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 오세요 그냥 오세요
무비(無非).이것은 13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법명이었습니다.
예 맞습니다. 아버지는 평생 불교 신자였죠. 홀로 아이 셋을 키우시느라 고생도 많으셨습니다. 그러던 아버지께서 어느 날 뇌졸중으로 쓰러지셨습니다. 집에 뇌혈관 질환 환자가 있는 집이라면 아시겠지만, 뇌졸중은 참으로 잔인한 병입니다. 한 사람의 인간적 존엄을 지키기 힘들게 할 뿐만 아니라, 한 가정의 존립마저 위태롭게 하는 병이죠. 아버지께서 쓰러지셨을 당시, 아버지 곁에는 고시준비생인 저와 100만 원에 10만 원짜리 사글셋방이 전부였습니다. 몇 년간의 병시중 끝에 남은 것은 더 심각해진 후유증과 많은 빚뿐이었습니다. 사법시험이란 꿈도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어서 복지단체를 찾아봤습니다. 요양원은 꿈도 못 꿀 처지였으니까요. 평생을 불교신자로 살아오셨던 터라, 그때 처음 불교계에서 운영하는 복지단체를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도무지 찾을 수가 없어서 각 종파 종단에 모두 문의해 봤지만, 불교계에서는 그런 복지단체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조계종 홈페이지에서는 제 문의 글을 두고 한동안 불교 신자들끼리 심각 한 논쟁을 벌일 정도였으니까요. 사회적 약자나 병자를 돌보는 일이 종교의 순기능 중 하나라면, 적어도 불교계에서 그런 선행을 찾아보는 일은 힘들었습니다. 그런데요, 정반대로 개신교 단체에서 운영 하는 복지단체는 정말이지 손닿는 곳마다 있었습니다. 극도로 곤궁하고 힘들었기에 그곳의 문을 두드 렸는데, 가는 곳마다 한결같이 두 가지를 요구하더군요. 아버지의 종교를 바꿀 것과 담배를 끊는 것이 었습니다. 목사님은 우리가 이 사업을 하는 이유는 전도이기 때문에 개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시 더군요. 저도 차마 개종을 말씀드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함께 굶어 죽더라도 그냥 이대로 살아요.’ 하면서 포기하려던 찰나, 동네 아는 아주머니께서 수원 경로수녀회를 알려주셨습니다. 이미 몇 개월간의 경험으로 마음에 상처를 입을 대로 입은 상태였기 때문에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매우 냉소적인 마음으로 찾아갔습니다.
나이 지긋하신 수녀님께서 저희를 맞아주셨습니다. 대략 사정설명을 들으시더니 인자한 미소를 띠며 딱 한마디 하시더군요. “오세요.” 저는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수녀님 저희 아버지께서 불교신자….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마디 더 하시더군요. “오세요.” 다시 저는, “수녀님 저희 아버지께서 담배를 피우….” 다시 한마디 하셨습니다. “그냥…오세요.” 저와 아버지는 원장 수녀님의 세 번의 “오세요.” 를 듣고 그 자리에서 무너져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느꼈던 한없는 포용이 하느님의 마음이라고 전 지금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친절한 말 한마디가 순교보다 위대하다.’는 데레사 수녀님의 말씀을 가슴 깊이 느낍니다. 그리고 그 큰 은혜로움을 증거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김석환 요셉| KBS 성우>
첫댓글 불자로서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경책삼아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