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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그 기간이 어떠한가와 상관없이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환경에서 스스로 재충전할 여유를 찾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늘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를 하고, 여행 기간 동안에는 새롭게 접하는 것들을 만끽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건축가 승효상의 수도원 순례’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을 읽으면서, 특정 주제를 생각하며 여행 일정을 정하는 것이 주는 장점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건축가인 저자는 매년 특정 주제로 수강생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고, 그것을 정리하는 의미로 강의 주제에 맞는 행선지로 답사를 떠난다고 한다. 아마도 여행 일정에 참여했던 이들은 강의 내용을 곱씹으면서, 답사하는 기분으로 내내 함께했을 것이라 여겨진다.
여행을 좋아해서 적지 않은 곳을 답사해 본 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 기억에 남는 여행을 떠올려보았다. 동학들과 더불어 <논어>를 강독하던 중 공자의 고향인 산동성 일대와 태산을 방문했던 수년 전의 여행, 그리고 캐나다의 밴쿠버에 방문학자로 가서 도착하자마자 떠났던 로키여행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다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사진을 찍고 메모를 하면서 여행에 참여했던 일정이었다. 곧바로 여행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자 했지만, 다시 일상으로 귀환하면서 끝내 기행에 대한 생각들은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 상태로 남아있다. 그런 의미에서 여행 일정을 마무리하면서, 두툼한 책으로 엮어낸 저자의 성실함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모든 종교의 교리와 특징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고 알려고 노력하지만, 나는 특정 종교를 믿지 않는다. 때문에 저자처럼 종교와 직업적 관점에서 찾는 ‘수도원 순례’는 앞으로도 참여할 계획이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건축가인 저자로서는 수도원이 지닌 종교적 의미뿐만 아니라, 건축적 특징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기에 이러한 일정을 마련했을 것이다. 저자와 지인들이 찍은 사진들이 책의 곳곳에 수록되어, 저자의 글과 잘 어울리며 내용을 숙지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10일 동안의 답사 일정과 저자 개인의 일정을 포함한 14일의 여정이 읽는 내내 그대로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간간히 특정 장소와 건축물에 대한 소개는 저자의 전공이기에 더욱 그 내용에 대해 신뢰할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곳곳에 삽입되어 있는 다양한 정보들이 우선 내 정서에 잘 들어맞았다. 무엇보다 어떤 표현을 듣게 되면 그 어원을 먼저 따져본다는 저자의 취향은 나와 상당히 닮아있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여행지에 대한 정보보다는, 내가 새롭게 알게 되었던 어원들을 잘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 반가웠다. 예컨대 ‘카톨릭이란 말을 우리는 천주교를 의미하는 단어로 알고 있지만, 원래를 그 뜻은 보편성이다.’고 설명하면서, 저자는 그것이 어떻게 특정 교단을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하게 되었던가에 대해서 상세한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이밖에도 프랑스의 카푸친 수도회의 수도사들이 입는 수도복 후드에서 ‘카푸치노’라는 커피 이름이 유래되었다는 등 다양한 정보들이 곳곳에 소개되어 있었다.
이미 여러 권의 책을 출간한 바 있다는 저자의 저서를 이번에 처음 읽었다. 언론 지상에서 건축가로서의 그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을 통해서 그의 건축 철학이나 생각들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 그가 건축한 다양한 건축물에 대해서도 자부심과 함께 그 특징을 설명하고 있는데, 기회가 닿는다면 국내에 있는 장소는 한번쯤 가보리라고 마음을 먹기도 했다. 그리고 그동안 무심하게 바라봤던 건축물들에 대해 그 의미를 따져볼 수 있는 안목을 키워보겠다는 생각도 해보았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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