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앞에 전봇대가 처음 선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길고 굵은 전봇대가 마당가에 떡 세워지는데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우리 집 마당가에 있는 전봇대는 마당에서 매우 가까울 뿐만 아니라 굵고 긴 전봇대여서 친구들에게 자랑이라도 할 때면 어느 누구도 큰 소리를 치지 못할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호롱불 밑에서 생활해 보면 그렇게 불편할 수가 없다. 책장을 조금만 세게 넘겨도 불이 꺼진다. 장난이라도 칠 양이면 석유를 엎어서 어두운 방에서 한 바탕 난리가 나는 것이었다. 더운 여름에 문이라도 열어놓으면 나방이나 벌레가 들어와서 호롱불의 주위를 도는데 어린 여자아이들은 기겁을 한다. 그런 집에 전기가 들어오고 대낮같이 방이 환하게 밝아지는 것인데, 그 첫 번째 작업이 전봇대를 세우는 것이라면 어찌 흥분하지 않을 수가 있었겠는가?
중학교 2학년 겨울 방학에 매형을 따라 강릉을 갔었다. 점심을 먹는데 소고기 국에다가 하얀 쌀밥이 나왔는데, 60년대 중반쯤이니 당시로는 무엇에도 비할 데 없는 밥상이었다. 온 가족이 둘러 앉아 큰 양푼이에다가 밥을 비벼 먹던 나로서는 난생 처음으로 공기 밥을 먹는데다가 그렇게 먹고 싶었던 하얀 쌀밥에 소고기 국이니 세 숟가락을 뜨니 밥공기가 비는 것이었다.
마침 그 집에는 내 나이 또래의 예쁜 계집애가 있었다. 한참 밥을 먹고 있던 식구들이 밥을 더 먹으라고 권하는데 그 계집애가 눈에 밟혀서 밥을 더 먹을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 자존심이 있어서 만약 밥을 더 먹게 되면 나를 우습게 볼까봐 눈물을 머금고 숟가락을 놓았다. 더 먹으라는 만류를 뿌리치고 앉아 있으니, 이게 웬 일인가, 그 계집애랑 식구들은 밥을 두 공기, 세 공기씩 계속 먹는 것이 아닌가?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 방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배가 고프고 눈물도 나면서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었다. 그 집 대문을 나서서 나갔을 때 전봇대가 떡 하니 버티고 서 있는데 그것을 보는 순간 떡볶이가 생각났다. 바로 옆 가게로 달려가서 빵을 사서 덥석 입에 무는데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때부터 눈물 젖은 빵이나 전봇대를 떡볶이로 보면서 전봇대의 의미가 또 다른 의미로 내 삶에 들어 왔다.
요즘에는 그렇지 않지만 우리 나이 또래 되는 사람들은 중학교 때부터 자취를 많이 했었다. 나도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작은 누나하고 자취를 했는데 고등학교에 와서는 혼자 자취를 하게 되었다. 그냥 평범하게 고등학교 생활을 할 때였다. 어느 겨울에 갑자기 감기 몸살이 찾아왔다. 몸에 열이 나면서 으슬으슬 추워지는데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자고나서 든 오한에 학교도 가지 못하고 자취방에 누워 꼼짝도 못하고 앓고 있었다. 연탄불도 꺼져서 방안은 냉골이 되었다.
그때 예고도 없이 갑자기 아버지가 자취방에 오셨다. 무심하기로는 짝이 없었던 시골의 옹고집 아버지께서 우연히, 아주 우연히 자취방에 오셨는데 공교롭게도 팔 남매 중 여섯째 놈이 냉골에서 때가 꼬질꼬질한 이불이란 이불은 다 뒤집어쓰고 덜덜 떨고 있는 것이었으니 얼마나 기가 막혔겠는가? 평소에 무뚝뚝한 아버지께서 뭘 먹고 싶으냐고 묻길래 호빵이 먹고 싶다고 했다. 가게가 어디 있느냐고 묻길래 대문에서 오른쪽으로 두 번째 전봇대 옆에 있다고 가르쳐 드렸다. 아버지께서는 전봇대의 안내를 따라서 호빵을 사 오셨는데 차가운 호빵을 사오셨다. 덜덜 떨면서 반쯤 언 호빵을 먹는데 그렇게 눈물이 났다. 그렇게 학창시절이 지나가고 있었다.
대학에서 시를 공부하면서 보들레르의 ‘교감(correspondence)’를 읽고 놀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멀리서 아련히 어울리는 메아리처럼/ 밤처럼 광명처럼 한없이 드넓은/ 어둡고도 깊은 조화의 품안에서/ 향기와 색채와 음향은 서로 화합한다.” ‘자연은 신전이며 상징의 숲’이라는 말에 매료되어 늘 외우고 보들레를 흠모하면서 헤매고 다녔던 시절이 있었다. 교감하고 화합하는 자연의 모습을 늘 상상하면서 그때 전봇대의 모습이 눈을 찔렀다.
가는 곳마다 전봇대는 원형을 파괴하였다. 산기슭에 선 전신주는 산의 그윽한 곡선을 파괴하였다. 시골길을 가다가 보면 부드러운 곡선으로 흘러가는 천수답 논둑길을 전봇대는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말았다. 산 정상에 피뢰침과 함께 서 있던 철탑도 예리하게 내 눈을 찔렀다. 그렇게 자랑스럽던 전봇대가 드디어 내 마음속에 아픈 의미로 다가오기 시작하였다.
봉화 명호에 가면 이나리 강이 있다. 명호 면 소재지를 이나리 강변을 따라 천천히 돌면 강 건너 맞은편으로 병풍같은 산이 빙 둘러서서 이나리 강을 따라가고 있다. 가파르지도 않고 급하게 틀지도 않으며 위협적이지도 않은 산이 그야말로 이나리와 어울리면서 돌아가는 품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멋스러움이 있다. 그런데 강가에 전봇대 서너 개가 떡 버티면서 함께 어울리면서 흘러가는 이나리 강과 산을 멈추게 하였다. 당분간 전봇대는 내 마음속에 대못으로 박혀 있으니 어느 때에 가슴이 썩어 이 못이 빠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