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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월
16일 며칠 동안 스트레스가 많아 술로 보냈는데 이제는 다 풀렸는지 특히 대치동 문제를 한 고비 넘겨 홀가분하다. 아침에 아들과 딸이 일찍 학교에 가고 아내까지 외출한 9시에 어제 먹던 청국장으로 혼자 식사를 마쳤다. 10시경 홍제천에 나가 한강 입구까지 선선한 바람을 안고 1시간20분 12킬로를 달렸더니 몸이 한결 가뿐했다. 체육관으로 가서 운동을 계속하다가 점심을 먹으러 집으로 왔는데 아내는 정성이 가득한 얼큰한 고등어조림을 만들어 두었다. 오후에 학원으로 가서는 임대료를 입금하고 저녁 수업을 마친 후에는 집으로 오면서 내일 영식이 어머니에게 보낼 과일을 사려고 인왕시장에 들렀다. 우리 어머니한테 최선을 다한 친구라 빚을 갚아야 한다는 생각이었고 식사를 마친 밤에는 TV를 보면서 늦게까지 아들을 기다렸다.
17일 자정이 넘어 잠이 들었다가 날이 밝으면서 눈을 뜨니 6시가 지났다. 영식이가 10시에 고향에 간다기에 어제 구입한 배 1박스와 거봉을 싣고 이른 새벽 방배동으로 출발했다. 가는 도중 통화를 하며 상황을 알리고 도착을 해서는 함께 해장국집으로 향하여 식사를 하면서 과일을 전달했다. 8시 지나 집에 돌아와 잠을 잤고 11시경 체육관으로 나가서 운동을 했는데 마라톤 연습을 하지 못해 찜찜한 마음이었다. 오후에 학원에서 수업을 준비하며 시간을 보냈고 친구인 조원룡 변호사 장모상으로 영식이는 모레나 고향에 간다는 전화가 왔다. 저녁에 딸에게 전화하여 쇼핑도 하면서 함께 외식을 하자고 했더니 밥 생각이 없다고 하여 그대로 집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아내가 논술교실 대신 집에서 수업을 하고 있어 베란다에서 삼겹살을 구워 안방으로 가져가 혼자서 저녁을 먹은 날이다.
18일 추석이 나흘이나 남았는데 벌써 고향으로 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주말 아침을 맞이했다. 어제 12시경 잠들었다가 새벽에 깨고 다시 자다가 일어났으니 피곤함이 안 생길 수가 없는데 일단 식사를 마치고 11시에 집을 나섰다. 북한산 산행을 하려고 정릉으로 갔다가 1시간 이상을 걸어 보국문에 다다르니 9월 중순의 바람이 시원했고 짙푸른 녹음은 아직도 여름철 그대로였다. 대성문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정릉을 출발할 때 사 온 김밥과 계란으로 점심을 먹었더니 좋은 날씨에 흥겨움이 더했다. 2시30분 하산을 시작하여 4시에 학원으로 들어가 수업준비와 내일 사용할 프린트 그리고 추석 연휴 계획표까지 작성했다. 고향에는 가지 못해도 내일은 용미리에 잠들어 있는 형님의 유골함을 찾을 것이고 마라톤 연습과 산행 등을 하면서 연휴를 보낼 것이다. 저녁에 집으로 오면서 김치를 산다고 마트에 갔는데 가격이 올라 1킬로에 7천 원이라는 것을 떨이로 1만2천 원에 2킬로나 담았다. 막걸리까지 구입하여 집으로 돌아와 김치를 안주삼아 마셨는데 아내와 딸도 삶은 고구마를 곁들여 맛있게 먹는다.
19일 비가 오려는지 날이 흐리고 마음도 무겁다. 7시에 일어나 김치찌개로 아침을 먹고 9시에 논술교실로 올라가 아들을 포함하여 이대부고 수업을 시작했다. 11시부터 다른 학교 수강생들을 1시까지 지도하고 집으로 내려오는데 화요일이나 온다는 비가 벌써 내리고 있다. 추석 때 내리는 것보다는 차라리 낫다는 생각을 했고 점심을 먹는 중에는 긴 시간 달려 고향에 도착했다는 영식이 전화가 왔다. 지금은 어머님을 모시고 읍내 미장원에 가는 중이라는데 누구라도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자주 뵙고 많은 대화를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4시에 논술교실 수업을 하고 저녁에 도서관으로 딸을 태우러 가려다가 종석이 엄마와 온다기에 마라톤 연습을 나섰다. 날은 이미 어두워졌고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홍제천 가로등 아래를 10킬로 이상 1시간을 달리고 9시가 거의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20일 어제 하루 종일 내렸는데 오늘도 생각보다 많은 양의 비가 내리고 있다. 아들과 딸이 학교에 가는지 소란한 아침에 누구라도 태워다 주려고 거실로 나갔더니 이미 등교를 한 상태다. 오전에 식사를 마친 후 마라톤을 하려고 준비하다가 어제 저녁에 달렸다는 이유로 방향을 수정하여 체육관으로 나갔다. 내일부터는 명절로 휴관이라 다른 때보다 더 열심히 운동을 하고 집으로 왔다가 오후에 학원으로 나갔다. 거리는 모레 추석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많았고 정체가 시작되었다는 고속도로의 상황도 여기저기서 실시간 보도가 되고 있다. 동해의 바다를 조망하며 어머니와 드라이브를 한다는 영식이의 전화가 어제에 이어 또 왔는데 세월이 흐르면 행복한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수업을 마치고 추석특강 프린트 준비와 명절 인사말 등을 지인들에게 보내고 밖을 보니 벌써 날이 어두워졌다. 저녁에 집으로 들어가니 추석과 며칠 후에 있을 내 생일까지 생각하여 딸이 그 동안 푼푼이 모은 돈으로 T셔츠와 가디건을 사 왔다. 색깔이나 디자인까지 마음에 들어 흐뭇했는데 아빠에게 줄 선물이라고 신경을 많이 쓴 딸이 고맙기만 했다.
21일 서울 103년 만에 물난리. 어제부터 비가 계속 내리더니 아침이 되어도 그치지 않는다. 내일이 명절이라 오늘 큰형님 납골함이 있는 공원묘역에 미리 갔다가 상황이 되면 북한산 산행을 할 생각으로 등산복 차림으로 나섰다. 집 앞에서 704번 시내버스를 타려다가 비가 많이 내리는 이유로 차를 몰고 구파발을 벗어나 파주 용미리 시립묘원 4구역에 도착했다. 눈이 내린 설날에 왔다가 추석을 맞이하여 다시 왔는데 형님과 함께한 산의 형세는 그대로 변함이 없었다. 묵념을 마치고 주변을 둘러보니 예전에 없던 수목장이 생겼고 언덕에는 화장을 마친 유골 가루가 유리판 아래로 수북하게 쌓여 있다. 인간은 결국 흙으로 돌아간다는 헌시가 적혀 있는 추모비를 뒤로 하고 조카 효정이와 여동생에게 심정을 담아 문자를 보냈다. 동생한테는 신내동 오빠도 중요하다는 답장이 왔는데 마지막 남은 형제끼리 등을 돌린 현실이 불행했고 여동생한테도 미안함이 많았다. 명절에는 평소와 다르게 신경이 예민해지는데 고향에도 못가지만 떠나고 흩어진 가족들이 그 원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다시 서울로 오는 시간에 잠깐 그쳤던 비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내렸고 불광동에서 구기터널을 통과하여 학원에 왔더니 1시가 지났다. 비가 얼마나 오는지 차에서 내릴 엄두도 내지 못하고 10여분을 지체하다가 간신히 들어갔는데 이렇게 내린 폭우는 처음이다. 공원묘지부터 착잡했던 마음으로 90일이나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웠고 서울에서 보낸다는 남석이를 만나러 오후에는 영등포에 가려고 나섰다. 비가 많이 내려 지하철 4호선이 중단되어 어쩔 수 없이 차로 이동했는데 종로는 물론 광화문 시청 서울역까지 온통 물바다가 되어 있다. 더 이상 운전을 할 수가 없어 남영동에 파킹을 하고 1호선을 타려고 지하철로 올라가니 여기도 운행을 중단한 상태다. 서울이 완전 마비가 되어 영등포를 포기하고 가까스로 다시 차를 몰아 집으로 왔는데 이 와중에 돌아다닌 나를 보고 아내와 딸이 놀란다. 납골묘원부터 착잡하고 우울하고 폭우까지 동반한 무서운 추석 전 음력 8월 14일이다.
22일 어제 늦게 영식이 전화를 받고 잠이 들었다가 새벽에 일어났다. 추석날 아침 사람들은 차례를 지내고 가족끼리 즐겁게 보낼 것인데 일이 없는 나로서는 누워서 하루를 시작했다. 아침에 식사라도 하려고 아내와 딸에게 모래네 설렁탕에 가자고 했더니 컴퓨터를 하는 아들까지 아예 관심이 없다. 9시경 합정동 해장국집으로 가서 혼자 식사를 했는데 명절날이라고 그 많던 손님이 하나도 없고 테이블을 모두 내가 차지하였다. 식사를 마치고 마포구청 건너편 홍제천으로 마라톤을 하려고 내려갔다가 어제 내린 비로 천변이 여기저기 무너져 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준비운동을 하고 오늘은 마포구청역과 월드컵공원 사이를 출발하여 행주산성까지 돌아오는 2시간30분 25킬로 긴 거리를 달리고 왔다. 물이 불어난 한강변에는 명절과 무관하게 낚시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비가 갠 둔치에는 코스모스가 피어 가을이 왔음을 알렸다. 1시에 집으로 돌아와 식사를 하고 학원으로 나갔다가 저녁에는 청진동 선지해장국을 사 가지고 왔는데 딸은 숟가락도 대지 않는다.
23일 새벽 4시에 눈을 떴더니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았고 오히려 날이 밝으면서 악몽만 꾸었다. 꿈은 얕은 잠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자연히 꿈을 꾼 날은 컨디션이 좋을 리가 없다. 오늘까지 휴일인 쾌청한 아침에 다른 방에서 잠을 자는 아내한테 식사를 하자고 전화를 했는데 함께 살면서 이것이 무슨 상황인지. 아무튼 주문한 대로 고기를 넣은 된장국을 끓였고 음식이 행복이라 늦게 자리를 차지한 딸도 식당에서 먹는 맛이라며 펄쩍 뛰며 좋아라고 한다. 오전에 북한산 백운대를 오르려고 구파발을 지나 북한산성에 도착했고 집을 나설 때는 함께 가자고 아내와 딸에게 동행을 요구하기도 했었다. 안산이나 오른다는 아내와 힘들다며 고사한 딸이어서 결국 혼자 왔지만 이런 것도 평소에 습관이 되지 않아 쉽지 않은 일이다. 10시30분 북한산성 입구를 출발하여 가파른 중턱 위문에 도착하니 12시가 되었고 여기서부터 10여분을 더 올라 태극기가 휘날리는 정상에 섰다. 북한산은 동서로 길게 드리워 있지만 오늘 올라온 코스가 가장 힘든 곳이고 인수봉과 마주한 여기가 해발 830미터 최고의 높이다. 하산하면서 위문 아래에 위치한 백운산장에 들러 두부 한 모에 막걸리 한 잔을 마셨는데 붉은 단풍과 함께한 흥겨운 나만의 시간이었다. 인수봉을 옆에 끼고 우이동 방향으로 3시에 내려와 도선사에 다다르니 경내는 역시 명성에 걸맞게 아직도 석탄일 같았다. 도선사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학원에 갔다가 내일 수업할 자료를 준비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즐거웠던 명절이 이제는 오히려 지루하기만 하다.
24일 추석 연휴가 끝났어도 주말이 뒤에 있는 금요일이다.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은 내일과 모레까지 쉴 수가 있겠지만 직장인과 공무원들은 어김없이 출근을 해야 한다. 식사를 마친 아침에 수업을 하려고 논술교실에 올랐더니 7명이 참석하여 늦게 온 수강생은 선 채로 강의를 들었다. 1시부터는 여학생들을 지도하고 3시가 지나서 성북동학원으로 이동하는데 연휴였던 어제보다 거리는 분명히 활력이 넘쳐 보였다. 아내는 내일 나의 생일을 준비한다고 불광동에 가 있다가 오후에는 일본여행 여권을 신청한다며 사진을 촬영하고 걸어서 구청까지 다녔다. 차로 다니면 금방인 것을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학원에서는 향우회에서 올린 메일 등을 점검하며 7시까지 보냈다. 식사를 마친 저녁에 거실의 TV가 고장이 나서 불편했지만 아내와 딸은 아랑곳하지 않고 생일 음식준비에 여념이 없다.
25일 음력 8월18일 쉰 살이 된 내 생일이고 경자년 출생이니 실질적으로 그보다 한 살이 더 많은 나이다. 반 백 년의 삶을 살았는데 생명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 남은 날이 있다고 해도 사람인 나도 불완전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마라톤을 하려고 집을 나서 한강을 거쳐 난지도까지 돌아오는 1시간30분 15킬로를 달렸다. 공기가 시원하여 좋았고 8시30분 출발점으로 들어와 숨을 고르는 사이에 생일날 식사를 하자는 아내의 전화가 와서 서둘러 들어갔다. 식탁에는 잔칫상처럼 음식이 차려 있고 생일을 축하하는 노래를 아내와 딸이 불렀는데 아들은 입도 뻥긋하지 않는다. 천장만 바라보고 있던 아들이 잠시 후 치질에 좋다며 우중충한 방석을 생일 선물로 내놓아 어리둥절했다. 살면서 방석을 선물로 받아보기는 처음이고 더욱이 치질도 없는 나로서 웃음이 나오기도 했지만 마음이 고맙기만 했다. 오전에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고 점심을 먹은 후에는 학원으로 나가 교재연구와 수업을 하면서 저녁까지 보냈다. 컴퓨터에 10월9일 고향 모교에서 총동문회 체육대회를 한다고 글이 올라와 원칙이 없는 행사라고 동문회 카페에 글을 올렸다. 동문회장을 만나본 적도 없지만 이런 큰 행사를 공지도 없이 몇 명의 의견으로 결정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내용이었다. 오후에 성북동 김치찌개 집에서 생일이라고 정식이와 저녁을 먹었고 고향 경상도에 있는 영식이는 축하한다는 전화를 했다. 10시에 집으로 돌아오는 중에 동생 정환이한테 전화가 왔고 형의 생일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니 고맙다는 답장을 보냈다.
26일 새벽에 우리나라 여자 축구가 일본을 승부차기로 이기는 장면을 보면서 9월의 마지막 일요일을 시작했다. 요즘 수업 때문에 교회를 여러 번 못 갔는데 오늘도 결석을 하게 되고 하지만 중간고사가 끝나면 다시 다닐 수 있을 것이다. 식사를 마친 직후 논술교실로 올라가 9시부터 아들을 포함하여 이대부고 3명을 수업하고 11시에는 미리 준비한 프린트로 다른 반 수강생들까지 지도했다. 오후에 역시나 교회를 많이 빠졌다고 우현이 전화가 와서 중간고사 상황을 설명해 주었고 교실에 올라가 4시부터 6시까지 다시 강의를 했다. 쉴 틈도 없이 아내가 수업을 한다고 교실로 올라와 홍제천으로 나가서 월드컵경기장까지 10킬로를 가볍게 달리고 돌아왔다. 평소에 운동복이나 운동화를 항시 차에 싣고 다니기 때문에 어디서라도 달릴 수가 있어 틈이 나는 대로 꾸준히 연습을 하는 것이다. 땀을 흘린 채 집으로 돌아오니 독서실에 갔던 딸과 수업을 마치고 들어온 아내가 있는데 아들은 늦은 시간까지 오지 않았다.
27일 새벽에 눈을 뜨니 아내가 콧소리도 내지 않고 옆에서 잘 자고 있다. 6시에 컴컴한 거실로 나와 혼자 앉아서 보내는 사이에 아들이 밖으로 나와 화장실에 갔다가 물을 마시고 그대로 방으로 들어간다.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아빠의 상황을 물어볼만도 한데 아들은 내가 죽어가는 순간에도 아마 바라만 보고 있지 않을까 싶다. 이번 주부터는 학교마다 중간고사가 시작되고 10월24일 마라톤 출전도 한 달이 남지 않아 강의와 운동에 박차를 가해야 할 시간이다. 식사를 하는 아침에 벌써 어른처럼 자란 아들과 딸이 학교에 간다고 현관을 나서는데 모두 훤칠하여 보기가 좋았다. 살면서 같은 값이면 인상이 좋아야 사람을 대하거나 일을 할 때 도움이 되고 나도 살아온 과정에서 부모님께 감사를 드린 적이 없지가 않았다. 아들과 딸이 현재는 고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니지만 시간이 이렇게 빠르니 눈 깜짝할 사이에 고등학생 딸과 대학생 아들로 바뀌어 있을 것이다. 오늘이 월요일이라 일이 많아 도시락을 준비하여 일찍 학원으로 나가서 수업준비와 서류정리를 하며 보냈다. 점심을 먹은 오후에 수업을 하고 6시가 되어서는 논술교실로 이동하여 내일 국어시험인 인창고 수강생들을 8시까지 지도했다. 식사를 마친 밤에는 딸이 엄마와 자신의 방에서 자겠다고 어리광을 부리는데 혼자 있는 아빠의 입장은 생각이나 하는지 모르겠다.
28일 12시경 잠이 들어 5시간을 자고 컴컴한 새벽에 주섬주섬 옷을 입고 밖으로 나왔다. 마라톤 연습을 하기 위함이었는데 아파트 입구부터 달렸다가 홍제천을 거쳐 모래네 근처까지 달리고 돌아왔다. 이른 시간 등교하는 학생들과 출근길의 사람들로 아침이 활기차 보였고 서대문도서관 언덕을 넘어 7시30분 체육관에 도착했다. 운동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다리가 저리다는 아내가 산행을 한다고 나서는데 다이어트를 하면서 병을 만드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낮에 시내에 나가 친구와 진국설렁탕으로 점심을 하며 시간을 보냈고 즐거운 시간은 확실히 빠르게 지나간다. 영식이는 운반선 문제로 아직도 고향에 머무르고 있지만 여러 정황상 사업의 진전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텐데 내가 보기에는 친구에게 시련과 고통이 오고 있는 시점이다.
29일 요즘 중학생 딸의 중간고사 기간인데 아빠로서 더 많이 신경을 써주지 못하여 미안한 마음뿐이다. 흐르는 세월은 결국 이별을 만들어 30년쯤 지나면 나는 세상을 떠나고 딸도 어디쯤 가고 있을 것이다. 아니 15년 후만 되어도 30살이 되는 딸은 자신의 길을 찾아서 나와는 다른 모습으로 살아갈 것이다. 10시경 체육관으로 나가 운동을 하고 학원에 가서는 쓸고 닦고 대청소를 2시간 했더니 교무실 분위기가 환해졌다. 오늘부터 고3 논술 개인지도가 있어 예전에 사용한 자료를 다시 몇 시간 보았는데 요즘은 논술유형이 대학마다 달라 더 복잡하고 난해하다. 밤에 원효로에 나가 고향 선배를 만나 식사를 하면서 술을 몇 잔 마셨더니 금방 12시가 되었고 늦은 시간에 친구 형준이가 차를 가지고 와서 집까지 나를 태워다 주었다.
30일 몇 시간을 자고 어제 두고 온 내 차를 가지러 일찍 나갔다가 닭곰탕으로 해장국까지 하고 10시가 되어 집에 돌아왔다. 오늘이 말일이라 공과금을 낸다고 서두르는 아내에게 이번 달 수강료 220만원과 별도로 187만원을 더 입금해 주었다. 내가 처리하는 카드비용 70만원까지 합하면 이번 달도 약 470만원을 지출했는데 매월 적은 액수의 생활비가 아니다. 아내에게 전달하는 돈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알 수는 없지만 큰 낭비는 없는 것 같고 다만 씀씀이가 꼼꼼하지 못하여 염려가 되는 정도다. 오전에 잠을 자다가 정환이 동생과 만나려고 학원으로 나갔고 1시경 모처럼 점심을 함께 먹으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 이대부고 체육대회 예선에서 아들이 골을 많이 넣어 준결승에 올랐고 경시대회에서도 영어 2등을 했다고 학교에 있는 아내한테 문자가 왔다. 저녁에 논술교실로 이동하여 9월의 마지막 수업을 하고 집으로 왔는데 마라톤이 있는 10월 내일이 오히려 장벽처럼 느껴지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