하고 평창동으로 이동하여 형제봉을 거쳐 대성문에 올랐다. 블랙야크 등산복을 입은 모습이 전문 산악인 같았는데 바람까지 선선하게 불어 등산하기에 더 없이 좋은 날 산등성이에서 가져온 점심을 먹었다. 3시에 하산하여 학원으로 들어가 평소처럼 수업을 했고 저녁에 만나기로 한 영식이는 개인 일정으로 약속을 다음으로 미루었다. 집에 9시경 들어가 식사를 하는 중에 논술을 마친 아내가 내려왔고 아들은 12시가 지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9일 새벽에 거실로 나갔더니 가족들이 잠을 자고 있어 적막했고 무악재를 넘어가는 차량들만 이 곳이 삶의 현장임을 알리는 정도였다. 다시 안방으로 들어가 어떤 어려움이라도 극복하는 삶의 자세 그리고 하루를 살아도 최선을 다하는 나를 다짐하며 아침을 기다렸다. 7시에 잠깐 잠이 드는가 싶었는데 거실에서 아내가 켜 둔 라디오와 등교를 준비하는 아들과 딸의 소리에 다시 일어났다. 아침식사를 하는 중에는 콩나물국이 맹물처럼 싱거워 밥을 팽개치고 체육관으로 나가서 땀을 흘리는 운동으로 스트레스를 풀었다. 낮에 고구마를 판매하는 형을 만나러 송파에 가려다가 집으로 왔는데 사람이 오거나 가거나 TV만 보고 있는 아내 때문에 답답함이 많았다. 라면으로 혼자 점심을 먹은 뒤 학원으로 나가서 전기료 7,8월분을 입금하고 지인들에게 판매한 고구마 5박스 대금 15만원을 형에게 보내주었다. 전기료에는 TV수신료가 첨가되어 KBS 고객센터에 학원이라고 항의를 했더니 일부를 환불해 주어 엉성한 행정처리에 웃음이 나왔다. 저녁에 정식이를 만나 신설동에서 저녁을 먹고 집으로 오면서는 링컨 선생과 12시가 지나서까지 술을 마시고 돌아왔다.
10일 새벽에 들어와 자다가 술이 덜 깬 상태로 아침에 일어났다. 체육관에 가서 운동부터 시작하고 마치자마자 매제 선친 49제에 참석하려고 파주 보광사로 서둘러 출발했다. 벽제 화장장 근처를 지나면서는 비가 내려 앞을 분간할 수가 없었고 도착한 보광사 대웅전에서는 2시부터 제를 지낸다고 상차림으로 분주했다. 가족과 친지들이 많이 모였는데 오늘의 상주인 매제가 보이지 않아 궁금했고 나중에 동생으로부터 바빠서 참석을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르신께서 극락으로 가는 마지막 길에 아들인 매제와 그의 형까지 불참하여 이해를 할 수 없었는데 결국 며느리인 여동생이 주가 되어 제를 올렸다. 대웅전 맨 뒤에 앉아 스님이 진행하는 의식을 지켜보면서 일어나 엎드리기를 나도 몇 번 했고 밖에서는 손가락과 같은 장대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제를 마친 4시경 보광사를 나오면서 오늘 불참한 매제에게 문자를 보냈고 왔던 길 벽제와 구파발을 통과하여 서울로 들어왔다. 저녁에 논술교실로 올라가 수업을 하고 영식이를 만난다고 남영동으로 가는 중에 서대문에서 서울역까지 차가 막혀 움직이지 않았다. 걸어서도 10분이면 갈 거리를 30분이나 지체가 되어 약속 장소에 늦게 도착했고 한참을 기다린 친구와 소주를 곁들인 생태탕으로 저녁을 먹었다.
11일 새벽의 하늘이 흐린 것처럼 어제와 그제 연속 술을 마셔 정신이 몽롱한 상태로 일어났다. 아침에 식사를 거르고 쉬고 있는 중에 오늘 수원 광교산 산행을 벽량초 동창회장 주관으로 한다며 뒤풀이라도 참석하라는 연락이 왔다. 수업이 많아 어렵다는 통보를 하고 오전에 지하철을 이용하여 학원으로 출발했지만 향우회와 동문회가 하나가 되는 즐거운 시간이 될 것이다. 지하철로 안국역까지 갔다가 속이 거북하여 지상으로 올라와 시내버스를 탔고 학원에 도착해서는 내일 수업할 프린트를 만들며 시간을 보냈다. 오늘은 하루 종일 어지러워 힘이 들었는데 건강의 소중함을 알고 날마다 운동을 하면서 순간의 기분으로 술을 마셔 그 노력이나 효과가 미미할 것 같다. 건강은 물론 시간이나 금전까지 허비시키는 해로운 술을 절제하지 못하는 의지가 약한 나인지 자존심이 상하기도 한 날이다. 저녁에 논술교실로 이동하여 모의고사와 관련된 수업을 하고 9시에 집으로 돌아와 식사도 거른 채 자리에 누웠다.
12일 초저녁에 잠이 들었다가 새벽에 일어났는데 과음의 영향이 계속이다. 논술교실 수업을 가려고 준비하는 중에 아내는 아침 식사로 닭을 삶는다며 서두르고 식탁에 반찬까지 준비한다. 속도 좋지 않았지만 이른 시간에 닭고기를 뜯는 상황이 불편했고 또한 수업시간까지 촉박하여 여러모로 부담스럽기만 했다. 고기나 생선은 끓는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닌데 오늘도 시간이 부족하여 급하게 올라와 설익은 살코기 냄새가 진동했다. 아침식사라고 할 수도 없었는데 무엇이든 부족하거나 모자라면 배워서 철저하게 채워야 하는 것을 아내는 언제나 자신만의 생각에 갇혀 있다. 엊그제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식사를 거르고 아들과 함께 논술교실에 올라가 시험대비 현대시 해설을 시작하여 오후까지 6시30분에 마쳤다. 오기가 발동하여 배고픔도 잊고 하루를 보낸 날인데 강의에 대한 자부심과 과거의 명성을 상기하며 그나마 하루를 버틸 수가 있었다. 논술교실에서 곧바로 마라톤을 한다고 홍제천으로 나가 한강까지 1시간 30분을 달렸더니 아침에 막혔던 마음이 많이 풀렸다.
13일 아침 하늘이 구름도 없고 화창하여 성큼 가을이 온 것 같았다. 기온도 오전에 22도 오후에는 27도라니 분명 무더위가 물러났지만 비가 많이 내린 금년은 유난히도 지루한 여름이었다. 새벽에 깼다가 다시 잠이 든 날은 영락없이 아침이 피곤한데 오늘도 그렇게 9시가 지나서 밖으로 나왔더니 거실이 텅 비어 있다. 식사를 대신하여 고구마 두 개를 먹고 체육관으로 가서 운동을 하다가 학원으로 바로 가서 시원한 해장국으로 점심을 먹었다. 오후에 영식이한테 배 사업 투자금 환수문제로 문자를 보냈는데 친한 친구라도 금전문제는 이럴 때 참 난처하다. 다시 생각해도 가까운 친척이나 친구들하고 돈을 거래하는 것은 절대 안되고 차라리 돕는 마음으로 적은 액수를 기부하는 것이 훨씬 낫다. 오후에 대치동 청실아파트 근처에 가서 마원장을 만나고 무악재로 돌아왔는데 50분이 소요된 지하철은 퇴근하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14일 쾌청한 하늘 고향에는 지금쯤 코스모스가 한들거리고 곡식이 누렇게 익어가고 있을 것이다. 다음 주가 추석이라 미리 산소에 다녀오려고 아침에 용산역으로 가는데 어제 저녁처럼 지하철은 사람들로 만원이다. 9시에 도착하여 10여분 뒤 무궁화호를 타고 출발하면서 잠이 들었고 1시간 30여분이 지나 눈을 뜨니 조치원에 도착해 있다. 조치원은 청주로 가는 길목이라 대학을 다닐 때 김제에서 기차를 타고 올라와 자주 드나든 과거의 기억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 1시간을 더 달린 열차는 대전역을 지나 강경역에 다다랐고 익산역 근처에서는 탈선된 열차 때문에 50분이나 지연되어 김제에 12시30분 도착했다. 개찰구에서는 지연된 것에 대한 보상으로 다음에 열차를 이용하는 할인권을 주었는데 과거에는 생각할 수도 없는 고객에 대한 배려였다. 선산에 도착하니 추석 전이라고 동네 아저씨가 벌초를 말끔하게 해 두었고 봉분 앞에서는 언제나 그렇듯이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과 죄송함이 많이 생겼다. 저녁에 김제시내에서 식사를 하고 9시30분 KTX를 이용하여 익산과 대전을 거쳐 12시가 가까워 용산역에 도착했다. 늦은 시간 조촐하여 남영동 단골집으로 가서 음식을 더 먹었고 새벽 1시경 택시를 탔는데 방향을 놓쳐 성북동으로 가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학원으로 들어가 깜박 잠이 들었다가 차도 없고 귀찮아서 집에 못 간다는 문자만 아내에게 보냈다.
15일 책상에서 자다가 핸드폰 소리에 놀라 눈을 뜨니 7시30분이다. 학교에 가는 딸이 전화를 한 것인데 가까스로 일어나 택시를 이용하여 10시경 집 근처로 왔다가 이발소에 들어가 머리를 커트했다. 이발소 아저씨는 60세가 넘은 나이에 한자 1급에 도전한다고 자부심이 대단했는데 국어선생 25년의 경력인 나도 대화를 하는 동안 그를 능가할 수가 없었다. 체육관에 11시경 들어가 운동을 하면서는 40일 전으로 다가온 풀코스 마라톤 때문에 불안과 고통으로 미리부터 걱정이 되었다. 운동을 마치고 오후에 집으로 들어서자 아내는 말도 없이 바라만 보는데 새벽에 문자만 보낸 나로서 미안함이 많았다.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자다가 학원으로 4시에 나가 수업을 하고 저녁에 다시 논술교실로 돌아와 내일 중간고사 보는 수강생들을 지도했다. 8시에 다음 수업을 하는 아내가 교실에 들어와 집으로 내려갔고 끓여둔 청국장으로 아들과 모처럼 저녁을 함께 먹었다. 어제 아침에 나섰다가 전라도 고향을 거쳐 36시간 만에 집으로 왔는데 돌아보면 지나간 시간은 언제나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