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아미타불"의 유래
申참판은 그럴듯한 허우대에
인물도 준수한 데다,
말재주가 좋아 자유자재로 사람들을
울리고 웃기는 재주를 가졌다.
열두 살에 초시에 합격하여
열여섯에 장원에 급제한 빼어난 문필에 영특하기는
조선천지에 둘째가라면 서러웠다.
성품도 너그러워 그를 미워하는 사람이 없는 데다,
선대로부터 재산도 넉넉하게 물려받아
나랏일을 하면서 일전 한닢 부정하는 일이 없으니
모든 사람들이 그를 우러러봤다.
한겨울에 맨발로 다니는 거지에게
자기 신발을 벗어주고,
땟거리가 없는 집엔 곡식 자루를 보내주었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있고,
처자식에 자상하여
칭찬이 자자했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도 주체할 수 없는
고질병통이 하나 있었으니
여색을 너무 밝히는 것이었다.
노소미추,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치마만 둘렀다
하면 들이대고 본다.
그러나 수많은 여자들을 섭렵했지만
말썽 일으켜 봉변 당한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신통방통했다.
남녀 관계란 이불 속에서는
한몸이지만, 헤어지면
원수가 되는 법...
그러나 申참판을 거쳐간 무수한 여자들 중에
어느 누구하나 그를 욕하는 일이 없었다.
申참판이 명월관
춘심이에게 싫증 날 즈음,
서당골 오과부댁과 눈이 맞아 날만 어두워지면
그 집으로 달려갔다가 닭이 울 즈음
남의 눈을 피해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도 밤새도록 육덕이 푸짐한
오과부를 끼고 운우의 정을 만끽하다가
감나무 가지에 걸린 그믐달을 보며
새벽녘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어라, 이게 무슨 변고인가?
안방에서 난데없이
목탁소리가
나는 것이 아닌가?
헛기침을 하고 안방 문을 열었더니
여승이 눈물을 흘리며 불경을 외고
목탁을 치는 것이었다.
“대감, 소저는 오늘 아침
입산하기로 했습니다.
좋은 여자 구해서 안방을
차지하도록 하고 부디
만수무강하십시오.”
부인이 삭발을 하고
여승이 된 것이다.
“부인 !”
申참판이 침을 꿀꺽
삼키며 정적을 깼다.
“가만히 생각하니 부인 속을 많이도 태웠구려.
친구 부인, 하인 마누라, 술집 작부, 청상과부에 방물장수 등…
온갖 여인을 다 접해 봤지만,
아직 여승은 품어보지 못했소.”
하도 어이없어 입만
벌리고 있는 부인을
申참판이 자빠뜨렸다.
부인이 발버둥 쳐보았지만
이내 발가락을 오므리고 申참판의 등을 움켜 잡았다.
땀범벅이 된 부인이
옷매무새를 고치며,
“못 말리는 대감...”
눈을 흘기며 싸 놓았던
보따리를 풀었다.
”관세음보살
도로아미타불...“
이때부터
“도로아미타불”이란
말이 생겼다고 전한다.
믿거나 말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