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유
나태주
아프지만 다시 봄
그래도 시작하는 거야
다시 먼 길 떠나보는 거야
어떠한 경우에도 나는
네 편이란다.
----나태주 시집 {틀렸다}에서
나태주 시인의 장점 중의 하나는 어떤 사건과 현상들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그것을 가장 짧고 간결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 헤라클레이토스의 ‘투쟁은 만물의 아버지이다’, 프로타고라스의 ‘인간이 만물의 척도이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니체의 ‘신은 죽었다’, 반경환의 ‘세계는 범죄의 표상이다’, 마르크스의 ‘모든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다’라는 말들처럼, 모든 시인과 사상가들은 그들의 일생내내 이처럼 잠언과 경구를 쓰기 위하여 단 하나뿐인 목숨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프지만 다시 봄”, 이 시구는 오랫동안 자기 자신을 단련한 결과, 수천 년의 역사와 시간을 압축시킬 수 있는 최고급의 인식의 힘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봄은 사나운 눈보라와 그토록 혹독한 추위를 견뎌온 봄이며, 이 봄을 맞이한 산수유는 그인고의 세월과도 같은 상처를 갖고 있을 것이다. 폭설에 가지가 꺾이고, 살을 에는 듯한 추위에 동상을 입었을 산수유는 다만, 산수유가 아니라 우리 인간들의 모습과도 똑같다.
하지만, 그러나 “아프지만 다시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부활의 신호탄이며, 언제, 어느 때나 백발백중의 명사수와도 같은 언어의 힘을 갖고 있다. 니체의 말대로, 한 시대와 한 문화 전체가 압축되어 있는 말이며, 그 아픔을 더욱더 끌어안는 노시인의선각자적인 예지가 번뜩이고 있다고 할 수가 있다. 아픔은 삶의 질서이며, 모든 삶의 성장 동력이다. 아픔은 활이 되고, 희망은 화살이 된다. 아픈만큼 더 멀리 날아가고, 아픈만큼 더 정확하게 과녁을 맞출 수가 있다. 아직도 아프고, 그 아픔의 진통에서 헤어나오지를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고, 더욱더 “먼 길을 떠나”보지 않으면 안 된다.
“아프지만 다시 봄”은 섬뜩할 만큼의 전율을 불러일으키고, 어느 누구도 감히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만큼의 무한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아프지만 다시 봄// 그래도 시작하는 거야/ 다시 먼 길 떠나보는 거야”는 단 한 순간도 머뭇거릴 수 없는 백절불굴의 채찍이 되고, “어떠한 경우에도 나는/ 네 편이란다”는 무한한 성원과 격려의 말이 된다. 한 손엔 채찍을 들고, 한 손엔 무한한 성원과 격려의 말을 들고, 결사항전決死抗戰의 대승리를 기원하고 있는 것이다.
나태주 시인의 [산수유]는 이 세상의 삶의 찬가이며, 장중하고 울림이 큰 한국정신의 걸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너희들 뒤에는 내가 있다!
오직, 전진하고, 또, 전진하라!
문화적 영웅, 즉, 대시인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느닷없이 출현하다.
오오, 홍익인간弘益人間이여!
오오, 나태주 시인이여!!
첫댓글 ㅋㅋㅋ하지연시인님 오랜만 들렸습니다
상환능력 시 되었야 갰는데
들켜나 ?
될 듯 될듯
단순한 말 부리 ㄹ씨앗뿐 ㅋㅋ
석 달후 맘그릇 빗듯 ㅎㅎㅎ
서울 방문시 쪽지 택배 부탁합니다 ^.^
늘,
건강하세요
건강 잃어버리기전 30년전 구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