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양주 보살 김 여사
장생포 어디쯤 사찰에 의탁한 그 공양주님 새해에 지천명이 된단다 월 150에 공양 음식으로 해결되니 등허리 부칠 만한 조건이다 신의주 지나 압록강 징검다리 아랫도리 맨살로 건너 연변 골짜기 눈보라 치는 수풀 또 넘어온 탈북자 몸으로
삼양 어디였던가, 주저앉은 어린 피붙이 밀치며 ‘더 처지면 혼자 간다’ 한마디에 칠흑 같은 어둠에서 마른 명태처럼 빳빳하게 굳던 여섯 살 아들 표정 붙박이로 사라지지 않아 종시 아프다 주말마다 센터 찾아 한 끼 밥 먹일 때마다 까르르 눈웃음 눈부시고 눈물겨운데
만포시 뒷골목 좌판에서 압록강 건너 중국 땅 바라보던 석양 아래에서 웬 젊은 동무가 구워준 CD 한 장, 배용준 나오는 ‘겨울 연가’일 수도 있다 그 남조선 스크린 하나로 소용돌이 운명 되었지만 장마당 떠올릴 때마다 눈시울 물씬물씬 젖는 이유도 빠드름하다
강산이 바뀌어도 그리운 산천이다 소도시 시장통 식당 골목에서 도둑 누명 쓴 소문이 문고리 들썩일 때마다 자르르 떨리던 좁은 어깨 멈추지 못한다 지금은 길림성 움막에 놓고 온 두 번째 늙은 남편 병든 심장은 차도가 있을까 갸웃대며, 쏟아지는 잿빛 햇살 쬐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