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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을 간다.
D-8 일
많은 사람들이 갔다 왔었노라고 설레발치지만 사실은 거죽에 거죽만 핥고 지나왔으면서 마치 정복한 것처럼 이야기 한다. 나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로 하하아기편지에 ‘백두산 기행문’을 쓰고 집에는 백두산천지 기념사진도 거실에 크게 자리하고 있지만 사실 나도 설렌다. 출발 100일전에 백두산 기행문 올리니 영희씨는 100일 후면 가볼 곳을 미리 알려주어 기대 반 설렘 반으로 참고하겠노라고 하였는데, 해는 뜨고 지기를 반복하더니 이제 일주일 후면 출발한다고 한다.
여행의 흥은 출발하기 전이 최고라 이 흥을 돋우고자 같이 합식을 하면서 일정을 설명 들으며 사실은 북파가 어디고 서파가 어딘지도 모르면서. 그래 천지는 보았고 장백폭포는 보았다고 말할 수 있고, 해란강에 일송정도 보았는데 일송정은 연길 작은 동산에 있는 소나무 한 그루, 우리 동네 산에 소나무 보다 작은 나무였다. 청산리 전투지역도 답사하였는데 아기자기 골짜기가 참 깊었고 일본군 1개 중대 800명이 김좌진 장군이 지휘하는 독립군에게 몰살되었던 곳, 안개가 여름이면 자욱하게 끼고 골짜기가 깊어 일본군 상대로 게릴라전을 전개하였다고 한다.
약 15년 전에 청산리 전투지를 지나면서 임진왜란 때 내가 만약 신립장군이었다면, 일본군을 상대로 조령 세재에서 일본군이 지나는 세제 골짜기에 우리 군대를 잠복시켰다가 주변이 어둡고 스산해 지면 5∼6명씩 조를 짜 밤 세워 날마다 잠 못 자고 짜증나게 게릴라전을 전개하였다면 조선군이 탄금대에서 몰살되지는 않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하였었는데. 대군을 이끄는 장군의 의기도 생각했지만, 배수진을 치고 죽기로 싸우자고 결의도 했겠지만 신립장군의 의기는 결국 만용으로 약 8,000여 명의 조선군을 죽게 만들었구나 하면서 김좌진 장군과 신립장군이 비교되는 청산리를 지났는데 이번은 무슨 생각을 할까하고 기대가 된다.
나는 천문학 책을 읽으면서 ‘시공간’을 생각하고 ‘우리의 삶은 시간은 없고 공간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15년 전에 지났던 시간의 부피는 없다. 그렇지만 그곳을 지났던 추억은 오직 공간, 즉 추억은 오직 한 장의 사진으로 만으로 남는다. 그곳을 다시 간다고 오늘 점심부터 설레었다. 그런데 출발이 9월 4일 새벽 2시라고 그러면 잠을 자고 출발해야 된지 잠을 자지 않고 차에서 잠을 자야 되는지 조금 헷갈린다. 모르겠다. 그냥 비몽사몽간에 가야겠다고 생각하며 D-8일이 지난다.
D-7일
민순희씨가 또 웃긴다. 어릴 때 유치원을 못 나와서 빼기를 못해요. 133-70은 60이라고 한다, 그것도 문자까지 모두에게 알렸다. 역시 유치원은 나와야 되는 갑더라 백두산천지를 배경으로 큰 영정사진을 하나씩 준비함이 어떻겠냐고 말했다. 아버님 사진이 내 방에 걸려 있는데 백두산에서 웃으시며 찍은 사진이다. 정 자세를 하고 찍어놓은 사진도 있지만 어쩐지 백두산천지에서 웃으시며 찍은 사진이 좋아서 내 방에 아버지를 생각하고 걸어두었다. 나도 이번에 멋들어지게 한 장 찍어서 내가 간직하고 있다가 ‘시공간’에서 부피 없는 시간이 지난 다음 혹여 아들이 나처럼 나를 걸어놓을지 모르니 영정사진이라도 찍어야겠다고 생각하며 D-7일이 지나간다.
D-6일
오늘은 영화 보는 날
사람들이 좋다. 나 혼자 지껄이니까. 모두 다 각자의 사연을 갖고 각자 생활을 하며 모여 있지만 대화는 사회와 타인을 위하여 이야기 한다. 오늘 영화 감상 후 대화의 주제는 어떤 사건이 일어나고 나서 ‘공소시효’의 부당성에 대하여 은현씨가 제기한다. 나의 생각을 말한다면 공소시효 때문에 어떤 사건이 무가 된다더라도 그 세월동안 하늘이 준 벌을 충분히 받았으니 사하여 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되지만 이것은 너무나 자기중심적이고 그 시간을 조금 더 늘리는 것이 맞지 않는가 생각했다. 예리한 칼날도 오랜 시간이 지나면 무디어 지고, 문경세제에 새겨 놓은 아무개 관찰사 행적비도 삼백년 못되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무디어 지듯이 세상사는 우리의 죄도 일정 세월이 가면 무디어 지는 것이 자연현장이니 그런가 생각했다. 오늘 영화에도 나는 끝 부분 약 20분을 보았지만 영화 대사에서 ‘설령 공소시효가 자났더라도 하느님은 그 벌을 주실 것이다’. 하면서 주인공 아버지가 형사의 차에 받혀 죽음으로 죄를 갚음한 것 같아 자기의 마음속에 인간이 만든 벌을 스스로 받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
영주씨가 얼굴이 화사했다. 그래서 “나와 같이 백두산 여행가니 좋아서 얼굴이 좋아지지?” 하면서 웃고 순이씨 옥숙씨에게 “백두산 가면 행복하게 해줄게” 하면서 장난을 하면서 점심을 먹고 헤어졌다. 그리고 영희씨 영란씨 그리고 나 갑쟁이들 모임도 여행가서 하기로 하고 오늘이 지나갔다.
D-5일
오랜만에 이교수와 맥주를 먹으면서 웃는 이야기 많이 했다. 나의 백두산 가는 계획을 말하니 “형님 대단합니다.”한다. 별 대단할 것도 아닌 데, 계획은 출발하기 8일 전부터 여행중심으로 일어나는 나 주변이야기를 기록하여 여행 후에 아기편지에 싣는 일이고, 백두산 천지에서 독사진을 찍어 한국 와서 개인별 백두산천지를 배경으로 집에 걸어놓을 액자를 만드는 것을 계획하고 있는데 날씨가 좋으면 좋겠지만 혹여 날씨가 흐려 천지를 못 볼 경우 다른 사진과 편집할까 생각한다고 말하니 경만선생님이 그냥 보이는 데로 현상하는 것이 좋다고 하니 아마도 그 의견도 맞는 말 같았다. 이것은 여러분의 의견을 듣고 실행해야겠다.
처음으로 하하단원의 이름을 걸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이라 어떤 특별한 이벤트라도 만들어야 되겠다 하고 생각되는데 그곳은 산간벽지라 어쩔지 모르겠다. 아마도 15년 전과는 많이 다를 것이니 그 상황을 모르겠지만 가이드와 협의하면 어떤 이벤트가 이루어질지 모르겠다. 출발하기 전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고 대단하다고 하는데 내가 여행하여 본 경험으로는 여행 떠나기 전이 설레고 재미있지, 갔다 오면 그냥 집에만 빨리 가고 싶은 것이 여행이라 재미있으라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한다.
사진은 한 장만 찍어올 것, 출발하기 전부터 여행과 관련한 기행문을 쓸 것을 결정하고 오늘이 간다.
D-4일
물론 아침부터 번개 치니 천둥도 치겠지만 날씨가 심상치 않다. 어디를 가볼까도 생각했지만 재난문자를 정부에서 저렇게 보내는데 자숙해야지 하면서 혹여 우리 백두산 갔을 때 백두산천지가 이런 날씨면 어쩌지 하는 걱정을 했다. 추론하여 보건데 지금 비가 오는 것은 북태평양 습하고 더운 공기가 북에서 내려오는 찬 공기와 지금 전라도 근방에서 만나니 천둥치고 번개 번쩍하지만 아마도 백두산 쪽은 가을이 왕성하여 아주 청명한 가을 날씨로 오늘은 아주 천지가 잘 보일 거라는 추측을 하여본다. 우리가 백두산을 갈 때 추우면 백두산천지를 잘 볼 수 있을 것이고 더위가 밀려오면 못 볼 것이다. 그런데 가을이 점점 성해지니 백두산천지는 아주 해맑게 문을 열 것이라 생각한다. 백두산은 우리나라 시작점이고 땅 끝은 마지막 점이다. 그래서 그 시작점을 확인하려고 지금 준비하고 있다. 어릴 적 소풍가기 전 내일은 이상 없이 소풍을 갈까? 하는 생각과 매우 비슷한 설램의 기다림이 있다.
D-3일
1 하하님들과 공범 이라는 영화를 함께 볼 수 있어서 감사하다 더구나 매번 내 집 식당에서 함께 식사 하시고 영화 뒷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참 감사하다
2 몇 해 전 다녀오기는 했지만 백두산 기행을 특별히 하하님들과 함께 하는 일에
동참 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우리 민족의 정기가 서려 있는 우리 명산을 중국을 통해 가야 한다는 것에 씁씁하지만. 북한으로 들어가는 길이 열리기는 열리려나 참 아득하다
.3 가을 장맛비가 이제 그치려나 해가 대지를 비추이니 좀 살 것 같다 감사한 일 이다
4 조석으로 부는 바람이 청량하다 올여름 지독했던 더위가 언제 그랬냐싶다 계절의 변화가 참 감사하다
5 날씨 때문이었는지 떨어졌던 매출이 다시 좋아지고 있고 꾸준히 찾아주시는 손님들이 계셔서 참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다
경은씨가 백두산 간다고 하면서, D-3일 적어 올린 글입니다.
매출이 조금 늘어나서 좋고, 우리 땅으로 가지 않아서 조금은 씁씁하나 좋은 사람과 동행하여 좋다고 하면서 D-3일 이 지나갑니다.
D-2일
성당 노인회에서 지리산 섬진강간다고 출발하였다. 오는 중에 성진강을 보니 87세 먹은 노인이 두만강이 생각난다고 술 한 잔 걸팡지게 먹은 짐에 두만강 노래를 한다. 나는 모레 가는 나의 두만강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하면서 그 가사를 세겨보았다.
두만강 푸른물에 노젓는 뱃사공
흘러간 그 옛날에 내님을 실이일고
떠어나간 내에님은 언제나 오 시려나
그리운 내 님이여
그리운 내에님이여
언제나 오시이려어나
노래를 읊조리면서 일요일 겨우 비 오지 않는 날이 지나간다.
D-1일
강두희 사모님 회갑연을 초촐하게 학원에서 하하님들 20여명 참석하여 촛불켜고 사랑 편지하고 조그만 선물하고. 그런데 우리 사모님이 또 눈물을 흘리며 뒷 돌아서서 한참을 나오지 않는다. 그전에 홍도 가서도 칭찬의 빈도가 점점 높아지니 영희씨 안고 그 때는 펑펑 울더니 그래도 오늘은 한 살 더 보탠 회갑이라고 살포시 혼자 운다. 매우 기뿐갑더라 어쩌면 여자의 눈물은 기뻐서도 아니고 슬퍼서도 아니고 그냥 멍먹해질 때 사람들이 너무 좋아 하느님께 감사할 때 그런 눈물을 보이는 갑더라.
나는 그런 경우 너무 태연할 터인데 남자가 못돼서 그런다.
나는 백두산 가서 재미있는 재치놀이로 생일선물 해 주려고 이 생각 저 생각하다 모임 파하고 집에 와 가방을 싼다. 내용물은 카메라, 이번에는 내가 챙겼다. 그리고 약간의 술 그리고 자유시간 한 봉지 그리고 1000원 짜리 몇 장 별 살 것이 없을 것 같아 그렇게 준비했다.
잠을 자려고 할수록 정신이 말짱해진다. 10시 30분 지나는데 갑자기 세차게 비가 쏟아진다. 그러나 걱정은 되지 않는다. 이곳이 냉한 공기와 고온 다습한 공기가 지금 이곳에서 만나니 그렇고 이미 일기예보에 내일은 찬 기운이 밀려와 비도 그치고 전체 기상도를 보면 백두산은 가을이 한창일 것을 짐작한다. 백두산천지에 맑게 비추인 가을 하늘을 기대하면서 D-1일이 지나간다. 이제 D 일 부터는 메모장에 적어 순간을 적었다가 기록해야 한다.
D -데이
비가 많이 온다. 아마도 일행들 모두 잠을 나처럼 자지 않고 시간을 기다리는지 까톡이 까똑 까똑하며 난리다. 비가 세게 온다. 우산 안가지고 오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까 한다. 시계만 처다 보고 있다. 아마도 이제는 출발할 시간이다. 사람들이 잘 다녀오라고 해도 쌌는다.
까똑 까똑 한다. 고맙다. 그리고 감사했다.
다녀와서 기행문 올리리다, 정문화 올림
첫댓글 선생님의 화법이 그대로 담겨 있는데 말로 들을 때보다 재밌고 흐뭇합니다. 모든 성가시고 무거운 것들을 투욱툭 떨궈내고(냅둬버리고^^) 편안하고 홀가분해지는 기분이, 그런 기가 느껴집니다. 매번 좋은 기운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연스럽고 순리적이면서 그 안에 촘촘한 계획이 함께 공유하는 삶.선생님의 하루하루가 조리있고 여유롭게 느껴져 편안한 마음입니다. 하하님 한 사람 한 사람 눈여겨 보살펴 주시는 섬세하신 인정,감사합니다.백두산 천지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안타까워요.천지를 배경으로 하하님들에게 멋진 사진 선물하시려고 계획하신 선생님께 진심으로 깊이 감사 드립니다.
온 정성을 다해 백두산여행을 준비하셨군요.설레는 마음은 나이가 들어서도 마찬가진가봅니다.장대빗속을 뚫고 터미널로 향할때, 그때가 참 좋았어요.싱글벙글 웃음띤 얼굴들.여행은 그렇게 행복하게 하나봅니다.8일전부터서 마음을 다져온 정성에 감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