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딸과 함께 읽는 소설 여행 4
10. 사평역(임철우) 줄거리
역장은 30분이 지나도 오지 않는 막차를 기다리며 대합실을 둘러본다. 대합실에는 모두 다섯 명이 기다리고 있다. 농부는 눈 오는 날에 병원에 가자는 아버지에게 짜증이 나다가도 죄스러운 마음이 든다. 중년의 사내는 감방에 있었던 허 씨가 생각난다. 청년은 얼마 전 학교에서 제적 처분을 받았다. 서울말을 하는 뚱뚱한 중년 여자와 화장이 짙은 처녀, 행상(行商)을 하는 아낙네 둘이 대합실로 들어왔다. 중년의 사내는 허 씨의 부탁으로 그의 칠순 노모를 찾으러 왔으나 이미 죽은 지 5년이 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뿐이었다. 청년은 집안의 희망이어서 부모와 형제들 앞에서 퇴학당했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춘심이는 청년을 보면서 대학생이란 존재를 부러워한다. 서울에서 음식점을 하는 중년 여자는 주방에서 일하다 없어진 사평댁을 찾으러 왔는데, 사평댁은 남편이 죽어 아이들이 거지 신세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내려왔다고 했다. 중년 여자는 오히려 지니고 있던 돈을 다 주고 온 길이었다. 결국 열차는 두 시간이 지나서야 도착했다.
대합실에 있던 승객들은 반가움보다는 차라리 피곤함과 허탈감에 젖은 모습으로 열차에 올라탔다. 역장은 열차가 출발할 때 아직 들어가지 않고 열차 난간에 위태로운 자세로 기대어 서 있는 오씨 아들을 보았다. 역 안에는 미친 여자가 난로 옆에서 자고 있었고, 역장은 톱밥을 더 가져다가 난로에 부어 주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사무실로 돌아가고 있었다.
핵심정리
갈래 : 단편 소설
배경 : 1970-80년대 가상의 시골 간이역 사평역 대합실
성격 : 서정적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주제 : 고립된 개인들의 고통스러운 삶, 산업화 시대의 다양한 인간 군상의 삶의 현실
표현 : 시(곽재구의 '사평역에서')에 소설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서사적으로 구성한 것으로 중심 인물이 따로 설정되지 않고 아홉 명의 인물군을 통해 그들의 삶의 이력을 보여 주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함
구성 : 액자식 구성(이 소설은 일종의 액자식 구성을 지니고 있다. 소설의 사건은 매우 간단하다. 그것은 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며 불을 쬐던 사람들이 역사 안팎의 사물들에 관심을 두다가 기차가 도착하자 그 기차를 타고 떠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간단한 서사적 사건 속에 등장인물들의 회상이 중첩되어 나타난다. 그들의 회상 속에서 과정의 일들이 이야기된다.)
등장인물
① 노인 : 해소병자로 늙은 농부로 가부장으로서의 고집과 권위가 조금은 남아 있으나, 가난과 병으로 인해 매우 초라한 모습으로 비쳐지는 아버지 세대
② 노인의 아들(농부) : 평생 농사를 짓고도 가난과 근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농부로 부모의 부담에서 벗어나지 못한 아들 세대
③ 중년 사내(또는 허씨) : 삶의 뿌리를 잃은 돌아갈 곳 없는 전과자로 이데올로기 대립 속에 평생을 감옥에서 지내는 비전향 장기수
④ 청년(또는 아버지, 어머니) : 독재 정권 시절 민주화를 요구하며 싸웠던 젊은 세대로 운동권이자 퇴학생. 그의 부모는 자신의 삶의 한을 아들을 통해 보상받으려고 하는 부모 세대
⑤ 서울 여자 : 과부이자 식당집 주인인 서울 여자는 보기와는 달리 인정이 많고 따뜻한 심성을 가지고 있는 보통 사람
⑥ 춘심이(옥자) : 산업화의 그늘에서 돈을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몸을 팔수밖에 없었던 술집 작부
⑦ 아낙네들 : 행상꾼
⑧ 미친 여자 : 역에 끝까지 남음
⑨ 역장 : 직원 둘을 데리고 있는 늙은 사평역장. 역을 지키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
⑩ 사평댁: 서울 여자의 가게에서 일했으나 아이들 때문에 삼십 만원을 훔쳐 도망감. 현재는 대단히 빈곤한 생활을 하고 있음.가정의 해체로 절망에 빠진 여자이다.
이해와 감상1
이 작품은 곽재구의 시 '사평역에서'를 토대로 하여 쓴 작품이다. 시를 작품의 첫머리에 인용하고 있는 이 작품은 시와 동일한 공간에 여러 인물들을 등장시키고 이들의 사연을 통해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있다. 이 작품은 가상의 공간인 사평역을 배경으로, 그 곳 대합실에서 막차를 기다리는 아홉 사람의 쓸쓸한 내면 풍경을 그리고 있다. 기침을 하는 늙은 노인과 그의 아들인 삼십대 중반의 농부, 12년 만에 교도소에서 출감한 중년의 사내, 시위를 주도하다가 학교에서 제적당한 대학생, 서울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뚱뚱한 여자, 화장이 짙은 술집 작부, 행상(行商)하는 아낙네 둘, 그리고 미친 여자가 바로 그들이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막차를 기다리고 있는 이들은 각각의 마음에 인물들은 7,80년대 우리 나라의 산업화, 민주화의 과정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전형일 것이다. 이러한 인물들의 어둡고 우울한 삶의 양상들은 하얀 눈발과 함께 소설의 암울한 배경을 잘 형상화하고 있다.
이해와 감상2
소설 '사평역'은 어느 늙은 역장이 지키고 있는 시골의 한 간이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추위를 녹이기 위해 형편없이 낡은 작은 톱밥 난로 주위에 몰려든 사람들은 이 사회에서 소외되거나 버림받은 자들이다. 늙은 역장이 지키고 있는 이 퇴락한 역에서 막차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은 어느 늙은 농부와 그 아들, 40대의 갓 사면된 죄수, 데로로 제적당한 학생, 미친 여자, 술집 작부와 행상으로 먹고 사는 두 여인 등이다. 여기서 기차역은 이중의 의미를 띤다. 즉, 어디론가 가기 위한 역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사람들마다 지나쳐 온 과거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장소인 것이다. 이 작고 퇴락한 역을 덮치는 추위 속에서 웅크리며 옹송그리는 사람들에게 고향으로 가기 위한 막차는 편안한 휴식을 위한 마지막 바람과도 같은 것이다. 밤이 깊어가면서 기다림은 지쳐 간다. 사람들은 저마다 과거의 삶에 대한 회한에 젖어든다. 각자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은 난로의 불꽃과 창밖에 내리는 눈으로 인해 깊은 내면성을 얻는다. 이 고단한 삶들을 위해 이들은 작은 불꽃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이 가난함을 위로하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이 소설의 마지막에서 기차는 이들에게 너무 늦게 온다. (출처 : 한계전 외 4인 공저 문학교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