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인생이 지나갔다
이 기 철
열 줄만 쓰고 그만두려 했던 시를
평생 쓰는 이유를 묻지 말아라
내가 편지에, 잘못 살았다고 쓰는 시간에도
나무는 건강하고 소낙비는 곧고 냇물은 즐겁게 흘러간다
꽃들의 냄새가 땅 가까운 곳으로 내려오고
별들이 빨리 뜨지 못해서 발을 구른다
모든 산 것들은 살아 있으므로 생이 된다
우리가 죽을 때 세상의 빛깔은 무슨 색일까, 무성하던 식욕은 어디로 갈까, 성욕은 어디로 사라질까
추억이 내려놓은 저 형형색색의 길을 누구가 제 신발을 신고 타박타박 걸어갈까
비와 구름과 번개와 검은 밤이 윤회처럼 돌아나간 창을 달고
집들은 서 있다
문은 오늘도 습관처럼 한 가족을 받아들인다
이제 늙어서 햇빛만 쬐고 있는 건물들
길과 정원들은 언제나 예절 바르고
집들은 항상 단정하고 공손하다
그 바깥에 주둔군처럼 머물고 있는 외설스러운 빌딩들과 간판들
인생이라는 수신자 없는 우편 행랑을 지고
내 저 길을 참 오래 걸어왔다
내일은 또 누가 새로운 식욕을 되새김질하며
저 길을 걸어갈까
앞 사람이 남긴 발자국을 지우면서 내 이 길을 걸어왔으니
함께 선 나무보다 혼자 선 나무가 아름다움을
이제는 말할 수 있을 듯하다
내 풍경 속에 천 번은 서 있었으니
생은 왜 혼자 먹는 저녁밥 같은가를
이제는 대답할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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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감상/내과 전문의인 김재면( 김재면 내과의원 원장)
어느 사형수가 감형을 받아 사형을 면하게 되었을 때 그 기쁨을 이야기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앉아있는 소파의 포근함 , 마시는 상쾌한 공기... 모든 것이 기쁨으로 느껴졌다고 한다. 그렇다. 살아있다는 것을 자각할 때 이 세상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내가 걸었던 길은 과거에 이미 많은 사람이 거쳐 간 길이고 내일에는 새로운 사람이 내 발자국을 따라 걸어 갈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인생이란 길을 걸었던 시인은 이제 ‘인생은 혼자 먹는 저녁밥’이라는 의미를 알게 된다. 무슨 말인지 한번 들여다 보자.
이 시를 처음 읽고 나는 묵직한 감동을 느꼈다. 되풀이 되는 나날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보는 시인의 노력이 진지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세히 읽어보면 내용이 순차적으로 연결되지 않고 마디가 끊어지듯이 앞에서와 다른 내용으로 건너뛰고 있어 단숨에 뜻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시의 첫줄에서 시인은 대뜸 ‘나에게 시를 쓰는 이유를 묻지 말라’고 한다. 그 다음에는 사람의 삶과 관계없이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경외를 표현한다. 나무, 소낙비, 냇물, 꽃 , 별 - ‘별들이 빨리 뜨지 못해서 발을 구른다’는 표현이 눈에 띈다.
그리고나서 죽음에 임하여서 우리가 가진 것은 어떻게 될까하는 의문을 가져본다. 식욕과 성욕… 그렇다. 사람이 가진 가장 큰 욕구 -이들은 어디로 가는가? 갑자기 주제가 바뀌어 집이 등장한다. 세월이 흘렀다는 말을 ‘비와 구름과 번개와 검은 밤이 윤회처럼 돌아나갔다’고 표현하였다. 우여곡절이 많은 험난한 세월이었나 보다.
‘우편 행낭을 지고 길을 걸었다’고 표현하니 시인은 우체부가 되어 자신의 인생- 살아온 길을 관조(觀照)하나보다.
여기에서 집은 내가 살아온 인생이며 ‘외설스러운 빌딩과 간판’은 내가 보여준 활동이나 살던 환경이라 볼 수 있다. 집은 낡았지만 단정하고 공손하다. 나는 나이가 많지만 점잖고 예의바르게 세상을 살아왔다.
시인은 다시 말한다. 내가 죽어 식욕을 버리고 가도 누가 새로운 식욕을 가지고 이 길을 다시 갈 것이다. 시인은 혼자 서있는 나무가 아름답다고 한다. 무슨 뜻인가. 인생은 왜 혼자 먹는 저녁 밥 같은 것인가. 결국 인생의 길을 걸어가는 것은 철저히 나 자신의 몫이라는 뜻이 아닐까. 시의 마지막에 이르러 비로소 처음에 제시한 의문 -왜 시를 쓰는가에 대한 불분명한 대답을 제시한다고 할 수 있다. 시인은 ‘혼자선 나무가 아름답다’고 말하고 ‘인생은 혼자 먹는 저녁밥 같다’고 대답하여야 하는데 시로써 표현하여야 할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