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통, and 근황 (외 1편)
홍 경 희
삼십 년年을 먹줄처럼 직선으로 걸어왔다
기억의 강은 그들을
반추하도록 나를 강요한다
29페이지를 열어 보았다
균열이 간 학교마저 검은 바람이 먹어치웠다
Y의 탯줄을 낳은 그녀, 삼촌과 눈이 맞아
그믐밤에 마을을 떠났다
Y는 접동새처럼 울부짖었다
Y는 떡대 총각의 형수가 되었다
해발 천삼백오십 고지를 한 번도 떠나보지 못한
D는 외항선을 탄다
늪에 세 들어 살던 M은 30층 빌딩에 산다
30페이지의 기억엔
꿈통을 키우던 또 하나의 삼총사들,
C와 B, and K
한 꿈은 운동장 빈 트랙이고
한 꿈은 신용카드 한 장 없는 리무진이고
한 꿈은 시간을 두들기는 대장장이다
날이 저문다, 모두
머리카락이 흰 새가 되어 숲으로 걸어간다
그 무리 속에 내가 보인다.
계곡을 오르다
-소금강
로또복권 당첨을 꿈꾸는 사람들이 오른다
낯선 사람들도 오르고 또 오른다
큐빅cubic들이 청학천 구름다리를 짓밟는다
식당암을 점령한 명품 등산복들,
입안에 폭포를 가득 물고 있는 붉은 립스틱
검은 선글라스는 연화담을 곁눈질한다
그 때
구두코가 반짝거리는 욕망의 꽃, 그들의
발길을 거부하는 대웅전 귀 밝은 늙은 부처,
보석들의 발자국 소리에
처마 끝에 풍경風磬은 하혈을 한다
똥배 나온 도시의 빌딩, 태양이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온순한 가을이 무너진다
하지만, 금강사 대웅전 부처님은 오늘도
여전히 빈손이다
여전히, 여전히 빈손이다
홍경희 : 춘천교육대학교 졸업. 초등학교 교사 30년 역임. 2014년 [시인정신]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강원현대시문학회, 시림회, 강릉미술협회, 임영보자기연구회 회원.
-시인정신 2014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