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브 찜질방에 딸과 함께 갔더니 허브 냄새와 따뜻함이 온몸의 긴장, 피로를 풀어주어 몸과 마음이 상쾌했다. 마침 지인이 생각이나 전화를 했다. 몸이 아파 있으니 열을 내면 좋을 것 같아서였다. 지인의 반가운 목소리가 들리고 여차저차하니 찜질방으로 오면좋겠다 했더니 대답은 주지않고 대뜸 '탁구 해볼 생각 있느냐'고 물었다. 배움에 굶주려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배우고 싶어한지라 흔쾌히 허락을 해놓고 걱정이 시작되었다. 운동신경이 둔해서 춤을 자유로이 춰 본 적도 없거니와 운동회 때 여섯 명 달려 5등도 아닌 6등을 놓쳐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출발선에 설때마다 콩닥콩닥 세상이 먼저 움직였었고, 살아오면서 맘놓고 할 수 있는 운동이라고는 줄넘기뿐이었다.
"탁구"
26년 전 1988년 올림픽에서 부산 출신인 '현정아' '유남규'씨가 금메달을 따 탁구 열풍 이었다. 부산 곳곳에 탁구장이 생기고 만나는 사람마다 탁구장에 가는 게 요즘 카페 들리듯 하였다. 몸치인 나도 열기에 못이겨 탁구장에 몇 번 가보기는 했으나 가르침도 없이 마음대로 치다보니 공을 쳤던 기억보다 주으려 다녔던 기억만 남았다. 더군다나 탁구장 주인이 내 폼을 보고서는 안타까워 했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이런 내가 탁구 배운다는 게 겁이 났다. 그러나 약속을 해놓은 터라 아들에게 탁구 배우기로 했다고 자랑을 하며 마트에 가서 탁구채를 사왔다. 오자마자 아들에게 탁구채 잡는 방법과 치는 법을 물었다. 아들은 초등학교 때 탁구부에서 레슨을 받았기에 군대에서도 시합을 하여 상금을 받은 적도 있고 친구들간에도 부러워할 만큼 친다 하였기 때문이다.
탁구채를 들고 폼 잡는다고 엉거주춤하게 이리 휘두르고 저리 휘두르며 한 번만 가르쳐 달라 했더니 공을 위로 올리면서 받아쳐보라 한다. 공을 던지기는 하지만 채에 맞지를 않았다. 몇 번이고 헛나가는 내 모습에 아들이 내린 한마디 '엄마는 지금 탁구 폼보다는 공 받는 연습부터 해야겠다'며 공을 위로 올려 치는 연습을 하라 한다. 시범을 보여주는데 채 바닥으로 치기도 하고 가장자리로 치기도 하면서 "이걸 열심히 하세요" 하고서는 제방으로 가버린다. 달리기 출발선에서 느꼈던 콩닥소리를 다시 들으며,운동신경이 무딘 내자신을 재발견하는 순간이었다. '하면 안 되는게 없겠지' 하고 공을 위로 올려 채를 갖다 댔다. 하지만 공따로 채 따로, 수십 번을하여 한 번 성공!,
한 번을 성공했으니 세 번 네 번도 할 수 있으리라 최면을 걸어놓고 밤 열 시가 넘도록 연습을 하는데 집전화가 울렸다. 땀을 훔치며 헉헉 거리며 "여보세요"했더니 " 이웃집도 생각하셔야죠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가 없네요" 얼떨결에 어벙한 말투로 "죄송합니다. 제가 탁구 연습을 좀 했거든요" "하하하"하하하" 딸 아이가 제 방에서 장난을 친 것이었다. 속는 모습이 통쾌해서 깔깔거리며 "엄마가 국가대표 선수 할 것도 아닌데 주무시지요". 놀리는 데도 치고 또쳐서 50개 성공, 아들에게 달려가" 야 이제 잘 된다"며 다른것도 가르쳐 달라 했더니 " 그거 열심히 하세요" 하고선 컴퓨터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아들이 야속하였지만 하는 수 없이 치고 또 치고 몇 날을 연습해서 500개를 성공하게 되었다. 그토록 졸라도 진도를 빼주지 않던 아들이 "이제 앞뒤로 쳐보세요" 하는 한 마디에 국가대표에 뽑힌것처럼 치고 또 치고......, 그렇게 연습을 하고 보니 공이 튕기는 느낌과 손목에 힘이 어떻게 가는 지를 알게 되고 빠르게만 쳤던 공을 느리게도 칠 줄 아는 여유가 생길즈음 탁구 시작한다고 실내화,탁구채 준비해서 오라고 전화가 왔다. 탁구채는 이미 준비했고 실내화를 당장 사서 가방까지 챙겨 이틀 전부터 준비를 끝내고,
드디어 그날, 두려움 반 설레임 반으로 선생님을 만나본 것이다. 서로의 인사가 끝나고 처음으로 지시해 준 동작이 아들이 하라고 했던 공 올려치기였다. 연습을 많이했던 나는 당연히 여유롭게 칠 수 있었고 탁구대에 서라 하시더니 공을 주시는대로 받아쳤다. 처음엔 어설퍼서 몇 번 지적을 받았지만 어디서 정식으로 배웠느냐고 물으시며 과분하게 칭찬을 해 주셨다. 순간 아들에게 고마웠다. 그리고 연습하면 안되는 게 없구나 하는 자신감도 얻게 되었다. 다음으로 선생님께서 내주신 벽치기 연습을 처음엔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하였지만, 하고 또 하다 보니 이젠 공이 보이고 나날이 달라지는 모습에' 다른 곳에 가서 또 레슨을 받아오느냐'는 선생님물음에 겉으로 웃으며 속으로 흐뭇해진다.
지금도 허리가 아프도록, 눈이시리도록 공을 쫓아다니며 틈나는대로 연습한 시간들이 눈앞을 스친다. 그리고 새긴다 '게으름이 방해할 뿐이지' 하고. '하고 또하고 또하면 안되던 것도 된다'는것을.
기다린다. 어서 방학이 오기를, 아들에게 스매싱 날리며 웃음까지 함께 날릴 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