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기 싫은 병은 언제까지 일까. 노인들은 잠이 없다는데, 그것도 거짓말인가. 한번도 즐겁게 일어나본적이 없지 싶다. 사실 안일어나도 된다. 내가 성서학당 안본다고 방송이 폐지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또 꼭 본다고해서 내가 뭔가 달라지는 일도 없다. 그러니 반듯이 봐야할 것도 아니다. 내가 안일어난다고 해서 하늘이 무너지지도 않고, 땅이 꺼지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안일어나고 싶으면 그렇게 해도 된다. 그만 끝이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빈말인가. 꾸역꾸역 일어나곤 하는 것을 보면 그렇다. 어제 그런일을 격고도 아무 고민없이 잠을 잘 잤다. 지켜주신다는 믿음이 있어서는 아니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안도감 때문이었을 게다. 내가 홀대하는 천원짜리 몇장이 없어졌더라도, 딸이 사준 부로치 한개가 보이지 않게 되었더라도 과연 편안히 잠을 잘수있었을까. 평소엔 쓰지않는 하찮은 안경이나 돋보기 하나만 눈에서 빗겨나도 얼마나 찾아대고 있는데,,, 소심하고 좁쌀인 내가 그냥 편하게 잠을 잤다는게 사실은 믿기지 않는다. 무탈하다는 안도감이 이렇게나 큰것인지 몰랐다. 무탈, 참 좋다. 더 바랄게 없다. 사실 더 없는 행복을 누리고 있음도 알고있다. 팔 벌리면 달려와 안기는 손주들이 있고(어제도 한달음에 달려와 주지않았나), 아들은 날마다 보고 살며, 딸은 하루한번은 통화를 하고있다. 이보다 더한 복이 있을까. 이런복을 누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겯눈질할 필요 전혀없다. 돈이 조금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그만하자. 그분께서는 내게 가장 알맞는 복을 적절하게 주고계심을 믿으며 감사하면 된다. '예쁜 감성 글씨"에서 작품을 만들기위해 글자를 고르고 있다.'간구' '소망' '사랑'을 넣어 문장을 만들려니 쉽지가 않다. ' 일상의 기적' '믿음, 소망, 사랑', '간구하는 일상의 기적, 등등,,,. 나는 기적을 좋아하는 사람인듯 싶다. 초라하고, 남루하고, 후진 나의 삶을 구원할수 있는 것은 판타지적인 기적뿐이라고 생각했던 탓이다. 어쩌면 하나님을 믿는다거나 예수가 구원자 되심을 믿는 믿음보다, 동화속 판타지에 간절함이 깃들어 있는 믿음이 내 믿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말에 지금은 동의한다. 예전에는 '설마' 했었다. 지금은 아니게 되었다. 눈앞에 두고서도 못보는, 혹은 잘못보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되었다. '듣고싶은 말'만 듣는다는 말에도 동의 안할수가 없다. 내게 유리하게 듣게 되거나 가감하는 일이 항상 벌어지고 있다. 잘못 듣게되는 경우가 너무 많다. 더 웃기는 일은 여럿이 함께 들었는데도 다 제각각일때도 있지않던가. 두발로 걷고 일상을 꾸려가는 정도로 만족해야하는 노인의 삶이 정말로 오래 지속되길 원하지는 않는다. 사람 사는게 젊어서도 쉽지 않았다. 누후대책이 있을리없는 곤고한 삶이 이제 좀 자유롭게 되엇다 한들 이게 내것은 아니다. 아들 딸의 배려에서 오고 있다. 부모로서 마땅히 해주어야할 것중에서 재데로 해준것도 없다. 생각나는 것이라고는 미안함과 민망함이 다인데, 기약도 없이 부담만 줘야한다는 것도 할짓은 아니다. 바라지는 너무 오래지 않았으면 좋겟다. 저쪽에 대한 두려움도 없을수는 없다. 이쪽에서 잘한게 없으니까 두려울수밖에 없지않겠는가. 은혜라는 말이 참 위로가 된다. 여기서 사는 것도 다 은혜이고, 저쪽에 갈수있는 것도 은혜란다. 오직 은혜에 매어 살수밖에 없다. 날씨가 한달음에 추워졌다. 내복을 꺼내입었다. 제발 불좀 때고 살라고 아들 딸이 아우성이지만 내가 할수있는 일, 그리고 잘하는 일은 아끼는 일이다. 잘 할수있는 일을 하라고? 맞는 말인데도 씁쓸한 기분이 되는 것은 왜 일까. 우리 세대나, 전세대는 하고싶은 일이 따로 없었다. 주어진 일을 꾸역꾸역 해야했고, 맞겨진 일을 잘해야 유능했다. '나'는 없었다. 아니, 왜 '나'가 필요하지? '가정'속에, '내 자식 내 남편'속에 내가 있다. '나'는 그속에 녹아들어 있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대부분은 생각했던 것 아니었나? 정말 많이도 변했다. 싫은 일은 안한단다. 그러면 그 싫은일은 누가 하지? 국가나 사회는 그만두고 가정에서만 해도 그렇다. 영양가가 없다고 생각하는 싫은 일들을 미뤄둘수 있을까. 돈을 많이벌어서 고용인을 두고 살수있다면 그래도 되겠지만, 그게 안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결국엔 분란의 동기가 되게된다. 협력, 배려, 사랑이 쉬운것은 당연히 아니다. 어렵다. 가정을 갖는다는 것도 어렵고, 남편으로 아내로 산다는 것은 참 어렵다. 자식으로 부모로 산다는 것은 더욱 어렵다. 그래서들 걸혼도 안하고 자식도 안낳는 것은 어쩌면 최선의 선택이고 이것은 잘한 일인지도 모르겠다.책임감이라고는 없는 저 잘난사람들이 그나마 잘한 일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결혼은 물론 부모가 되는 일에는 반듯이 자격시험을 봐야한다는 생각도 했었으니까. 정말이지 무책임한 사람들의 만용만은 없어야 한다. 다들 행복을 누렸으면 좋겠다, 사람으로 이땅에 왔으니까 사람으로 살면서 충분히 행복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복을 누구나 누릴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주님, 80억이ㅣ 넘는 우리 인생들이 모두 행복한 길을 걸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되도록 축복하여 주십시요.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