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말
눈 내리는 아침
월문리 창가에 기대어 밖을 본다
눈 오는 날이며 여러 명의 내가 나를 찾는다
창을 사이에 두고 말없이 만나는 우리,
너무 오래 내리는 눈은,
너무 길게 나를 내 앞에 세워둔다.
2024년 겨울
김나비
아르누보
식물처럼 쓰러져 울지 않기로 약속해요
머리를 풀어 헤치고 높이뛰기를 해봐요
단번에 훨훨훨 휘는 불꽃이 될 수 있어요
우주선에서 내려와 첫발을 떼어볼까요
마음을 손에 들고 저글링을 하면서
구겨진 시간을 펴고 새로이 출발해요
절룩이던 초록별의 기억은 버리세요
당신이 당신에게서 먼지처럼 자유로운 곳
여기는 아르누보죠 지금부뒤 시작이에요
*아르누보-새로운 미술이란 의미, 19세기 말 유럽에서 일어난 특수한 미술 경향
알타미라
수만 년 전 들소가 동굴 벽에 갇혀있다
상처 입은 몸으로 암벽에 숨기 위해
바닥에 숨을 고르며 고통을 참았겠다
입구까지 따라온 햇빛을 떼내려고
암벽에 기댄 채 머리 숙여 움츠린 몸
들소의 핏발 선 눈빛, 맥박처럼 두근댄다
어둠으로 연명하며 한기를 떨쳐낼 때
언젠가 뿔을 세워 광야를 휘달릴 꿈
태곳적 푸른 숨소리 아린 내로 박혀있다
하현
잘린 살점 한 토막처럼 거리를 헤맨다
기우는 까만 하늘, 누렇게 박힌 너의 얼굴
빛바랜 눅눅한 하루 가슴 위로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