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을 달리는 자전거 위에서 피아노 소리를 듣는다. 달그락달그락. 바퀴가 보도블록을 누르니 길은 피아노 소리를 응얼거린다. 목적지를 과녁 삼아 쏜살같이 달리고 싶지만, 헐거운 건반 위에서는 제 속도를 낼 수 없다. 길의 조각들을 뿌리치며 페달을 허위허위 밟는다. 몸에 힘이 빠지고 생각의 틈이 벌어진다. 도미솔도미솔. 화음의 스펙트럼에 설핏 서러운 지점이 있음을 느낀다.
피아노 소리는 도시와 도시 사이 누구도 돌보지 않는 땅에서 피어난다. 출근길에 올라 평탄한 자전거길을 이삼십 분 미끄러지듯 달린 다음, 거친 길로 갈아탄다. 길을 따라 얼마간 가다 보면 여기가 이쪽 도시인지 저쪽 도시인지 아득해진다. 거기서부터 피아노 연주가 시작된다. 두 특례시를 잇는 황량한 길은 선율을 쥐어짠다. 이 곡은 돋아난 풀과 널브러진 자갈과 그 길을 지나는 사람만이 들을 수 있다.
피아노 연주가 잦아들고, 자전거는 이내 저쪽 도시에 다다른다. 도시의 심장부에는 관공서가 우뚝 솟아있다. 관공서의 오른편에 아파트들이 위인의 동상처럼 서 있고, 왼편에는 세계 각국의 음식이 즐비한 쇼핑몰이 있어 백 년 전 프랑스 만국박람회를 연상케 한다. 관공서, 아파트, 쇼핑몰은 절묘하게 삼각형 구도를 이룬다. 이 삼각형의 무게중심에서 종종 시위가 벌어진다. 시위대는 허가된 시간만이라도 세상의 주인이 되어보려는 듯 행정, 주거, 소비의 복판에서 SOS를 외친다.
관공서 직원들은 시위에 익숙하다. 시위가 벌어져도 의연하게 자기 업무에 몰두하는 기술을 터득했다. 웬만한 시위에도 흐트러지는 법이 없는데, 하루는 사무실 분위기가 유독 어수선했다. 사내 공지 사항은 직원들에게 한 장애인 단체의 시위 소식을 알리고 있었다. 창밖을 내다보니 수백의 군중이 경찰과 대치하고 있었다.
시위대의 구호는 관공서의 육중한 벽을 뚫지 못했다. 누구도 바깥의 상황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철옹성 안에서는 과거의 이야기만 떠돌고 있었다. 오늘 시위하러 온 장애인 단체에 관한 소문이었다. 수년 전 장애인 단체가 관공서 안으로 진입하여 예산실을 점령했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였다. 직원들은 과거를 회상하며 긴장된 웃음을 짓는 한편, 내부 익명게시판에서는 시위를 반대하는 주전론과 시위를 포용하는 주화론으로 나뉘어 아웅다웅했다.
퇴근 시간이 다가올수록 관공서의 분위기는 흐트러졌다. 시위대의 난입을 막기 위해 주차장 출입구를 전부 폐쇄했다는 소식이 들렸기 때문이다. 시위대는 새로 지은 청사에서 또다시 전설을 만들려 했고, 경찰과 총무과 직원들은 전설의 탄생을 필사적으로 막았다. 주차장을 꽉 메운 자동차들은 빠져나갈 길이 없었다. 직원들의 퇴근은 한없이 늘어질 판이었다.
익명게시판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상황이 악화되자 주전론자들은 탄력을 받았다. 선량한 시민들이 시위 때문에 불편을 겪고 있다며 분노를 터뜨렸다. 시위를 막느라 고생하는 총무과 직원들에게 댓글로 팬레터를 남기는 이도 있었다. 집회 허가 과정에 의문을 제기하는가 하면, 직장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들이 볼썽사나운 광경을 볼까 봐 걱정하기도 했다. 사회질서의 회복을 염원하던 주전론자의 감정은 게시판에서 거세게 소용돌이쳤다. 반면 주화론자가 남긴 글자들은 소용돌이의 가장자리를 맴도는 구명조끼처럼 초라해 보였다.
주전론이 주화론을 압도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쏟아지는 글에 파묻혀 방향을 잃을 것만 같았다. 맘 편히 나의 살길을 찾기로 했다. 자전거로 출근한 사람의 우월함을 떠올렸다. 자동차를 타고 온 직원들이 언제쯤 퇴근할지 노심초사하는 동안, 자전거를 타고 유유히 포위망을 빠져나가리라 다짐했다. 운수 좋은 날이로구나. 마음 한구석에 은근한 즐거움이 일었다.
퇴근하러 바깥에 나가보니, 장애인 단체는 도시의 장막 안에서 경찰과 힘겨루기 중이었다. 주차장 출입구는 여전히 굳게 닫혀있었다. 주차장 출입구는 관공서 직원들의 퇴로이기도 했고, 장애인 단체의 진로이기도 했다. 장애인 단체는 배수진을 치고 있었다. 가야 할 곳은 주차장 출입구밖에 없었다. 관문을 돌파하고, 요충지를 점령해서, 이렇게라도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그들의 살길이었다. 자전거를 가지러 가며 만끽했던 우월감이 갑작스레 짐짝처럼 느껴졌다.
도시를 빠져나가며 뒤를 돌아보았다. 도시는 뒷짐 진 손에 칼을 쥐고 있었다. 화음은 여러 음정이 어우러지는 현상이 아니라 불협화음을 도려낸 상태라고, 도시가 내게 설교하는 듯했다. 설교가 낯설지 않았다. 어렸을 적 급우들과 어깨동무를 한 채 앉았다 일어나며 우리는 하나라고 외쳤다. 화합을 이룬 척하기 위해 굼뜬 아이를 억지로 일으켰다 앉혔다 조종하였고, 기합이 끝나면 그 아이에게 원망을 쏟아냈다. 그 시절 기합 주고 설교하던 어른은 사회의 원로가 되었고, 기합 받고 설교 듣던 아이는 사회의 주역이 되었다. 이들은 오늘날 시민 행세를 하면서 여전히 우리는 하나라고 외치고 있다.
장애인 단체와 경찰. 주전론과 주화론. 시위를 바라보는 아이와 아이에게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모르는 어른. 모든 집단이 서로 겉돌아 조화롭지 못했다. 서로가 물고 물리는 아수라장을 지나오면서 어쩌면 이것이 진실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세상은 조화롭지 못한데, 그동안 누군가가 닥치고 있었기 때문에 조화롭다고 착각한 것이 아닐까.
어차피 세상은 평온한 일상으로 회귀할 테고 그러려면 결국 누군가는 닥쳐야 한다. 시위하는 장애인 단체가 닥쳐야 하는지, 시위를 막는 경찰이 닥쳐야 하는지, 이런저런 말과 글을 쏟아내는 직원들이 닥쳐야 하는지, 나는 도저히 분간할 수가 없었다.
퇴근길은 길의 순서가 거꾸로 되어있다. 피아노 소리가 나는 길이 먼저고 평탄한 자전거길이 나중이다. 메마른 길에서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거친 노면과 피아노 소리. 두 개체 사이의 필연성을 생각해보려다가, 곧 관뒀다. 가치 없는 고민이었다. 관공서가 무관심했고, 날씨가 건조했고, 그래서 보도블록에 틈이 생겼고 하는 따위의 작위적 분석은 나를 지치게 했다. 소외된 곳에서는 원래 그러한 소리가 난다. 이렇게 받아들이는 편이 훨씬 자연스러웠다.
외로운 길은 스스로 소리를 내고 있었다. 길은 살아있는 생명체로 여겨졌다. 달그락거리는 피아노 소리는 그르렁대는 짐승의 숨소리 같기도 했다. 평탄한 자전거길에 접어들었는데도 짐승의 숨소리가 계속 들렸다. 나는 짐승에게 차마 닥치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첫댓글 올릴까 말까 망설이다가, 결국 올렸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많이 가르쳐주시기 바랍니다!
잘 올리셨습니다. 좋은 작품은 널리 알려져야지요~
등단작인데 어쩌면 이리 글을 잘 쓸까, 부러워하면서 보았습니다. 에세이문학의 미래가 아주 밝습니다. 등단을 축하드립니다~
앗 과찬이십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강동우 선생님!
등단을 축하드립니다.
이런 탄탄한 글을 쓰시는 분이시군요.
앞으로 보게 될 글들도 기대됩니다.
감사드립니다! 많이 배우면서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강동우 작가님,
완료추천 축하드립니다. ^^
감사합니다!
오래오래 열심히 하겠습니다!^^
보기드문 사회수필, 드러내지 않고 넌즈시 전하는 속마음을 간접적으로 충분히 알게 해주시는 솜씨,
좋은 작품입니다. 발송날 만나보니 대단히 믿음직한 분, 자전거를 타며 피아노 소리를 듣는 그 감각으로
앞으로 멋진 글 많이 보여주시겠지요?
올린 작품도 참 센스 있으셔요. 폰트와 크기 그리고 단락마다 한 줄의 여백을 두어 보는 사람을 염두에 둔
마음이 느껴집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멋진 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꾸준히 쓰겠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발송날 즐거웠습니다. 다음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