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겨울은 참으로 춥고 길었다.
봄에도 추위는 쉽게 끝나지 않았다.
자두나무의 개화시기는 늦어졌고, 짧은 봄 날씨에 꽃이 피어있는 날도 짧았다.
거기에 금년에는 수분을 도와줄 꿀벌도 많지 않았다.
자두에게는 최악의 조건이었던 셈이다.
더구나 병충해 방제를 하지 않으니 그나마 남은 자두도 수확가능한 양은 줄어들고 말았다. 또 있다. 수확기에 다가온 이른 장마도 자두 수확에는 이로운 것은 아니었다.
비가 온다고 익는 시간을 멈춘 것이 아니기에 비개인 틈을 타 부지런히 따냈지만 상처 난 과일은 쉬 물러졌고, 멀쩡한 과일도 당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총 30kg정도 수확했지만 벌레 먹고 물러터진 것을 빼고 나니 이웃과 나누어먹기도 힘들어지고 말았다.
숙지원에서 아내와 나의 기대 품목이었던 자두농사는 그렇게 끝나고 만 것이다.
(담배꽃을 배경으로 한 솔채. 연약한 줄기에서 피는 꽃이 신비롭다.)
(프록스.누드베키아는 덤으로 추가. 뒤에는 옥수수)
(백일홍)
꽃밭.
여름에는 피는 꽃은 종류도 많지 않거니와 봄의 꽃보다 화려함이 덜하다.
우중충한 장마, 그리고 더위 때문이겠으나 아마 주변의 녹색에 꽃이 묻힌 것도 한 원인이 되리라.
아내는 지난 6월 초 봄에 핀 꽃을 거두어내고 여름에 필 꽃의 모종을 옮겨 심었는데 끈끈이 대나물을 베어낸 자리에 심은 프록스는 꽃을 보기 위해 심은 도라지와 함께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숙지원의 분위기를 바꾸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반가운 꽃이 달리아다.
얼어버린 달리아 뿌리를 안타깝게 여겼던 아내를 위해 같은 종자를 구한다는 광고까지 올렸지만 구할 수 없었다. 그런데 흐물거리는 알뿌리를 땅에 버리다시피 여차로 땅에 묻었는데 그 중에서 세 개가 기적처럼 살아난 것이다. 아예 꽃구경을 못할 줄 알았는데 요즘 세 송이의 꽃이 머물러 아내를 정말 기쁘게 한다.
다양한 색상의 꽃백일홍은 아내가 자주 이야기하는 꽃이다.
가을 여행 중에 가져온 씨앗인데 아마 숙지원의 여기저기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꽃일 것이다.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을 뿐 아니라 가을까지 꾸준히 피어 즐거움을 선사하는 꽃이다.
색색의 금어초, 황금빛 누드베키아와 여린 꽃대를 쉼 없이 밀어올리는 족두리꽃은 지루한 장마철 비속에서도 화사함을 자랑한다. 거기에 솔채, 일일초, 우단동자는 풀에 덮였을 땅을 꽃밭답게 만들어주기에 귀엽지 않을 수 없다.
(비비추?)
사람에게 질리도록 오래 피는 꽃은 많지 않다.
자신의 모습을 들어내면서도 다른 꽃의 아름다움을 해치는 법이 없다.
이웃한 꽃의 향기를 탐내지도 않고 더 버티겠다고 우기는 법도 없다.
그래서 자연의 순환에 따라 계절의 신호를 알아차리고 서서히 몸을 낮추는 꽃 다음에는 또 다른 계절의 꽃들이 뒤를 잇는 꽃밭에 서면 사람도 꽃이 되는지 모른다.
숙지원의 북쪽에 심은 분꽃은 이제 어우러지기 시작한다.
장마가 그치면 저녁노을에 붉은 빛을 더하리라.
언제 봐도 귀여운 채송화는 아직 더 필 것 같다.
안쪽의 배롱나무도 장마가 끝나기 전에 피기 시작하리라.
(도라지꽃)
텃밭.
마을 노인들은 풀이 자라지 않으면 다른 작물도 자랄 수 없는 땅이라고 했다.
풀과 함께 자라는 농작물들이 숨을 쉬는 곳.
꽃밭이 머리에 예쁜 리본을 단 딸의 모습이라면 텃밭은 듬직한 휴가 나온 아들의 모습이라고나 할까.
쑥쑥 큰 키에 파랗게 넓은 잎을 자랑하는 옥수수와 토란은 숙지원 서쪽의 울타리이다.
멧돼지가 파헤친 고구마는 버려진 땅에 다시 뿌리를 내려 줄기를 뻗는다.
마늘 양파를 수확한 자리에 심은 참깨는 아직 어린데 야콘은 장마에 한 뼘을 더 자랐다.
고추는 아직까지 잘 자라지만 워낙 병에 약해 안심할 수 없다.
금년 가지와 토마토 농사는 일찌감치 포기했다.
장에서 사다 심은 오이역시 비실거린다.
거기에 비해 수박과 참외가 금년에 효자 노릇을 하려는지 줄기 세력이 왕성하다.
7곱 마디에서 자란 수박을 살리고, 손자 줄기에서 나온 참외를 키운다고 들었기에 처음에는 몇 번 줄기 치기를 시도했지만 이제는 서로 뒤엉킨 바람에 처음과 끝을 찾기 어려워 자라는대로 보고만 있다. 시장에 내다 팔 것 아니기에 되는 대로 키우기로 했다. 그래도 제법 커진 수박 몇 덩이가 벌써 마음을 설레게 한다.
(숙지원 텃밭. 야콘 고추, 옥수수 등이을 심었다.)
감자 캐낸 자리에 심은 노란 메주콩은 마을에서 구한 순전히 토종씨앗이다.
곧 순치기를 해주어야 할 것이다.
한 곳에 모여 있는 생강, 부추, 상추, 치커리 등은 우리 밥상을 지켜줄 것이다.
숙지원 동쪽에 빈자리를 만들어 심은 호박은 벌써 잎을 따다 쌈을 할 수 있게 자랐다.
단호박은 이미 열렸으나 재래종은 조금 늦은 것인지 이제 꽃이 피기 시작한다.
줄기를 자꾸 옆의 철쭉 쪽으로 뻗쳐 감고 올라가는 것이 문제다.
우리나라의 7월 초순과 중순은 대체로 덥고 습한 날씨에 눅눅한 시기이다.
그러나 이런 날씨 속에서 장마 뒤를 기약하고 준비하는 꽃과 옥수수 야콘 등 농작물을 돌아보는 일은 잠시 세상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
(비오는 숙지원 풍경)
여름.
돌아서면 풀이라고 한다.
풀과 전쟁하는 계절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많다.
그렇다. 풀 속의 콩을 살리고 수박을 구하는 일이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마이동풍의 대통령과 제멋대로 정치판을 보는 속 터지는 일보다 어려울 것인가!
풀은 퇴비라도 만든다지만 우리 사회의 독초요 선량한 인간의 심성을 오염시키는 악 같은 존재들은 어디에 쓰나!
꽃밭과 텃밭을 돌아보며 잠시 세상사를 잊는다.
자라는 풀을 보면서 잠시 현재의 걱정과 미래의 불안을 덜어낸다.
동서로 펼친 7월 꽃 프록스, 그리고 남북으로 줄지어선 옥수수가 정겹다.
오늘도 오락가락하는 비.
아직 장마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2011.7.10.
첫댓글 평화로운시골. .. 그림이 그려집니다. 자연은 품지 못할게 없을듯합니다. 자연처럼 살아야...
자연을 품을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인간도 자연 속에서는 아주 작은 존재일 뿐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자연보다 크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 문제인 듯 싶습니다.
좋은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잔디가 시원하게 펼쳐져보기 좋습니다~~
잔디밭 가꾸기에 여렵지 않으신가요?
저도 텃밭 이외의 부분이 빗물에 흙이 유실되어 잔디를 심어볼까 해요
그리고 농사도 참 잘 지으십니다~
성격이 단순한 탓인지 시원하게 터진 풍경을 좋아하다보니 잔디를 심었습니다. 역시 가꾸기 쉽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항상 보는 즐거움과 느끼는 시원함에 비하면 고생은 잠시라는 생각을 합니다.
잔디는 처음 심을때 관리를 잘하셔야 합니다. 우리도 초기에는 몇번 사람을 사서 풀을 맸습니다. 참고 하십시오.
즐거운 날 만들어가시기 바랍니다.
부지런해야 됩니다 ...사진속의.느낌이라 ...일을 ...해보시는것이랑...차원이 다르지요 ...
솜씨가 ...좋으십니다
천성이 부지런하고는 거리가 멉니다만 놀면서 일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일을 하자도 힘이 부쳐 느리게 갈 수밖에 없지요.
솜씨좋다는 칭찬이 싫지 않습니다. 주책이지요?
숙지원의 정갈하고 단정한 모습처럼 두분의 아름다운 삶이 엿보입니다.
감사합니다.
요즘 풀 때문에 고생이 많으시지요?
항상 즐거운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덕분에 저희집에 나눔해 주신 야콘이 아주 잘 크고 있어 거듭 감사드리며 사모님도 안녕하시지요.
언제 한번 자리 하시게요
오랜만입니다. 너른 농장 관리에 힘드실 것으로 여겨집니다.
야콘이 잘 자란다니 다행이군요.
우리는 얼마전에 주력작물인 고구마를 멧돼지에게 당했습니다.
내년 부터는 주력작물을 다시 야콘으로 돌려야 할 것 같습니다.
방학하면 한 번 뵙도록 하지요. 바깥분께도 안부 전합니다.
좋은 날들 되시기 바랍니다.
시골 소식 자세히 올려 주셨군요, 요즘은 풀과의 전쟁입니다. 계절 따라 올라오는 종류도 다르더군요 한번 잡으면 될 줄 알았는데 그놈들도 자기나름으로 시기가 있더라구요 독세풀 다음은 강아지풀 잡으니 바랭이가 난리구요 또 잡으니 반동사니가 또 올라오고 그놈 잡으니 새콩이 올라오내요 그 사이로 콩과식물이 마지막으로 올라오는데 정신이 없습니다. 고추는 벌써 탄저병이 오는 것같아서 열리는족족 풋고추로 합니다 이웃에 나누어 주구요. 농사가 정말 힘이 드는군요, 그래도 재미는 있습니다. 정치와는 상관이 없으니까요 그냥 풀이나 잡아 볼랍니다. 건강하세요.
풀의 이름을 다 불러주셨군요.
저는 풀 이름을 부르지도 않고 어제와 오늘 계속 풀잡는 일만 했습니다.
긴 장마로 인해 밀린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다행히 장마도 그치고 방학도 했습니다.
내일까지 일을 하면 대강 정리 될 것 같습니다.
좋은 소식 올리시기 바랍니다.
더위에 건강하십시오.
정말 숙지원이란 곳이 멋진 곳이군요.
주인의 손길 또한 바지런하시구요.
또한 질서있게 심겨진 꽃도 아름다워요.
정말 돋아나는 풀은 저도 힘들어요.
세차게 지나간 비 때문에 땅은 또 왜 이리도 여문지.
호미들고 밭에 한번 나가야 하는데 엄두가......ㅜㅜ
멋진 곳이란 말씀 감사합니다.
그러나 사실 직접 보면 실망하실 것입니다. 너무 소박하고 평범한 곳이니까요.
쉬엄쉬엄하십시오. 힘으로 풀을 잡을 수 없습니다.
좋은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