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만 그런것은 아니다. 하루 하루의 일상도 끊임없이 반복되는게 흐리거나 맑음의 반복이다. 아주 작은 바람이 꽃바람으로 느켜저 한껏 부풀었다가도 훅 다가온 악취에 화들짝 숨을 멈추었던 적이 누군들 없겠는가. 가을이다. 오늘 하루가 산들바람이길! 그리고 향긋한 하루이길! 나에게만이 아니라 모든 외로운 독거노인들에게도 같기를! 축복합니다. 지난 밤에는 참 잘잔듯 싶다. 그 지난밤엔 말도아닌 소설을 읽다가 새벽 2-3시를 훌쩍 넘겼기 때문이다. 이야기 소재가 끝이 날만도 한데, 그럼에도 야기는 끝없이 지속되고 있다. 아마도 인간들의 역사가 끝날때까지는 그렇지 않겠는가 싶다. 유익한 이야기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닐게다. 같은 얘기 속에서도 우린 서로다른 것을 듣고 있으니 말이다. 누군가는 참신한 교훈을 찾게되기도 하고, 나처럼 전혀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기도 하니까. 책속에 모든게 다 있다고도 했다. 그런데, 맹인 아닌 맹인인 나는 어떤것도 발견 못하고 오늘에 이르렀다. 만권의 책을 읽으면 뭣하나. 단 한권만이라도 재데로 읽은게 유익할게다. 그런데, 그걸 발견하고 찾는게 스스로의 몫인것같다. 누가 설명해주거나 손을 잡고 가르켜 줄수있는 것도 아닌것 같다. 진짜 많이 읽은 사람에게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나름 책을 많이 읽고있는 편이다. 그런대 얻어지는 교훈은 별로 없다. 영양가가 없는 판타지나 읽고있어서(?)는 아니다. 판타지라고 그속에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것이야말로 편견이다. 아름다운 문장 전개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대화속에도 평범하지 않는 교훈과 명언이 얼마든지 심금을 때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내가, 나를 휘어잡고 변화시킬 만한 무엇이 없었단 말인지,,, 내 완고함과 돌처럼 굳어버린 심장을 후비고 들어올수는 없었단 것인지,,,. 몸 켠디션은 좋은 편이다. 코로나 예방주사를 어제 맞았는데, 어깨가 좀 아프고 신경쓰이던게 지금은 많이 부드러워 지고 있다. 진통제를 먹을까도 했는데 그냥 지나가게 될것 같다. 이것 또한 다행아닌가 싶다. 그젠가, 바나나 열개를 (낫개로)천원을 주고 샀다. 그리고 어제, 그걸 4개 아이들에게 가지고 가서, 나 하나, 아이들 하나반씩 맛있게 냠냠 했다. 나는 이걸 행복이라고 부르고 있다. 아이들도 과연 그럴까. 아들은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아끼지 않고 주고있다. 과일이며, 육고기며, 옷이며, 불필요한 장난감에 이르기까지, 거이 절제를 모른다. 거기에 비하면 나는 참 궁색한 할머니다. 애들 구멍난 양말을 꿔매기도 했고, 바지 무릎팍이 나가면 곧장 기워주고 있다. 솜씨도 있다. 몇일전에도 큰아이 바지 하나를 기워주었는데, 일단은 물어본다. ' 이 바지 무릎이 나갔는데, 버릴까? 할머니가 기워줄까?. ' 할머니, 좋아하는 바지예요. 입을테니 기워주세요'. 했다. 나는 바지를 가지고 와서 곧장 기웠다. 미뤄 놓지않는가. 사실 눈도 좋지않고 허리도 온전치 않아서 웅크리고 앉아 이런 작업을 하는게 쉽지는 않지만, 즐겁다. 내가 좋다. 나는 아마도 이런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진짜 사랑은 새바지를 냉큼 사주는 것이라고 딸은 말하지만, 그리고 그게 맞는 말일수도 있겠지만 내 방식은 그렇지 않다. 새 바지는 많고많다. 아마도 무릎팍을 기운 바지를 입고있는 아이들은 많지 않을게다. 참 별난 사랑 아닌가. 내 방식이고 내 사랑의 표현이다. 누구나 손주 바지를 기워줄수 있는 것은 아니기도 하고.ㅎㅎㅎ 내 만족이고 내 사랑이다. (며늘은 이런저런 상황에 대해서 전혀 관심도 없다)
어제는 나름 분주했다. 병원을 두군대나 갔으니까. 오늘도 아마 바쁘게 보낼것 같다. 백수다. 할일이 없다. 그럼에도 잘 지내고 있으니 다행아닌가. 뭔가 가치를 보람을 의식하면 일상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안할수가 없다. 다른 노인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런데 그건 아닌것 같다. 나는 내게 주어진 일상에 만족하며 즐거워 하려고 한다. 창조주의 뜻이 우리 모두가 영웅이나 위인이 되라 하신것은 아닐탠데,,, 그렇지 않는가? 나를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며, 주어진 시간만끔 할수있는 일을 즐겁게 즐기며 지내는게 창주주 그분의 뜻일수도 있다! 주님, 제게 유종의 미를 거둘수있게 은혜 배풀어 주십시요. 누추하고 빈곤한 삶을 살았지만, 한번도 반짝여 본적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의 자녀로 살았으니 축복이었습니다. 감사하고 또 행복합니다. 이 고백이 진실이었으면 더 좋겠습니다.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