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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일탈이다. 그것은 일상에서 벗어난다는 의미에서 일탈이라고 할 수 있으며, 여행을 하는 가운데 마주치는 것들을 통해서 평소에 하지 못한 생각들을 떠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전문 여행가라는 직업으로 여행을 즐기고 다른 이들에게 소개를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바쁘게 살아가는 일반 사람들에게 여행이란 대부분 오랜 시간동안 숙고해서 기간과 행선지를 결정해야만 한다. 큰맘 먹고 다녀온 여행지의 경험이 만족스러울 수도 있고, 가이드 혹은 여행지의 사정으로 제대로 된 일정을 소화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여행은 오랜 추억으로 회상되고, 어떤 경우에는 다시 떠올리기 싫을 정도의 경험으로 남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출판사의 제안으로 저자가 여행기를 쓰기로 하고, 유럽의 주요 도시를 돌아본 여행기록이라고 한다. 이제 1권이 출간되었으니, 아마도 새로운 도시의 여행 기록을 소개하기 위한 저자의 유럽 여행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것도 저자가 오랜 시간 동안 원했던 유럽의 주요 도시들을 훑어보는 일정이기에, 아마도 선뜻 수락했을 것이라 여겨진다.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여행 기록을 출간하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서의 기행이었던 셈이다. 그야말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여행도 즐길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을 것이다. 저자의 이런 여행이 누구라도 부러워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번에 출간된 1권에서는 모두 4개의 도시가 선택되었다. 그리스의 아테네와 이탈리아의 로마, 그리고 터키의 이스탄불과 프랑스의 파리가 그 대상지이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한 여행 기록이 아니라, 현지 역사에 대한 저자의 박식함이 더해져 읽는 동안 그야말로 대상 도시에 대한 풍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최근 유럽은 이른바 민족주의적인 색채가 강화되면서, 타 국가나 민족들에 대한 배타적인 의식이 강화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유럽의 역사를 보면, 지금처럼 각 나라의 경계선이 만들어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한다. 서로 다른 민족들이 섞여 하나의 국가를 이루기도 하고, 하나의 민족이 여러 국가에 나뉘어 살던 환경이었던 것이다. 까마득한 시절 ‘세계사’를 접한 이후, 이 책을 통해서 유럽의 역사가 다시 환기되었다.
시사평론가이자 작가로서의 타이틀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은 각 도시를 수식하는 용어들에서 느낄 수 있었다. 첫 번째 도시인 그리스의 아테네를 저자는 ‘멋있게 나이 들지 못한 미소년’으로 표현하고 있다. 서구 문명의 발상지라는 그리스는 전역이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유적이 넘쳐나지만, 21세기에 터진 금융위기로 인한 후유증이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고 한다. 저자는 하나의 도시를 소개하면서 유물과 같은 도시의 문화적 환경만이 아니라. 그 나라의 역사를 개략하면서 현재의 상황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후에 같은 장소를 찾을 지도 모르는 독자들에게 유용한 여행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두 번째 도시인 이탈리아 로마는 ‘뜻밖의 발견을 허락하는 도시’라는 제목으로 소개되고 있다. 서양의 고대문명을 찬란하게 싹틔웠던 도시 로마를 저자는 21세기 들어 ‘치안이 불안하고 쓰레기가 굴러다니는 이탈리아 최악의 도시’라는 오명이 덧씌워져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서도 로마의 역사를 개략하면서, 다양한 유적들을 소개하는 저자의 박식함이 잘 드러나고 있다. 터키의 이스탄불은 ‘단색에 가려진 무지개’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세 번째 도시이다. 동양과 서양, 기독교와 이슬람교, 그리고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된 터키의 특징이 21세기 들어 ‘다양성을 잃어버린 도시’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다양한 문화적 요소가 혼재하고 있는 터키는 개인적으로 꼭 한번 가보고 싶은 나라이다.
미자막에 소개된 도시인 프랑스 파리는 ‘인류 문명의 최전선’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어 있는데, 저자는 파리를 ‘지구천의 문화수도’로 지칭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직 유럽 여행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그동안 프랑스 문화와 특히 파리가 가진 상징성에 대해서 많이 들어보았다. 에펠탑으로 상징되는 파리의 풍경은 그곳을 다녀온 사람들이 자신 있게 내세우는 자랑거리이기도 하다. 루브르 박물과과 개선문, 에펠탑과 오르세 미술관, 그리고 미식으로 평가받는 프랑스 음식들이 연상되기도 한다. 저자는 이러한 유적들을 역사적 맥락을 살펴 소개하면서, 특히 우리가 관념으로 인식하고 있는 ‘프랑스 음식’은 없다고 단언한다. 그 이유를 저자는 ‘파리에서 내가 간 식당 주방장이 만든 음식을 먹었을 뿐, 프랑스 음식을 먹은 게 아니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일견 충분히 수긍되는 논리였다.
여행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특별히 죽기 전에 꼭 가봐야겠다는 곳을 정하지는 않았다. 그저 기회가 닿는다면 어느 곳이든 여행을 하고, 가기 전에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숙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해외여행을 그리 선호하는 편이 아니고, 국내 여행이라도 즐길 수 있다면 만족하는 편이다. 물론 저자처럼 특별한 계기를 통해서 해외여행을 할 수 있다면, 기꺼이 다녀올 의향은 충분하다. 다만 나만의 여행 기록을 남긴다면, 그저 밋밋한 여행지에 대한 감상보다는 저자처럼 역사와 문화적 배경을 함께 이해하는 내용을 채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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