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책 : 제일좋은집
지연된 정의, 똥만이를 읽었습니다.
지연된 정의
p.16 서울에서 정규직 기자 생활 10년, 그 시간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울타리 너머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덜컥 겁을 먹는 존재로.
p.16 겉으로는 대범한 척했지만, 나의 내면은 속물적 욕심으로 가득했다. 후배가 툭 던진 질문에 뚝 떨어진 눈물이 그 증거다.
p.17 서울 사대문 안은 채에 걸러진 알갱이들 같은 엘리트와 권력자 중심으로 체계적으로 짜인 세상이다. 속칭 '지잡대'를 평점 2.55로 졸업해 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 우연히 기자가 된 나는 사대문 안에서 변방의 외부자였다.
p.18 스스로 말하지 못하거나 그럴 힘이 없는 존재들을 외면한 채 엘리트와 권력자의 목소리를 열시히 기사로 옮기는 일도 재미없었다.
p.18 "잘 생각하셨습니다. 사람은 때로 벼랑 끝에 서야 합니다. 걱정 마세요. 살길이 열릴 겁니다."
p.18 글쓰기에는 마감이 필요하듯이, 어떤 선택에는 준비보다 결단이 더 중요하다.
pp.18-19 안정적인 복지 시스템도 없는 사회에서 나 스스로 정규직을 버리련 두려움도 큽니다.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는 것도 저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 듯합니다. 두려움과 걱정 없는 인생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는 사대문 안에 없는, 있어도 잘 보이지 않는 이야기를 찾아, 사대문 밖으로 나가겠습니다. 그것이 폭설이 내린 그날 아침 광화문에서 우월감과 열등감을 동시에 느낀 제가 가야 할 길이 아닌가 싶습니다.
p.19 사표는 수리됐다. 나는 아무 계획이 없었다. 당장 할 일이 없다는 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열린 가능성이라고 자위했다. 눈물이 나고, 가슴이 떨리고, 두려웠다. 그래서 다행이기도 했다. 두렵거나 떨리지 않으면 길이 아니니까.
두려움과 떨림도 재산이라고 생각하고 일단 걸어 보기로 했다.
p.21 "잘됐네요! 나는 사무실 내놨어요. 고용 변호사 두 명이랑 직원들도 다 내보냈어요. 난 거이 망했어요! 김신혜씨 사건 취재는 대충하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어요. 모든 걸 던져 몰입해서 취재를 해야 합니다. 같이 한번 해봅시다! 우린 운명이야!"
p.21 우리 사회에서 인간의 죽음은 어떻게 처리되는지, 죽음이 어떻게 상품이 되는지, 죽음을 다루는 노동의 세계는 어떤지, 직접 장의사 일을 해본 뒤에 르포를 쓰겠다는 장기적인 계획을 이야기 했다.
p.25 "일을 해보니까 알겠더라고요. 돈을 많이 벌면서 공익 활동을 한다? 그게 거의 불가능해요. 약자를 위하는 일은, 자기를 희생하는 일이에요. 그들의 삶을 모르면서 어떻게 그들을 도와요?"
p.27 고등어 두 마리는 초라했으나 그의 진정성이 봉였다. 사람의 마음은 작고 세밀한 것에서 보이기 마련이다.
p.37 서울로 햐이하는 차 안에서 박 변호사에게 물었다. 비장애인도 읽기 힘든 재심 청구서를 그들에게 굳이 왜 줬냐고. 그거 줘봤자 제대로 읽기나 하겠냐고.
"재심 청구 당사자인데, 당연히 줘야죠! 지적장애가 있다고 절차를 안 지키거나, 설명을 생략하면 안 됩니다. 다른 사람과 똑같이 대해야죠. 가난한 지적장애인이라고 무시하고 인간 취급도 안 해서 이 사달이 난 거 아닙니까!"
p.38 고등어 두 마리에 낚일 때처럼 별 생각 없이 '오케이'했다. 복잡하게 생각하고, 이것저것 따지는 건 우리 스타일이 아니었다
p.47 살인 누명을 쓴 삼례 3인조가 어떻게 살았기에 살인 사건 피해자가 한참을 울었을까.
p.53 "제가...글 쓸 줄 모르니까... 형사가... 되게 다답해...하더라고요. 뒤통수를 ... 셀 수 없이... 맞았죠."
한참 뒤에야 형사는 사태를 파악했다. 잠시 뒤 형사는 흰 종이에 뭔가를 적어왔다. 오래전 아버지처럼 형사가 말했다.
"그대로 그려."
강인구는 다시 글을 그렸다.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일단 그렸다. 친구들과 나라슈퍼에서 강도짓을 하다가 할머니를 죽였다는 내용의 자술서. 강인구는 형사에게 또 맞을까봐 자세히, 신중하게, 천천히, 정성을 다해 자술서를 그렸다.
한글을 쓸 줄 모르는 사람의 한글 자술서가 그렇게 완성됐다. 한글을 모르는 사람이 섰음에도 오탈자가 거의 없는 자술서. 지적장애인이 썼음에도 매우 긴 문장으로 상황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자술서. 세상에 이런 자술서가 또 있을까?
p.56 세상에나, 부산지검에서 수사했다는 '진범 3인조'였다. '가짜 3인조'와 '진범 3인조'가 맞대면하는 순간.
지적 장애가 있는 '가짜 3인조'는 진범을 앞에 두고 "우리는 범인이 아니에요!"라고 외칠 수 있었을까. 갑자기 최 검사가 '가짜 3인조'에게 큰소리로 다그쳤다.
"너희 똑바로말해! 너네가 나라슈퍼 할머니 죽게했지? 맞잖아!"
겁에 질린 강인구는 "네. 우리가 범인이에요."라고 말했다. 그 순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진범 3인조' 중 한 명이 고개를 들었다. 그는 강인구의 얼굴을 바라봤다. 다시 고개를 숙인 진범은 소리 내 펑펑 울기 시작했다. 그 울음소리를 들으며 강인구는 다시 교도소로 돌아갔다.
"세상에나.. 나를 위해 .. 울어 준 사람은.. 그 사람뿐이었어요. 그 진범...."
p.58 "그때... 있잖아요. 엄마가 나 끌어안고.. 마지막으로.. 잔 날 ... 그때 ... 저말...따뜻했ㅇ요. 생각해보니... 그때가 제일... 따뜻했고.. 행복...네 ... 행복했어요."
일곱 살 강인구가 전속력으로 가게와 집을 오간 그날 밤. 엄마의 체온은 강인구가 잠들기 전까지 식지 않았다. 강인구는 엄마의 따뜻한 품을 기억한다. 엄마가 생의 마지막 순간에 준 그 따뜻한 체온, 잠들기 전에 느낀 그 짦은 순간의 따뜻한 기억.
그것이 강인구 인생의 화양연화였다. 이를 앙다물고 그의 집에서 나왔다. 강인구가 쫓아 나와캔 커피를 내밀었다.
"이거...드세요...멀리서 오셨는데..."
이로써 그의 냉장고는 완전히 비었다. 온전을 해 서울까지 갈 자신이 없었다. 주차장 차 안에 앉아 한동안 펑펑 울었다. 진범이 그랬던 것처럼, 계속 눈물이 쏟아졌다.
p.80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 치사 사건이 발생한 지 약 20년 세월이 흘렀다. 몽둥이로 가짜 살임범을 만들어 낸 경찰들은 거의 모두 현직에 있다. 2015년 12월, 전주 덕진경찰서에서 일하는 장해구 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의 목소리는 크고 당당했다.
"네, 전주 덕진경찰서 형사 장해구입니다!"
p.80 이번엔 장해구의 선배 형사에게 전화를 해봤다. 그는 삼례 3인조에게 살인 누명을 씌우고도 승진을 하여 '경찰의 꽃'이라 불리는 경찰서장 승진을 목전에 둔 오재경 형사다. 그는 전주 완산 경찰서 수사과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p.86 앞서 말했듯 삼례 3인조 중 최대열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다. 그는 대법원까지 상고를 했다. 유죄가 확정된 뒤에도 한 천주교 교화위원의 도움으로 재심까지 청구했다. 법원은 그의 호소를 모두 외면했다. 최대열은 그가 많은 기대를 걸었던 '똑똑한 남자'를 잊을 수 없다.
그는 바로 1999년 2월 6일 전북 삼례 나라슈퍼에서 발생한 강도치사 사건을 수사했던 최성우 검사, 최 검사는 주먹과 몽둥이로 '가짜 살인범 3인조'를 만들어 낸 완주경찰서의 수사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최대열의 말도 외면했다. 그의 잘못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최성우 검사는 약 10개월 뒤 더 큰 일을 꾸민다.
p.90 이 사건의 재심 개시 여부를 결정하는 심문 기일이 전주지방법원에서 열린 2016년 초, 박준영 변호사는 최성우 변호사를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즈음 최성우 변호사는 김앤장을 그만뒀다. 그는 우회적으로 심적 고통과 불안을 호소했다. 증인 채택을 하지 말아 달라는 뜻이었다.
박 변호사는 재판부와 논의해 증인 신청을 철회했다. 전주지법은 2016년 7월 재심을 개시했고, 같은 해 10월 28일 삼례 3인조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얼마 뒤, 최성우 변호사는 김앤장에 다시 들어갔다. 그는 자신이 잘못 기소한 삼례 3인조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또 한 명 진범'부산 3인조'를 전주지검으로 이송하도록 해 결과적으로 진실 규명을 방해한 이종찬 부산지검장은 훗날 이명박 정부 초대 민정수석을 맡았다.
p.92 최성우 검사는 이런 진범들을 처벌하지 않아 반성의 기회마저 빼앗았다. 진범 배00은 2015년 자살했다. 조00은 운 좋게 처벌을 피한 뒤에도 몇 차례 범죄를 저지렀다. 나라슈퍼 사건과 수범이 비슷한 범죄로 교도소에 다녀오기도 했다. 최 검사가 진범을 풀어 준 탓에 또 다른 시민들이 무서운 피해를 겪은 셈이다.
p.114 박변호사는 일상에서 '삼례 3인조'에게 말을 놓은 적이 없다. 그들에게 지적장애가 있어도, 나이가 어려도, 수임료는커녕 자신에게 냉면 한 그릇 못 사주는 사람들이어도, 그는 꼬박꼬박 높임말을 쓰며 자신의 의뢰인을 존중했다. 3인조가 그의말을 잘 이해 못해도 그는 짜증내지 않았다.
국가가 존엄한 인간으로 대하지 않은 삼례 3인조를, 고졸의 가난한 박 변호사가 사람으로 대했다. 인간에 대한 예의와 존중, 박 변호사의 변론은 거기서 출발하고, 다시 거기로 향했다. 박 변호사는 그걸로 싸웠고, 그걸로 이겼다.
p.115 나는 오만했고, 시만하는 일을 좋아했고, 스스로에게 도취돼 있었고, 또 자신만만했다. 나는 정의 그 자체보다 내가 이기는 것에 더 몰두했다.(중략) 내가 촉발한 글렌포드의 모든 비참에 대해 그와 그의 가족에게 사죄한다. 그릇된 판단으로 헛된 결말을 안긴 유족에게도 사죄한다. (중략) 내 의무를 다하지 못함으로써 오점을 남긴 재판부에도 사죄한다 _최윤필,"30년 억울한 옥살이, 죽음 앞에서도 용서 못한 공권력", [한국일보,2015.8.10]
미국 루이지애나 주에 사는 글렌 포드는 1983년 1급 살인죄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런데30년이 지나 진범이 따로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포드를 기소했던 검사 마티 스트라우드는 지역 신문에 위와같은 글로 잘못을 고백하고 반성했다. 더 나아가 말기 폐암으로 죽음을 앞둔 그를 찾아가 손을 모으고 머리를 조아렸다.
"매우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걸 알아줬으면 합니다. 내가 무덤에 갈 때까지 가져가야 할 나의 오점입니다.."
"내 인생 31년이 희생됐습니다. 그런데 살날이 이제 6~8개월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미안하지만, 난 당시늘 용서할 수 없습니다."
p.247 "주먹으로 치고 몽둥이로 때리는 고문보다 잔혹하고 교묘한 게 뭔 줄 알아요? 많이 배워서 똑똑한 놈들이 저지르는 '조서 조작'이에요! 이게 정말 무서운 겁니다. 때리면 흔적이라도 남죠. 교묘하게 피의자가 허위 자백하게 만들고 조서를 조작하는 건 훗날 검증하기도 어려워요. 배운 놈들이 요즘 그런 짓을 한다니까!"
p.293-295 다음날 박 변호사는 이 매화를 청주여자교도소까지 가져갔다. 아무리 변호사 접견이라 해도 꽃은 반입 불가 품목이다. 박 변호사는 교도관에게 간청했다.
"김신혜 씨는 15년 동안 고향에도 못 갔는데, 고향 땅에서 피어난 매화 향이라도 한번 맡게 해줍시다."
교도관은 웃음으로 허락했다. 방으로 가져갈 수는 없고 접견실에만 두는 조건이 붙었다. 그렇게 무기수 김신혜는 고향 땅 완도의 태양과 바람을 맞고 피어난 매화 향을 맡았다. 15년 만이었다.
p.305-306 어려운 상황과 조건에서 허위 자백을 했던 ㅣ들은 이렇게 세상의 상식과도 싸워야 한다. '상식적으로, 어떻게 허위로 사람을 죽였다고 말할 수 있느냐', '3심 제도와 국선변호인 제도가 있는데 왜 호소하지 않았느냐?'는 물음이 그것이다.
사실 이런 물음은 두 가지가 전제돼야만 의미가 있다. 수사기관이 법과 원칙에 따라 고문, 폭행, 기망, 협박, 회유 등 불법.위버한 방법으로 피의자를 압박하지 않고, 국가의 여러 제도와 자치는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면서 잘 운용된다는 게 그것이다.
p.209수사기관의 고문에 가까운 가혹 행위가 있을 때만 허위 자백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물리적 폭력 없이 수사관의 회유, 혀박, 기망 등 심리적 압박만으로도 "사람을 죽였다."고 허위 자백한 사례는 쉽게 찾을 수 있다.
p.310 "이미 다른 사람들이 너와 함께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계속 부인하면 더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진다."는 수사관의 기망과 협박에, 범행을 부인하던 피의자들은 줄줄이 허위 자백을 했다.
p.319 시국 사건이나 많은 사람이 관심을 보이는 정치사건이 아닌 일반 형사사건의 재심은 이처럼 힘들게 진행된다. 사법부는 '법적 안정성'을 이유로 재심에 인색하고, 여론은 일반 '서민들 범죄'의 인권유린 사례에 대체로 무관심하다.
똥만이
p.165"가슴 속에 슬픔이 있는 사람이라야 다른 사람을 가엾게 여길 줄 알거든. 상처받지 않게 아껴주기도 하고, 내가 아프고 슬프니까, 저 사람도 그렇겠구나 하면서 말이야."
"..."
"그리고 똥만이가 외롭고 슬프지 않으면 이 먼 데까지 찾아오겠어? 늘 좋으면 누나도 만나러 안 올 거고, 소영이 누나도 평생 모르고 지냈을 거야. 사람은 외롭기 때문에 친구도 사귀고, 다른 사람을 가슴에 간직하는 거야. 외롭고 슬프지 않은 사람은 친구를 사귈 수 없어. 사랑도 못하고."
"그래도 우리 아버지는 너무 심해요."
"똥만아, 아버지 미워하면 안돼. 사람은 누구나 약하고 부족한 점이 있거든. 똥만이 아버지는 부족한 사람이니까 똥만이가 곁에서 지켜 줘야지."
"...."
남영이 누나의 말은 알 듯 모를 듯했다. 누나는 "나중에 크면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될 거야." 하고 말했다. 남영이 누나 말대로 좋은 사람이 될면 얼마나 더 커야 하는 건지 궁금했다. 남영이 누나는 엄마 청소 도와주러 가자며 방을 나섰다. 이번에도 동만이의 손을 잡았다. 도만이는 더는 앞장서 걷지 않았다. 절뚝거리는 남영이 누나 손을 꼭 잡고 <신라장>까지 걸었다. 동만이는 자기 키가 한 뼘 정도 자란 듯한 기분이 들었다.
p.210 "너처럼 어린 나이에 큰일을 겪은 애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잘해. 아파도 안 아픈 척, 슬퍼도 안 슬픈 척, 심심하고 외로워도 씩씩한 척."
"..."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거든. 그것도 아픔을 견디는 방법이지만, 그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아. 그냥 울고 싶으면 울고, 말하고 싶으면 말하고, 웃고 싶으면 웃어. 그래야 마음이 편하고, 인생에 때가 덜 끼는 거야."
p.263 나는 불혹의 나이가 됐다. 아버지를 닮아 머리가 많이 빠졌다. 이쯤 살아보니 조금 알겠다. 사는 건, 무수히 언덕을 넘는 일이란걸, 때로는 혼자 힘으로 넘을 수 없는 언덕도 있다. 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무사히 넘어 여기까지 왔다.
남영이, 소영이 누나는 지금 어디서 무얼 하며 살고 있을까.. 뻥튀기 아저씨는 아직도 거리에서 "뻥이요!"를 외치고 있을까? 꼬부랑 할머니가 됑있을 나의 새엄마는 건강히 살아 계실까?
이젠 거리에서 마주쳐도 얼굴을 못 알아볼 그이들에게 어떻게 고마운 마음을 전해야 할지 모르겠다. 똥만이는 이 어른들 덕분에 외로웠던 그 시절의 언덕을 무사히 넘었다. 큰절이라도 올리고 싶다. 자주 생각한다고, 그러다 보면 가끔 눈이 붉어진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이젠 한글을 어려움 없이 읽고 쓴다. 받아쓰기 답안지 내는 마음으로, 이 책을 그인들에게 바친다.
지연된 정의는 정리하면서 읽었는데요. 눈물이 계속 나서 정리하다 울다.. 했네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기억하는 일 이라는 것을 명심하겠습니다.
|
첫댓글 준희선생님^^
축하드려요!^^ 그리고 고맙고요^^ 언제나!
기쁘게 섭섭해 할 일이 남았지만......^^
어젯밤에 우연히 '허리케인 카터'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교육방송에서........^^
시간 날 때 한 번 보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학년말에 아이들과 함께 봐도 좋을 영화^^
오! 허리케인 카터 꼭봐야겠네요!!
제가 더 감사합니다. 선생님~! 늘 마음만은 함께하겠습니다. 멀리서도 밑줄 독서는 계속해야겠어요. 독서모임이 생활의 중심이었던 저는 섭섭함이 더 크네요. ^^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