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서 마주친 100개의 인생 43: 소설, 소년이 온다.
시신을 돌보던 중학생이 광주에서 총살당한 이유,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게 됨으로써 노벨 재단의 위상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할 수 있겠습니다.
이번 기회에 위상이 한껏 올라간 노벨 재단에 큰 축하를 전하며 관련 기사를 재 업로드합니다.
소설 『소년이 온다』
출처-<창비>
노벨 문학위원회 위원은 한강의 작품 중 ‘소년이 온다’를 가장 추천했다.
소년이 온다는 1980년 한국 군대가 민주주의와 인권을 요구하던 학생과 민간인 100여 명을 학살한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매우 감동적이고 때로는 끔찍한 이야기.
이 책은 그 자체로 잔인한 권력의 소음에 대항할 수 있는 매우 부드럽고 정확한 산문이다.
한강은 산 자와 죽은 자가 어떻게 얽혀 있는지, 그리고 이러한 트라우마가 어떻게 여러 세대, 때로는 집단에 남아있는지 보여준다.
광주, 1980년 5월 18일 썩어가는 내 옆구리를 생각해. 거길 관통한 총알을 생각해. 처음엔 차디찬 몽둥이 같았던 그것, 순식간에 뱃속을 휘젓는 불덩어리가 된 그것,
그게 반대편 옆구리에 만들어 놓은, 내 모든 따뜻한 피를 흘러나가게 한 구멍을 생각해.
그걸 쏘아보낸 총구를 생각해. 차디찬 방아쇠를 생각해. 그걸 당긴 따뜻한 손가락을 생각해. 나를 조준한 눈을 생각해. 쏘라고 명령한 사람의 눈을 생각해.
탐관오리(貪官汚吏)!.
부패한 정치 검사는 사욕을 위해 공권을 쓰고, 권력에 눈이 먼 무능한 장군은 외적 앞에서는 꼬리를 내려도 자국 국민을 죽이는 쿠데타에는 누구보다 용감하다.
‘박 정희의 아들’로 불리던 전 두환과 그의 일당들은 박 정희의 죽음 이후 신속하게 자신들의 권력욕을 실현해 나갔다.
그들은 나라를 지켜야 할 군대를 동원해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자국민들에게 잔인한 살인을 자행했다.
5.18 항쟁 기간 동안, 계엄군은 광주 시민들에게 총 51만 2,626발의 실탄을 발사했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만 606명의 시민들이 학살당했으며 그중 30%는 10대 소년들이었다.
19살의 ‘손 옥례’ 양은 시신 담을 관을 구하러 가던 도중 머리와 가슴 등에 M16 총탄 7발을 맞고 사망했다.
그것도 모자랐는지 계엄군은 죽은 손 양의 가슴 부위를 다시 대검으로 찔렀다.
살아남은 사람들의 고통도 끔찍한 것이었다. 5.18 피해자의 자살률은 10.4%로 이는 일반인의 500배가 넘었다.
열여섯 살 동호가 시신들을 돌보는 이유.
그것은 조준 사격이었다.
열여섯 살, 만으로는 열다섯 살인 중학교 3학년 동호는 분명히 보았다.
그날 동호는 정대와 함께 손을 맞잡고 선두로, 선두의 열기 쪽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일요일부터 돌아오지 않는 정대의 누나, 정미를 찾아 나선 것이었다.
광장은 광주 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시상에, 옥상이여’ 어떤 아저씨의 숨찬 중얼거림이 들리는 듯하더니 총성이 들렸다.
한 발이 아니었다. 귀를 찢는듯한 총소리에 광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순간 정대는 뒤로 넘어졌고 동호는 정대의 손을 놓쳤다. 용감한 몇몇 사람들이 쓰러진 사람들을 들쳐업었다.
옥상에서 그리고 광장 중앙의 군인들 쪽에서 연이어 총성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은 다시 고꾸라졌다.
동호는 몸이 얼어붙어 골목 담벼락에 들러붙었다.
갑자기 어느 순간 광장이 정적에 쌓였다.
군인들이 2인 1조로 걸어 나와 쓰러진 사람들을 신속하게 끌고 가기 시작했다. 동호는 그렇게 정대와 영원히 헤어졌다.
「여자의 이마부터 왼쪽 눈과 광대뼈와 턱, 맨살이 드러난 왼쪽 가슴과 옆구리에는 수차례 대검으로 그은 자상이 있다.
곤봉으로 맞은 듯한 오른쪽 두개골은 움푹 함몰돼 뇌수가 보인다.
눈에 띄는 그 상처들이 가장 먼저 썩었다.
동호는 합동 분향소가 있는 상무관으로 가 무서움과 구토를 참아가며 흰 무명천을 들추고 시체들의 얼굴을 확인했다.
정대의 시체를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죽음을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상무관으로 시체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관이 모자랄 정도였다.
소식이 끊긴 가족을 찾아온 사람들이 시체를 덮은 흰 무명천을 들출 때마다 웅성거림과 통곡과 비명들이 들렸다.
시취, 즉 시체가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마스크 정도로는 감당이 안 됐다.
초를 태우면 시취가 줄어든다는 말에 시체들 머리맡마다 초를 켰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너, 시간 있으면 오늘만 우리 도와줄래?. 손이 너무 모자라.
어려운 건 아니고,... 저기 끊어다 놓은 천 잘라서 저쪽에 있는 사람들 덮어주면 돼.
너처럼 누가 가족을 찾으러 오면 하나씩 걷어서 보여 주고.
그날부터 동호는 자신을 처음 맞이해 준 ‘선주 누나’와 한 조가 되었다.
동호는 열심히 형들, 누나들을 도왔다.
시체가 들어오면 성별, 어림잡은 나이, 입은 옷과 신발의 종류 등을 꼼꼼히 장부에 기입했다.
시신을 찾은 유족들은 목화솜으로 시신의 코와 귀를 막아주고 깨끗하고 좋은 옷으로 갈아 입혔다.
그리고 관 위에 태극기를 반듯이 펴고 끈으로 묶은 후 애국가를 부르며 짧은 추도식을 치렀다.
동호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나라가 죽인 사람들인데 왜 애국가를 부르는지?.
그런 동호에게 ‘은숙 누나’는 군인들은 반란자이지 나라가 아니라고 말하며 동호를 이해시키려 했다.
흐느낌 사이로 돌림노래처럼 애국가가 불려지는 동안, 악절과 악절들이 부딪치며 생기는 미묘한 불협화음에 나는 숨죽여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하면 나라란 게 무엇인지 이해 해낼 수 있을 것처럼.
정대와 정미 누나에 대한 기억
동호네 사랑채에 정대와 정미 누나가 세를 들어왔다. 둘의 아버지는 대전으로 돈 벌러 갔다고 했다.
동호는 초등학생만큼 키가 작았다.
자기도 키가 작은 정미 누나는, 동호 공부를 위해 학업을 포기하고 방직 공장을 다니는 정미 누나는, 그 빠듯한 형편에도 동호 키 크라고 우유를 배달시켜 먹였다.
정대는 누나 때문에 할 수 없이 인문계고 입시 준비를 하지만 누나 몰래 신문 수금 일을 하는 착한 친구였다.
야근을 끝내고 돌아온 정미 누나는 가끔 동호를 몰래 깨워 연탄불을 빌려 갔다.
정대 역시 누나에게는 도서관에 다녀온다고 말하지만, 수금 일 때문에 귀가가 늦어져 둘은 자주 연탄불을 꺼뜨렸다.
하루는 퇴근한 정미 누나가 동호에게 혹시 버리지 않았다면 1학년 교과서를 좀 달라고 했다.
야학에 다니게 됐다고 주섬주섬 말하며,
정대한텐 말하지 마라. 안 그래도 저 때문에 내가 학교 못 다녔다고 눈치 보는데. 중학교 검정고시 합격할 때까지만 모른는 척해줘.
얼굴에서 무슨 풀꽃 같은 게 연달아 피어나는 것처럼 눈웃음을 짓는 그녀의 얼굴을 나는 멍하게 바라보았다.
책을 건네준 동호는 신이 났다.
세상에,... 너는 머시매가 어쩌면 이렇게 착실하냐?.
누나의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책을 받아 든 누나의 생글거리던 눈, 고단한 미소 같은 것들이 동호를 뿌듯하게 했다.
두 평도 안 되는 단칸방에서 어찌 정대 몰래 공부를 하겠다는 건지 그것이 걱정되기는 했지만,...
야학, 공장, 가끔 가던 교회, 일곡동 오촌 당숙네. 다음 날 아침부터 정대와 함께 그곳들을 찾아다녔지만 정미 누나는 어디에도 없었다.
일요일 밤부터 정미 누나가 사라졌다.
길 가던 누군가가 총에 맞아 죽었고 또 어떤 처녀는 군인들이 대검으로 찔러 죽였다는 흉흉한 소문들이 광주를 떠돌 때였다.
동호는 울먹이는 정대를 달래 함께 정미 누나를 찾아 나섰지만, 누나를 찾을 순 없었다.
그리고 그날, 정대마저 사라졌다.
그들에게 던지는 정대의 질문,
그들은 곡물자루를 운반하듯 시체들을 트럭에 던져 넣었다.
정대의 몸 위에 다른 시체들이 겹겹이 쌓였다. 피를 너무 쏟아내 정대의 심장은 멈췄다.
심장이 멈춘 뒤로도 계속 피는 쏟아져 나왔기에 정대의 얼굴은 습자지같이 얇고 투명해졌다.
계속해서 내 몸은 썩어갔어. 벌어진 상처 속에 점점 더 많은 날파리들이 엉겼어.
눈꺼풀과 입술에 내려앉은 쉬파리들이 검고 가느다란 발을 비비며 천천히 움직였어.
정대의 몸뚱아리는 썩어가고 있었고 심한 악취를 풍겼지만, 정대는 눈을 감을 수 없었다.
누나가 보고 싶었다.
누나가 쪄 준 햇감자가 그리웠고, 자신의 이마와 뺨을 쓰다듬어 주던 누나의 손길이 생각났다.
어느 초파일 날, 누나와 함께 엄마를 모신 절에 다녀올 때 버스 창가에서 누나와 함께 맡았던 아카시아 냄새가 떠 올랐다.
누나는 죽었어. 나보다 먼저 죽었어.
혀도 목소리도 없이 신음하려고 하자, 눈물 대신 피와 진물이 새어 나오는 통증이 느껴졌어. 눈이 없는데 어디서 피가 흐르는 걸까?. 어디서 통증이 느껴지는 걸까?.
눈을 감을 수 없었던 정대의 넋이 정대의 몸을 빠져나왔다.
정대의 넋은 자신의 얼굴과 몸을 보며 누나를 떠올렸다.
어디선가 누나의 혼도 어른거리고 있을 테니 누나를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그곳을 모르고 안다고 해도 몸이 없으니 어찌 가야 할지 몰랐다.
누나도 몸이 없을 테니 어떻게 누나를 알아봐야 할지도 몰랐다.
군인들은 모아온 시체들을 덤불숲 구덩이에 쌓았다. 그들은 냄새를 견딜 수 없다는 듯이 코와 입을 막으며 커다란 석유통을 들고 와 시체들 위에 뿌렸다.
정대의 넋은 군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군인들이 불을 붙였다.
어두운 덤불 숲이 환해졌다.
시체들의 몸과 근육과 내장이 불타며 검은 연기가 허공으로 솟았다.
정대의 넋도 연기를 따라 올랐다. 정대는 이제 모두 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누나를 보지도 못했지만,...
정대는 그들에게 진심으로 묻고 싶었다.
그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 잠든 그들의 눈꺼풀 위로 어른거리고 싶다. 꿈속으로 불쑥 들어가고 싶다.
그 이마, 그 눈꺼풀들을 밤새 건너다니며 어른거리고 싶다.
그들이 악몽 속에서 피 흐르는 내 눈을 볼 때까지, 내 목소리를 들을 때까지,...
왜 나를 쐈지?. 왜 나를 죽였지?.
동호의 최후와 그 이유
동호야. 지금 같이 나가야 돼.
위태하게 이층 난간을 붙들고 서서 나는 떨었다. 마지막으로 눈이 마주쳤을 때,
살고 싶어서 무서워서 내 눈꺼풀은 떨렸다.
동호는 은숙 누나의 말을 거절했다. 동호는 가지 않았다.
군인들이 곧 진입할 것이고 도청에 남은 사람들은 모두 죽일 것이라는 말들이 파다하게 퍼졌다.
동호는 그날 자신을 데리러 온 엄마에게 거짓말까지 하며 도청에 남았다.
여섯 시에 간다고, 가족들 같이 저녁 먹자고 엄마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다.
카빈총을 든 채로 집에 가라고 화를 내는 ‘진수 형’의 말에도, 비록 머뭇거렸지만 동호는 분명히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군인들이 쏘아 죽인 사람들의 시신을 리어카에 실어 앞세우고 수십만의 사람들과 함께 총구 앞에 섰던 날,
느닷없이 발견한 내 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랐습니다.
새벽 두 시경에 군인들이 진입할 것이란 말이 돌았다. 남은 사람들 모두가 두려움에 떨었다.
그들은 용기가 있어서 남은 것이 아니었다. 이유 없이 죽어간 사람들의 모습에 붙잡혀서, 무서워 도망친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워서, 친구의 손을 놓치고 도망친 동호처럼 그들은 갈 수 없었다.
남은 사람들의 희망은 하나였다.
이 밤을 버티면, 이 밤만 버티면, 수십만의 시민들이 도청 앞 분수대 앞으로 모일 것이라고, 그러면 살 수도 있을 것이라고,...
카빈총을 들고 한쪽 창문을 맡은 진수는 동호와 동호 또래의 아이들에게 반복해서 말하고 또 말했다.
캐비넷에 숨어 있다가 총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으면 항복하라고,... 꼭 손들고 나가라고,...
군인들도 손들고 나가는 어린애들은 죽이지 않을 것이라고,...
계단을 올라온 군인들이 어둠속에서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 조의 누구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습니다.
방아쇠를 당기면 사람이 죽는다는 걸 알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린 쏠 수 없는 총을 나눠 가진 아이들이었던 겁니다.
진수와 많은 다른 사람들은 모두 체포되어 뒤로 손이 묶인 채 도청 마당에 무릎 꿇고 앉아 있었다.
장교 하나가 다가왔다. 그는 흥분해 있었다.
그 장교는 한 사람씩 군화로 등을 밟아 머리를 흙바닥에 박게 하며 욕설을 퍼부어 댔다.
자신이 월남에서 죽인 베트콩 새끼들이 서른 명도 넘는다며 씩씩댔다.
장교의 군홧발에 진수는 바닥에 이마를 찧어 피를 흘렸다.
그때 진수는 보았다.
동호와 몇몇 아이들이 두 손을 들고 내려오는 것을,...
아이들은 진수가 시키는 대로 총소리가 들리지 않자 항복하러 내려온 것이었다.
장교는 진수의 등에 발을 올린 채로,
씨팔, 빨갱이들, 항복이다 이거냐?. 목숨은 아깝다 이거냐?. 란 말을 뱉으며 M16을 들어 아이들을 조준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아이들에게 총을 갈겼다.
아이들이 쓰러졌다.
동호는 그렇게 죽었다.
씨팔, 존나 영화 같지 않냐?.
이것이 아이들이 쓰러지자 장교가 뱉어낸 말이었다.
살아남은 사람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그날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지옥이 기다리고 있었다.
모진 고문이 있었고 짐승처럼 살아야 했던 감옥이 있었다.
군부는 상무대 공터에 작은 건물 하나를 세웠다. 군법 재판소였다.
살아남은 사람들의 몸 구석구석에 있는 고문의 흔적들이 어느 정도 아물자 모두 재판에 회부됐다.
총을 든 군인들이 재판장을 휘젓고 다녔다.
재판은 요식행위일 뿐이었고, 판사는 사형부터 7년 형까지 다양하게 형을 선고했으나 이듬해 성탄절 대부분이 특사로 석방되었다.
군부 스스로 자신들의 부조리를 자백하듯이,
꼭 죽이고 싶은 사람들이 있었어, 형.
아직 완전히 취하지 않은 그의 검고 깊은 눈이 나를 응시했습니다.
언제가 됐든 내가 죽을 땐, 그 사람들까지 꼭 데리고 갈 생각이었어.
이것이 김 진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떠올린 그의 모습이었다.
살아남은 사람들 대부분 원래의 위치로 돌아가지 못했다.
대학, 직장 그 어디든 자신이 있던 곳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숨죽이고 누군가의 도움으로 허드렛일을 하며 살아야 했다.
누군가는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누군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십 년의 세월을 김 진수는 취해서 살았다. 그리고 겨울 어느 날 김 진수는 자살했다.
그의 장례식은 조촐했고, 그처럼 죽지 못한 사람들은 계속 살아 나갔다.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 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동호가 죽은 후, 그의 어머니
삼십 년의 세월을 동호의 어머니는 오직 후회로 살았다.
여섯 시에 온다고 같이 저녁을 먹자고 한 동호의 말을 믿은 것을,...
심지어 불쌍한 정대와 정미 남매에게 세를 준 것까지 후회하고 살았다.
그 세월 동안 동호의 아버지가 죽었고, 정대의 아버지도 죽었다. 그리고 그 세월 내내 동호의 마지막을 잊을 수 없었다.
하늘색 체육복에 교련복 윗도리를 입고 있던 동호의 마지막 모습과 총을 맞고 하도 피를 흘려 그토록 가벼웠던 동호가 들어 있는 관의 무게를,...
목숨이 쇠심줄 같어서 너를 잃고도 밥이 먹어졌제.
정대네 아부지까지 떠나 괴괴한 문간채는 밖에서 자물쇠로 채워버리고, 꾸역꾸역 가게에 나가 장사를 했제.
어느 날 동호 어머니는 동호를 보았다.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는 짧은 머리의 중학생이었다. 뒤통수가 영락없이 동호였다.
하얀 하복 반소매 아래 호리호리한 팔뚝도 바로 동호였다.
좁은 어깨에 길쭉한 허리까지. 고라니같이 앞으로 수그러진 목조차.
네가 나한테 한번 와준 것인디, 지나가는 모습이라도 한번 보여줄라고 온 것인디, 늙은 내가 너를 놓쳐버렸어야.
소년이 온다. 중학교 3학년 동호가 온다. 목이 길고 하늘색 체육복을 입은 소년이 온다.
그 소년은 눈 덮인 무덤 사이로 온다. 그리고 우리를 향해 눈으로 웃는다.
우리는 그 소년을 따라간다. 동호와 함께 가지런히 쓰러진 다른 소년들도 온다. 우리에게 함께 가자고 한다.
이제 당신이 나를 이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나를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그들에게 천벌을 내리지 못한다면, 다음 차례는 내 인생일 수 있다.
그때 난 네 손을 붙잡았는데 우리 군대가 총을 쐈어.
넋 나간 듯 중얼거리는 너를 행렬의 앞으로, 더 앞으로 잡아끌었는데 우리 군대가 총을 쐈어.
금방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너를 힘껏 끌고 나아가며 난 노래했는데. 목이 터져라고 애국가를 따라 불렀는데.
우리 군대가 총을 쐈어.
이 단순한 문장 하나에 광주 민주화 운동의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소요 사태도 아니었고 폭동도 아니었습니다.
민주주의를 또다시 후퇴시키고 부당하게 권력을 찬탈하려는 정치 군인들에 대한 당연한 저항이었습니다.
민주 시민들의 의무였습니다.
외적의 침입에 국가와 국민을 보호하라는 군대를 사리사욕을 동원하여 자국민들을 학살하게 한 사건, 이것이 5.18의 단순하고도 분명한 진실입니다.
오래된 사건도 아닙니다. 겨우 40년 전 일어난 사건입니다.
이 천인공노 할 국가 반란 범죄의 주역들은 어떤 처벌을 받았을까요?.
당시 ‘일부’라고 자기합리화를 하고 싶지만, 다수였던 한국인(?)들에 의해 또 다른 학살 주범인 노 태우가 전 두환의 뒤를 이어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참으로 쥐구멍으로라도 기어들어 가고 싶을 정도로 창피하지만, 처음이 아닙니다.
단 한 번도 반민족 범죄자들에게 제대로 된 처벌을 해 본 적이 없는 부끄러운 역사, 악이 승리하는 우리의 역사가 또다시 반복된 것일 뿐입니다.
후에 학살 주범인 전 두환은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되었으나 그의 수감 기간은 2년에 불과했습니다.
그는 숱한 명언(?)들을 남기며 골프를 즐기고 90세까지 건강하게 천수를 누렸습니다.
역대 대통령 중 두 번째로 오래 살았지요.
그의 집권을 도와 온갖 특혜와 부를 누렸던 부역자들 역시 제대로 된 처벌을 받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이런 일이 아직도 벌어지겠지요.
형법 제87조 (내란) :
대한민국 영토의 전부 또는 일부에서 국가권력을 배제하거나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자는 다음 각 호의 구분에 따라 처벌한다.
1. 우두머리는 사형, 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에 처한다.
2. 모의에 참여하거나 지휘하거나 그 밖의 중요한 임무에 종사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한다.
살상, 파괴 또는 약탈 행위를 실행한 자도 같다.
3. 부화수행(附和隨行)하거나 단순히 폭동에만 관여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한다.
법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만 준엄합니다.
또 다시 그들은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은 악순환의 반복이 내 인생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요?.
경험은 바보도 깨우치게 합니다. 보고 듣는 것이 악의 승리와 양심의 패배라면, 그 경험들이 계속 쌓인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점점 퇴행할 것입니다.
오직 이기심만이 미덕이 될 것이며 무임승차를 한 사람보다 하지 못하는 사람이 더 비난받을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그렇게 된다면 내 인생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진흙 구덩이 속 개싸움을 벌이는 것을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쓰레기통 속에서 장미가 피어날 수 없듯이 더러운 사회 속에서 내 인생만 온전할 수는 없습니다.
약 15년으로 끝나버린 동호의 인생 다음 차례는 내 인생이 될 것입니다.
2023년 지금, 우리 눈 앞에 펼쳐진 한국 사회의 모습이 그 증거입니다.
사후 약방문이 될지라도, 부관참시를 해서라도 민족 반역자들과 학살의 주역들, 그리고 그들에게 부역한 언론인들, 지식인들, 정치인들, 법조인들을 처벌해야 합니다.
단 한 번이라도 죄지은 자들에 대한 정당한 처벌이 실행되어야 합니다.
한의 민족이 아닌 한을 푸는 민족이 되어야 합니다.
5.18 학살 책임자들에 대한 재처벌이 있어야 합니다. 주범뿐 아니라 부역자들까지,...
그것이 온전히 내 인생, 내 가족의 인생, 내 친구들의 인생이 보호받는 길입니다.
친구의 손을 놓친 동호, 그래서 어린 나이에 끝까지 도청에 남은 동호, 15년짜리 인생을 산 동호와 그 친구들이 옵니다.
함께 가자고 손짓하며 옵니다. 그 손짓에 우리가 대답해야 합니다. 책임자들을 처벌하고 그들이 사과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정의와 양심이 이긴다는 것을 증명해야 합니다.
동호네 가족의 인생, 정대네 가족의 인생, 그리고 여러 평범하고 선량한 사람들의 인생이 더 이상 무너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힘들게 고통스럽게 광주 중학생 동호의 짧은 인생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동호가 온다면 반갑고도 당당하게 맞이할 수 있도록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한국 언론들이 전 두환에 부역할 때, 위험을 무릅쓰고 광주에 잠입하여 그 실상을 세계에 알린 독일 기자,
푸른 눈의 목격자, 위르겐 힌츠페터(Jürgen Hinzpeter)’가 남긴 말을 소개하며 마흔세 번째 인생탐구를 마칩니다.
“우리 독일인이 제2차 세계 대전 때 했던 만행을 기억하는 만큼, 5.18도 반드시 기억되어야 한다.”
인빅투스편집 : 임 권산
※ 다시한번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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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陽 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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